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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말하는 부부 이야기_잘 키운 남편, 열 아들 안 부럽다 남편 사용 가이드
남의 편이라서 ‘남편’이라는 그를 내 편으로 만드는 매뉴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수록 수수께끼인 남편과 잘 살아가려면 남편이라는 ‘사용자 조립 제품’에 대한 작동법부터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한다. 가족 상담 전문가인 이병준 씨가 상담 현장에서 생생하게 습득한 노하우를 ‘남편 사용 설명서’로 만들어 보내왔다.
거친 운전에 인상을 써가며 아내에게 퍼부었다. 눈에 띈 생활한복을 집어든 것이 발단이었다. 생활한복을 즐겨 입는 내게 디자인과 색상 모두 마음에 드는 옷이 들어왔다. 더구나 가격까지 저렴했다. 이 정도라면 충동구매라도 가능하리라 싶었다. 그런데 아내로부터 눈앞에서 구입 불가 통보를 받자 순식간에 화가 터져 나왔다. 더구나 어머니와 동행한 자리가 아니던가. 어머니가 민망하셨던지 “내가 한 벌 사줄까?”라고 묻는다. 마누라한테 옷 한 벌도 못 얻어 입는 무능한 아들로 비쳐진다는 생각이 들자 자존심이 상했다. 내 표정을 본 아내가 태도를 바꿔 다시 사주겠다고 하는데 그게 더 자존심을 건드렸다. 삐침쟁이를 만들어 두 번 죽인 셈이니까.
며칠 후 아내는 “당신 그렇게까지 화낸 걸 보니 정말 화가 많이 났나 봐. 미안해”라고 메일을 보내왔지만 난 아직도 ‘흥!’ 상태.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있다. 소탐대실이다. 때론 알면서도 모른 척해줄 필요가 있고, 작은 것 하나 투자해서 더 큰 것을 건져내는 건 모든 아내가 갖춰야 할 능력이다. 남자란 영원한 어린아이에 삐침쟁이가 맞지만, 잘만 키우면 열 아들 부럽지 않는 우군이 되기 때문이다. 이 과업을 이루지 못하면 남편은 영원히 남의 편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남편을 만들 수 있을까?

사탕을 준비하라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행동 수정의 기본 원리는 ‘보상’과 ‘벌’, 즉 ‘사탕’과 ‘매’다. <유혹과 조종의 기술>을 쓴 니나 디세사가 말하듯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유혹과 조종’의 기술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 내게 그 생활한복은 사탕이었다. 은근히 욕심 내는 내 눈치를 보고 “드디어 옷이 주인을 제대로 만났네. 당신은 옷걸이가 좋아서 4만 원짜리도 40만 원짜리를 만들어버리지”라고 했으면 그 약효가 적어도 몇 달을 간다. 아니 한복을 입는 내내 효과가 지속되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사탕 자리에 매를 준 셈이다. 이유는 아내의 탁월한 합리성에 있다. 그것은 내가 백번 인정하는 아내의 명석한 두뇌에 기초한다. 가계부를 쓰지 않아도 가정 경제의 입출입 내역을 다 기억하는 것은 물론, 내가 외부에서 강의하는 모든 일정을 꿰고 있다. 그러나 그 합리성은 객관성이란 틀에 묶여서 그 이상의 세계를 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아내에게는 남편은 어린애 같은 대상일 수밖에 없고 매를 들어서 고쳐야 할 명분만 생길 뿐이다. 그럴수록 남편은 멀리 도망가게 된다.
남편 문제로 나를 찾아와 상담했던 한 아내도 천재적인 합리성의 소유자였다. 해결책으로 남편을 위한 막대사탕 한 통을 처방해주었다. ‘칭찬거리’를 찾아서 그때마다 사탕을 주라고 했던 것. 처음엔 인상을 쓰더니 몇 번 거듭되자 은근히 좋아하더란다. 또 남편의 ‘칭찬거리’를 찾아내는 자신에게도 사탕을 주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부부가 사탕을 동시에 입에 물고 빨아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둘 사이에 새록새록 옛정이 솟아났다. 이런 것을 이마고 부부 치료(imago couple therapy: 미국에서 효과가 입증된 부부 관계 치료 프로그램으로, 부부 관계의 치료에서 배우자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중점적으로 치료에 반영하는 방법)에서는 ‘뜻밖의 선물’ ‘배려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이것이 부부 관계의 통장에 적립금을 쌓는 것이 된다.

부화시켜라 ‘거듭남’이라는 말은 종교 용어지만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용어이다. ‘심리적 탄생’ ‘분리-개별화’ 같은 심리학적 풀이가 있지만 쉽게 말하면 ‘부화’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남편은 아내보다 ‘미숙아’ 상태다. 물론 남편이 훨씬 더 성숙하고 아내가 미숙아인 경우도 있긴 하겠지만 거의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친절하게 말을 해도 말귀 자체를 못 알아듣고, 100% 이기적이고, 조금만 불편해도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치한 행동만 거듭하게 되는 것이 남편이다. 이런 남편도 밖에서는 친절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부화’는 ‘품다’라는 동사와 어울린다.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 수용’을 제공, 남편이 나에게 ‘절대 의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담에서는 이것을 ‘safety’라고 한다. 사람은 이렇게 ‘품어주는 안전한 환경’을 통해서만 부화될 수 있으며, 부화된 사람만이 나와 배우자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을 설정할 수 있다. 나의 ‘생각(인지)’과 ‘느낌(정서)’이 있다면 배우자의 ‘생각’과 ‘느낌’도 있기에 ‘존중해야 한다(행동)’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결혼할 자격을 갖춘 어른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결혼한다면 마치 오로지 빽빽 울어서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하는 신생아가 결혼한 경우라고나 할까?

버림받지 않으려면 자신을 사랑하라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 원리는 부부 관계에서도 똑같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더 많이 받아 더 많이 행복한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오는 사랑마저도 거절해 불행의 연속이다. 이것을 심리학의 교류분석에서는 ‘에누리(discount)’라고 한다. 아내가 연약할수록 남편은 아내를 함부로 대한다. 양심의 가책은커녕 늘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반대로 힘을 가진 아내 앞에선 온갖 재롱을 피우며 사랑받으려고 한다. 남편에게 사랑을 구걸하지 말라. 구걸하는 순간, 남편의 이단옆차기가 내 쪽박을 깨뜨리게 되어 있다. 남편 없어도 혼자서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데도 곁에 남편이 있을 때 그건? ‘덤’이다. 나를 사랑하는 기술이야말로 오히려 남편을 부려먹는 탁월한 기술이기에 아내가 가장 먼저 습득해야 할 삶의 기술이요, 행복하게 사는 고수들이 사용하는 비책이다.

가슴을 키워라 남편은 삶이 힘들수록 안전한 곳으로 퇴행하는 특성이 있다. 남편이 기대하는 젖가슴의 용도는 시시각각 변한다. 집에 돌아올 때 밥과 휴식이 되는 엄마의 가슴, 잠자리에선 요부의 가슴, 때론 친구의 넉넉한 가슴이기를 기대한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라는 노래 ‘애모’는 알고 보면 남자의 노래다. 그렇게 해 본 남편이 행복하다. 그럴 때 아내는 온 가슴을 열어 남편을 품으라. 그러면 남편은 아내에게 목숨을 바치는 충성맨이 될 것이다.
부부 관계는 수수께끼라 제로섬zero sum에선 행복 대신 불행만 가득하다. 항상 ‘0’으로 남기 때문이다. 대신 승승(win-win) 전법으로 살아라. 즉 내가 먼저 행복하면 남편을 잘 키워서 맛있게 잡아먹을 수 있다. 잘 키운 남편, 열 아들 안 부럽다.


* 전공은 국문학이요, 레크리에이션 리더로 활동하다가 목회의 길을 걷고 있는 이병준 씨. 그는 결혼 생활에서 생기는 답답함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학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고 현재는 부부 상담, 가족 치료까지 하고 있다. 동네 약국처럼 사람들 속에 가까이 있는 ‘펀패밀리 가족상담센터 www.funfamily.or.kr’를 열었으며, 얼마 전 책 남편 사용 가이드를 담은 책 <남편사용설명서>를 냈다.

이병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