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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삶의 지혜 30대부터 준비하는 멋지게 나이 들기
세상엔 늙어서 고목, 삭정이가 되는 사람도 있고 말랑말랑한 아이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인생 1막을 얼마나 충일하게 잘 살아왔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나는 나이 들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행복>이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아 인생 2막을 멋지게 펼쳐나가는 선배님들을 찾아뵈었습니다. 예술가에서 정치인, 봉사하는 천사, 젊게 사는 할머니, 그리고 우리 어머니까지. 그들이 들려주는 멋지게 나이 드는 법은 인생 2막을 계획하는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인생 1막을 더 충실하게 살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겠지요.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17가지 행동 강령도 함께 꾸렸습니다.
이제 시작이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73세

‘아프리카 사람들은 원래 신발을 신지 않으니 신을 팔 수 없다’가 아니라 ‘아직 아무도 신을 신지 않으니 시장이 무한대다’라는 발상이 어느 한복 디자이너에겐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이영희 씨는 15년 전, 아직 파리의 모델에게 한복을 입힌 디자이너가 없었으니, 한복으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나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열에 아홉이 무모하다고 말렸지만, 그는 자비를 들여 파리로 날아갔다. 그의 사전엔 ‘되겠나?’는 없었으니까. 이미 엄청난 성공을 이룬 것 같은데 그는 단호하게 “이제 시작이다”고 외친다. “우리끼리 이영희의 옷이 명품이라고 하는 건 효력이 없어요.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해야 명품이죠.”

그는 새로운 레이스를 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하루 일과가 이를 증명한다. 우선 건강관리에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미 20년 전부터 아침마다 수영을 해왔고, 수영 가기 전후로 아침 식사를 조금씩 두 번 먹는다. 바나나, 적양배추, 요구르트를 갈아서 맛과 색을 즐기며 한 잔 마시고, 수영 다녀온 뒤 계란과 구운 마늘을 먹는다. 그리고 가급적 저녁 식사 약속을 잡지 않고 집에서 채소 위주로 가볍게 섭취한다.
체감 나이를 물으니, “파리에 가면 40대, 뉴욕에 가면 50대라고 봐요”라며 웃는다. 멋지게 나이드는 삶의 필수 조건은 ‘한가지를 죽도록 사랑해보는 것’이란다. 그가 한복에 미쳤듯이. 더불어 구두든 가방이든 안경이든, 마음에 드는 것 하나쯤 탐낼 줄 아는 소녀 같은 마음을 품어보라고 이른다. 귀여운 욕심을 낼 줄 알아야 젊고 신나게 살 수 있다. 조만간 그의 책도 나온다. <파리로 간 한복쟁이>(디자인하우스)를 통해서 그가 손수 지은 한복이 전 세계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다. 글 나도연 기자 사진 귀도


(왼쪽) 지구별의 자애로운 어머니, 동물학자 제인 구달*74세
본거지가 ‘비행기’라고 답할 정도로 매년 3백 일 이상, 3백 개국 이상을 돌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제인 구달. 한국을 찾은 그는 다감한 눈동자로 말했다. “단순히 침팬지를 살리는 게 아니라 침팬지가 사는 지구를 살리고 싶어요.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철학을 담은 척하는 허깨비 천지의 세상에서 그가 헌신한 시간은 귀하디 귀하다. 열 살 때부터 아프리카에서 동물과 함께 산다는 꿈을 키웠다. 스물여섯 살, 탄자니아의 곰비 국립공원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침팬지들을 살폈다. 어머니가 주민들을 아스피린과 밴드로 치료해주면서 이웃이 되자, 희한하게도 침팬지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 후로 아름다운 제인(그러고 보니 ‘타잔’의 여자친구도 제인이다)은 아프리카에서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영장류는 모성애, 유머 감각, 사회적 관계까지 있고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인간의 오만함을 깨우쳤다. 손자에게 너무 망가진 자연을 물려준다고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미세스 제인’은 세계를 돌며 환경, 동물, 지역 사회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는 ‘뿌리와 줄기’ 프로그램을 주창하고 있다. 지구별의 자애로운 어머니 제인 구달이 전하는 행복해지는 법. “웃는 법, 특히 나 자신에게 웃는 법을 배우세요. 저도 그걸 깨친 후로 다가오는 세상이 훨씬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다독임 같은 말 한마디. “네게 살아갈 날이 있다면 살아갈 힘도 있다.”  글 최혜경 기자 사진 양재준 기자

(오른쪽) 성찰하는 정치인 한명숙*65 세

정치인의 얼굴에 아이 같은 웃음이 남아 있기란 드문 일이다. 착하고 똑똑한 사람도 정치를 시작하면 귀를 닫고 목소리만 높여, 얼굴이 고집으로 얽는다. 오만해지기도 십상이다.
한명숙 씨는 모처럼 만난 ‘천연기념물’ 같은 정치인이었다. 카메라에 우연히 포착된 그의 얼굴은 말간 국화꽃 같았다. 말과 행동에서는 겸양의 덕이 흘렀다. 16대 국회의원과 여성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2006년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치인이 말이다. “남편 박성준 씨가 제 ‘견제자’였습니다. 얼굴에 삿된 욕심이 생기지 않았는지 늘 점검해주는 거울 같은 사람이죠.” 책 또한 한명숙 씨가 초심을 잃지 않게 한 버팀목이었다. 요즘도 매일 밤 남편과 함께 책을 읽는다.
인권과 여성, 민주화 운동의 ‘맏언니’의 길을 걷는 그는 웬만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독재 정권 시절의 고난이 한몫했다. 결혼 6개월 만에 남편을 감옥에 보내고 13년 동안 옥바라지를 했으며 자신 역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힘든 시절을 버틴 원동력이 궁금하다. “저를 비롯한 모든 인간에겐 고난이 닥치면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확신도 있었고요. 남편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저를 버티게 했지요.” 곡절 많은 정치 역사를 몸으로 대변하는 몇 안 되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책임감도 느낄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누구나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할 겁니다. 먼저 인생을 산 선배로서 우리 여성들이 자기 자신에게 투자했으면 하고요. 타인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자기 삶을 충족시킬 줄 알아야 훗날 공허하지 않겠지요.”  글 나도연 기자 사진 준초이 패션 스타일링 박명선 의상 협조 김영주 플래티넘


음악과 함께한 장밋빛 인생, 첼리스트 정명화*63세
진솔한 음색의, 인간을 닮은 악기, 첼로.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일상의 부딪힘이나 삐그덕거림마저도 모두 곰삭여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첼리스트 정명화 씨. 그는 이 ‘비기秘技’를 가족에게서 얻었다. 이화여전을 나온 엘리트지만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아이들 피아노 레슨을 시켰다는, 7형제마다 “너는 특별하단다”라고 격려하고 자식들을 ‘아이’로 보지 않고 한 ‘인간’으로 대접해준 어머니 이원숙 여사. 50년 동안의 음악 인생에서 딱 한 번 첼로를 놓고 산 일주일의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준 두 딸. 여전히 엄정한 관객이자 평자인 남편 구삼열 씨(전 외교통상부 문화협력대사). 그리고 정 트리오. “나는 ‘러키’하게 참 잘 산 거 같아. 그래서 후회한다는 게 미안해요. 돈이 없어 유학 생활 힘들었고, 잘나갈 때 결혼 서두르는 게 커리어를 좀먹는다고 사람들이 말렸지만. 그래도 돈 아끼는 건 그것대로 재미있었어요. ‘직업이 있어서 약간 미안합니다’ 하고 결혼할 시대였는데 남편이 외조를 아주 잘해줬고.” 항상 불평 많은 삶만 보다가 그처럼 오래 웃는 얼굴을 쳐다보는 건 낯선 일이다. 그 긍정의 에너지는 얼마 전 넷째 손가락에 치명적인 마비가 왔을 때도 힘을 발휘했다. 넷째 손가락을 짚는 대목에서 둘째 손가락으로 대체했더니 오히려 소리가 좋아졌다. 이런 긍정의 힘도 가족이 안겨준 선물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에 인생을 함몰시키고 사는 동안, 그 예술의 중심에 항상 가족을 두었던 그는 요즘 두 손자 앞에서 가장 해사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80세가 되어서야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음악가들은 60세가 절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그의 가족인 173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브라다’는 오늘도 그 옆에서 네 줄의 드라마를 남기고 있다. 글 최혜경 기자 사진 준초이 스타일링 조윤희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다이안 폰 퍼스텐버그, 베라왕


(왼쪽) ‘길치’가 길 떠나는 이유, 국토 순례하는 황안나*69세
왼쪽 “홀로 길 떠나보는 것은 모든 여자들의 꿈이에요.” 교직에서 은퇴한 뒤 어느 날 황안나 씨는 짐을 쌌다. 두 다리로 이 땅의 구석구석을 드나들고 싶어서. 물론 남편에게는 슬쩍 거짓말했다. ‘길치’ 할머니가 혼자 국토 종단 한다면 뜯어말릴 게 분명하니 산악회 회원들과 동행한다고 말했다. 해남에서부터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2천 리 길을 23일간 홀로 종단했다. 지난한 길 위에서 그가 평생 걸어온 길을 반추했다. 발이 부르트도록 걷다가 숙소에 들어가 배낭을 맨 채로 잠들어도 아침이 되면 또 걷고 싶었다.
그게 시작일 줄이야. 그로부터 2년 뒤 동해, 남해, 서해에 이르는 해안선 4000km를 100여 일에 걸쳐 일주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에서 열린 100km 걷기 대회에도 도전했다. 1백30여 명 중 50여 명이 기권했고, 밤새워 완주한 참가자 중 그는 50위 정도 했다. 혼자 걷는 여행도 좋아하지만 그룹 산행도 즐긴다. 특히 ‘40대 귀여운 남자 녀석들’과 어울려 노는 게 요즘 참 즐겁다.
“길도 헤매고, 평소에 크고 작은 실수도 많이 하며 살아요. 근데 제가 살면서 제일 잘 하는 말이 ‘이만하기가 다행이야!’입니다.” 실수가 두려워 회피하는 것보다 저지르는 게 낫다. 그래서 굴곡진 인생을 산 할미의 얼굴과 천진한 소녀의 표정이 공존한다. 실수 9단인 그가 실수를 행복으로 반전시킨 아찔한 비법을 책 <안나의 즐거운 인생 비법>(샨티)에 담았다. 글 나도연 기자 사진 추영호

(오른쪽) 말과 바람과 햇살과 교감한다, 승마하는 할머니 윤용현*65세
오른쪽 저만치 앞에서 누군가 걸어가는데, 설마 윤용현 씨일까 싶었다. 60대로 알고 있는데, 이분은 허리에 군살 하나 없어 뒤태가 ‘S라인’인 여인이었던 것이다. 그가 맞았다. 25년째 해온 승마 덕분에 몸이 민첩하고 날렵하단다. “매일 아침 승마장으로 와서 리버풀(윤용현 씨의 말)을 만나요. 밤새 잘 지냈는지 살펴본 뒤 말갈기를 정리하고, 안장도 얹으며 리버풀과 대화하지요.” 승마의 관건은 말과 얼마나 합일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때때로 말에게 자기 이야기도 들려준다. 말이 ‘한국어’는 몰라도, 주인의 감정과 기분은 감지할 줄 안다. “승마는 달리는 것보다 균일하게 걷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말은 주인을 완전히 신뢰해야 하고, 주인 역시 말에 온몸을 의지할 정도가 되어야 가능해요. 그 합일의 상태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성격이 급한 편인 그에게 넉넉한 가슴이 생기게 된 것에는 승마가 한몫 했다. 그리고 이제 할머니가 된 그는 말의 언어를 이해하게 됐다. 리버풀의 컨디션은 물론, 바람과 햇살에 따라 다른 느낌을 즐길 줄 안다. “멋지게 나이 들기 위해선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거든요. 그렇게 마음을 열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환해진 기분이고요.” 글 나도연 기자 사진 추영호


(왼쪽) 노력 앞에 세월이 무릎 꿇다, 몸짱 권팔순*62세
사람들은 권팔순 씨의 나이를 짐작조차 못한다. 평소 목선이 훤히 드러난 톱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그를, 대체 누가 60대 할머니로 볼까. ‘출렁살’은 흔적도 없고, 팔다리와 엉덩이 라인은 어찌나 매끈하게 흐르는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던데 예외도 있나 보다. 보톡스를 전신에 맞더라도 절대 생길 수 없는 탄력이다. 그럼 불로초라도 구했나? “30여년 간 ‘올인’한 운동의 힘이 가장 크고, 그 밖에 음식과 생활 습관을 조절해서 만든 몸이에요. 이런 제게 성형수술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에요.” 첫아이 낳은 뒤 ‘젊을 적 몸매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운동을 시작했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법을 직접 개발했다. 현재는 헬스클럽에서 매일 두세 시간씩 운동한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평생 저녁 약속을 잡은 적이 별로 없다. 저녁에는 소식을 하기 때문이다. 술도 안 한다. 아침 식사는 검은콩 주스, 고구마, 사과 반 쪽. 점심은 두부, 고구마나 감자, 김, 미역을 담은 도시락.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삼겹살을 꼭 먹는다. 스태미나에 좋고 피부에 윤기를 더하기 때문이다. 말린 인삼 뿌리로 우린 인삼물은 한겨울에 부츠도 안 신고 미니스커트를 입을 수 있는 비결이다. 이렇게 정성껏 몸을 단련하는 노력 앞에서 결국 세월은 무릎을 꿇었다. “부지런할 것, 꾸준히 실천할 것,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것! 이 세 가지면 노화를 굴복시킬 수 있어요.” 글 나도연 기자 사진 귀도 스타일링 유민희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나이스크랍, 스테파넬, 엘리자베스, 홍운 주얼리, AK

(오른쪽)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디바, 패티김*70세
무대에 오를 땐 한 번이라도 신은 신발은 다시 신지 않으며, 무대 의상을 입은 채 절대로 의자에 앉지 않는 걸 50년 동안 철칙으로 삼아온 ‘대한민국 디바’ 패티김. 여전히 아름다운 아내이고 싶어 잠을 잘 때도 베개 밑으로 얼굴 근육을 잘 펴고 자는 ‘대한민국 여성’ 김혜자(그의 본명). 그가 귀한 건 패티김과 김혜자를 철저히 분리하며 살아온, 고결한 고집 때문이다. ‘패티김=긴장’이라는 등식을 안고 산 시간은 ‘엘레강스한 오만’이라는 훈장을 안겼다. 또 집에 있는 동안 100% 완벽한 엄마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한 시간에 남편과 아이들은 ‘90점 이상’의 점수표를 선사했다. “30대였을 때 멋지고 우아한 60대를 꿈꿨습니다. 그 뒤로 1년, 10년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만들고, 선택한 길로 가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돌아보니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잘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20대가 부르는 ‘초우’와 50대가 부르는 ‘초우’가 다름을, 인생은 쓸쓸한 단맛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 공연장에서 손자 이야기, 늘어난 뱃살 이야기도 하게 됐다. 70세의 디바는 올해 5월, 노래 인생 50주년 대공연을 열었다. 공연 전 인터뷰에서 그는 ‘황홀한 일몰처럼 떠나고 싶다’는 또 다른 계획을 밝혔다. 이글이글 불타는 노을이 좀 더 오래갔으면 하는 마음에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걷고 세 번 이상 1시간 30분씩 요가를 하며 매일 1000m의 수영으로 몸을 챙기고 있다. 그는 동생과 남편에게 당부의 말도 전해두었다. 혹시 음정이 불안하면 ‘패티, 이츠 타임’이라고 말해달라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대한민국 디바.
글 최혜경 기자 사진 준초이 스타일링 김성일 헤어&메이크업 이경민 포레


(왼쪽) 진실을 재단하는 여자, 패션 디자이너 진태옥・75세
진태옥, 한국 패션의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름 석 자. 1965년 작은 양장점으로 시작한 그는 서울패션협회(SFAA)를 창립해 국내 최초의 정기 컬렉션을 여는 리더십을 지녔고,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는 대범함을 갖췄다. 그는 말한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메달도 명예도 남의 이목도 아니라고. 가식 없이 순수하게, 내용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며 ‘삶에 덧칠하지 말라’는 잠언과도 같은 문장을 읊조린다.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읽고는 박태환 선수에게 한 수 배웠어요. 기자가 그에게 금메달 좀 보여달라고 하니까 글쎄 트레이닝팬츠 주머니를 뒤적여 메달을 꺼내놓더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메달 획득보다 내 기록을 깼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지요.” 그가 서른일 때 일흔을 넘어서도 일을 하게 될 줄은 상상치 못했다. 그저 패션이라는(너무나 매혹적인, 그러나 때론 그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혼돈에 빠뜨리는) 한 우물만 파다 보니 지금의 위치에 서게 됐다. ‘이 길밖에 없다’는 뚝심과 ‘어디까지는 가야겠다’는 목표 의식이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이다. “일전에 연극배우 박정자가 예술원 회원이 된 것을 축하하러 모인 자리에서 그에게 편지를 건넸어요. ‘나 당신 너무 미워. 부럽고 질투 나고 샘나고. 예쁘고 근사하고 멋진 우리 박정자’ 라고 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나는 이 지구 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에요.” 여전히 10만큼이나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감지하는 그. 패션디자이너 진태옥 씨에게 나이란 그를 구속하는 코르셋이 아니라,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쯤 되어 보인다.
글 김경 기자 사진 김동욱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오른쪽) 도전! 지옥의 랠리, 한국 최초 여성 카레이서 김태옥・53세
열정은 무모한 것이고, 재능은 고독한 것이며, 기회는 불공평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도끼눈을 뜰 것이다. 나이와 함께 꿈들을 조금씩 상실해온 중년 여자 ‘김태옥’은 그의 일대기에 없다. 한국 여성 최초로 카레이싱에 도전, 1992년 한국모터챔피언십 여성전 준우승, 1993년 ‘지옥의 랠리’라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도전해 한국 최초로 완주, 1999년 딸과 함께 한국 최초의 모녀 레이서로 등록… 읊는 것만으로도 입이 마르는 일대기다. 30대 중반, 네 아이의 엄마로 도전한 카레이싱은 그의 혼불을 지폈다. “1989년 볼케이노팀에 입단할 때 첫 반응은 ‘아줌마가 주책이야’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걸로 의지를 꺾을 수 있나요?” 차가 뒤집혀 피가 역류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도전하는 인생의 맛은 황홀했다. 지구 상 최악의 랠리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할 땐 유서를 남기기도 했다. 은퇴 후 ‘랠리 황제’ 박정룡(남편) 씨의 든든한 내조자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불완전연소된 상태다. 파리-다카르 랠리에 출전했던 72세 팀을 보면서 ‘열정 엔진’은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남편과 파리-다카르 랠리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 못 말릴 도전 의식. “사하라 사막의 지독한 모래 폭풍이 그리웠어요. 도전하기엔 너무 늙었다고요? 지금 크라운 제이의 랩을 하래도 할 수 있어요. 나이는 주민등록증에 나오는 숫자에 불과해요.” 이 용기백배한 여성은 아프리카를 그리워하지 않게 될 때 파리-다카르 랠리에 대한 글도 쓸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우니까…. 글 최혜경 기자 사진 귀도


호기심을 부르면 호기심이 달려온다, 미술가 윤석남・69세
“나이 들면 흥미가 줄고 삶을 달관자의 태도로 슥 바라본다는데, 난 나이 들어도 호기심이 멈추지 않아요. 작업은 ‘하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되는’ 것이거든요.” 가령 이런 식이다. 작가 윤석남 씨는 5년 전 버림받은 개 1천25마리를 돌보는 할머니를 다룬 기사를 읽고, 못내 궁금해 다음 날 그를 찾아갔다. 자기 소명인 양 개를 돌보는 할머니를 보고, 마치 운명처럼 작업을 이어가는 자기 모습이 겹쳐져서 ‘아찔’했다. 호기심은 호기심을 부른다. 돌아오는 길에, 나무로 개 1천25마리를 만들어서 쫙 세우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작업실 2층에 도열한 나무 강아지 1천여 마리는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가 품은 호기심의 결정체다.
전업 주부로 살았던 30대까지는 우울증이 극심했다. 주위 사물을 닥치는 대로 그리다 43세에 데뷔, 그 후 ‘어머니’ 시리즈에 천착했다. “어머니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어야 나를 마주 볼 것 같았어요.” 빨래판이나 버려진 나무판에 그린 어머니 얼굴은 온화하지 않다. 무서울 정도로 눈을 부릅뜨고, 표정이 읽히지 않는 중성적 얼굴이다. 호미 쥐는 법도 모르던 여인이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과 함께 길바닥으로 쫓겨난 뒤 버텨온 삶의 축약이다. 그는 견고한 목소리로 꼭꼭 눌러 말한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세요. 망설이지 마세요.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림 그리고 싶은데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주부들이 많지요? 오늘 당장 스케치북에 연필로 커피잔부터 그려보세요.” 1천25마리의 나무 강아지는 9월 26일부터 11월 9일까지 아르코미술관(02-760-4724)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나도연 기자 사진 귀도


(왼쪽) 목소리로 살아온 극적인 인생, 성우 고은정・73세
1959년 라디오 드라마 <장희빈>은 저녁마다 전 국민을 툇마루의 라디오 앞으로 집합시켰다. 희빈의 연기가 어찌나 표독스러웠던지 희빈의 밭은 호흡 소리, 간드러지는 웃음만 나와도 아줌마들은 욕할 태세로 씩씩거렸다. 그 희대의 희빈 역을 성우 고은정 씨가 맡았다. 뿐만 아니라 엄앵란, 윤정희, 김지미 같은 당대 톱스타의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렀다. KBS 라디오 시트콤 드라마 <남남북녀>를 녹음하고 있는 성우 고은정 씨를 만났다. “청순가련, 혹은 진지한 역할만 하다가 처음으로 주책 맞은 아줌마 역을 맡았어요”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20대처럼 청아하다. 신체 부위 중 목소리가 제일 천천히 늙는다지만 말이다. 한창때는 저녁에 방송국 근무가 끝나면 곧바로 충무로로 ‘납치’되어 영화 녹음을 하느라 하루 20시간씩 일하기도 했다던데, 지금도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을까? “ 2000년에 유방암 수술을 받는 날 아침까지도 일했는걸요. 목소리로 감정을, 인생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은 KBS 1기 성우로 입사할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목소리로 숱한 인생을 살아왔던 터라, 언젠가 그는 세상 사람들의 음성만 듣고도 그들의 애환을 읽을 수 있는 ‘큰언니’ 같은 성우가 될 것 같다. 글 나도연 기자 사진 추영호 스타일링 유민희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디아체

(오른쪽) 엄마의 마음으로 디자인한다,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신경옥・54세
17년 전, 인테리어란 표현조차 생소했던 시절 그는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나이 37세. 도전보다는 안주, 꿈보다는 현실을 쫓을 시기에 뛰어들어 지금은 인테리어 스타일리스트 계의 대모가 되었다. 그는 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드는, ‘창조’가 업業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세대・취향의 사람들과 모이고 소통하는 것을 건강보다 더 챙긴다. 그라고 왜 갱년기며, 불면증 같은 것이 왜 없겠는가. 더군다나 인테리어 스타일링이란 쉼 없이 몸을 움직이고 시대 흐름을 앞서가야 하는 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창의력이란 가만 있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는 일이란 스스로 ‘하고 싶은 때’가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 ‘때’를 타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 ‘나’는 없고 ‘재미와 열정’만이 존재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후회도 없는 법. 그 재미와 열정으로 매만진 공간이 부담스러울 리 없다. 편안하고 친근한 기운이 느껴지면서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엄마의 마음으로 뭐든 이해하려 노력하고, 딸 같이 어린 이들도 ‘나보다 난 놈’이라 생각하며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완성된 카페 ‘블룸 앤 꾸떼’, ‘19번지’ ‘콰이 19’ ‘모던밥상’ 등이 오늘날 신사동 가로수길의 유행을 만들어냈다. 글 김명연 기자 사진 추영호 스타일링 이종선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나인식스뉴욕, 김동순울티모


(왼쪽) 나이가 아니라 실력이다, 할머니 비서 전성희・66세
남들은 은퇴를 말하는 나이. 여전히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오피스 레이디가 있다. 바로 대성 그룹 수석 비서 전성희 이사. 얼마 전 <성공하는 CEO 뒤엔 명품 비서가 있다>(홍익출판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한 그는 올해로 30년째 김영대 회장 비서직을 맡고 있다. 그의 이력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직장을 다니다가도 가정으로 돌아갈 법한 서른일곱의 나이에, 젊고 예쁜 아가씨들만의 자리라 여겨지는 비서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 물론 그의 30년 비서 경력을 이야기할 때 그의 남편과 김회장이 친구 사이라는 것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인맥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년간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지금도 아침 6시 반이면 출근해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차 심부름이든 비즈니스 업무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경중을 따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에 있다. 그가 말하는 멋진 삶의 초석은 다름 아닌 ‘가족’. “세상에 가족을 이기는 가치는 없어요.” 더불어 ‘멋지게 사회 생활하면서’ 나이 들고 싶다면 ‘남편의 외조’를 이끌어내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글 김성은 기자 사진 추영호 스타일링 조윤희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디올, 르네 레자드 by 콜롬보, 불가리, 장 루이 쉐레 by 콜롬보

(오른쪽) 한복 입은 파란 눈 천사 말트 홀리・73세
“1956년 여의도 비행장에 내렸는데 서울시청 마이크로버스에 고아가 잔뜩 실린 채 지나가더라고요. 아기들이 씻지를 못해서 노인네 같았어요.” 아버지 해리 홀트(홀트아동복지회 설립자)의 부름을 받고 온 그의 눈에 대한민국은 화약내 가시지 않은 나라였다. 그 후 50년 동안 버려진 아이를 보듬으며 살았다. 자신보다는 아이들을 끌어안느라 침대 하나 놓을 수 없는(대신 ‘삼단요’를 깔고 잔다) 작은 방에서 살고 있다. 일산복지타운의 2백70명 식구를 챙기고, 함께 사는 중증 장애인 수희 씨의 목욕, 식사에, 수희 씨가 모은 나비 스티커까지 휠체어에 붙여줘야 하는 분주한 하루다. 속절없이 꽃이 지고 있다고 방바닥에 볼을 대고 눈물 흘리는 ‘홀트 할머니’는 없다. 대신, 홀트아동복지회를 거쳐 간 9만 명의 아이들이 모두 아들딸이라고, 이 많은 식구를 갖게 됐으니 이보다 행복한 엄마가 또 있겠느냐며 박꽃처럼 웃는 ‘허만리’ 여사가 있다. 2005년, 그는 장애우들과 킬리만자로 산에 올랐다. 요즘엔 한글 쓰기 과외를 받고 있다.
장애우들이 독립 생활하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꿈도 꾸고 있다. 그에게 멋지게 나이 드는 비결을 묻는 건 청맹과니 같은 짓이다. 다른 이를 돕는 손은 기도하는 입술보다 성스럽다고, 나눔은 자선이 아니라 정의라고 믿는 허만리 여사만으로도… 참 좋다, 이 세상. 글 최혜경 기자 사진 귀도


(왼쪽) 몸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사는 자연인 장영란・50세
전라북도 무주 산골, 밭작물을 만지는 장영란 씨의 손이 제법 맵다. 서울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함께 내려온 지 10년이나 지났으니 베테랑 농부일 법도 하다. “서울에선 남이 재단해놓은 기준에 맞추느라 좌절했고, 외로웠고, 몸에 병이 났어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쉬고 싶으면 쉬고, 움직이고 싶으면 움직이면서, 그렇게 몸이 바라는 일에 귀 기울이다 보니 마음이 바라는 길도 저절로 보이네요.” 그는 직접 기른 채소와 곡식으로 차린 밥을 먹고, 자연에서 절로 자란 작물을 채집하는 기쁨에 폭 빠져 있다. 콩 꽃이 지고 꼬투리가 맺히면 풋콩을 찾아 밥에 넣어 먹고, 찰옥수수 여물면 뜨끈뜨끈하게 쪄 먹고, 끝물 수박은 아쉽게, 제철 복숭아는 신나게 먹으니 더 바랄 게 없단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 사는 장영란 씨는 딸과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제대로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은 협동해서 농사짓고 공부도 함께 한다. 그렇게 10년을 지낸 아이들은 부모보다 더 현명하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자라고 있다. 도시 사람들의 눈에는 그의 삶이 가난하고 불안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이 넘쳐난다고 했다. “자연 속에서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시간을 누비며 사는데 어떻게 행복이 멀리 있겠어요.”
그가 깨달은 제철 밥상 요리의 소중함과 자연스럽게 사는 삶에 대한 기쁨은 홈페이지 낫칼넷(www.nat-cal.net)을 통해 잔잔히 전해지고 있다. 글 이화선 기자 사진 추영호

(오른쪽) 대장금의 후예 한복려・한복선・한복진
이 세 자매는 조선왕조 궁중 음식의 연구와 전승에 평생을 바쳤던 고 황혜성 선생의 딸들이다. 사진 왼쪽부터 ‘오늘의 요리’로 유명한 둘째 한복선(60세),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자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큰딸 한복려(62세), 전주대학교 교수로 학문적인 체계화를 담당한 셋째 한복진(57세) 씨. 이 딸들에 의해 황혜성 선생의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앞을 내다보고 계획적으로 일한 적이 없다. 유명한 어머니를 둔 까닭에 운명적으로 맡겨진 일 안에서 적응하고 충실하게 살다 보니 그 경험이 쌓여 이제야 말랑한 여유가 찾아왔다. “그동안 일을 저축하고, 마음을 저축하고, 인내를 저축해뒀던 것이 오늘날 평화라는 목돈이 된 거죠. 그 저축은 나 혼자가 아닌 ‘인연의 덕분’으로 하게 된 거고요. 가장 큰 인연은 어머니예요. 건강하게 낳아주신 것, 전문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침을 주신 것, 어려울 때 도와줄 형제자매를 주신 것, 모두가 어머니 덕분이지요.”
세 자매 모두 자식들 혼사도 끝내고 본격적인 할머니 세대로 진입해보니, 이제는 새 인연을 만들기보다는 가족 안에서 ‘참멋’을 찾고 싶단다. 더 나이가 들면 셋이서 집을 짓고 같이 살자고 약속했다. 막내가 꿈꾸는 넓은 부엌이 있고, 둘째가 좋아하는 통유리창을 낸 집에 첫째의 소망대로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오디오를 갖춰놓고 말이다. 이들처럼 멋지고 귀여운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다면? “자기 인생길에서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성찰할 것, 자기 자신에게 정성을 들일 것, 가족이든 친구든 사람 사이의 정을 중히 여길 것,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내공이 쌓여서 만족도가 높아지는 직업을 가질 것.”
글 구선숙 기자 사진 귀도 스타일링 박명선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의상 협조 구호, 나무 by 나무하나, 하트


(왼쪽) 이 황홀경을 함께 나누고파,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62세
광고도 안 하고 홈페이지도 없는데 이미 올해 강의 스케줄이 꽉 차버린 강사. 하도 웃겨서 최악의 시간대인 연수 마지막 날이나 점심 식사 직후에 강의를 배정받곤 하는 강사. 삼성이 초빙한 1천3백 명 강사 중 최고 점수를 받은 강사. ‘행복 디자이너’ 최윤희 씨가 읊는 지혜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청중을 쏜다. 일상에서 추출한 말이라 쫄깃하고 솔깃하다. “내 이야기를 들으면 ‘저런 인간도 사는데 난 왜 못살아?’하나 봐요. 이런 희망에서 행복이 출발해요.” 스스로 ‘잡초과’로 분류한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38세에 신입 카피라이터로 취직했고, 고정관념 와장창 깨는 강사로 활동한 것도 53세 때부터다.
전신의 세포가 팔딱팔딱 뛰는 사람은 늦게라도 그 에너지가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창의적인 발상의 비결은 책과 영화. 돈이 없던 시절부터 서점에서 두세 시간씩 책을 읽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고구마와 우유 싸 들고 영화관에 가서 신작 서너 편을 꼭 관람한다. 60대에 ‘윤희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60대는 바다처럼 깊어지고 산처럼 높아져요. 은박지처럼 가벼워지고 화석처럼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고요. 비로소 세상을 ‘관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나이죠. 그것도 ‘로열석’에서요. 50대까지는 앞만 보며 오르느라 헉헉대요. 60대부터는 내려가면서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까지 보여요. 매사에 느낌표 연속이에요. 황홀하죠.” 느낌표를 찾는 법은 9월 30일에 개강하는 ‘행복이 가득한 교실’에서 들을 수 있다. 글 나도연 기자 사진 귀도 헤어&메이크업 레이첼 by 김선영

(오른쪽)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우리 엄마
할리우드 연애 영화의 단골 주인공 록 허드슨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아직도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를 입 안에서 돌돌거리며 ‘고은아’(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장미희 씨 배역)처럼 목을 쭉 빼는 우리 엄마. 구민회관 영어 강좌를 이틀 정도 듣고 오더니 FAQ를 ‘퐈큐’로 읽는 우리 엄마.
“엄마처럼 두 아들을 키우면, 하나는 남편 같아서 의지가 되고 하나는 자식 같아서 재미나다~! 너도 아들 먼저 낳아라” 하면서도 제삿날 꼭 딸년 먼저 부르는 우리 엄마. 퉁퉁 부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울지 마라. 애 낳고 울믄 눈 나뻐진단다. 울지 마라 내 새끼” 하던 우리 엄마. 딸의 결혼식 전날 “살다가 허기지면 엄마한테 와라. 어느 때고 뜨신 밥 먹여줄게. 하지만 엄마처럼 살지는 말아라” 하던 우리 엄마. 엄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네요. 펑퍼짐한 엉덩이를 감싼 그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이제야 알았네요. 엄마가 보내준 갓김치로 한 상 차리고 앉아 혼자 찬밥에 물 말아 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돌 맴돕니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이 내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나이 든 여자는 바로… 내 엄마입니다.
진행 김성은 기자 글 최혜경 기자 사진 귀도 스타일링 김정민(더 스타일링)

기획과 구성 <행복> 편집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