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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시골살이 3]시인 유승도 씨의 영월 예밀리 이야기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더위가 보리싹 같은 웃음을 모두 솎아내버렸나요? 시는커녕 신문 한 줄 읽을 기운도 빠지셨나요? 도시의 화려하고 모던한 일상을 뒤로한 채 산골로 들어간 문인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세요. 그들이 산중에 들자, 담 너머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시심을 일으켰고 지빠귀새의 다툼이 소설의 화두를 만들어주었답니다. 시가, 소설이 지닌 느림의 박자와 은유의 리듬을 자연의 품에서 즐기는 문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전라북도 완주군 신원마을의 시인 안도현 씨, 강원도 영월군 예밀리의 시인 유승도 씨, 전라남도 화순군 증리의 소설가 정찬주 씨. 그 청명한 인생을 들여다보면 삶도, 사랑도, 여름도 한 박자 천천히 살게 될 것입니다.

유승도 시인은 요즘 보기 드문 ‘농사꾼 시인’이다. 강원도 영월의 해발 600m 산속에서 토종벌 키우고, 포도·두릅·감자 따위를 심어 자급자족하며 한 해를 보낸다. 예밀리살이를 통해 내놓은 그의 시집 첫 장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3일 동안 생각해도 /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 할 말이 없다.” 정말 할 말이 없는 삶인가?



만경대산 중턱의 옛 집을 직접 손봐서 마련한 그의 집. 집 앞에 원두막 하나 만들어놓고 손님도 맞고 책도 읽고 낮잠도 가끔 잔다. 오래 키운 착한 개 복실이와 놀기도 한다.

바리데기 공주가 아버지 살릴 약물을 구하러 가는 구만 리 길처럼 돌고 돌아 도는 길이었다. 세 시간은 족히 고속도로에 탕진하고, 다시 내장 같이 구불구불한 1차선 고갯길을 30분 내달리고, 비포장도로까지 달리고 나서야 유승도 시인이 산다는 ‘무릉’에 들었다. 강원도 영월군 예밀리, 만경대산 중턱에 새집처럼 그의 집이 숨어 있었다. 뒤쪽으로는 어림잡아 해발 800m쯤 되는 울울한 산이 버티고 있고, 눈 밑으로는 인간의 마을이 펼쳐진 산속의 집. 그 안에서 머리 빡빡 깎아 걸사乞士처럼 보이는 사내가 달려 나왔다. 늙어 보이는 개 복실이가 그 뒤를 따랐다. “안개 끼는 계절엔, 응, 안개가 발밑까지 밀려오는 높이예요. 응, 어… 더운데 예까지 올라오시느라 욕보셨네.” 정수리로 쏟아져 붓는 햇살에 노곤했던 객들은 그 뜸 들인 말씨 덕에 잠시 마음을 내려놓았다.

문인들 사이에서 “섬진강에 김용택 시인이 있다면 영월 산속엔 유승도 시인”이란 말이 도는, “김용택 시인보다 유명하진 않지만 생활을 발견하는 데에선, 그 발견의 결실인 시와 글에 있어선 못 미칠 바가 없다”고 시인들이 입 모아 말하는 유승도 시인. 예밀리 산속에서 토종벌도 키우고, 산비탈 밭에 포도·고추·감자 농사도 지어 한 해를 살고 있다. “6천 평 정도는 농사 지어야 한 해 소출이 1천5백만 원은 남는데, 그렇게 하려면 너무 바빠요. 그저 조금 지어서 한 해 살고 생활비 쓸 수 있으면 미련도 없어요. 난 1년 내내 논다고 하면 노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농사꾼 시인’이라고 부르자 손사래를 치는 시인은 요즘 보기 드문 농사꾼 시인이다. 자급자족할 정도로 농사 짓고, 먹고 남으면 팔아 생활비로 쓰고, 그러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책 보고 글 쓰고 아무 생각 없이 해바라기하는 명실상부한 ‘농사꾼 시인’. 예밀리에 살며 내놓은 시집 첫 장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3일 동안 생각해도 /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 할 말이 없다.”(시집 <차가운 웃음> 서문 중에서) 그 사는 속내를 어설프게라도 들어보니 ‘할 말 없다’는 시인의 삶이 짐작된다.


1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이 집은 새집 같아 보인다.
2 1차선 고갯길을 30분 정도 내달려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다. 시인은 이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풍경 하나를 달았다.


십수 년 전 그는 갓 백일이 지난 아들과 아내를 끌고 예밀리로 들어왔다. ‘시가 돈이 안 되는 세상이니 내가 먹을 걸 내가 지어서 먹으면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서였다. 재산을 탈탈 털어 2천7백 평의 토지와 집을 마련했다. 기름 먹인 나무 판자로 멋도 내고, 산 아래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툇마루도 만들었다. 어느 해 봄엔 뚝딱뚝딱 두들겨 사랑방을 만들고, 어느 해 가을엔 장작 아궁이를 연탄 보일러로 바꾸고…. 돈 들인 흔적보다 손때와 시간의 흔적이 집 곳곳에 깃들었다. 원래 있던 돌담을 방 벽으로 만들고, 안채의 굴뚝까지 방 안에 그대로 남긴 뒷방은 가장 인기 있는 방이다. 시인·소설가 친구들이 이 방에 찾아와 밤을 지새우곤 한다. 밤의 기운이 손님처럼 다가와 글쟁이들의 수다를 엿듣는 방이다. 이렇게 그가 꾸민 집은 방송가 사람들에게도 알려져 드라마 <위기의 남자>에서 김영철이 귀농해 살던 집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백일 무렵에 예밀리에 들어온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됐다. 시인의 시간도 우리의 그것처럼 속절없이 잘도 흘러가는 법이다.

“산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개의 짖음도 흑염소의 울음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돌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날아가는 까치도 까치가 앉았던 살구나무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방 밖으로 나서는, 아이의 목소리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하늘도 지우며 눈이 내린다 / 방금 내린 눈까지 지우며 눈이 내린다.”(‘가득하다’)


빡빡 깎은 그의 머리 때문에 문인 친구들이 그를 ‘승도 스님’이라고 부른다. 
4 시멘트를 개어 만든 우편함.


그는 세상과의 불화에 시달린 사람이었다. 삼청교육대 바람이 불던 1980년대 초반, 군인들에게 “왜 검문하는가?” 한마디 물은 후 파출소로 끌려가 마구잡이 구타를 당했다. 군대에선 상관에게 구타당하다 오히려 상관폭행죄 누명을 쓰고 불명예제대를 했다. 이 두 사건으로 국가가, 권력이 가장 잔혹한 깡패라는 생각에 몸을 떨게 됐다. 국문과를 졸업한 후 건설 현장 막일꾼으로, 농가의 머슴으로, 연안 어선의 선원으로, 탄광의 광부로 떠돌았다. 그 어디도 그에겐 죄다 감옥이었다. 무작정 헤매다 정선 구절리 빈 사택에서 창문마다 검은 종이를 붙여놓고 자신이 만든 감옥 안에서 쉼 없이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시가 ‘왔다’. “내리 잠만 자다 새를 보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그때 세상이 지금까지 내가 느끼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거예요. 산, 나무, 풀 같은 것이 그 전과는 달리 훨씬 가깝게 다가왔죠.” 그는 태양전지에 플러그 꽂은 것처럼 시를 쏟아냈고, 첫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를 냈다. 정선에서부터 쏟아낸 첫 시집엔 자연이 그의 분신처럼 그려져 있다.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 (중략) /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 승도야’(‘나의 새’ 중)


5 이 글방에서 시인은 공책에 볼펜으로 시를 쓴다.

자급자족하며 살아온 그동안의 수업은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로, 시집 <차가운 웃음>으로 남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시를 쓰는 그의 글은 읽다 보면 산속을 홀로 걷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설픈 자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온갖 짐승 소리, 개울물 소리가 들리지만 빈농을 망가뜨리는 야생과 다투며 살아가는 소리도 함께한다.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중 말벌과의 사투를 그린 일화. 말벌들이 일벌에게 다가와 난장판을 만들어버리자, 그는 작심을 하고 말벌집을 습격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말벌집에 비춘 뒤 살충제를 ‘쏴~’ 하고 뿌려댔다. 말벌들을 처단하고 기쁜 마음이 든 건 인지상정이었다. 그러면서 든 생각. “사람들이 농약을 쳐도 너무 많이 친다고 얘기하던 나였건만 막상 고추밭에 탄저병이 번져 딸 것이 별로 없게 되자 조금이나마 건져보겠다고 농약을 쏟아 붓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화가 치밀었다.”(<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중)

유승도 시인은 자연을 관조적으로만 바라보지도 미화시키지도 않는다. “어떤 면에서 자연은 인간적인 친화력이 없는, 도무지 인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일 뿐이에요. 예쁘장하지도 않고 그냥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일 뿐. 자연은 무심하다는 거죠.” 나뭇잎, 풀, 새처럼 사람도 하나의 환경이고 배경일 뿐이라는 뜻을 시집 <차가운 웃음>에서 풀어냈다.


6 어린이날, 아들 현준에게 시인 아버지가 선물한 자신의 시집.
7 나무 깎아 손잡이를 만든 그의 찻주전자.
8 시인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뒷방.


시집 두 권 냈으니 이젠 소설 한번 써볼 참이라며, 소설 두 권 내고 나면 인생도 마무리되지 않겠느냐며 그가 웃었다. 사는 곳이 어디든 큰 상관 있겠느냐만 매일 먹는 밥이 여름처럼 뜨겁고, 들이켜는 물이 겨울처럼 차갑다는 사실에 눈물이 솟는 건 예밀리 산골이 주는 축복이라며 그가 웃었다. 차갑지 않아 더 눈물 솟는 그의 웃음이었다.

“무엇 하러 이 산중에 들어왔느냐 / 한 발만 헛디뎌도 생명의 저 끝이 보이는 곳이 이곳인 줄 몰랐더냐 / (중략) / 나를 노려 이 벼랑으로 뛰어오르는 짐승이 있다면 / 내 두 뿔을 치켜올리며 그 짐승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 저 계곡 속으로 / 곤두박질친다 해도 무릎 꿇지 않으리 / (중략) / 네가 왜 나를 바라보고 섰느냐 / 얻으려 하지 말고 살아라 / 차가운 마음으로 살아라.”(<절벽에 붙어선 산양을 보았다> 중)

시인 유승도 씨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으며, 경기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나의 새’ 외 9편의 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의 글로 접어들었다. 만경대산 중턱에서 자급자족적인 농사를 지으며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두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