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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 제안] 올 여름엔 책이나 실컷 봤으면
찜통 같은 무더위로 지친 이들에게 휴가철은 감성을 정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번 바캉스에는 철 지난 책, 영화, 음반 중 숨어 있는 명작과 동거해도 좋겠다. 각 분야 고수들이 여름을 달래줄 작품을 추천해주었다.

음반

클래식 음악에 심취한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가 올여름을 함께할 음반
“시대를 넘어 현대에도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은 계절을 타지 않지만, 나는 이 여름에 왠지 이런 클래식 음반을 골라 듣고 싶다.”
피아졸라 음악 모음집 <탱고의 영혼>(첼로 요요마/소니 클래식스) 강렬한 태양 아래 펼쳐지는 춤곡을 서늘한 콘서트 감상용 음악으로 바꿔낸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첼리스트 요요마가 그 서늘함을 음반으로 끌어들였다. ‘천사의 밀롱가’ ‘카페 1930’ 등 명곡들이 즐비하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피아노 알프레드 브렌델/데카) 원제인 ‘겨울 여행’처럼 이 연가는 자아를 찾아나서는 여행의 좋은 동반자다. 모든 것을 떠나 보내고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여름을 잊고 겨울을 떠올려보아도 좋다. 보통 ‘보리수’ 한 곡에만 귀 기울이기 쉽지만 첫 곡 ‘잘자요’부터 스물네 곡이 흐르는 동안 천천히 나 자신에게 침잠할 수 있다. 위그모어홀 라이브 실황.

음악에 조예 깊은 김구라 씨가 휴가철 필수품으로 권하는 팝 음반

“거침없는 입담의 개그맨이지만 DJ라는 타이틀 외에 음악을 좋아해 팝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휴가철에는 뭐니 뭐니 해도 귀에 익은 팝 음반이 최고다.”
‘김구라가 강력 추천하는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고품격 음반’ 시리즈(소니BMG) 내 이름을 걸고 추천한 음반들이 나왔다. 자신 있게, 내 입으로 내가 권한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 오프스프링의 ,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 오지 오스본의 , G3의 등 다섯 장이 이제 막 발매되었다. 명곡들이 휴가철 여행 길을 심심하지 않게 해줄 것이다.
비치 보이스 Vol 1~3 (EMI) 너무 유명하다고 해서 외면할 것인가. 아니다. ‘여름’ 하면 무조건 비치 보이스의 노래다. 내가 이 음악을 들었을 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에도 이들이 나온 지 20년 지났을 때인데 어찌나 신선하던지. 그리고 20여 년이 더 흐른 지금까지도 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신난다. 참 황홀한 일이다.
에어 서플라이 <The Best of Air Supply: Ones That You Love>(소니BMG)  휴가지에서 조용한 저녁 무렵 듣기 좋은 편안한 곡이다. 혹은 휴가를 다녀와서 여행지의 찬란한 노을을 추억하는 데 좋은 음반이다. 



칼럼니스트 김서령 씨가 권하는 유쾌하고도 통찰력 담긴 책
“같은 일상이라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지루할 틈이 없다. 여름 또한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자.
이 책들을 읽다 보면 어쩌면 매년 흘러온 휴가가 달리 느껴질 듯하다.”
<쾌락의 옹호>(이왕주/문학과지성사) 휴대하기 간편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읽기 좋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은 책이다.
‘음미하는 삶’ ‘발의 평화’ ‘아름다운 얼굴’ 등 신문에 연재됐던 철학 에세이 47편을 엮었는데, 짧은 에세이 안에 일상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연필로 명상하기>(프레데릭 프랑크/정신세계사) ‘나는 누구인가?’ 머리 싸매고 있어서는 알 수 없다. 이 책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연필로 그리는 것이 명상이라고 말한다. 주변의 윤곽을 그려보는 과정이 곧 나를 들여다보는 길이라는 말이다. 문득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카페 주인이자 목인박물관 관장 김의광 씨가 올여름 다시 읽을 책
“내 모토는 ‘1천8백 자 이하로 말하는 책이 진짜’라는 것이다. 그 이상 길게 말하면 자기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간명하고 유쾌한 책을 주로 읽는데, 푹푹 찌는 여름에는 특히 더 그렇다.”
<사랑해> (글 김세영, 그림 허영만/김영사) 만화 같지 않은 만화책이다. 보통 만화란 재미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교양과 흥미 모두를 잡는다. 사랑을 간파하는 명문이 담겼다. 신문에 연재될 때부터 봤는데, 최근에 12권이 완간되어 얼마 전 모두 구입해서 읽었다. 남녀가 사랑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다시 진솔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이 남자의 마음을 적신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가 꼽은 문학 작품
“인생을 프리즘에 투과시킨다면 문학이 나올 것이다. 삶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우리더러 ‘한번 보라’며 선연히 펼쳐 보인다. 모처럼 자기만의 시간이 생긴다면 긴 호흡으로 문학 작품에 빠져보라.”
<분홍색 흐느낌>(신기석/문학동네) 새롭고 강렬한 작품을 좋아한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이 시집을 내고 요절한 젊은 시인 신기석 씨의 치명적인 작품이 담겨 있다. 부모 대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 반쯤은 고아의 정서를 가진 시인이 잃어버린 고향과 그리운 가족에 대해 읊었다. ‘징징’ 짜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섬세하게 그렸다. 고향을 낯설게 하는 시집, 혹은 없는 고향을 찾는 시집이다.
<침이 고인다>(김애란/문학과지성사) 요즘 젊은 작가들 중 대다수가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시공간이 모호한 소설을 즐겨 쓰는 가운데 김애란 씨는 누구나 공감할 일상적인 소재를 날카로우면서 새롭게 다룬다. 이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세대가 20대라고 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20대 청년들의 내면을 다소나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이론가 박창석 씨가 골방 피서객을 위해 고른 ‘자기 위로용’ 만화책
“어디 가지 못하고 집에서 한여름을 보내야 한다면, 아무리 봐도 만화책만 한 동반자가 없다. 잔소리 안 하지, 골치 아프게 하지 않지, 게다가 허를 찌르는 유머를 선사하지 않는가.”
<골방 탈출기>(메가쇼킹만화가 외/씨네21북스)
메가쇼킹만화가, 조석, 오기사, 곽백수 등 한국에서 요즘 잘나가는 만화가들의 웃기는 여행기다. 만화가들이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직접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만화도 그렸다. 만화가들의 좌충우돌 ‘엽기발랄’ ‘폐인주접’의 여행법에 푹 빠져보자. 여행을 주제로 한 만화 여행기는 한국만화사에서 처음이 아닐까.
<The Tarot Cafe> (박상선/시공사) 5권 시리즈 골방에서 감미로운 판타지에 빠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작품. 타로 카페에 자정이 지나면 저마다 기묘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초현실 그 자체며 판타지 로망으로 가득하다. 아르누보 만화가 빚어낸 판타지 로망스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영화

마감에 시달리는 <필름 2.0> 구승준 편집장의 안식처 같은 영화
“사람마다 심신을 쉬고 싶은 곳이 다르다. 마감으로 정신 없는 나는? 추억 속으로 피서하고 싶다.”
<마르셀의 추억>&<마르셀의 여름>(감독 이브 로베르) 이 영화를 보면 어릴 때마다 가곤 했던 시골이 생각난다. <마르셀의 추억>의 마르셀처럼 나는 학교에서 답답하고 짜증 날 때마다 ‘방학 때 시골에 가면 되지’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거짓말처럼 기분이 맑게 개곤 했다. 마르셀 파뇰Marcel Pagnol의 소설을 영화한 이 작품들은 마르셀이 여름 별장에 지내며 생긴 추억을 담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지만, 그 ‘아버지’나 ‘어머니’도 한때는 아이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생각해보면 추억은 없어도 사는 게 아니라 꼭 있어야 될 자양분일지도 모른다.

다른 영화는 잘 안 보는 영화 <바람의 전설> 감독 박정우 씨를 감동시킨 작품
“푹푹 찌는 여름날의 무더위를 피하는 방법으로 영화 감상을 택할 요량이라면, 영화 한 편으로 크나큰 감동이나 자각, 성찰 같은 품격 있는 결과를 성취하겠다는 욕심은 잠깐 장판지 밑에 묻어두는 게 좋으리라 싶다. 더울 땐 뭐니 뭐니 해도 시원시원한 게 최고다. 그래서 영화의 주된 배경이나 소재가 ‘눈’ ‘바다’인 영화들을 골라봤다.”
<에이트 빌로우>(감독 프랭크 마셜) 남극에 기상악화 사태가 닥치자 탐험대가 동고동락했던 썰매 끄는 개들을 남겨두고 본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그 개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1백70여 일 동안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일단 설원이 배경이니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데, 거기에 귀엽기 짝이 없는 개들의 명연기와 감동까지 있다. 뭘 더 바라겠는가.
<그랑블루>(뤽 베송) 푸른 바다 위로 솟구치는 돌고래…. 우리나라에선 영화보다 포스터가 더 유명한 작품이다. 내용이나 완성도와는 별개로 영상미 하나는 끝내준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를 동경하고, 돌고래의 심장을 가진 한 남자가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단순해 보이지만, 마냥 단순하지만은 않다. 가장 중요한 건 개인적으로 살아생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포카리색’ 지중해의 그림 같은 풍경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푸른 바닷물 속에 풍덩 몸을 던지고 싶다. 주인공처럼 돌고래를 타고 그 투명한 바다 속을 누비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는 영화다.

영화광 한의사 ‘QOL 한의원’ 김승호 원장이 손꼽는 영화
“찜통 더위는 사실 속수무책이다. 보약도 좋지만, 선비정신을 떠올리며 자세를 바로잡아보는 건 어떨까.”
<그레이트 디베이터스>(감독 덴젤 워싱턴) 193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 산업화에 따른 노사관계의 대립과 노동운동의 태동 과정 등을 ‘토론대회’라고 하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서 엮어낸 휴먼 드라마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1930년대 대학에서 ‘건강한 토론’과 ‘건전한 비판’을 키워가는 미국 대학생들을 보면서 오늘날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힘의 원천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대쪽처럼 절개를 지키며 진리 앞에서는 목숨조차 돌보지 않았던 선조들의 치열한 선비정신이 작품 속의 ‘멜빈 B 톨손’교수에게서 살아 숨쉬는 듯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가 추천하는 사랑의 변주에 관한 영화
“대놓고 ‘사랑한다’가 아닌, 사랑이 정교하게 짜여 있는 영화들이다. 당신 안에는 어떤 정교한 사랑이 자리 잡았는가?”
<어톤먼트>(감독 조 라이트) 걸작의 문학을 수작의 영화로 재탄생시킨 행복한 사례다. 원작자인 이완 매큐언이 각색에 참여했다. 전쟁에 대한 사색과 이룰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이 품격 있게 그려졌다. 개인적으로 제임스 맥어보이의 팬이다. 그가 가장 매력적으로 등장하는 영화이며 배우, 연출, 각본 셋 중 어느 하나도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스웹트 어웨이>(감독 리나 베르트 뮐러) 마돈나가 출연하고 그의 남편 가이 리치가 연출한 작품 말고, 리나 베르트 뮐러 감독의 영화를 추천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무인도에 갇힌 귀부인과 노동자 사이에 흐르는 이야기를 풍자적인 기류로 담아낸다. ‘여성 펠리니’라고 불리는 괴짜 여감독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한겨레 신문 영화 담당 김은형 기자가 찍은 코미디 영화
“바캉스 때만큼은 ‘뇌’를 웃겨주자. 코미디 영화로 뇌를 한껏 스트레칭하고 나면 삶이 좀 개운해질 것이다.”
<블레이드 오브 글로리>(감독 조시 고든, 윌 스펙) 초유의 남-남 페어 스케이팅 팀이 세팅되어 세계선수권대회에 도전한다는 스포츠 드라마. <엘프>에서 산만 한 덩치와 험상궂은 인상으로 태연하게 귀여운 아이 역할을 했던 윌 페럴이 자신의 본령(무례하고 뻔뻔하며 자아도취에 빠진 왕자병 환자)으로 돌아와 그 포스를 100% 발휘한다. 페어 스케이팅의 아름다운 동작들을 후줄근한 남자 둘이 해냈을 때 그 느낌이 얼마나 ‘아스트랄’해지는지 확인해보는 게 감상 포인트.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