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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냐고 묻거든] 신지식 농업인 천상배 씨 그 남자가 뽕밭으로 간 까닭은?
순후한 웃음을 날리는 경상도 농사꾼 천상배 씨. 그는 우리 국토의 70%인 산지를 식량자원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8년이면 수확이 가능한 금자탑 은행나무를 연구 개발했고, 요즘엔 오디뽕나무 재배조합을 만들어 오디 식품 가공, 유통의 방법에 골몰해 있다. ‘미래를 읽는 나무 장사꾼’ 천상배 씨의 21세기 농업 부국강병책, 듣고만 있어도 힘이 불끈 솟는다.
‘뽕나무’ 하면 슬그머니 웃음부터 나오는 것은 촌놈인 나만의 일일까? “얘야, 옛날 얘기 하나 해주랴? 뽕나무가 ‘뽕’ 하고 방귀를 뀌니까, 대나무가 ‘대끼놈!’ 하고 화를 내니, 참나무가 ‘참아라’ 하더란다.” 어릴 적 엄마 말 듣고 뽕나무는 방귀나 뀌고, 대나무는 화나 내고, 참나무가 그중 의젓한 선비나무인 줄로만 알았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다음에 터트리곤 하던 영문 모를 ‘까르르~’ 웃음소리도 그다지 뽕나무의 위신을 세워주지 못했고, 머리 굵어서 본 이두용 감독, 이미숙 주연의 <뽕>은 더욱 은근 야릇한 웃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뽕에 얽힌 추억은 그뿐이 아니다. 충청도 두메산골 외딴 집에 살던 나는, 더러 산모롱이에서 산뽕들을 만나기는 했어도 아랫집 점순네 밭뽕처럼 오디 알이 굵고 맛있어 뵈는 게 없었다. 몰래 뽕밭에 스며들어 닥치는 대로 오디를 훑어 먹곤 했는데 그러다가 텃세 심한 점순이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지청구를 얻어먹어야 했는지 모른다. 아니라고 도리질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게 바로 오디 도둑일 것이다. 머리에는 하얀 뽕나무 거미줄이 앉았고, 두 손과 입술과 앞섶에는 보랏빛 오딧물이 ‘내가 바로 오디 도둑이요!’ 웅변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주에 산다는 신지식농업인 천상배 씨를 만나러 가면서 뽕나무와 오디에 얽힌 그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저절로 입 안에 침이 고이며 마음 흥그러워졌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차는 3번 국도 옆 상주시 만산동에 이르러 오똑한 천왕산 자락 아래 ‘한울 특용수 육종 영농조합’이라는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닌 사나이가 손을 내민다. 영농조합 대표이사 천상배 씨다. 저이와 마주 앉기 전까지 나는 뽕나무를 이제 사양길에 접어든 추억 속의 나무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고서古書에도 ‘신神이 내린 나무’라고 부른 기록이 있습니다만, 뽕나무처럼 인간에게 완벽한 혜택을 주는 나무는 찾기 어려울 겁니다. 뿌리며, 줄기며, 껍질까지 모두 한약재로 쓰고 잎은 뽕잎차를 비롯하여 뽕잎쌈, 뽕김치, 뽕국수, 뽕만두, 뽕찐빵 등등 무궁한 식재료로 활용되고 있지요. 옛날부터 뽕나무는 누에를 기르는 먹이식물이라 옷감을 얻게 했고, 부산물인 번데기는 맛있는 간식거리였으며, 지금은 동충하초를 기르는 숙주로 사용하지요. 누엣가루는 당뇨에 좋은 건강식품이고, 뽕나무에서 나는 상황버섯은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하지요. 열매인 오디는 과거에는 단지 간식거리였지만 지금은 오디 음료와 오디 와인의 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단연 제2의 뽕나무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칭 ‘뽕나무 전도사’답게 뽕나무에 대한 예찬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함부로 전도당하지 않으려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으나, 점점 솔깃해져서 무릎이 쏠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지난해 봄에 처음 맛본 뽕잎쌈의 맛이라든가, 근래에 당뇨 기를 보이는 가족 탓에 귀가 조금 얇아진 탓도 있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름 뽕나무를 절실히 체험해본 시골 출신 아닌가. 분명히 뽕나무 상품화에는 취약점이 있을 거라고 내심 반격을 준비했다.


1 오똑한 천왕산 자락 아래 심긴 뽕나무.
2 천상배 씨가 육종 개량한 ‘금자탑 은행나무’. 접목한 은행나무들이 기울어져 자라는 것을 해결한 품종으로, 성장도 빨라 접목 후 5~8년 후면 은행을 수확할 수 있다.
3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면 오디 수확의 기쁨에 빠지는 신지식 농업인 천상배 씨.

“뽕나무의 효능은 그렇다 쳐도 재배는 까다롭지 않습니까?”
“뽕나무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재배가 쉽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웬만한 토양에서는 다 잘 자랍니다. 농약도 거의 칠 필요가 없구요. 이처럼 관리가 쉬운 작물이 없습니다. 인건비도 거의 들지 않고, 고령자와 초보자도 가능한 농사입니다. 몇 년 전에 75세의 노인 분이 묘목을 사가셨는데, 벌써 오디가 달려서 상품으로 출하를 하고 있습니다.”
“설마 심어놓기만 하면 수확할 수 있는 ‘게으른 농사’가 있을라구요.”
“물론 거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 밑의 잡초도 제거해주어야 하구요, 품질을 높이려면 비료도 주고, 필요에 따라서는 전정을 해주어야 하는 종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사과나 배나 다른 과수에 비하면 정말 거저 짓는 농사라 할 수 있습니다. 오디 수확도 바닥에 천을 깔고 나무를 흔들면 우수수 잘 떨어집니다. 일 년 내내 보살펴야 하는 것도 아니고, 6월이면 오디 농사는 끝납니다. 값도 굉장히 좋은 편입니다.”
“개인이 오디를 생산해서 저장하고 유통하려면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우리 영농조합에는 냉동창고가 있습니다. 냉동창고만 있으면 저장했다가 일 년 내내 상품을 출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묘목을 분양한 농가의 오디들은 전량 수매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오디는 당도가 높아서 냉동 온도를 영하 25도 이하로 설정해야 한단다. 인터뷰 도중에 냉동창고를 찾아서 문을 여니 한겨울을 방불케 하는 뿌연 냉동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잠깐 들어갔던 나는 이내 온몸에 한기가 차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왔다. 뽕나무 전도사의 이력과 그가 처음 뽕나무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1 그가 품종 개량한 ‘한울 1호’ ‘한울 2호’ 뽕나무는 특히 당도가 높고 수확량도 많은 편이다. 
2 열매가 단단하지 않아 저장성이 떨어지는 오디 열매는 냉동창고에서 급냉한다.

“저는 농사짓기 전에 여러 가지 사업으로 많이 망해본 사람입니다.”
이곳 상주시 만산동에서 태어나서 상주고등학교를 마치고, 충남대 축산학과를 졸업한 그는 처음 앙고라토끼를 기르다가 망하고, 토종닭을 키우다가 망해봤단다. 그러다가 고추 모종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그걸로 성공을 했다. 당시 고추 모종을 맨땅에 심었던 것을 뽑아서 출하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는 미리 준비한 용기에 모종을 심어서 출하하는, 지금은 보편화된 방식을 처음 시도했다. 이걸로 한동안 재미를 보았지만 곧 다른 소득 작목을 찾아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재배를 해서 포화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군자란, 벤자민고무나무 등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았으나 신통치 않았다.

그가 육종 개발한 ‘금자탑 은행나무’도 이러한 소득 작목을 개발하다가 탄생시킨 것이다. 특허청 상표 등록을 마친 금자탑 은행나무는 기존의 접목 은행나무들이 기울어져서 자라는 것을 해결한 것이다. 또 성장 속도가 빨라서 심은 뒤 5~8년이면 수확이 가능하다고 한다. 본래 할아버지가 심으면 손자 대에서나 수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공손수’라는 별명이 붙은 늦된 나무가 은행나무인데, 수확 연령을 획기적으로 당긴 것이다. 그는 노후를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 유휴지나 임야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 농사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 농약이 싫고 힘든 농사 짓기 어려운 이들, 물려받은 농토를 가치 있는 과수원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금자탑 은행나무만큼 좋은 게 없다며 ‘강추’한다. 1백 주 이상 구매하면 은행 열매 수매 계약을 체결해준다고 한다.


3 병충해가 적은 감나무는 조경수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다양한 소득 작목을 찾던 중에 그는 뽕나무의 상품성을 발견하고 육종에 힘써 다양한 오디뽕나무를 개발하게 되었다. 은행나무와 뽕나무 등을 개발하면서 앞으로의 식량난 시대에 대비해 대체식품이 될 만한 식량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갖게 된 그는 다시 만학도가 되어서 2002년 상주대학교 산림자원학과를 졸업했다. 내친김에 한국벤처농업대학도 졸업했다. 2005년에는 농림부 주관 ‘신지식인 농업인장’을 수상하게 되었고, 상주시 농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6년에는 한국농업관광대학을 졸업하고, 2007년에는 농산물 마케팅대학을 졸업하는 등, 농사와 함께 정열적인 향학열을 피워올렸다. 지금은 사단법인 한국농업CEO연합회 회원이며, 상주시 농업 포럼 위원이며, 상주농산물유통사업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농사로 실패도 많이 해봤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농사를 짓든 누구 못지않게 잘할 자신이 있습니다. 신지식인 농부가 되고 농업 CEO가 되면서 사람들과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나름대로 안목이 트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가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가 ‘규모화의 농업’이다. “시골 사람들이 못사는 한계 가운데 하나가 ‘내 기술은 나밖에 안 된다’고 하는 폐쇄성입니다. 규모가 작으면 산업화하기 어렵습니다. 서로 규모를 합해서 ‘단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생산자 연합, 품목별 연합을 만들어서 균일한 공급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민들이 각자 먹고살기 힘들어서 어려워하지만 저는 반드시 이것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뽕나무 전도사로 돌아가볼까요? 뽕나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 외에도 오디는 염색약, 화장품, 비누, 잼, 주스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보다 많은 농가가 뽕나무를 재배하기를 바랍니다. 제 꿈은 상주를 오디의 메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디 연구소도 세우고, 인재들과 함께 오디 품종 개량, 가공, 판매, 저장 등을 연구하는 겁니다. 함평나비축제처럼 상주오디축제를 열어도 좋겠지요. 도시와 시골을 연계하여 1사 1촌으로 체험 행사를 하고, 직거래를 해도 좋겠지요. 제 꿈 가운데 또 하나는 상주특산 농산물판매회사를 세우는 겁니다.”
“영농조합에서 하는 일 가운데 ‘귀농 상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4, 5 6월 초면 오디 열매의 수확이 마무리된다. 현재 한울특용수영농조합에서는 천상배 씨가 품종 개량한 ‘한울1호’ ‘한울 2호’ 외에 ‘대성뽕’ ‘수원뽕’ 등의 품종도 함께 기르고 있다.

“귀농은 정보 싸움입니다. 잘못된 정보로 출발하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귀농하기 전에 내가 지을 작목은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합니다. 농사지은 작목의 판매와 마케팅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귀농에 앞서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자꾸 귀찮게 하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최면에 걸려서 ‘이러면 되겠다’는 신념이 생깁니다. 그냥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하면 결국 실패합니다.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신념이 있어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당장의 실패가 있더라도 그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귀농하는 분들, 다짜고짜 집부터 짓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정착에 성공 못할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먼저 지역민들과 잘 사귀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집은 컨테이너 같은 것으로 만들어놓고 가능한 모든 돈을 작목에 투자하여 소득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귀농을 꿈꾸는 분들이라면 언제든지 저희 영농조합에 찾아오십시오. 귀찮게 해도 제가 감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몸으로만 짓는 농사가 아니라 ‘생각하는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마인드를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일만 잘하는 게 아니라 작은 일이지만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치 부여’를 할 수 있어야 중도하차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 되도록 생각의 틀을 키워야 합니다. 인생이 지금은 어렵지만 계속 어려운 게 아니고, 희망을 가지면 미래가 달라집니다. 지금 잘산다고 해서 만족하고 변화화지 않으면 쇠퇴하게 됩니다. 저는 오디뽕나무를 심으면서 정신적으로 남을 깨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합니다. 나의 열정과 축적된 모든 자산을 가지고 국가의 미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6 뽕나무의 접목 방법을 그가 설명하고 있다.
7 크기가 크고 당도 또한 높은 데다 즙이 많아 생과용으로 인기가 높은 ‘한울 2호’ 오디.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했던가. 스피노자가 작목에 대한 공부를 했더라면 수확이 더딘 사과나무보다 ‘오디뽕나무를 심겠다’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팔순 노인이 손주를 위해 심는 은행나무는 ‘이타적利他的’인 나무심기이지만, 뽕나무를 심는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인 나무심기도 꽤 괜찮을 성싶다. 칠순 노인이 심어도 2~3년 후에 손주들과 함께 맛나게 오디를 따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셸 실버스타인도 저 오디뽕 전도사를 먼저 만났더라면 동화의 내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을 키워주고, 열매를 주고, 가지를 주고, 몸통을 주고, 그루터기를 주었던 그 사과나무 역시 오디뽕나무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분위기가 영판 달라져서 읽는 맛이 안 날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우의적인 함의를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아낌없는 효용’을 주는 나무는 사과나무보다 뽕나무가 훨씬 윗길일 거라고 생각된다. ‘나무의 효용성’ 운운 역시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나는 그를 통해서 유년의 뽕나무 숲에서 빠져나와 미래의 넘실대는 뽕나무 바다를 만났다. 우리 모두 그와 함께 뽕나무 숲으로 임도 보고 뽕도 따러 가는 것은 어떠한가? 문의 한울 특용수 육종 영농조합 054-536-3324, www.hanwool.co.kr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