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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리포트] 몸에 한 세상 떠 넣어주는 밥상
항상 조금 모자라게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법이어서 옛날에도 앞으로도 먹고 사는 일은 힘들고 거룩한 일일 테지요. 거룩한 끼니를 때우는 밥상, 그 작은 밥상에는 쌀 한 톨도 수챗구멍에 흘려 보내지 않던어머니의 시절이, 쌀독에 쌀 떨어질까 봐 세상 수모를 다 겪으며 사시다 간 아버지의 시절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밥상 그림 그리는 화가 정경심 씨와 그 그림을 갤러리에 건 갤러리스트 김영진 씨, ‘약식동원’을 외치는 한의사 송미연 씨가 모였습니다. 식구食口들 작은 밥상 차리는 마음으로 밥상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김영진
이상하죠? 저물녘이면 밥 생각이 나는 게. 엄마 생각 나는 게. 인생의 시작도 끝도 밥이고 엄마인 거 같아요. 밥은 엄마인 거 같아요.
송미연 맞아요. 밥은 엄마고, 기억이고. 밥 생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정서가 그리움이에요. 밥 먹고 산다는 걸 생각할 땐 왠지 늘 목구멍이 메어오잖아요. 엄마는 곧 그리움이고, 그러니까 밥은 또 그리움이고. 미국에 있을 때 한 달 넘게 베이글만 먹고 산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엄마가 오셔서 한인타운에서 배추 사다 김치 담아 해준 밥 한 끼. 내 인생 최고의 밥상이었어요.
정경심 저도 작업이 너무 힘들 때 엄마가 와서 해준 병어조림이 인생 최고의 밥상이에요. 접시 위에 누워 있는 병어 한 마리가 정말 그림 같고 눈물 나고. 그게 내 그림으로 싹 들어오더라고요. 그렇게 ‘병어 한 마리’ 그림이 그려졌죠. 엄마가 차려준 밥상의 심정적인 온도는 그렇게 뜨끈한 거죠.
송미연 전자레인지로 익힌 음식에서는 음식 맛을 내는 화학적인 특수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대요. 그래서 맛이 없는 거죠. 엄마 손끝으로 만들어야 바로 그 ‘화학적인 특수 반응’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엄마 밥!
김영진 엄마들은 음식 간을 볼 때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던 눈물 맛의 간에 맞춘다지요. 눈물 맛의 염도가 가장 맛난 염도래요. 국물을 덥힐 때 새끼손가락을 휘휘 저어 음식 온도를 체온과 같게 하는 것도 엄마들의 지혜죠. 엄마의 밥은 엄마 몸에서 나오는 밥, 바로 엄마 몸이에요.
송미연 <뉴욕타임스>에 눈물 속에는 감정 농도에 따라 분비 농도가 달라지는 ‘로이시닌케팔린’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기사가 났었어요. 이 성분은 양파 썰 때 나오는 물질적 눈물에는 없고, 슬퍼서 울 때 나는 감정적 눈물에만 분비된다는 거예요. 엄마들의 눈물에 가장 많이 든 로이시닌케팔린으로 간을 맞춘다는 한국 음식,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시적이에요. 정말 멋있다는 감탄이 절로 나와요. /

“어머니가 쓰시던 놋수저 한 벌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오늘도 놋수저를 꽂는다 제삿날 메 올리는 삽시揷匙가 아니다 어머니의 고봉밥을 어머니의 놋수저로 내가 먹는다 혼령의 밥을 내가 먹는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 밥이시다 죽이 아니라 밥이시다 어머니 가신 뒤 늘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놋수저를 꽂았다”(정진규의 ‘놋수저’)
정경심 엄마의 밥은 관계를 맺어주는 첫 단추예요. 엄마 밥 먹고 산 사람들은 나랑 밥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요.
송미연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비만 실태를 조사했는데 부모 구속 없이 혼자서 먹는 아이일수록 비만이 심하대요. 아이들의 비만은 절제 없이 많이 먹는 양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식사 문화가 없는 것, 밥상머리 인격 교육이 없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 우리 밥상머리 풍경을 보면 식구가 모두 둘러앉아 먹는데, 간장이나 김치 같은 기본 반찬 외에는 어른이 먼저 손댄 다음에야 먹고 특식은 어른이 떠서 밥그릇 위에 얹어주는 것만 먹고, 맛있는 반찬을 한 번에 몰아 먹지 못하고… 이런 구속이 많잖아요. 너무 구속이 심한 것 같지만 실제로 아이는 그 밥상 위의 구속으로 세상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자기 억제의 힘을 배우게 되는 거죠. 또 자기중심의 사고 대신 타인과의 관계 맺기라는 것도 배우게 되고.

1 한복 짓는 갤러리스트 김영진 씨
2 정경심의 ‘완두콩밥과 시금치 나물’

정경심 ‘식구食口’라는 말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래요. 이 안에 다 들어 있어요. 관계 맺기라는 거, 함께 산다는 거, 얼마나 거룩한 건지요.
김영진 함께 산다는 게 곧 한솥밥을 먹는다는 거잖아요. 옛날에 시골에는 무시로 장수라고 해서 일용품을 팔러 다니는 행상이 있었는데, 그 행상이 마을에 오면 부잣집에서 잠자리도 내주고 조석으로 밥상을 차려줬대요. 그런데 이 상차림이 참 특이하죠. 국이나 찬은 모두 차려내는데 밥만은 놓여 있지 않았대요. 밥은 행상 자신이 행랑채 한구석에서 단지 밥을 지어 먹어야 했대요. 인심이 박해서가 아니라, 한솥밥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는 거죠. 한솥밥에는 밥 이상의 정신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요. 한솥밥을 먹는 사람끼리는 선악, 이해득실을 초월해 서로 보듬고 생사흥멸을 함께하는 거죠. 그게 바로 식구죠.
정경심 한솥밥이라는 뜻에서 보면 밥상만이 아니라 밥상을 차리는 행위도 거룩한 거 같아요. 특히 남편 밥상을 차리는 거. 타인이었던 사람과 한솥밥을 차려 먹으며 맛으로 소통한다는 게 참 대단해요. 30년 동안 다른 입맛, 다른 혀의 기억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제 입맛을 양보하고 배려하면서 맞춰가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양보이고, 밥상을 차리기 위해 내 시간을 내준다는 것도 양보이고. 그렇게 쌓인 밥상 언저리의 믿음은 대단하죠. 남편과 3차 대전처럼 싸우고 나서도 내가 밥 차려주고 그가 맛있게 먹으면 자연스럽게 풀어지잖아요. 그러고 보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데 칼이랑 물이랑 다 밥 만드는 데 쓰는 거네.


3 화가 정경심 씨
4 한의사 송미연

송미연 밥상을 차리는 사람은 식구들의 기호, 영양 상태, 남은 재료, 경제 상황, 계절까지 다 종합해서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어야 하잖아요. 밥상이란 게 딱 한 시간만 시간 낸다고 차려지는 게 아니고. 그래서 그 책임의 무게가 큰 거죠. 그런데 밥상 차리는 일을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면 결국 그게 분노가 되는 거죠. “나는 밥상 차리려고 세상에 태어났냐?”라고.
김영진 그래서 그런가? 엄마들이 나이가 들수록 큰소리치고 살잖아요. 그게 다 밥해준 공력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또 남편들이 싸울 때 항상 하는 말이 “네가 언제 나한테 밥 한 번 제대로 차려줘봤냐?”잖아요. 그런 거 보면서 떳떳하려면 밥을 잘 차려줘야겠다 생각하죠.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 (중략) /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 거니, 우리는 /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 그 진실 훌훌 소리 내어 마시다 보면 /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정일근의 시 ‘매생이’ 중)

김영진 나는 우리 엄마들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욕심이 없기 때문인 거 같아요. 음식 만들 때 꾸미지 않는 거, ‘나 음식 잘해’ 하고 뽐내지 않는 거. 밥상 차리는 게 일상인 사람이니까 툭툭 던지면서 하는 음식이라 군더더기 없고. 그 욕심 없는 걸 배우고 싶어요. 그 투박한 손놀림에서 오는 손맛깔!
정경심 투박한 것 같지만 정성이 가득하죠. 열무김치 하나 담글 때도 고추 가는 데 외로 몇 번, 바로 몇 번 번갈아 갈고, 미나리 다듬는 데도 손톱 쓰면 향 가신다고 손톱 닿지 않게 하고. 그 정성에서 손맛깔이 만들어지는 거죠.
송미연 원래 투박한 재료, 못생긴 음식이 사람 몸에 이로워요. 사람 손이 덜 간 못생긴 사과는 인공적으로 생장을 조절해 예쁘게 만든 사과보다 비타민 함유량이 5~10배나 돼요. 못생기고 흙이 많이 붙은 당근이 잘생긴 당근보다 항산화 성분 함유량이 훨씬 많고. 시금치에 들어 있는 철분 양이 50년 전에 비해 7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고 비타민 C도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해요. 이것도 모두 모양 예쁘게 인공적으로 재배하면서 생겨난 결과죠. 투박한 음식의 색도 관계가 있어요. 보기 좋은 식탁을 원하는 이들이 그동안 검은색 음식을 기피하다가 최근에야 블랙 푸드라고 해서 좋아들 하잖아요. 더 발효된 것, 정제되지 않은 자연의 색이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블랙 푸드, 레드 푸드, 브라운 푸드인데. 그런데 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들이 해주던 음식은 모두 발효된 것, 정제되지 않은 것, 오래된 것이에요. 흑맥주, 된장도 오래된 것일수록 검어서 더욱 좋고, 식초도 그냥 식초보다는 검은 식초, 설탕도 백설탕보다는 흑설탕이 더 좋아요. 우리 엄마들이 차려준 밥상에서 만나는 투박한 색의 음식이 바로 약식동원藥食同原이죠.


(오른쪽) 정경심의 ‘사과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김영진 그 ‘투박해서 맛있는 밥’은 그릇하고도 관계가 있는 거 같아요. 조선시대에 김정국이란 선비가 조석 밥상에 세 가지 이상 찬을 못 놓게 했대요. 그러면서도 매일 다섯 가지 찬으로 밥을 먹는다고 말하고 다녔지요. ‘있지도 않은 두 가지 찬’이 뭐냐고 물었더니 “반드시 시장할 때 밥을 찾아 먹으니까 시장이 그 한 찬, 반드시 밥을 덥게 해서 먹으니까 따뜻함이 그 다른 한 찬”이라고 대답하더래요. 밥을 따습게 유지해주는 그릇, 바로 오지그릇인데, 또 이게 얼마나 투박해요. 서양 그릇처럼 한눈에 딱 예쁘진 않지만 음식을 올려놓으면 그 음식이 맛있게 살아나잖아요. 그러고 보면 정경심 작가의 그림도 오지그릇 같아요. 그냥 보면 심심하지만 그 그림이 지닌 ‘보열?보온 기능’은 정말 비범하죠.
정경심 밥상은 욕구의 총체라고 볼 수 있어요. 밥상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살육의 현장이죠. 그런데 그런 욕망에 의한 살육과 순환은 자연의 순리이기도 하잖아요. 제 그림에 드러나는 밥상 이야기도 결국 ‘삶은 욕망의 발현’이라는 걸 그림으로 시각화한 거죠. 제 밥상 그림 위의 꽃이나 과일, 붉은 열매의 이미지는 1차적으로 식재료나 꽃이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의미와 감정을 내포하고 있어요. 그건 또 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읽혀지기도 하고요. 많은 감정과 욕망을 숨긴 그림, 너무 화려하면 안 되잖아요. 서서히 젖어들어 꼼꼼히 보게 하는 그림,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그는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문태준의 ‘노모’ )

송미연 ‘약식동원’이라는 말에는 참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어요. 음식이 곧 약물이고, 약물이 곧 음식이라는 말인데, 정신 건강에서도 이 약식동원이 중요해요. 뇌는 사람이 하루에 사용하는 열량의 20%를 사용하거든요. 실제로 음식 첨가물과 정신 건강은 상당한 관계가 있어요. 그 예로 우울한 사람들은 많은 양의 카페인을 섭취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우울해지기 쉬운 경향의 사람이 카페인에 더 민감한 편이거든요. 정제된 설탕이 카페인과 합해지면 그 증상은 더 심해져요. 설탕 같은 단순 당은 뇌로 들어가야 할 연료 공급을 너무 빨리 시작해 빨리 끝내요. 이렇게 정제된 음식만 먹다 보면 뇌가 제 역할 못하고 신경질이 늘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탄수화물은 복합적이고 질긴 섬유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혈당과 인슐린 수치를 서서히 올려줘요. 밥은 이렇게 심신의 건강에 절대적인 거예요.
김영진 건강에도 그렇지만 사람살이에서도 밥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요. 밥 먹는 건 매일의 바탕이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고. 예전에 연극할 때 엄마가 “밥은 먹고 다니냐?” 물으면 그 의미를 몰랐죠. 나이가 들수록 밥 먹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얼마나 힘겨운 건지 알 것 같아요. 끼니가 주는 연륜인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왜 삶의 절절함이 배어 있는 밥으로는 예술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정경심 <미학개론>에 실린 어려운 글에 ‘예술과 미는 그 대상에 대한 무사심無私心(사심이 없다)의 거리, 미적 거리를 가져야만 발생한다’는 설명이 있어요. 좀 쉽게 말하면 밥은 나와 거리를 둘 수 없는 거니까. 먼지나 이쑤시개로는 예술 할 수 있지만, 어찌 빈 창자를 채우는 밥 따위로 예술을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인 거죠. 하지만 무사심의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밥은 더더욱 예술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제 밥상 그림은 평생 동안 계속될 것 같아요.

송미연 옛날 어른들이 물맛 알고 밥맛 알면 어른 된 거라고 하셨는데, 바로 밥맛 알게 되는 게 예술 아닌가요? 밥 굶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것도 예술이고. 그런데 계속 밥 이야기하니 밥 먹고 싶다!
“나이 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 올리고 있는 그에게, /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 /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황지우의 ‘거룩한 식사’)

김영진 씨는 연극 연출을 전공한 연극배우로, 수입 명품 브랜드의 슈퍼바이저로, 아트 컨설턴트로의 행로를 걷다 침선장 박광훈 선생에게 사사받고 한복쟁이로 안착했다. 한복집 ‘차이 김영진’과 그 옆의 작은 갤러리 ‘차이’를 함께 이끌고 있다. 송미연 씨는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퀴스 후즈후>에 등재된 한국 최초의 한의사로, 재활의학과 비만 치료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 한방비만체형클리닉에서 일하고 있다. 정경심 씨는 서울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전통 채색법으로 ‘밥상 그림’을 그리는 화가다. 올해 3월호 <행복>의 표지 작가이기도 한 그의 개인전이 6월 중순까지 갤러리 차이(02-333-6692)에서 열린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