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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여름 가족 여행2] 서울의 숨겨진 주소들
멀리 휴가를 떠날 수 없다고 투덜대지 말지어다. 일상 속에서 틈틈이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하자.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어?’싶을 만치 의외의 공간이면 더욱 즐겁겠다.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서울의 숨겨진 장소들을 소개한다. 무뎌진 감성이 이완되는 도심 여행을 시작해보자.


1 신금호역 사거리에 있는 헌책방 고구마.
2 1984년부터 헌책방을 시작한 이범순 대표는 장차 누구나 즐겨 찾는 ‘국민 책방’ 건설이 목표다.
3 사람 한 명 빠져나갈 통로만 남기고 헌책으로 가득찬 이곳에서 필요한 책을 찾기란 ‘동해에서 꽁치 찾기’보다 어려울지 모르나 그 꽁치를 만나면 대어 낚은 기분이다.

시간을 잊는 지적인 미로 헌책방 고구마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2가 10-2

금호동 장터 주변을 걷다 보면 커다랗고 정직한 글씨로 ‘헌책방 고구마’라고 쓰인 낡은 간판을 만난다. 들어가보니 입구부터 미로 같다. 헌책을 켜켜이 쌓은 책장 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가는 좁은 통로를 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책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면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로 조심조심 지나가야 한다. 책을 소중히 다루고 지성 앞에서 겸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통로다. “이곳에 모은 헌책은 ‘낡아서 저렴한 책’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해 구한 귀한 책’”이라는, 1984년부터 이 헌책방을 시작한 이범순 대표의 이야기도 되새긴다.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자유이지만, 나가는 것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 바랜 책장들을 손끝으로 찬찬히 훑다 보면 예전에 한 번 보고 잊고 있던 책들이 속속 떠오르는데, 이렇게 기억의 시작을 찾아 달리다 보면 쉬이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책 중독’은 불치병이다. “헌책은 구질구질하고, 짭짤하고, 오묘한 매력이 있다”는 이 대표의 말 따라 맹숭맹숭한 날 홀로 와서 헌책의 짭짤한 맛을 오래 음미하다 가도 좋겠다. 높다란 책장이 본의 아니게 칸막이 기능을 하므로 다른 손님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니 더욱 편하다. 고구마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사장님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선한 사람들이어서 이곳이 더욱 정겨운지도 모르겠다. 어린이 책부터 은퇴한 노부부들이 즐겨 읽을 만한 취미·실용 서적까지 다양한 총서가 약 40만 권 진열되어 있으니 가족과 함께 와도 좋다. 특히 다른 헌책방에는 없지만 고구마에만 있는 ‘추억의 책’ 코너는 꼭 들러볼 것. 가난한 시절 닳을 때까지 읽었던 동화책, 유년기를 반질반질하게 했던 조악한 만화책 등을 따로 모은 코너다. 가령 읽을 때마다 훌쩍였던 <행복한 왕자>의 1981년판을 다시 펼쳐 그 정겨운 문투와 그림을 만날 때의 기분이란. 옆에서 딸아이가 “엄마 왜 울어?”할지도 모르겠다.

위치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 1번 출구에서 직진, 농협을 지나 50m쯤 떨어진 곳에 첫 번째 고구마 매장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직진하면 20~30m 간격으로 아동 서적 매장, 전문 서적 매장을 차례로 만난다.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명절 기간에만 휴무). 기타 여름 내내 매장에 에어컨이 가동된다. 인터넷 사이트(www.goguma.co.kr)로도 헌책 검색 및 구입이 가능하다. 문의 02-2232-0406


1 카페 새소리 물소리의 여름 인기 메뉴는 차가운 오미자 차. 모든 전통 차는 이곳에서 직접 만든다.
2 카페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 한옥을 감상하는 맛도 기막히다.
3 창밖으로 그림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카페에서는 이영우 씨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손때 묻은 소반, 장, 폐백상 등을 그대로 쓰고 있다.

비로소 자연에 귀 기울이다 카페 새소리 물소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오야동 278

수서역을 지나자마자 대로변을 벗어나 산 밑을 향해 5분 정도 달리면 한옥 한 채가 보인다. 한옥 카페 ‘새소리 물소리’는 초목으로 둘러싸인 별장 같다. 이곳은 주인장인 한국화가 이영우 씨의 조상들이 살아온 80년 된 한옥으로, 그가 작업실로 사용하다가 2003년부터 카페로 개조해서 좀 더 많은 이들과 즐거움을 함께 누리고 있다.

이영우 씨와 아내 최경은 씨가 발로 뛰어 전문가들을 섭외해 세심하게 개조한 한옥 내부의 면면도 곱디곱지만, 주위 풍경과의 어우러짐은 더욱 기가 막히다. 집 뒤에는 3백 년 된 느티나무가 버티고 섰고, 돌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팔각정이 우뚝 솟았으며, 마당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앵두나무, 느티나무가 바람을 청량하게 가르고 있다. 평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고, 주말에는 삼대 가족이 모두 와서 조부모님들은 툇마루에, 아들 내외는 마루에, 아이들은 마당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즐긴다. 한가한 시간 창가에 앉아 홀로 책을 읽기에도 최적의 공간이다. 한여름에도 인릉산 밑으로 내려오는 오싹한 바람 덕분에 덥지 않다.

위치 지하철 3호선 수서역에서 세곡동 방향으로 5분 거리에 있다.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기타 오전 시간과 오후 5~6시에 가장 한적하다. 보름달 뜨는 밤에는 툇마루에서 달빛을 감상해보자. 문의 031-723-7541, www.solycafe.co.kr


4 흡사 시골 읍내의 한약방 같은 청학당 한의원의 내부. 백암 선생이 책을 읽고 있다.
5 매주 금요일 저녁 백암
선생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의원으로 모인 제자들. 약 세 시간 동안 목청껏 경을 욀 준비를 해야 한다.
6 백암 선생이 80일 만에 암기했다는 <주역>의 조선 말기 판본.

성현의 말씀으로 귀를 씻으라 청학당 한의원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61-16

금요일 밤, 서울 논현동 일대의 밤거리는 흥청거린다. 신식 건물들이 도열한 큰길 뒤편으로 들어가니 비로소 소음이 잦아든다. 주택가와 가게, 세탁소를 지나니 어느 오래된 건물 1층에 한의원이 자리하고 있다. 밤이 깊어가는데 이곳 청학당 한의원에서는 불빛이 환하게 새어 나왔다. 경 외는 소리가 높다. 백양 조규식 원장의 주위로 예닐곱 명의 학생들이 모여 주역을 비롯한 한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조규식 선생은 주역과 한학에 통달한 학자로, 유익함을 두루 나누고자 이곳에서 무료로 학당을 열고 있다(수업료 대신 가끔 ‘버지니아 슬림’ 담배는 받는다). 95세 나이가 믿기지 않게 글을 외는 음성이 쩌렁쩌렁하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몇인가? 둘인가? 산수 말고! 하나에 하나를 더할 때 없는 게 하나 더 있으니, 하늘은 1재요 땅이 1재요 그 사이의 만물이 1재, 그러니 3재이니라.” 따라서 인간은 천지음양의 원리에 맞추어 돌아간다는 말씀이다. 이 이치를 깨우치되, 많이 안다 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며 배운 바를 사사로이 쓰지 않는 길을 선생은 강조한다. “착한 사람이 아니면 가르치지 않으신답니다.” 제자 최장재희 씨의 말이다. 누구에게라도 열린 공간이지만,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고 공부에 임해야 한다는 뜻. 가르침이 쉽지는 않지만 양의사, 사진가, 숲 해설가, 대학생 등 각양각색의 학생들이 문리를 깨치러 이곳에 모인다.

직접 글씨를 써넣은 20년 된 약장에는 여기서 직접 다듬고 말린 약재가 담겼다. 오랜 단골 손님들은 약을 지으러 찾아올 때 도통 풀리지 않는 고민도 함께 들고 온다. 마침 밥 때가 되었다면 맏며느님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가야 한다. 나물과 김치 등 소박한 찬이 정겹다. 특히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진한 된장찌개는 특별한 건더기가 들지 않았어도 맛이 기막히다.

위치 서울 안세병원 사거리에서 도산 사거리 방면 대로변 뒤쪽. 영업시간 한의원은 오전 9시~오후 6시, 한학 수업은 금요일 오후 7시,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기타 백양 선생의 경상도 사투리가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사주·명리를 배우고 오면 좀 더 수월하게 배울 수 있다. 문의 02-544-6601


1 파랑 부스 57번에서 앤티크 시계와 명품 의류를 판매하는 멋쟁이 사장님.
2 주차장에 늘어놓은 물품을 찬찬히 뒤져보면 멋진 아날로그 전화기도 찾을 수 있다.
3 보라 부스 99번에서는 ‘삶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흘러간 만물을 판매한다.

추억의 보물찾기, 서울풍물시장
서울시 동대문구 신설동 109-5

청계천 복원 사업 때문에 동대문운동장에 모여 있었던 풍물벼룩시장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8백94개의 점포가 모두 신설동의 새 둥지로 옮겨와 ‘서울풍물시장’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건물이 특이하게 생겼다. 건물 3층의 천장을 막지 않고 커다란 천막을 설치해, 실내에 있어도 마치 야외 벼룩시장에 온 기분이다. 건물을 하늘에서 보면 천川 자 형태이다. 상인들이 처음 장사하던 곳이 청계천 일대와 황학동이었다는 유래를 살려 건물을 지었다고.

지난 4월 개장했으니 건물이 아직 새 것의 냄새를 벗지 못했지만, 이곳 상인들의 넉살과 입담은 벌써 자리를 잡았다. 옛날 엽전, 중고 명품 의류, 카메라, 시계, 전화기, 액세서리, 장난감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으니 가족이 함께 가도 ‘관심 없다’며 토라질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여름에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앤티크 선글라스와 모자 및 집 안을 시원하게 꾸며줄 금속 소품 등이다. 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온갖 메뉴들이 모여 있는 푸드 코트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여름 음식은 냉면과 비빔국수, 그리고 시원한 동동주와 도토리묵무침이다. 1층과 2층을 돌아본 뒤에는 주차장을 들러보도록. 황학동처럼 바닥에 늘어놓고 판매하는 상인들을 만날 수 있다. 크기가 제각각 다른 만물을 팔기 때문에 실내 부스에 진열할 수 없어서 이곳에서 손님을 만난다고. 주말에는 풍물장수와 엿장수의 공연도 볼 수 있다.

위치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 9·10번 출구에서 걸어서 3분.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7시(점포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타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삐삐(호출기) 등 희귀한 물건을 구하는 데도 좋지만, 한국 근대 이후의 생활상을 돌아보기에도 좋아 외국인 손님에게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듯. 문의 02-2232-3367


응봉산 팔각정에 올라서면 산만하지도, 답답하지도 않게 한눈에 보기에 꼭 알맞은 야경이 펼쳐진다. 서울의 다리가 마치 용이 지나간 자취처럼 번쩍인다.

가슴 시린 도심 야경, 응봉산 팔각정
서울시 성동구 응봉동 269-4

‘응봉산’ 하면 대개 “강원도에 있는 산?”이라 반응한다. 그러나 서울에도 응봉산이 있다. 국철 응봉역 부근, 성동구 응봉동에 있다. 산꼭대기에 있는 팔각정은 숨은 야경 뷰포인트다. 남산은 너무 높아 도심이 다소 산만하게 보이고, 북악 스카이웨이 팔각정이 너무 알려져 있는 데 반해 이곳은 한적하다. 요즘 들어 DSLR 카메라 유저들에게 촬영 명소로 각광 받는 정도.

캄캄해질 무렵 산책길을 따라 10분 정도만 슬슬 걸어 올라가면 팔각정이 보이는데, 그 순간 ‘우와아~!’하는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난데없이 확 트인 야경이 펼쳐진다. 동부간선도로,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를 비롯 강남의 고층 빌딩이 한눈에 반짝반짝 빛난다. 눈이 다 시릴 지경이다. 창창한 대낮엔 저 어디쯤에서 눈앞의 당면 과제에 얽매여 아등바등 살아내는데, 그 시간과 공간을 한 점 빛으로 환산하고 나니 얼마간 후련해진다. 심각하지 않게, 별거 아니란 듯, 신나게 살아야지 싶다.

위치 국철 응봉역에서 하차해 광희중학교 길을 따라 ‘암벽등반’이라는 표지판을 보며 걷다가 편의점 앞에서 좌회전하면 산책길이 나온다. 자가용 이용 시 응봉 삼거리에서 금호 사거리 방면으로 직진하면 응봉산 암벽등반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기타 여름철 일몰 시간을 참고해 나들이 시간을 정하자. 완전히 캄캄해진 뒤에 가도 좋지만 일몰을 바라보며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풍경을 즐겨도 좋겠다. 산책길은 얕고 평탄한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어린아이들도 쉽게 오른다. 정상의 바람은 꽤 쌀쌀하니 긴 소매 옷을 챙겨가도록. 문의 암벽등반공원 관리사무소 02-2286-6061


1 펑크 밴드 ‘잇츠 할리데이’의 공연이 열리고 있던 로베르네 집의 3층 공간.
2 곳곳에 진한 여운이 느껴지는 소품이 자리한다.
3 로베르네 집 2층은 바bar이자 작품 전시 공간이다.

예술가들의 아지트, 로베르네 집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65-3
좁은 도시 안에서 때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고 싶다. 그러면서도 예술적 영감을 2% 정도 느낄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럴 땐 홍대에 있는 ‘로베르네 집’으로 가보자. 2층은 편하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아담한 바로 되어 목욕탕의 흰 타일이 둘러진 벽면에는 아티스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좁다란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역시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종종 음악 공연과 연극 공연이 열린다.

로베르네 집은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이 거의 없었던 5년 전 조소 작가 오윤주 씨의 작은 바람으로 조성된 곳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그는 이 건물의 3층을 작업실로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2층을 차지했던 건축사무소 자리가 비자 그 공간에 작은 바를 만들고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공연도 열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파리의 작가들이 무단 점거해 아틀리에로 사용했다는 파리 로베르네 집에 관한 책을 읽고 같은 이름을 붙였다. 이런 신선한 소문이 홍대에 전해지면서 점차 인근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3층의 작업실을 공연장으로 열어 더욱 다채로운 공연을 하기로 했다. 2·3층이 각각 6평 정도라 낯 모르는 손님들끼리 팔이 닿을 거리로 앉곤 하지만, 이곳은 홍대 아닌가. 누구도 서로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음주를, 공연을 즐긴다. 물론 바에 홀로 앉아 맥주를 마셔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위치 홍대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가다 보면 스타벅스 커피숍이 나오고, 길을 건너 금은방 사이 골목길로 15m 정도 걸어 들어오면 왼쪽 2층에 분홍색 간판이 보인다. 영업 시간 오후 6시~새벽 2시 기타 공연 및 전시는 한 달에 한 건 정도 열리며,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chezRobert.cyworld.com)를 참조하면 된다. 문의 02-337-9682

나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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