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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템페라 화가 서해경 씨 당신이 오래 남기고픈 것은 무엇입니까?


1 ‘꿈꾸는 꽃’(2007)
2 표지 작품 ‘희망 심기 V’(2007)
3 ‘행복 담기’(2007)
4 ‘희망 심기’(2007) 중 일부.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벽화에서는 공통적인 열망이 보인다. ‘무언가를 길이 남기고 싶다’는 점이다. 바위에 깊이 새기든, 특별한 안료를 섞어서 칠하는 식으로 그들의 메시지가 오래 보존되어 후대에 전하기를 바랐다.

그 때문일까. 6월호 표지 작가 서해경 씨는 중국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에 유학하던 시절 우연히 서양 벽화의 일종인 템페라 전시를 보았을 때 작품이 마치 ‘보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깊이 있는 색감이 경건함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림이 저를 평안하게 하더군요.” 마치 대리석처럼 표면이 매끄럽고 투명한 색감을 내며 특유의 광택이 돋보이는 템페라는 순식간에 그를 사로잡았다. 공필화(중국 북방의 정교한 채색화)를 전공하려던 그는 방향을 선회해 대학원에서 벽화를 공부했다. 템페라는 고대 이집트 미라의 관, 파피루스 그림, 이탈리아 분묘, 중세 교회의 벽화 등에도 쓰인 유서 깊은 화법으로, 중국에 동·서양의 벽화를 공부하러 오는 이들이 많다.

“템페라는 작업 준비 단계부터 도 닦는 심정이에요.” 본격적으로 밑그림을 그리기 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패널을 만드는 작업부터가 지난한 과정이다. 우선 나무판에 면을 씌우고 석고 가루와 아교 섞은 것을 바른다. 바르고 말리고 또 바르기를 열두 번쯤 되풀이한 뒤 사포로 갈아내면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라운 패널이 만들어진다. 이 정교한 작업만 일주일 정도 걸린다. 그다음은 채색 단계. 최종적으로 원하는 색과 보색 관계에 있는 색을 먼저 칠하고, 이후 점점 원하는 색에 가까운 색을 칠해간다. 이처럼 여러 색이 중첩되기 때문에 표면에 밑 색이 드러나면서 무게감 있는 색감이 나온다.


이번 호 표지작 ‘희망 심기 III’는 리씨 갤러리(02-3210-0465)에서 열었던 개인전 <행복 나누기>에서 선보인 작품이다. 목인박물관에서 본 색색의 목인을 보고 영감을 받아 그의 식대로 민화 속 꽃과 나무, 새 등을 그렸는데, 민화풍의 모란이 서양 기법인 템페라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민화는 길상吉祥을 갈망하는 그림입니다. 저도 행복을 새롭게 정의하면서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젊을 적에는 ‘나의 행복’이 일순위였는데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니 다른 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행복감이란 잔잔한 호수의 파동처럼 사람 사이에서 전달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엄마가 미소 지으면 갓난아기가 웃고, 엄마가 찡그리면 아기가 금세 불안해하는 것처럼.

서해경 씨의 남편은 지난 5월호에 소개된 둔황 벽화 작가 서용 씨다. 10여 년 먼저 작가로서의 반열에 오른 남편은 후배인 아내에게 결혼 전부터 “그림에 열심히 매진해라. 네가 원하는 세상을 마음껏 펼쳐라”라고 강조했다. 그때 만일 남편이 “괜히 고생하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어”라고 했다면 고된 작업에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래로 벽화 그리던 사람들이 가슴속 소망을 벽에 새겼듯, 저 역시 힘 닿는 데까지 세상에 행복한 자취를 남기고 싶습니다.”

템페라 화가 서해경 씨는 중국 베이징의 중앙미술학원 국화과 및 동 대학원 벽화과를 졸업했다. 2007년 컬러 엑스포 부스전, 2008년 리씨 갤러리 전시 <행복 나누기>를 비롯해 5회의 개인전을 열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