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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무대 뒤의 고독 무대 위의 환희
마술처럼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는 법이지요. 무대 위 환희와 영광이 있기까지는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무대 뒤의 고독이, 충족되지 않는 갈망이, 팽팽한 기 싸움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관객과 교통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위로할 길 없는 외로움도 함께 있습니다. 리허설 현장, 무대 뒤의 그 치열하고 고독한 풍경을 들여다봤습니다.


오페라 <아이다>
5월 12일 오후 6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말하지 않아도 귀는 듣고 서로 붙잡지 않아도 손이 젖는, 침묵의 사랑을 두 배우가 연기합니다. 소프라노 라파엘라 안젤레티(에티오피아 공주 아이다 역)와 테너 루벤스 펠리차리(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역)가 닿을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아이다>의 리허설을 펼치는 중입니다. “합창단! 퇴장 사인 나면 바로 막 내려옵니다. 퇴장할 때 아래 보세요! 아래! 바닥 상하면 안 됩니다! 아래! 아래!” 무대 바로 옆 부조정실 모니터 옆에서 무대 감독이 소리칩니다. 8톤짜리 컨테이너 박스 아홉 개에 담겨 이탈리아에서 공수된 계단형 세트는 <아이다>와 <투란도트> 두 공연에서 번갈아가며 사용하게 됩니다. 하루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이 되었다가 또 하루는 중국 베이징의 왕궁이 되는데, 두 공연의 무대 전환만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따로 있을 정도로 무대가 공연의 꽃이 됐습니다. 매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무대를 다시 꾸리는 일이 여섯 시간 넘게, 6일 동안 반복됐습니다.

5월 14·16·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세계적인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의 <투란도트>가, 5월 13·15·17일엔 그의 제자 마시모 가스파론의 <아이다>가 격일로 한무대에 올랐다. 사제지간의 서로 다른 연출력을 릴레이 연속 공연에서 살필 수 있었는데, 특히 <아이다>는 연출자 마시모 가스파론이 기존 해석을 뒤집는 연출을 선보였다. 지금까지는 비련의 여인 아이다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그는 숭고한 사랑을 보여준 라다메스로 무게중심을 옮겨 ‘새로운 아이다의 창조’라는 평을 받았다. 문의 한국오페라단(02-587-1950)


서커스 <네비아>
5월 8일 오후 4시, 스위스 제네바의 테아트르 드 레만 극장 연습실. 삶이란 곧 외줄타기나 공중돌기가 아닐는지요. 순간적으로 허공에 피었다 지는 사람 꽃이 되려고, 화려한 몸짓으로 세상에 한몫 펼쳐 보이려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긴장을 비수처럼 숨겨야 하는지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폐막식의 압도적인 연출로 유명한 다니엘 핀지 파스카가 서크 엘루아즈 단원들과 <네비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0m 높이의 허공에서 실크 한 조각에 온몸을 맡기기 위해 서커스 아티스트들은 무대 뒤에서 수없이 핸드 밸런싱hand balancing(오로지 가느다란 목마에 의지해 물구나무서서 균형을 잡는 것)을 연습합니다. 체조 선수 출신인 다니엘 핀지 파스카의 연출은 체조, 현대무용, 기예, 인체 조각, 셰익스피어의 문학, 채플린의 영화까지 아우르기 때문에 단원들은 몸을 동그랗게 마는 동작 하나도 ‘곡예’로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제3의 눈, 곧 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 정말 대단한 예술가들입니다.

<퀴담>을 선보였던 극단‘태양의 서커스’가 웅장한 무대를 강조한다면, ‘서크 엘루아즈’는 서정성을 강조해 ‘아트 서커스’로 불리곤 한다. 서크 엘루아즈 극단이 서커스 <네비아>를 7월 9일부터 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안개nebbia’라는 작품명처럼 짙은 안개 속에서 어린 시절의 꿈 이야기들을 펼쳐낸다. 오리지널 팀이 아시아에서 처음 공개하는 공연. 문의 크레디아(1577-5266)


피아니스트 박종훈과 첼리스트 체칸티의 베토벤 첼로&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5월 10일 낮 12시, LG아트센터 상남홀. 공연을 세 시간 앞둔 시각, 장장 세 시간 동안 이어질 베토벤의 첼로&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의 리허설 현장입니다. “피아노 소리가 커지니까 소리가 모아지지 않고 분산돼 들려요. 첼로 소리는 죽고.” 페이지 터너(악보 넘겨주는 사람)가 객석에서 모니터링을 하자 피아니스트 박종훈 씨가 몸을 뒤척이며 미간을 잔뜩 찡그립니다. 루빈스타인의 말처럼 음악가는 만족하지 못하는 종족인가 봅니다. 공연 시작 3분 전, 무대로 통하는 연결 통로를 두 연주자가 걸어갑니다. 아무도 도와줄 이 없는 무대의 고독이 그들의 뒷덜미로 스쳐 지나갑니다. 이들은 곧, 위로 같은 음악을 들려줄 겁니다.

국내외를 오가며 멀티풀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박종훈과 이탈리아 로시니 극장의 단장을 역임한 첼리스트 비토리오 체칸티는 음악적 지우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 연주하겠다는 박종훈의 장기 계획에 체칸티가 힘을 보태면서 이번 연주회를 열게 된 것이다. 두 연주자의 협연은 박종훈의 유려한 피아노, 비토리오 체칸티의 섬세한 첼로가 만나 ‘사랑’을 넘어선 깊은 ‘정감’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문의 스테이지원 02-780-5054


퇼처 소년합창단 내한 공연
5월 9일 오후 2시, LG아트센터. 동화나라에서 온 소포처럼, 베들레헴 목동들의 기쁜 수런거림처럼 보이 소프라노의 노래가 무대를 메웁니다. 지휘자 랄프 루데비히Ralf Ludewig가 갑자기 솔리스트의 가슴통을 심벌즈 치듯 두들깁니다. 너무 예쁜 소리가 나왔다는군요. 처 소년합창단Tolzer Knabenchor은 요즘 대부분의 소년합창단이 좇는 예쁘고 귀여운 목소리보다 거칠지만 깊은 소리, 성량이 풍부한 소리를 내도록 가르칩니다. 마음껏 소리를 내게끔 훈련받은 소년들의 노래는 그래서 더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진짜 천사의 노래 같습니다. 청결한 거즈로 닦아주는 것 같은 그 노래에 죄 많은 내 눈은 슬며시 눈물을 내보냅니다. 이 천상의 소년들에겐 곧 변성기가 찾아올 것이고, 낙원의 상실처럼 천상의 소리를 잃고 인간의 아들로 살아가게 되겠지요.

빈 소년 합창단, 파리 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과 함께 세계 3대 소년합창단으로 불리는 처 소년합창단은 음악성 면에서 가장 큰 지지를 얻고 있는 합창단이다. 뮌헨의 스튜디오에서 2백 명 이상의 소년(6~14세)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데, 매년 2백40여 회의 공연에 참여한다. 21세기 들어 벌써 두 차례의 황금 디아파종(현존하는 가장 저명한 레코드상)을 수상했는데, 모두 종교음악 레코드였다. 2007년 수상 레코드인 바흐의 ‘요한 수난곡’은 DVD로도 출시돼 있다. 문의 브라보컴(02-3463-2466)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