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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풍경 아버지의 희로애락
아버지가 내보이는 ‘희로애락’은 그 빛깔이 엷습니다. 헛기침하듯 웃고, 혀를 끌끌 차는 게 성내는 것이고, 눈에 힘이 풀리는 게 우는 것이며, 입술 한번 째지며 즐거워하는 게 다입니다. 세상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나면 뒷동산 바위 같은 아버지의 얼굴 근육이 좀 날래질까요? 마이미스트 김성구 씨가 아버지의 엷은 희로애락, 과묵한 감정을 마임으로 표현했습니다.

가슴으로 웃는 아버지
우리 아버지, 기분이 좋을 때 흠흠 헛기침을 하고 무언가 겁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입니다. 이탈리아제 명품 돋보기 하나 사드렸더니 헛기침 날리며 가슴으로만 웃으시는, 가슴으로만 오시는 당신. 그 돋보기 쓰고 아침마다 신문 보는 늙은 아버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저렇게 움트는 새싹처럼 보일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내 가여운 자식 같습니다. 아들의 아들을 안아 든 아버지 뺨이 붉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헛기침을 킁킁거려 봅니다.

아버지는 나의 친척입니다
‘문 밖에서는 법 없이도, 밥상머리에서는 불호령’으로 당신을 각인시키며, 대들다 방문을 세게 닫았다는 이유로 자식을 흠씬 두들겨 패고, ‘절대 당신처럼 살지 않을 테야’ 일기를 쓰게 하고, 도대체 쟨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차던 남자, 우리 아버지. 자식이 인정사정없이 작살 같은 말로 찔러대면 “빌어먹을 아버지도 아버지다!”라고 호통 치던 우리 아버지. IMF로 ‘명태 신세’가 된 후 탑골공원에서 ‘놀던’ 그가 요즘엔 잠실 롯데월드 지하로 출입처를 바꿨습니다. 지하상가에서 산 만 원짜리 새 모자 쓰곤 “어때 멋있지?” 묻는 아주 작은 아버지가 되었네요. 엊그제 어머니 관절염 좀 어떠시냐고 집에 전화했더니 아버지가 받으십니다. 할 말도 없고… 그냥 끊었지요. 어머니 아프시다고 문안 인사차 들른 친구 녀석이 아버지 말벗 되어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아버지는 나의 친척입니다.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
‘남자의 눈물’보다 ‘아버지의 눈물’은 더 희소가치가 있으며, 아버지의 괴로움을 눈물이라는 어법으로 표현하면 안 되도록 법제화된 나라인 줄 알았습니다. 엄마의 혈관이 머릿속에서 끊어지던 날,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습니다. 다 큰 자식들에게 서러운 등짝을 내보인 채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느이 엄마 목소리 한 옥타브만 낮춰지면 죽을 날 다 되었다 생각해라”하던 아버지가 엄마 잔소리 울려 퍼지던 싱크대 앞에 서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엄마 삼우제 지내고 집에 와 부자가 술 한잔 함께 마시는데, 내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돌 돕니다. 아버지의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입니다. 아버지가 미리 써놓은 묘비명은 ‘나 그대 믿고 떠나리’입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아버지
아버지는 딸들과는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면 서 아들에겐 응석 한 번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까막눈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한 눈으로 보지 말고 두 눈 겨누어 살아라’며 늘 아들을 채근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잘 살아야 된다’는 늘 따라붙는 후렴구였지요.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려면 차돌만큼 강해져야 한다면서 아들을 맷돌처럼 굴렸습니다. 아들이 자라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5월, 대공원 붉은 산철쭉 밑에서 삼부자가 사진 한 방 박습니다. 다가오는 아버지 손을 슬쩍 밀치자 “컸다고 아버지 손을 놓지 말거라. 옛날 나들이 길에서처럼 아버지 손을 꼭 잡거라” 하며 손을 부여잡습니다. 그날 찍은 아버지 사진에서 내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쭉 째진 눈이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식구들이 웃어대자, 아버지도 눈이 부시게 웃습니다.



*김성구 씨는 소극장 운동의 부흥을 이끌었던 극단 ‘에저또’ 출신의 1세대 마이미스트입니다. 김성구 마임극단 창단 10주년을 맞는 올해 5월, 마임의 대중화에 역점을 둔 <미믹 넌센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