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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여자들의 무한 자유
‘배워야 산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 속 계몽 구호가 새삼 필요한 시대다. 특히 행복하고 싶은 주부라면 반드시 실천할 것. 뭔가 배우면 자신감이 충만해지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게다가 오롯이 몰두하는 자기만의 시간이 생긴다. 이 무한 자유를 누리고 싶다면 주부 다섯 명을 귀감 삼아 도전해보자.

주부들은 기본적으로 멀티플레이어다. 직장 다니지, 가사 돌보지, 남편과 아이들 보살피지…. 특히 가사야말로 멀티플레이의 총화다. 세탁기에 빨래 넣고 찌개 끓이다가 전화 받고 그 와중에 애들 학원 시간 챙긴다. 오히려 주부가 산만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미심쩍어진다. ‘과연 한 가지 일에만 오롯이 몰입하는 때는 하루 몇 분이나 될까?’라고. 홀로 커피 한 잔 마실라치면 그새를 못 참고 곧 ‘세금 납부일이지!’ ‘세탁소에서 옷 찾아와야지’ 한다. 주부가 된 뒤부터 한 가지에 골몰할 줄 아는 능력이 퇴화되었는지 모른다.

3월, 아이들은 개학했고 주부들은 해방이다. 무언가 맘먹고 배우기 안성맞춤인 여자들의 신학기가 시작된 셈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서 했던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그중 한 가지를 택해서 배우자. 이를 통해 얻는 성취감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안다.

“예술 제본에 몰두하게 된 뒤로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할까?”

예술 제본 배우는 이화진 씨
당신이 배우는 것은?
귀한 책을 견고하고 아름답게 엮어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 전반을 일컫는 예술 제본을 배운다. 예술 제본 공방인 렉또 베르쏘에서 2년째 배우고 있으며 현재 중급반 수업 막바지 단계다. 예술 제본 전 과정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단계다.

배우게 된 계기는? 8년 전 첫아이가 학교에 입학했을 때 도서관 자원봉사 도우미를 시작, 2년 뒤 독서지도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5년 전 우연히 동서울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북아트를 배우게 되었는데, 점차 정밀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서 예술 제본에 입문했다.

예술 제본을 하는 즐거움이란? 작업 전에는 머릿속으로 구상을 무척 많이 한다. 그런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무념무상의 상태와 가깝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책 한 권을 만들고 나면 작품에 녹여낸 시간이 눈으로 보인다.

배움을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은? 전업 주부들은 이룬 것 없이 나이가 들어 불안하다. 나 역시 집안일로 늘 바빴지만 결국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 공허했다. 그런데 예술 제본에 몰두하게 된 뒤로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할까? 또한 나만의 책상과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섬세한 재료와 도구를 다루다 보니 작업대가 필요해서 거실 한쪽에 책상을 만들었다.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보니 좀 더 신중해졌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배울 때 염두에 둘 점은? 예술 제본은 책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보존하는 정밀한 수제 작업이다. 중간에 실수하면 돌이키기 어렵다. 따라서 집중이 필수다.

앞으로 계획은? 고급반까지 수료하면 나만의 작은 공방을 마련해서 북아트와 예술 제본이 결합된 내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이화진 씨가 배우고 있는 렉또 베르쏘에서는 초·중·고급반 수업을 진행한다. 초급반에서는 전문적인 도구 없이도 제작이 가능한 제본 방법을 익히며, 8주간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9시 30분에 수업한다. 문의 02-326-1145

“손 가는 대로 흙을 주물러 원하는 형체를 만들다 보면 명상하듯 몰입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도자기 배우는 이온진 씨
당신이 배우는 것은? 소격동에 있는 최미현 선생의 도예 공방 ‘클레이 인 플레이Clay in Play’에서 도자기를 만든다. 흙을 주물러서 모양을 만드는 것부터 굽는 과정까지 손수 한다.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창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꽃병을 많이 만들었다.

배우게 된 계기는? 미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오래전에 화실에 다녔다. 드로잉을 하다 보니 오브제를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서 도자기 수업을 찾아보았다. 2002년 중앙문화센터에서 최미현 선생님을 만나 반년 정도 배우다가 그만두었고, 이후 2004년 9월에 선생님이 공방을 열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배웠다.

도자기를 만드는 즐거움이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흙을 손 가는 대로 주물러서 형체를 만드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다른 재료에 비해 좀 더 자유로운 작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손으로 흙의 감촉을 느끼며 작업하다 보면 명상하듯이 몰입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수업을 빠지면 정신이 찌뿌드드해서, 회사 일로 아무리 바쁘더라도 어떻게든 짬을 내어 다녀오곤 한다.

배움을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은? 회사에서는 만나는 사람, 하는 일이 거의 패턴화되어 문득 공허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내 손으로 뭔가 만드는 창의적인 시간을 가지니 회사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도자기를 배우며 만나는 사람들도 각자 개성이 다양해 대화의 소재가 풍성해졌다.

배울 때 염두에 둘 점은? 욕심 내어 잘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할까? 재능이 없나?’라고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논다는 생각으로 즐겨라.

앞으로 계획은?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데, 마흔 이후에도 몰두할 수 있는 좋은 취미 생활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온진 씨가 수강하는 ‘클레이 인 플레이’에서는 생활 자기나 원하는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수강생이 원하는 시간에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 문의 02-730-0955


“전지에 글씨를 빼곡히 쓰는 두세 시간 동안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완전한 몰입에 이른다. 훌륭한 문구에 담긴 의미를 곱씹기도 한다.”

서예 배우는 소재민 씨

당신이 배우는 것은? 한글 서예를 배운다. 궁체와 판본체 등 모든 서체를 두루 다룬다.

배우게 된 계기는? 14년 전 아들과 함께 예술의전당 음악회에 갔다가 벽에 붙은 서예반 모집 공고를 보았다. 뭔가에 이끌리듯이 시작했다. 1~2년 하면 좀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10년이 넘어도 멀었다는 생각이다.

붓글씨를 쓰는 즐거움이란? 전지에 잔글씨 3백여 자를 빼곡히 쓰려면 두세 시간 걸린다. 두세 시간 내내 화장실도 못 가고 전화도 안 받으며 완전한 몰입에 이르는 것이다. 서예를 하는 동안 좋은 음악도 들을 수 있고 훌륭한 글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볼 수도 있다. 나이 지긋한 수강생들로부터 혜안이 녹아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편안하고 유익하다. 서예는 누군가에게 정성껏 마음을 전하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지인에게 붓글씨로 편지를 써서 주었더니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이더라.

배움을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은? 처음에는 몰랐는데 10년쯤 지나니까 좀 알겠더라. 여자들은 수다를 떨 상대를 그리워하기 마련인데,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언제라도 홀로 몰입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과 자연을 이해하는 시선이 깊어졌다. 남편과 아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독서실에서 늦게 돌아올 때까지 글씨를 쓰며 기다렸다. ‘얘가 언제 오려나, 안전하게 오려나’ 전전긍긍할 일도 없고, 아들도 엄마가 자기를 기다리면서 글도 쓰니까 집에 들어올 때 표정이 밝았다. 남편도 술 먹고 늦게 들어왔을 때 내가 글씨 쓰며 기다리니까 좀 미안해한다.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데 잔소리보다 효과가 좋다고 볼 수 있다.

배울 때 염두에 둘 점은? 붓글씨란 시간을 요하는 작업이다. 끈기 있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임해야 즐겁게 할 수 있다. 또한 좋은 글씨를 쓰려면 먼저 그 뜻을 이해해야 하므로 부지런히 독서를 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내 글씨로 병풍을 만들어서 훗날 아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그 병풍을 쳐놓고 절을 받고 싶다. 미래의 며느리에게 혼수를 보낼 때도 ‘따님 보내주어서 감사하다’는 편지글을 직접 적어 보내고 싶다. 손주가 태어나면 붓글씨로 백일 기념 편지를 써주고 싶다.

소재민 씨가 수강하는 예술의전당 서예 아카데미는 1년 과정으로, 올해는 3월 4일에 개강한다. 서예입문, 한글서예, 한문서예, 사군자, 문인화, 전각, 현대서예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린다. 문의 02- 580-1461~2

“케이크 만들기는 과학이고 예술이다. 오차 없이 정확하게 맞춰 케이크를 완성하면 작품 하나를 만들어낸 것 같다.”

케이크 배우는 오경선 씨
당신이 배우는 것은? 공은숙 선생님의 공방 슈크레에서 9개월째 일본풍의 케이크·쿠키·무스 등을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배우게 된 계기는? 미국에 살 때 지역 센터에서 케이크 및 서양 요리를 배웠다. 몇 년 전 한국에 돌아온 뒤로 좀 더 전문적으로 케이크 만드는 수업을 듣고 싶었다. 작년에 힘든 일이 있어 무척 공허해졌을 때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단호하게 결심을 했다.

케이크 만드는 즐거움이란? 케이크 만들기는 과학이고 예술이다. 재료의 분량, 시간, 온도 등을 적당히 맞춰서는 안 된다. 모든 수치를 오차 없이 정확하게 맞춰 케이크 하나를 완성하면 작품을 만든 것 같다. 내 손으로 잘 만들어서 예쁘게 포장해 주위에 선물하는 기쁨이 정말 크다.

배움을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은? 나는 취미 수준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강습이 없는 날에도 슈크레에 가서 선생님을 도와드리며 100% 올인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 신나서 매일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남편과 아이들도 케이크 만드는 것은 일상적으로 밥 해주는 것과 다르게 특별하다고 존중해주고 자부심을 가지는 것 같다.

배울 때 염두에 둘 점은? 케이크나 쿠키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작업이다. 선생님도 ‘제대로 하려면 끝이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다. 숙련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차근차근 익혀야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계획은? 2년쯤 뒤에는 핸드 드립 커피와 직접 만든 디저트를 판매하는 작은 카페를 열고 싶다. 누군가를 고용해서 장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손수 만든 것을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기 위해서 올해 케이크 배우기에 총력을 다할 작정이다.

오경선 씨가 디저트 만들기를 배우는 곳은 청담동에 있는 케이크 스튜디오 ‘슈크레’다. 일본 ‘일프르 라 슈라세느’에서 제과제빵 과정을 수료한 공은숙 씨가 케이크의 기본기부터 고급 기술까지 가르쳐준다. 매달 첫째 주 월요일에 개강하며 한 반에 4~5명의 소수 정원으로 이루어진다. 문의 02-515-7907, www.sucree.co.kr


“풍경 사진을 찍은 뒤로 일상의 변화를 존중하고 그 소소한 변화를 만끽하며 산다.”

사진 배우는 오순화 씨
당신이 배우는 것은? 이석필 선생님에게 사진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풍경 사진 찍는 것을 즐긴다.

배우게 된 계기는? 자녀와 남편과 떨어져 홀로 KBS 태백 방송국에서 근무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 특성상 매일 아침 방송으로 바쁘고 주말에는 서울에 가서 가족을 돌봐야 했지만 과감하게 짬을 내 1998년 태백문화원 사진반에 등록했다. 이석필 선생님은 학생들을 산으로 데려가 현장 수업을 했다. 인생 공부와도 같은 선생님의 사진 수업에 매료되어 꾸준히 배웠다. 2001년부터는 문화원에 다니는 대신 선생님에게 소수 정예 강습을 들었다.

사진 찍는 즐거움이란? 처음 카메라를 잡았을 때는 무척 낯설었는데, 산골을 누비며 사진을 찍다 보니 ‘아, 풍경이 아닌 마음을 담는 작업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안개 자욱한 새벽녘 숲으로 촬영하러 가면 서울에 떨어져 있는 아이들이 떠올라 사진에 엄마의 마음이 맺히곤 했다. 자기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배움을 시작한 뒤 달라진 점은? 인화된 사진에 담긴 풍경을 보면 ‘세상에는 똑같은 날이 단 하루도 없구나’하는 것을 깨닫는다. 그 뒤로 일상의 변화를 존중하고 그 변화를 만끽하며 산다. 태백에서 찍은 사진을 갈무리하고 싶어서 전시회를 열었고, 사진집 <구와우의 새벽을 열며>(비매품)도 냈다. 아마추어가 몇 년 공부하고 사진집을 낸다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용기를 내었다. 사진을 시작하면서부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며 인생을 관조하게 되었고, 통찰력이 깊어지게 되었다.

배울 때 염두에 둘 점은? 처음 사진에 입문할 때 이석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마음 가는 대로 찍어라.” 쉬운 말 같지만 자기 마음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자연이든 사물이든 현상이 아닌 내 마음을 찍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고향이 제주도다. 유년기에 자라온 환경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여유 있고 깊이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순화 씨가 사사한 이석필 선생은 이제 개인 작업에 열중하고 있어 사진 강습을 하지는 않는다. 문화센터나 대학교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어보자.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