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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과 맞바꾼 맛 미식가도 줄 서서 먹는 맛집 찾아서…
전국 곳곳에 맛집이 포화 상태다. TV 맛집 프로그램에 앞 다투어 소개됐지만 맛은 실망스러운 곳이 많다 보니, 오히려 “TV에 나오지 않은 집”이라고 써 붙인 식당이 있을 정도다. 그래도 정말 특별한 맛집에는 손님이 줄을 선다. 입맛 정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미식가들도 줄 서서 먹고야 마는 음식은 무엇일까? 그들의 조언을 지도 삼아 서울 시대 소문난 식당의 별미를 맛보았다. 물론 <행복> 기자의 신분을 숨긴 암행 취재였다.

역삼동 상록회관 뒷골목, 그냥 ‘순대국’이라고만 적힌 노란 간판이 무뚝뚝하게 걸려 있다. 요리사 윤정진 씨가 즐겨 찾는 이 집은 1층과 지하에 작은 테이블 다섯 개씩이 전부일 정도로 좁고 허름하지만, 어머니에서 딸로 대를 이어 끓여온 진한 순댓국은 장안의 화제다. 머릿고기와 순대를 모둠으로 시킬 때 반드시 ‘간’을 넣어달라고 말할 것. 뜨거울 때 썰어주는 간은 푸아그라만큼 부드럽고 촉촉하며, 돼지 창자로 만든 찹쌀순대는 쫀득쫀득 그 자체다. 뚝배기에 내주는 순댓국은 곰탕처럼 뽀얀 국물 안에 머릿고기와 순대가 듬뿍 들어 있다. 여기에 취향에 따라 들깨 가루, 새우젓, 청양고추, 다진 양념, 소금을 넣어 먹으면 되는데, 순댓국 싫다던 어린(?) 기자 두 명은 이 집 순댓국 한 번 먹고 나서 말이 달라졌다. 콩나물 듬뿍 넣고 끓인 술국은 시원하고 개운해 속풀이에 그만이다. 순댓국 5천 원, 술국 8천 원, 머릿고기 1만 6천 원.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영업. 설날과 추석 당일 휴무. 문의 02-569-1517

한성대입구역 7번 출구 뒷골목에 있는 ‘명월집’은 매콤한 돼지목살구이가 유명하다. 맛집이라면 몇 시간이 걸려도 마다 않고 찾아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전범진 씨가 추천한 곳.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다 자리에 앉으면 양배추와 고추장, 마늘, 풋고추, 상추, 배추를 가져다주고, 무쇠판 한쪽 가장자리에 빨간 김치를 올리고 국물을 부어준다. 고기는 주인 내외가 한쪽에서 ‘웰던’으로 구워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고기는 속까지 다 익었고 육즙이 가득 들어 있어요. 기름 없는 부위부터 먼저 드세요”라며 깍두기처럼 썰어 벌겋게 구운 고기를 가져와 무쇠판의 김치 반대쪽에 놓아주는 주인아저씨. “생마늘을 고기 한 점과 같이 씹어보세요. 처음에는 알싸한 마늘 맛이 느껴졌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육즙이 마늘 향을 감싸서 맵지 않아요. 보통으로 먹으려면 고추장에 찍어 드시고, 제일 맵게 먹으려면 김치와 함께 드세요. 양배추는 매운맛 지우개예요.” ‘고기 명인’ 분위기 물씬 풍기는 주인이 자세하게 먹는 법을 일러준다. 청양고추에 한 달간 재운다는 사전 정보를 확인하려 했지만 주인은 못 들은 척 은근슬쩍 말을 돌린다. 고기는 매콤하면서도 고소하고 육즙이 풍부해 정통 스테이크하우스 부럽지 않다. 고기판의 독특한 구조 때문인지 처음 한 조각 맛과 마지막 조각의 맛이 다르지 않다. 공기밥을 주문하면 제대로 끓여 구수한 된장국과 함께 내온다. 돼지불고기 1인분에 1만 1천 원. 공기밥 1천 원. 주문은 처음 한 번만 받고 추가 주문은 받지 않는다. 평일은 오후 5시 반, 토요일은 오후 4시 반에 문을 열어 고기가 동날 때(대략 8~9시)까지 영업한다. 일요일 휴무. 문의 02-764-6354

마지막 겨울바람이 매섭던 날, 북창동 뒷골목, 또 그 뒷골목에 있는 생태찌개로 유명한 ‘부산갈매기’를 찾았다. <중앙일보> 음식 담당 유지상 기자가 애용한다는 식당이다. 슬라이딩하듯 가까스로 마지막 테이블에 앉았는데, 주문하지도 않은 뻘건 생태찌개 한 냄비가 이미 끓고 있다. 칼칼한 찌개에는 무스처럼 부드럽게 녹는 생태살은 기본, 곤이와 애 같은 각종 내장이 여태껏 먹어본 생태찌개 중 가장 많이 들어 있다. 덕분에 약간 씁쓸하면서도 진한 국물이 압권이다.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이 나오는데 찌개가 맛있어서인지 반찬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아서인지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고 찌개만으로 밥 한 공기가 뚝딱이다. 내장을 안 먹거나 맑고 개운한 매운탕을 좋아하는 사람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생태찌개 2인분 1만 4천 원. 주차 불가. 일요일 휴무. 문의 02-773-8146

청파 삼거리 부근 갈월동의 ‘포대포’는 돼지껍데기와 소금구이가 메뉴의 전부다. TV의 온갖 맛집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했던 흔적이 역력하고, 드럼통 테이블이 달랑 여섯 개뿐인 허름한 이 가게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노영희 씨가 추천했다. 주방이랄 것도 없이 한쪽 코너에 마련된 음식 준비대. 두건을 쓴 주인아저씨가 연탄불을 올려주면, 아저씨의 부인인 미녀 아주머니가 간장양념에 재워 초벌구이한 돼지껍데기와 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서 불판 위에 얹어준다. 바싹 구워서 고기와 껍질을 함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채 썬 양파를 곁들여 먹는다. ‘돼지 냄새’가 나지 않는 쫀득쫀득 말랑말랑한 돼지껍데기는 소주 한잔을 부른다. 반찬은 양배추와 초고추장뿐. 돼지고기와 껍데기를 먹고 나면 구수한 된장찌개가 생각나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 가게를 물려받아 17년째 운영해온 아저씨의 마술쇼는 덤이다. 돼지껍데기 6천 원, 소금구이 1만 1천 원. 오후 5시부터 12시까지 영업. 토·일요일·공휴일 휴무. 문의 02-3272-9629

발을 동동 구를 만큼 추운 토요일 오후에도 손님이 꼬리를 무는 ‘명화원’은 탕수육 맛이 전설적이다. 일곱 개의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고 한 팀이 대기 중이다.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4시’, 전화번호 숫자가 두 개나 떨어져 나간 허름한 간판에서는 손님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없지만, 내심 주인의 ‘자신감’이 부러워진다. 뜨거운 김을 하얗게 내뿜는 탕수육이 나왔다. 시금치, 배추, 양파가 예의상(?) 들어간 소스를 고기에 묻혀 입에 넣자 겉은 비스킷처럼 바삭하고 속은 떡처럼 쫄깃하다. 고기는 간도 적당하고 고소해 젓가락이 분주해진다. 짬뽕에는 고추기름이 많이 들어가고 해물이라고는 오징어 몇 개가 고작인데 맛이 깔끔하고 시원하다. 그에 비해 자장면은 별 감동이 없다. 짬뽕 4천5백 원, 자장면 4천 원. 찐만두와 군만두는 직접 빚는다. 군만두는 어렸을 적 부모님이 중국집에서 시켜주시던 ‘야끼만두’처럼 속이 꽉 찼고, 찐만두는 부드럽다. 만두는 4천5백 원. 일요일 휴무. 주차 불가. 문의 02-792-2969

안국역 아름다운가게 골목으로 들어가서 ‘별궁1길’ 표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 세 번 꺾어지면 ‘청국장 된장찌개, 별궁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한옥이 나온다. <쿠켄> 이은숙 편집장은 청국장이 생각날 때마다 이곳을 찾는다. 마른 김 한 통과 고등어조림, 시금치나물, 총각김치 등 기본 반찬이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마른 김에 밥이랑 간장만 올려 싸 먹어도 깔끔하다. 청국장과 된장은 ‘무주구천동에서 나는 콩과 장모님 손맛’이 빚어낸 결정체. 청국장은 들깨 국물에 끓여 색깔이 연하고 맛이 순하다. 꼬릿한 청국장 특유의 냄새도 약한 편이다. 한옥 온돌방에 밥상 펴고 앉아 부드럽게 익은 콩알이 살아 있는 청국장을 한 숟가락 떠서 밥에 넣고 쓱쓱 비벼 먹으니 시골 외갓집에서 외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청국장이 생각난다. 청국장과 된장찌개는 5천 원. 쑥갓과 깻잎을 넣고 무친 도토리묵(7천 원)과 파전(7천 원)도 맛있다. 일요일 휴무. 주차불가. 문의 02-736-2176.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