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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당신, 그 입술에 뽀뽀 Kiss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는 왜 키스 장면만 모은 필름을 보고 또 보는가? 물리적으로는 피부를 비비고 ‘설왕설래’할 뿐인데, 왜 그토록 키스에 설렐까? 해보면 알리라. 작은 입술에 의지해 서로에게 흠뻑 몰입하게 된다. 그 찰라 감정과 욕망이 무수히 오간다. 자라온 환경도, 취향도, 성격도 판이한 부부를 잇는 다리인 셈이다. 어떤 말이나 행위보다도 강력하게 맺어준다. 그래서 키스는 비단 육체를 탐하는 것 이상의 정신적 교류다. 에로스적이면서 지극히 아가페적이다. 키스는 섬세하고 내밀한 대화와 같아서 진심을 담아 전하면 상대방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밸런타인 데이를 맞아 초콜릿처럼 달콤한 키스를 선물하는 일곱 쌍의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왜 키스를 하는가. 키스가 과연 무엇이기에?


키스는 키스를 부른다
가수 김현철*이경은 씨 부부
영국 르네상스의 서정 시인 로버트 헤릭의 시 ‘엔시아에게: 아 나의 엔시아’는 이렇다. “내게 한 번 입 맞춰주오, 그 입맞춤에다 스무 번을 더해주오/그리고 그 스무 번에 백 번을 더/그 백 번에 천 번을 더, 그렇게 계속 입 맞춰주오/그 천 번이 백만 번이 되게/그 백만 번을 세 번 더하고 그게 다 되면/다시 처음부터 입 맞춰주오, 시작할 때처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레트 버틀러도 전쟁터로 나가며 스칼렛 오하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칼렛, 키스해줘요, 키스해줘요.” 키스는 그러니까, 영원한 갈증이다.

김현철 씨는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6년간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해온 것이 있다. “매일 밤 자고 있는 아내에게 몰래 키스해요.” 아내는 한번 깊이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르는 사람이니 입을 맞추면 4~5번 중 한 번이나 알아차릴 거란다. 아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냥좋아서 절로 입 맞추고 싶다. 아내 이경은 씨는 “힘들게 일하고 오면 남편은 ‘내 둥지에 들어왔구나, 여기 내 마누라도 자고 있고…’ 하는 생각이 드나 봐요. 반갑고 따뜻한 마음이 들어 볼이며 이마에, 여기저기에 뽀뽀하나 봐요.

저 깰까 봐 살며시 입 맞추는데 저, 거의 100% 알아채요.” 이경은 씨는 키스란 ‘사랑의 언어’라 말한다. 아내의 어디가 그렇게 예뻐서 결혼했냐고 물으니 김현철 씨는 “글쎄요…”라며 한참 고개를 갸웃한다. “오늘 아침에 나와 눈을 마주친 아내, 그 모습이 제일 예쁩니다. 예전에 내게 어떻게 잘해줬다거나 앞으로 아이들을 야무지게 키울것 같아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아내 그대로가 사랑스럽지요.” 우문에 달디단 현답이다.
김현철 씨가 입은 화이트 셔츠와 블랙 면 팬츠는 모두 클럽모나코, 도트 패턴의 레드 보타이는 닥스 제품. 이경은 씨가 입은 주름 장식의 화이트 니트 카디건과 톱, 스커트는 모두 페라가모, 꽃 모양의 반지는 티피&매튜, 레드 카펫 셀렉트 P는 한일카페트 제품. 모던한 디자인의 레드 컬러 스피커 베오랩 8000은 뱅앤올룹슨 제품.


(왼쪽) 정확히 내리꽂히는 섬광 국제 장애인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민재*장원실 씨 부부
키스할 때의 느낌을 ‘짜릿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과학적으로도 타당한 표현이다. 성형외과 의사 거스 맥그루터 팀은 연인들의 입술과 볼에 전극을 설치하고 전선을 연결한 후 키스하는 동안 뇌에서부터 모든 안면 근육의 섬유로 퍼지는 전류를 추적했다. 키스를 할 때 짜릿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입술에 신경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데다가 안면 신경 저장소에서 나오는 전기화학 활동이 격렬하기 때문이다.또한 입술 피부가 다른 부위보다 더 얇기 때문에 자극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부부더러 첫 키스를 추억해보라 했더니 ‘번개처럼 번쩍’ 지나가서 기억도 나지 않는단다. 장원실 씨는 “남편이 자로 잰 듯 꼼꼼하고 느긋한 사람이라 과감하게 키스하리라고 생각 못했어요”라고 고백한다. 키스는 날카롭고 강렬했던 반면 연애 과정은 긴 시간 뭉근하게 졸인 수프 같았다. 1998년 아버지를 간호하러 온 장원실 씨와 통근 버스가 전복되어 입원한 김민재 씨는 같은 병실에서 만났다. 장원실 씨는 가슴 아래가 마비되어 척수 장애인 판정이 난 김민재 씨와 오랫동안 친구이자 연인으로 지냈다. 그러다 ‘평생 존경할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어 결혼을 결심했다. 사랑은 뜨거운 엔진이었다. 작년 11월 그는 일본에서 개최된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목공예 직종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12월, 금메달보다 더 귀한 보물인 아내를 얻었다.

김민재 씨의 흰 셔츠는 솔리드 옴므, 화이트 면 팬츠는 엠비오, 도트 패턴의 레드 타이는 피에르가르댕, 로퍼는 미소페 제품. 장원실 씨의 시폰 블라우스는 모그, 와이드 팬츠는 에스까다, 진주 장식의 펜던트 목걸이는 미키모토 빈티지 컬렉션, 스웨이드 슈즈는 미소페 제품. 레드 컬러 의자는 피터까사 제품.

(오른쪽) 부부 오감을 동원하는 탐닉 개그맨 정종철*황규림 씨
 근육이 단단하게 발달하고 피부가 거친 남자라도 입술만큼은 소녀와 비슷하다. 누구든 입술은 촉촉한 내부로 통하는 민감한 문이다. 실용적인 기능만 따지자면 남성과 여성의 입술은 거의 똑같다. 따라서
키스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동등한 존재로 의사 소통한다. 입술로 시작하는 키스는 사실 아주 복잡한 움직임이다. 두개골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뼈인 턱과 얼굴의 서른네 개 근육이
쓰인다. 정말 뜨거운 키스에는 온몸의 근육이 동원된다. 팔로 서로를 끌어안고 목과 등과 어깨의 근육이 바짝 긴장한다.


황규림 씨는 남편 정종철 씨의 입술에 뽀뽀하는 걸 정말 좋아한다. “오빠(남편) 입술이 참 통통해서 불 끄고 대충 다가가도 입술에 맞추게 돼요. 소파처럼 폭신하고, 명란젓처럼 말캉말캉하고,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개불(해산물의 일종)처럼 촉촉해요.” 프렌치 키스보다 뽀뽀를 좋아해서 잠에서 깨어 한 번, 출근 전에 한 번, 퇴근해서 한 번, 자기 전에 마무리로 또 뽀뽀한다. 부부는 한입으로 “키스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규빠삐(아내의 애칭)’가 요즘 코미디를 본업으로 하는 자신보다 더 웃기다며 방심하면 안 되겠단다. 아내는 “원래 제가 좀 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오빠를 만나고 나서 긍정적이고 쾌활하게 바뀌었어요. 요즘도 문득 오빠는 하느님이 저한테 수호천사 한 명 내려주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정종철 씨의 화이트 셔츠와 보타이, 블랙 서스펜더는 모두 벨그라비아, 블랙 팬츠는 클럽모나코 제품. 황규림 씨가 입은 러플 장식의 화이트 셔츠는 플로체, 버튼 디테일 스커트는 클럽모나코, 진주 반지와 네크리스는 모두 미키모토 빈티지 컬렉션, 빨간 하트 링은 울트라 디자인 제품.


몰래 하는 키스가 더 맛있다
이승수*이정민씨 부부
키스하는 동안에는 엄청난 정보의 탐색이 이루어진다. 연인은 서로를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을 본다. 키스는 호르몬, 신경, 근육을 깨우는 기상 신호인 셈이다. 그러니 열량도 많이 소모된다. 프렌치 키스는 1회에 평균 12kcal가 소모되고, 분당 6.4kcal가 소모된다. 키스를 하면 분당 60~80회 정도인 심장 박동수가 100~120회 정도로 빨라지고 숨이 가빠진다. 키스는 유산소 운동을 할 때처럼 심폐 기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볼 수 있다. 격렬한 키스는 림프구의 방어 기능을 증대시켜 감기를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신체의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
 
외향적이고 당찬 커리어우먼이었던 이정민 씨는 사실 교회 성가대에서 만난 이승수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순수한 남자 같긴 한데 촌스럽고 어벙해 보였다. ‘스파게티를 자장면 먹듯’ 했으니까. 크리스마스 날, 그럴싸한 선물을 기대한 여자에게 남자는 ‘오랫동안 돕고 있는 장애우 부부의 자녀에게 선물을 주러 함께 가자’고 했다. 그 집을 나선 둘은 이탈리아 파스타와 와인 대신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여자를 집에 바래다주며 남자는 “볼에 뽀뽀해주고 싶은데…. 아껴둬야겠다”라며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이정민 씨는 남자에게 쑥 다가가 볼에 키스했다. 이승수 씨는 여전히 아내에게 달콤한 모닝 키스랄지 세련된 굿바이 키스를 날리는 남자는 아니다. 그러나 여섯 살 난 딸과 세 살배기 아들 때문에 매일 전쟁을 치르는 워킹맘 아내를 위해 퇴근 직후부터 아이들이 지쳐 잠들 때까지 맡아 돌보는 것으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진국 남편이다.

아들 예준이가 입은 블랙 티셔츠와 팬츠는 모두 빈폴 키즈 제품. 딸 혜윤이가 입은 코트와 골드 개더스커트는 모두 빈폴 키즈 제품. 하트 모양 케이스는 쥬디스리버, 빨간 곰 모양 의자는 인퍼니 제품. 이승수 씨가 입은 셔츠와 팬츠는 모두 빈폴 컬렉션, 블랙 스니커즈는 미소페 제품. 이정민 씨가 입은 화이트 셔츠는 빈폴 컬렉션, 개더스커트는 페라가모, 뱅글은 캘빈클라인 주얼리, 슈즈는 힐스 제품.


(왼쪽) 중독성 강한 섞임 성악가 김현준*크리스티나 콘파로니에리 씨 부부
키스를 하는 부위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손등에 하는 키스는 공적인 자리에서 주로 이루어졌으며 역사가 길다. 애정과 존경을 표할 때 남자는 여자의 손등에 키스한다. 이마에 하는 키스는 지성과 교양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자, 변치 않는 사랑의 확신과 상대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종교적으로도 신성한 의미를 지닌다. 뺨에 키스할 때는 상대를 예쁘고 귀엽게 보았을 때다. 목에 입 맞추는 것은 상대에 대한 육체적 욕망을 내포한다. 눈 또는 머리카락에 입 맞추는 것은 상대에 대한 부드럽고 완곡한 구애의 표시다. 물론 이는 보편적인 해석이다. 커플마다 키스를 하는 부위에 따른 의미가 제각각 다르다.

이탈리아 여인 크리스티나 콘파로니에리 씨는 홀홀단신 사랑하는 남자의 나라인 한국으로 왔다. 그의 사연은 KBS 2TV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3년 전 밀라노의 이탈리아어 학원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나 사랑에 빠졌고, 사랑은 바다를 건너가며 진하게 숙성되어 작년 11월 웨딩마치를 올렸다. “남편이요? 아주 따뜻해요. 아주 재미있어요. 우리는 같이 있으면 아주 많이 웃어요.” 남편도 짧은 문장을 구사한다. “귀여운 아내예요.” 첫 키스는 여태 생생하다. “호숫가에 앉아 있을 때였어요. 남편이 어깨에 키스를 하더니 서서히 쇄골을 지나 목을 타고 올라왔어요. 입술 앞에서 남편이 ‘해도 돼요?’라고 속삭였어요. 저는 ‘하세요’라고 했어요. 기다렸거든요.” 로맨틱한 키스에 지금도 중독되어 있다. 크리스티나는 말한다. “자기가 해주는 키스는 뭐든지 다 좋아요.”_김현준 씨가 입은 새틴 칼라의 턱시도 슈트와 셔츠는 모두 란스미어, 브라운 뿔테는 프라다 제품. 크리스티나 콘파로니에리 씨가 입은 로맨틱한 시폰 드레스는 오즈세컨, 흑색 진주와 어우러진 레드 컬러 목걸이는 H.R 제품. 빨간 하트 장식 의자는 웰즈 제품.

(오른쪽) 오래도록 밝은 꽃불  이진섭*유명수 씨 부부
역사적으로 자신의 지위가 낮을수록 상대에게 키스하는 부위는 얼굴에서 점점 더 멀어졌다. 동등한 사이에서는 서로의 입이나 뺨에 입을 맞추지만,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에게는 손에, 더 힘 있는 사람에게는 무릎에, 최고의 권위자에게는 발에 입을 맞추었다. 몸을 낮게 숙여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누군가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땅에 입을 맞추면 등이 드러난다. 이는 스스로 낮은 지위를 자처하는 행위다. 교황이 때때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땅에 입을 맞추며 하느님께 등을 보이는 것도 그에게 창조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다.

40여 년 전 대구 MBC 기자 이진섭 씨와 아나운서 유명수 씨는 라디오 퀴즈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서로 호감을 느낀 이들의 데이트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같이 식사하거나 대구의 ‘수성못’과 ‘송림사’를 거닐곤 했다. “그땐 다 그랬어요”라는 유명수 씨의 눈가에는 미소가 동심원 그리듯 서서히 번졌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들 둘과 막내딸인 탤런트 이세은 씨를 길렀고, 30여 년간 연로하신 시어머니를 모셨다. 그러니 부부가 애정 표현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일, 궂은일을 징검다리 삼아 건너고 돌아보니 함께 걸어온 세월이 차곡차곡 쌓였더라고. 판에 박힌 청첩장 대신 크리스마스카드에 “이진섭과 유명수가 12월 26일에 꽃불(‘화촉’의 우리말)을 밝힙니다”라고 써 보냈다는 이들에게 키스는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꽃불이다. 이제는 눈만 맞춰도 입맞춘듯 통한다._이진섭 씨의 턱시도와 흰 셔츠는 란스미어, 레이스업 슈즈는 벨루티 제품. 유명수 씨의 누비 두루마기와 치마, 갖신, 굴레는 김영석 한복, 검은색 링은 H.R, 브로치는 미키모토 빈티지 컬렉션 제품. 와인잔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경,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