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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블랙 드레스_스토리 리틀 블랙 드레스, 여자의 특권
혹자는 ‘짧은 검정 치마’에 무얼 그리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개성 표현’이라는 명분 아래 자유롭게 의상을 입는 우리는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의 의상은 구속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사회적 시선과 맞선 용감한 옷이 바로 리틀 블랙 드레스(LBD)다.

모델이 착용한 심플한 디자인의 리틀 블랙 드레스와 블랙 슈즈는 모두 에스카다 제품.

시대의 금기를 깨다
오늘날 옷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룩, 시크한 룩, 남성적 룩, 캐주얼 룩 등 자신이 추구하는 이미지에 맞는 의상을 선택해 입는다. 가끔은 때와 장소에 맞게 입어야 하는 ‘격식’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는 정장을 입어야 한다든가 결혼식장에 갈 때는 신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흰색 의상은 피하고, 장례식장에 갈 때는 검은색 옷을 입는 등 암묵적 규칙이 존재하곤 한다. 한편으론 파격이라는 이름으로 금기를 깨는 경우도 있다. 속옷과 잠옷이 과감하게 외출복으로 변신해 스타일링 포인트가 된, 2016년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란제리 룩과 파자마 룩이 대표적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의 역사적 의미를 이야기하기 위해 서론이 길어졌다. 따지고 보면 놀랍게도 한 세기가 채 지나지 않았다.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를 발표한 해는 1926년, 그러니까 90년 전이다. 당시에 검은색 의상은 주로 상복으로 여겼다. 지금도 여전히 장례식에 참석할 때는 검정 의상을 갖춰 입긴 하지만, 20세기 초에는 그 구분이 더 극명했다는 점이 다르다. 보수적 집안의 미망인은 유혹으로부터 격리한다는 의미에서 무려 2년 동안 블랙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는 기록도 있다. 1910년대는 폴 푸아레Paul Poiret풍의 화려한 색상이 패션계를 점령하던 때로, 검은색은 얼마나 천대를 받았는지!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나 다수가 옳다고 따르는 길에 다른 길을 제안하는 용기 있는 자가 세상을 바꿔왔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아니, 패션에서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남다른 것을 추구하는 ‘청개구리 기질’이 패션 리더의 절대 요건이다. 예를 들어 치마는 꼭 여자만 입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고 치마를 입은 파격적 남자로 꼽히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나, 뮤지션이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패션 아이콘 지드래곤은 21세기 손꼽히는 패션 리더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상복으로 치부하던 검정 치마를 일상복으로 도입한 샤넬의 리틀블랙 드레스는 혁신이자 패션 리더의 용기 있는 시도였던 셈이다. 색상뿐 아니라, 여성이 코르셋을 착용하지 않고 발목을 드러내게 했다는 것 역시 혁명 중 혁명이었다.

1926년 샤넬이 리틀 블랙 드레스를 발표하자 미국의 패션지 <보그Vogue>는 이를 ‘포드’, 즉 미국 포드사의 자동차에 비유하며 이 의상의 대량생산 가능성을 예보했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금기와 편견을 깬 의상’이라는 가치 그 이상을 의미한다. 바로 의복에서 성별 및 계급과 관련한 고정관념을 전복시켰다는 업적도 이룬 것. 이를테면, LBD는 여성 점원과 상류층 여성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또 남성복에 뿌리내린 검은색의 시크함을 여성도 누릴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남녀간, 계층 간 사회적 불평등을 깨뜨렸다는 점에서 리틀 블랙 드레스의 업적은 어마어마하다.

1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속 오드리 헵번의 LBD 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스타일의 정석으로 꼽힌다. 2 가슴 라인에 반짝이는 젬스톤으로 포인트를 준 LBD를 입은 모델 케이트 모스. 3 어깨에 스트랩을 장식한 돌체 앤 가바나 2016 F/W LBD. 4 살바토레 페라가모 2016 F/W LBD. 5 (1927)에 실린 일러스트로, 모델이 LBD를 착용하고 각종 액세서리로 치장한 모습이 매우 현대적이다. 6 장미 덩쿨을 수놓은 구찌 2016 F/W LBD. 
세기의 리틀 블랙 드레스 최초의 리틀 블랙 드레스, 그러니까 샤넬이 1926년 발표한 LBD는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한 매우 단순하고 직선적 디자인에 앞쪽 상하에 사선의 핀턱을 장식해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실루엣이 드러나는 의상이었다. 가는 허리와 펑퍼짐한 엉덩이를 강조한 기존 의상과는 달리 코르셋이 필요 없고, 속치마로 풍성함을 표현하던 긴치마가 아닌 발목을 드러내는 길이라는 점에서도 파격적이었던 셈. ‘리틀’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미니스커트 정도의 매우 짧은 의상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발목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충분히 ‘리틀’이라는 수식어가 가능한 것이다.

이후 리틀 블랙 드레스는 변신을 거듭해왔다. 1950년대 디올의 뉴룩에 이어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킨 건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입었던 위베르 드 지방시의 LBD. 영화에서 입을 의상을 고르기위해 지방시를 방문한 헵번은 그의 컬렉션 중 등이 깊게 파인 블랙 시스 드레스sheath dress를 선택했고, 이 유명한 블랙 드레스를 입고 진주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업스타일 헤어를 하고 등장한 장면은 오드리 헵번을 불멸의 영화배우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시킨 세기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지방시의 모던하고 절제된 우아함을 자신의 이미지와 결합한 오드리 헵번은 1950년대와 1960년대 후반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됐고, 특유의 가련해 보이는 체형과 소년 같은 룩, 그리고 심플하고 깨끗한 스타일로 리틀 블랙 드레스가 주는 완벽하고 세련된 우아함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LBD의 기본 공식으로 여전히 변치 않는 고전이자 전설이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상복이라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점원과 상류층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으며, 남성복에 뿌리내린 검은색의 시크함을 여성 도 누릴 수 있게 했다. 그렇게 기존의 금기와 편견을 깬 파격의 상징이다. 


휴고 보스 2016 F/W LBD. 

현대 여성도 사랑해 마지않는!
21세기, 패션 산업이 부흥하고 수많은 디자이너뿐 아니라 모델, 그리고 ‘패셔니스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패션을 창조하는 지금. 리틀 블랙 드레스는 여전히 가장 성공적이자 안전한 룩으로 선택받고 있다. 각종 시상식이나 파파라치 컷에서 리틀 블랙 드레스를 입은 스타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는 것. 꼭 유명 인사를 꼽을 필요도없다. 일반 여성들의 옷장에도 하나쯤은 있을 법한 게 리틀 블랙 드레스다. 물론 길이는 더 짧아지기도 하고 장식이 더 많아지기도 했으며 소재도 다양해졌다. 그 다양성 때문에 어쩌면 리틀 블랙 드레스의 상징적 의미는 퇴색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리틀 블랙 드레스는 편안한 일상복부터 한껏 치장한 날입는 파티 룩까지 다양한 목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LBD의 대중성 때문에 진짜 패션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 리더가 되고 싶다면 리틀 블랙 드레스를 피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블랙 드레스를 입고도 스타일리시하게 보이는 방법은 없을까? 목걸이, 클러치백, 슈즈 등 액세서리를 한껏 활용하길 권한다. 검은색은 우울하고 우중충한 색이기에 자칫 밋밋하고 지나치게 단순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컬러 포인트를 주는 것도 방법이다. 다행히 검은색은 다른 어떤 색과도 잘 어울리므로, 창조적 스타일링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모델 최윤영 플로리스트 오드리 플라워즈

글 강옥진 기자 사진 장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