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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적인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멋을 아는 것 나이 먹었으면 어때, 이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한•불 수교 1백20주년을 맞은 2006년. 올 한해 우리나라와 프랑스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줄지어 열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여성들을 매혹시키는 월드 코스메틱의 강국이기도 하다. 화려한 만큼 굴곡이 많았던 역사를 거쳐 지금의 자연스럽고 세련된 ‘프렌치 시크French chic’를 만들어내기까지, 파리지엔들은 어떻게 단련되어 왔을까? 아름다운 인생의 여유와 풍요, 즐거움과 만족을 찾기 위해 그들에게 한 수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젊음과 미모가 그대로 상품 가치로 구분되어 등급이 매겨지는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한때 시대를 풍미하던 쟁쟁한 여배우들이 각종 세제와 주방용품, 보험회사, 대출 광고, 심지어 홈쇼핑에까지 단골 패널로 등장하여 상품 선전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면 삶에 대한 씁쓸함마저 느끼게 된다.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을 쌓고 이제야 삶의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는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되었는데,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은 일일 드라마의 전형적인 배역인 표독한 시어머니 또는 철딱서니 없는 이모나 고모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여배우들은 진정한 연기라는 것에 눈을 뜨고, 진정한 배우 정신이 무르익는 나이가 되면 온 세상이 부러워할 만한 왕자님 같은 조건을 가진 남자와 결혼해 은막 뒤로 사라지거나 아니면 ‘연기파’라는 달콤한 수식어 하나에 취해 고모나 이모 역할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락해야 한다. 

우리나라 여배우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나라는 60대 여배우도 당당히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는 프랑스일 것이다. 가장 프랑스적인 여배우로 불리는 카트린 드뇌브는 이미 환갑이 지났고 영원한 프랑스인의 연인인 이사벨 아자니도 50세를 넘어선 나이이다. 한국 매스컴의 플래시 세례를 받으려면 젊고 예뻐야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평가 기준이 다르다. 1998년이었던가?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독특한 내면 연기로 복잡 미묘한 프랑스 여자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표현해내는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내한한 적이 있었다. 칸과 베네치아 영화제 등을 휩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이기에 당연히 매스컴의 관심이 그녀에게 집중될 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그 해 칸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나타샤 레니에라는 신인 여배우와 함께 내한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야 <8명의 여인>이라든가 <피아니스트> 등의 영화가 국내에도 개봉되어 그녀의 뛰어난 연기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결코 예쁘다고 할 수 없는 그저 중년의 여배우였기에 위페르 대신, 국내의 모든 취재진이 젊고 아름다운 나타샤 레니에에게만 몰려들어 플래시를 터뜨렸던 것. 그래서 자존심 강한 이 대배우는 한국에서 벌어진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매우 불쾌해하며 떠났다는 후문이다.

여성의 가치를 그저 젊음과 미모로만 평가하는 이 지극히 할리우드적이고 미국적인 척도는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로 가면 아주 민망한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내가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너무나도 세련된 프랑스 할머니들의 옷차림이었다. 그들은 슈퍼마켓이나 공원 같은 가까운 곳을 외출해도 대부분 공들여 화장을 하고 배색을 맞춘 의상과 액세서리를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친하게 지내는 동네 할머니 마리옹은 ‘마담 뒤퐁(그녀의 성을 따서)’ ‘마담 마리옹’이라고 불러도 질색을 한다. 품위 있는 프랑스 어감과 멋진 패션 감각을 지닌 마리옹은 가끔 사춘기 소녀같이 얼굴에 홍조를 띠고 여행과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자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프랑스 여성의 자신감 뒤에는 그들의 이런 매력을 놓치려 하지 않는 프랑스 남자들이 있다. 베르사유 궁전이나 각 박물관에서 프랑스 왕정을 치마폭 안에 넣고 뒤흔들던 ‘왕의 여자’들의 초상화를 보면 그 수수한 외모에 실망하기 십상이다. 권력자들이 원했던 것은 하룻밤 사랑이 아닌 그녀들의 총명함과 지혜였기 때문임을 사람들은 알까? 루이 15세의 첩이었던 마담 퐁파두르가 공식적인 후궁 자리에서 물러났으면서도 친구이자 조언자로 베르사유 궁 1층에 머물며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구체적인 미용법에 있어서도 프랑스 여자들은 분명 독특한 취향이 있다. 세계 최고의 화장품 대국이면서도 각 시즌마다 화장품 회사에서 제시하는 유행 색이 프랑스에서만큼은 좀체 먹히지가 않는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맹목적으로 유행 컬러를 따르기보다 가장 자신을 멋있게 연출해주는 화장법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화장을 하면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자신의 개성을 염두에 둔 메이크업을 연구하는 그들, 내추럴 메이크업과 포인트 메이크업의 발신지가 바로 프랑스다. 세계 최고의 성형 의학 기술을 가지고도 국민의 대부분은 보톡스라든가 필러 같은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극단적인 처리법보다는 ‘슬로slow 코스메틱’이라 불리는 생활 습관에 연관된 자연스러운 미용법을 선호한다. 언젠가 눈가에 진 잔주름은 보톡스로 펴야 한다는 나의 농담에 화들짝 놀라던 나의 친구 이사벨이 떠오른다. “아니, 눈가에 진 주름은 그 사람의 인상인데 그걸 왜 보톡스로 펴야 해? 감정의 변화에 따라 짙어지는 주름이 얼마나 멋있는데….” 어쩌면 이사벨 같은 여성에게 눈가와 입가의 주름은 늙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의 지나온 삶을 오롯이 내보이는 거룩한 훈장 같은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조금이라도 세월의 흐름을 늦추기 위해 크레디트 카드를 꺼낸다. 화장품 카운터와 약국에서 안티에이징 제품 광고 포스터가 시즌마다 붙어 있는 것을 보면 프랑스 여자들이라 해서 노화에 초월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세월을 대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는 확실히 순응적이다. 빠른 시술보다는 화장품을 평생 친구 삼아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나이 드는 법이 프랑스 여자들이 생각하는 미용의 포인트인 것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 최대의 코스메틱 그룹 로레알 파리가 최근 모델로 선정한 인물은 바로 예순을 훨씬 넘어선 제인 폰다. 할리우드에서 대스타가 되기 전에 프랑스 영화계에서 활약하며 월남전이 한창일 때 조국인 미국을 향해 반전운동을 펼쳐온 이 용기 있는 여성은 텔레비전 광고에서 이렇게 외친다. “제 나이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이 글을 쓴 패션&뷰티 칼럼니스트 심우찬 씨는 프렌치 뷰티에 관련된 칼럼을 기획했을 때 누구보다  먼저 떠오른 사람이다.  18년간 파리에 머물렀고 지금도 파리에서 1년의 절반을 보내는 ‘프랑스통’인 동시에 의상과 미용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특출한 감각을 지녔기에 그랬다.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불어학을 전공한 후 1987년 파리로 건너가 에스모드에서 2년간 수학했으며, 파리 8대학에서 불문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4개 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코즈모폴리턴인 그는 한국 디자이너, 연예인, 패션 잡지와 파리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현장감 넘치는 칼럼을 여러 매체에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는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로 ‘여자’를 드는 페미니스트 심우찬 씨는 그 마음을 담아 <파리 여자, 서울 여자>(시공사)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1 영국 출신이지만  대표적인 프렌치 시크의 상징이 된 영화배우이자 가수 제인 버킨. 그녀를 위해 에르메스는 ‘버킨 백’을 만들기도 했다. 깡마른 몸매와 꾸미지 않았지만 세련된 옷차림, 속삭이듯 분위기 있는 목소리로 유명하다.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사이에서 낳은 샤를로트 갱스부르와 자크 드와이옹 사이에서 낳은 루 드와이옹은 모두 배우로 성장해 또 다른 프렌치 시크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2, 3 ‘쿨 뷰티’의 상징이자 프랑스가 공인하는 국민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쉘부르의 우산>을 통해 ‘아이돌’로 떠올랐지만, 루이 브뉘엘 감독의 <낮의 여인>과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마지막 메트로>에 출연하며 연기파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카리스마를 더해간 그녀는 에이즈 방지 기금 모금과 사형제도 폐지 등 사회 활동을 활발히 펼치기도 했다.
4 최근 로레알 파리의 광고에 등장한 제인 폰다. 미국 출신 여배우지만  그녀는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했고, 월남전 파병을 반대하는 등 의식 있는 언행을 보여줬다. 어떤가, 그녀가 과연 늙어 보이기만 하는가?
5 이사벨라 로셀리니, 크리스티나 레알리, 우마 서먼, 드류 베리모어 등 다양한 국적의 여배우를 모델로 기용한 랑콤. 하지만 2~3년 동안은 스킨케어 모델로 젊은 프랑스 여배우 마리 쥘렝을 내세운 바 있다. 그녀는 생기 있고 내추럴한 20대 초반 파리지엔의 모습을 상큼하게 표현해 눈길을 모았다. 
6 쉰 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비로운 매력을 내뿜는 이사벨 아자니. <아델 H의 이야기>로 각종 연기상을 휩쓸며 프랑스의 연인으로 떠오른 그녀는 <광염의 여름><카미유 클로델><여왕 마고> 등에서 광기 어린 여성상을 훌륭히 연기해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까다로운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아버지의 나라 알제리의 인권 보호를 위해 시위를 벌이는 등 인간적인 면모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7 프랑스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연기파 배우 이사벨 위페르. 1971년에 데뷔한 이래 <레이스 짜는 여자> <비올레트 노지에르> <의식> 등 굵직한 작품들로 주목받아왔다. 그녀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로 2001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부터. 그녀는 진지하고 비틀린 역할은 물론 희극적인 연기에서도 노련미를 선보인다.
8 최근 떠오르는 프랑스 여배우라면 오드리 토투를 들 수 있다. 1978년생인 그녀는 2001년 장 피에르 주네 감독의 <아멜리에>로 스타덤에 오르며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올해 톰 행크스와 함께 출연한 <다빈치 코드>로 칸에 입성해 화제를 모았지만 생각보다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성이 큰 여배우이자 새로운 프렌치 뷰티의 아이콘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유희 기자 tra@design.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