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스토리 패션]2010 Gwangju Biennale 만인보 萬人譜와 패션이 만나다
‘10000 Lives 혹은 萬人譜’ 시인 고은 씨가 지은 30권의 연작 시집에서 차용한 ‘만인보’를 주제로 한 2010년 광주 비엔날레는 사람과 이미지 또는 이미지와 사람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예술적 탐구 작업을 보여준다. 그 뜨거운 예술 현장에서 만난 올 가을·겨울 패션 트렌드. 이번 시즌을 대표하는 그레이 컬러의 구조적 패션 스타일이 각각의 작품과 어우러지면서 또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났다.


루프레히트 가이거, ‘붉은 회오리바람’
추상화가이자 조각가이며, 획기적인 모양의 캔버스와 빨간색에 매료된 작가로 유명한 루프레히트 가이거 Rupprecht Geiger.
1970년대, 그의 작품 세계 중 수십 년을 지배하게 되는 빨간색과 조우하면서 그 색의 모든 빛과 농도를 실험했는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1985년 작 ‘붉은 회오리바람’이다. 붉은 천으로 만든 거대한 깔때기 형태의 설치 조각 작품으로, 실제 전시장에서도 작품 아래로 직접 들어가 누워볼 수 있도록 설치했다.
작품 아래에 들어가 있으면 온통 붉은색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 가이거의 독특한 시각적 집착에 대한 본질을 깨닫게 된다.

염색한 천을 이용해 곡선미를 연출한 작품에 불규칙한 커팅 디자인이 돋보이는 미니 드레스를 매치했다. 미니 드레스는 르희, 뱅글과 블랙 펌프스는 구호 제품.


(왼쪽) 토바 아우어바흐, ‘무제(구김)’
토바 아우어바흐 Taubu Auerbach의 작품은 주로 결이나 주름, 도트 패턴, 소음, 화면 잡음 등으로 완성된다. 이 같은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항상 컴퓨터 그래픽과 인쇄, 타이포그래피, 디지털 비디오 등 시각과 관련한 테크놀로지의 ‘틈새’를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아우어바흐의 새로운 연작인 ‘무제(구김)’ 역시 주름과 구김이 있는 대형 아크릴화다. 캔버스 자체가 접힌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각적 충돌이 일어나는데, 패턴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결코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 식이다. 이처럼 지각적인 혼란을 일으키는 아우어바흐의 작품은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촉구한다. 물론 이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작품 속 주름과 구김의 패턴을 옷으로 표현했다. 독특한 구김이 잡힌 그레이 코트는 에스까다 스포츠, 몸에 착 달라붙는 바지는 마우리치오 페코라로, 벨트는 보브, 그레이 컬러 퀼팅 체인 백은 랑방 컬렉션, 스터드 펌프스는 더 슈 제품.

(오른쪽) 이데사 헨델레스, ‘파트너(테디 베어 프로젝트)’
큐레이터와 컬렉터의 역할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작가 이데사 헨델레스 Ydessa Hendeles는 오랜 조사 과정을 거쳐 특이하면서도 명확한 주제를 선보이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번 작품인 ‘파트너(테디 베어 프로젝트)’ 역시 1900년부터 1940년까지 만든 테디 베어의 사진을 수년 동안 3천여 장 이상 수집해 2층 전시 공간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가득 채우는 설치 작업으로 선보였으며, 전시 공간도 마치 도서관이나 아카이브실이 연상되도록 디자인했다.

벽면을 가득 메운 사진의 프레임처럼 그레이 톤의 옷을 핑크 컬러 라인으로 감싸 실루엣이 도드라지도록 만들었다. 핑크 트리밍 재킷과 롱스커트, 벨트와 셔츠는 모두 미스지 컬렉션, 그레이 스트랩 슈즈는 에스까다 스포츠 제품.


2010 제8회 광주 비엔날레 ‘만인보 10000 LIVES’
올해로 8회째를 맞는 광주 비엔날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물론 주제와 관련 있지만 특히 방대한 양의 이미지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예술 전시회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반적이지 않은 이미지와 오브제를 상당수 볼 수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한데, 이번 광주 비엔날레를 이끌어가는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Massimiliano Gioni 예술 총감독은 이를 두고 이렇게 전한다. “우리가 이미지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저 예술 작품을 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술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서도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니까요.” 또 이번 전시회에서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30주년과 관련한 작품도 담았다. 이번 주제어가 고은 시인의 30권으로 구성된 연작시 ‘만인보’에서 차용한 것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의 이미지를 연결하기 위함이었다. 큐레이터 없이 이번 전시를 준비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광주 비엔날레 재단 전시팀과 1만 4천9백77회에 달하는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이번 전시를 진두지휘했다. 이제 당신이 작품 속 감동을 그대로 느낄 차례다. 오는 11월 7일까지. www.gb.or.kr 또는 www.10000lives.org

파베우 알타메르, ‘브로드노 사람들’
파베우 알타메르 Pawel Althamer는 사회적, 정치적 맥락이라는 폭넓은 영역에서 신체의 연약함과 우연성을 탐구한다. 2010년 작인 ‘브로드노 사람들’은 파베우 알타메르가 주체로 작업했지만 그의 이웃 주민들과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이웃 주민은 미술을 전공했거나 관련 있는 이들이 아닌 평범한 일반인. 이들은 각각 자화상을 만들어 작품에 참여했다. 대개 작가와 관객이 나뉘어 있게 마련인데, 파베우는 작품을 통해 일반인도 작가가 되는 주체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작품 속 인물의 철제 소재와 상반되는 따뜻한 느낌의 모직 소재를 매치했다. 비대칭의 랩스타일 그레이 코트는 비비안 웨스트우드, 몸에 착 달라붙는 핀스트라이프 바지와 목걸이는 마우리치오 페코라로, 스터드 장식 힐은 더 슈 제품.


(왼쪽) 조너선 보로프스키, ‘재잘대는 남자’
서울 귀뚜라미 그룹 본사에 설치된 작품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너선 보로프스키 Jonathan Borofsky. 이번 작품 ‘재잘대는 남자’는 또 하나의 조각 ‘내가 날 수 있는 꿈을 꾸었다’라는 작품과 서로 연관돼 있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각 아래로 ‘재잘대는 남자’의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 경외심을 담은 시선으로 위를 응시하는 가운데,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의 턱에서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와 같은 보로프스키의 거대한 인물 조각은 그동안 수많은 공공장소에 설치되면서 집단의 사회상을 끊임없이 일깨워주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게 몸의 구조를 표현한 작품처럼 하나의 옷으로 몸의 아름다운 곡선을 살려주는 점프슈트를 매치했다. 핀스트라이프의 재킷 스타일 점프슈트는 곽현주, 이너로 입은 집업 톱은 클럽 모나코, 스웨이드 셔링 부츠는 마우리치오 페코라로 제품.

(오른쪽) 토마스 바이를레, ‘스탈린(레드 버전)’ ‘스탈린(브라운 버전)’ ‘텔레폰 AT&T(옐로 버전)’ ‘구조 속 무질서(블루 버전)’
토마스 바이를레 Thomas Bayrle는 마치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어지럽고 복잡한 이미지를 뜻하는 그만의 독특한 슈퍼폼 superforms으로 유명하다. 이는 1960년대 초부터 바이를레가 직접 스케치하고 채색한 후 스크린 인쇄를 해서 만들어낸 장르다. 판화나 포토 콜라주, 디자인 작업에서 사용한 복잡한 패턴은 나아가 독일의 팝아트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찌 보면 그의 작품은 컴퓨터가 생성하는 이미지 미학을 한발 앞서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픽적인 느낌으로 시각적 혼란을 주는 작품 앞에 패턴으로 변화를 준 패션을 더해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기하학적 프린트의 저지 드레스는 쟈니헤잇재즈, 이너로 연출한 블랙 시스루 롱 드레스는 제인송, 블랙 펌프스는 구호 제품.

(왼쪽) 양혜규,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개인적 한계에 대한 고민’
옷걸이나 의료 기구 걸이처럼 보이는 재료를 모아 만든 광원 조각 연작으로 구성한 이번 작품은 작가 양혜규 Haegue Yang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일상의 물건과 기구들, 예를 들면 알루미늄 블라인드나 전구, 선풍기, 전깃줄 등을 이용해 섬세하면서도 어떤 의도를 가지고 배열해 감각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 특징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의 설치 작품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2006년 이후 여러 장치와 오브제로 이뤄진 집합체를 만드는 그는 이번 작품 역시 임시적이고 유약한 특성을 보이지만, 결국 서로 연관되며 미학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조화를 이룰 것 같지 않은 오브제들이 모여 그 자체로 조화를 이루듯 다양한 컬러와 패턴, 소재를 믹스하면 그 자체가 패션이 될 수 있다. 유화적이면서도 자유로운 패턴이 돋보이는 프린트 셔츠는 타임, 치마는 르윗, 벨트는 도호, 블랙 펌프스는 구호 제품.


칼 앤드리, ‘전쟁&전쟁의 소문들’ & 구더신, ‘2009-05-02’
선구적 미니멀리즘 조각가로 잘 알려진 칼 앤드리 Carl Andre는 작품 재료를 평평하고 높게 격자형 모듈로 바닥에 배열한다. 이번 작품 ‘전쟁&전쟁의 소문들’ 역시 목재 블록을 나선 형태의 사각형으로 배열했는데, 여기에서 목재 블록은 인간의 대역이다. 또 이들은 제목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적을 방어하기 위한 비밀스러운 형태를 표현한다. 이 작품은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염원과 함께 전쟁의 공포에 대한 명상을 돕는 도구다. 벽면을 감싸고 있는 구더신 Gudexin의 ‘2009-05-02’ 작품은 다소 폭력성을 담은 텍스트를 붉은색의 중국어 문자로 전달한다. 평소 ‘인공성’과 ‘부패’라는 두 가지 주제로 현대사회에 비판을 가하려는 작가의 목적을 보여준 것.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며, 의식적으로 미술계에서 물러남으로써 고요한 저항의 제스처를 보여줬다.

독특한 혹은 정교한 배열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듯, 정확히 대칭되는 패턴이 더해진 패션은 단순한 라인뿐이지만 충분히 구조적으로 보인다. 패턴이 더해져 구조적 느낌을 더한 트위드 미니 드레스는 다치스 바이 이윤정 제품.


김윤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