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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패션 아이템] 멋과 예를 쓰다, 모자
십구 세기 말부터 이십 세기 초,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조선을 모자의 나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종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프랑스 화가 조제프 드 라 네지에르 는 <극동의 이미지>를 통해 “조선은 가장 독특한 모자 문화가 있는 나라이다. 모자에 관한 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자문을 해주어도 될 수준이다.”라고 했을 정도지요. 그렇지만 단발령이 내려지고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급속히 한국인의 모자 문화는 사라졌습니다. 우리 민족의 에 새겨져 있던 모자를 즐기는 멋과 낭만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모자 디자이너를 만나 모자 연출법과 모자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배워봤습니다. 이 봄, 당신을 더 오래 기억되게 만드는 모자로 멋과 낭만을 머리에 얹어보세요.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현릉원 참배 겸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나섰던 길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실린 그림을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행차를 구경하러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과 호위하는 관료들 모두 머리에 뭔가 쓰고 있는 것이다. 김홍도, 신윤복의 풍속화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빠짐없이 어떤 형태든 머리에 쓰고 있는 걸 보면 ‘우리 민족은 정말 모자를 사랑했구나’하는 걸 느낄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모자 높이가 올라가고 챙이 넓어져 출입문을 드나들기조차 힘들게 됐다. 또 재료가 많이 들어가면서 가격도 비싸져 조선 정부가 모자 크기를 줄이려는 정책을 쓰기도 했다. 영·정조 시대에는 무거운 가체로 여인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자 가체 금지령을 내리고 족두리 사용을 권했다. 그러자 보석으로 장식한 화려한 족두리가 성행해 결국 이것도 금지했다. 흰옷을 즐겨 입던 우리 조상에게 모자는 그 시대 패션 아이템이었다.

(왼쪽)<사진제공>
코리아나 화장박품관

또한 모자는 지위, 계층에 따라 형태가 달라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도 쓰였다. 서민용인 짚부터 양반을 위한 비단까지 재질도 다양했기 때문에 모자만 봐도 어떤 계층의 사람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모자는 명예도 상징했기 때문에 집 안에 들어갈 때 신발은 벗어도 모자는 벗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겉옷은 벗었지만 모자는 벗지 않았다. 특히 양반에게 모자는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다.


1
굴레  2 백립  3 망건


<모자의 나라 조선> 기획전이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층 특별전시실에서 10월 30일까지 열린다.

우리 민족은 대체로 소박하고 단순한 멋을 즐겼지만 모자만큼은 다양했던 걸 보면 모자 사랑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이토록 오래전부터 모자를 즐겨 쓴 만큼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도전해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천십 년의 감각으로 다시 한 번 모자 전성 시대를 향유하는 건 어떨까.

전문가에게 듣는 모자 연출법

루이엘’의 디자이너 셜리 천
“모자가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은 따로 있다” 

(왼쪽)1 개성 있는 헤어스타일이 트레이드마크인 셜리 천. 모자를 만들면서 하루에도 수십 개를 쓰다보니 평소 온전하게 모자를 즐기긴 어려워졌다고 한다.

아시아인 최초로 파리의 모자 전문 학교를 졸업한 디자이너 셜리 천은 불문학을 전공하러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가 모자 디자이너가 되어 돌아왔다. 세기모자의 디자인 실장을 거쳐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에 입점한 모자 브랜드 루이엘의 대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모자 고민을 해결해준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모자를 한 번도 안 써봤어요. 정말 안 어울려요.’ 이렇게 딱 두마디 예요.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이걸 쓰고 어딜 가지, 어떤 옷을 입지 등을 먼저 고민하다가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지 말고 일단 가까운 모자 가게에 가서 목적 없이 모자와 놀아본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써보세요. 그에 따라 변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거울로 확인해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자신에게 맞는 모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모자가 쉽고 친숙하게 느껴지죠.”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모자 구입을 결심한다면 창이 없는 토크 toque나 베레를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착용감이 좋은 건 물론 시야를 가리거나 실내에서 벗지 않아도 되므로 모자를 쓰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않게 돼 모자를 쓰는 게 편해진다고. 그 후 점점 챙이 넓은 걸로 옮겨가면 된다.
얼굴형이 예쁘지 않아서 망설이는 이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다’고 충고한다. 수만 명에게 모자를 씌워봤지만 얼굴형이 그다지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저는 정말 모자를 멋지게 쓰는 사람으로 그레타 가르보(1920년대 무성영화배우)를 꼽아요. 그레타 가르보는 원래 백화점에서 베레를 팔던 여자였는데 베레 쓴 모습이 너무 예뻐서 감독에게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각이 진 오각형 얼굴이에요. 그런데도 그처럼 어울렸던 건 얼굴형 때문이 아니라 쓰는 방법, 헤어스타일, 분위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얼굴형별로 모자 쓰는 법을 보면 각진 얼굴은 베레를 피하라고 나옵니다.”
그는 모자를 선택할 때 가장 비중이 큰 걸 굳이 꼽으라면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단발머리 길이의 층이 진 굵은 웨이브 헤어스타일이 어떤 모자든 잘 어울린다고. 긴 생머리는 베레나 물결치는 챙 모자 또는 중절모로 세련되게 연출하길 권한다.
“여자에게 모자란 여성성을 극대화해 표현해주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암 환자도 모자를 많이 찾는데, 그중 머리를 다 밀고 난 후 남편에게 여자로 보이고 싶다며 예쁜 모자를 부탁한 손님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농장을 운영하는 체격이 큰 여장부 스타일의 손님도 생각납니다. 비록 자신이 호미 들고 일하지만 그럴 때조차 예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며 모자를 부탁했죠. 이들이 모자를 선택한 것은 사람을 극적으로 아름답게 변신시켜주는 패션 아이템임을 알기 때문이겠죠?”



2 루이엘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스타일이 많다. 그래서 수집을 목적으로 구입하는 사람도 상당수라고. 3 흰색 모자는 빛을 차단하고 검은색 모자는 열을 차단하므로 그늘에서는 검은색 모자가 더 시원하다. 4,5 실크 소재의 토크와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베레.

셜리 천에게 듣는 모자 예절법
“서양 사람들은 교회 갈 때 모자를 쓰고 갑니다. 하느님 앞에 갈 때는 가장 격식을 차려야 하거든요. 그리고 예배 볼 때도 모자를 벗지 않아요. 하느님 앞에서도 모자를 벗지 않는 게 서양 예절입니다. 따라서 실내에서는 모자를 벗는 게 예의라고 정의하지 않아요. 모자를 벗으면 머리가 헝클어지잖아요. 그러므로 오히려 모자를 벗으라고 강요하는 게 더 예의에 어긋나죠. 만약 챙이 넓고 아주 화려한 스타일이면 접을 수 있는 토크를 준비해 실내에서는 바꿔 쓰는 것도 센스 있는 예절입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인사할 때 잠깐 벗는 게 예의죠. 하지만 모자를 쓰더라도 챙으로 눈을 가리지 않게 신경 써서 시선을 열어두는 것은 반드시 지켜주세요.”

수제 모자 숍 ‘꽁블’의 디자이너 최혜정씨 
“모자, 드레스 코드와의 균형을 먼저 생각하라”


(오른쪽) 3 최혜정 씨는 모자 만들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별다른 일이 없으며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모자 만들기에 집중한다.

디자이너디자이너 최혜정 씨는 십수 년 전 파리의 모자 학교를 졸업한 후 홍대 앞에 숍을 냈을 때부터 수제 모자를 만들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서울 삼청동으로 숍을 옮긴 지금도 그는 여전히 디자인부터 라벨 붙이는 작업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손으로 작업한다. 그래서인지 ‘모자는 머리 안 감은 날 쓰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며 이렇게 말한다.
“모자를 갖춰 쓰는 건 내 삶을 살아가는 데 ‘격식’과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봐요. 그래서 너무 편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에게 제대로 된 모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모자를 쓰면서 좀 더 자신에게 신경 쓰는 거죠.”
그렇지만 모자를 거의 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모자가 쉬운 아이템이 아닌 건 분명하다. 그래서 그가 제안하는 방법은 ‘모자에 맞춰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모자를 썼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덜 신경 써도 된다’고 바꿔 생각하라는 것이다. 모자는 포인트 역할을 하므로 멋진 모자에 평범한 옷을 입어도 근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흰색 면 티셔츠와 청바지에 페도라 하나만 써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모자를 착용할 때 지켜야 할 점이 있다면 전체적인 패션 밸런스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예전에 어떤 배우가 화려한 모자를 쓰고 시상식에 나갔는데 워스트 드레서로 뽑혔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옷이 화려한데 모자까지 화려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옷에 장식이 많다거나 빅 백을 들었다면 모자는 아주 미니멀한 스타일을 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심플한 옷에는 화려한 모자가 포인트가 되지만, 화려한 옷에 화려한 모자까지 더할 경우에는 오히려 스타일을 망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해요.”
모자를 고를 때는 얼굴형이나 생김새보다 키나 체격을 먼저 고려하는 게 좋다. 많은 사람이 모자와 얼굴의 비례만 생각하는데 사실 모자는 몸을 두고 차지하는 비율로 따졌을 때 20% 정도이기 때문. 따라서 모자 쓴 얼굴만 거울에 비춰보지 말고 전신 거울을 통해 보라고 한다.
“저는 이 모자, 저 모자 자신 있게 써보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소화해내는 법을 발견하는 이들을 진정으로 모자를 잘 쓰는 사람으로 꼽아요. 모자가 잘 어울리는 건 사람의 생김새로 좌우되기보다 어떤 모자라도 써보는 자신감이 더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모자 가게에 와서 써볼 시도조차 안 해보고, 모자를 쓰고도 거울을 안 보는 사람이 많아요. 모자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에요.”



1, 2 맞춤 모자이기 때문에 손님의 기호를 반영하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건 미니멀한 스타일. 가급적 장식을 배제하고 형태의 미를 살린다. 4 유럽 전통 스타일인 타원형으로 제작한 모자로 썼을 때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보여 만족감이 높다고 한다. 5 꽁블 한쪽의 앤티크한 모자들.

디자이너 최혜정 씨에게 듣는 모자 관리법
“천연 소재는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땀, 습기, 햇볕에 조심하고 항상 신문지 등의 종이로 모자를 싸두고 모자 안에 종이를 구겨 넣어 모자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보관해야 합니다. 펠트는 양털이라서 솔로 먼지를 털면 보풀이 일어요. 물 끓일 때 생기는 수증기를 쐬면서 칫솔이나 붓솔로 먼지를 살살 털면 돼요. 펠트 소재는 그때그때 먼지를 털어놓아야 때가 찌들지 않는답니다. 여름에 많이 쓰는 나무 껍질 소재는 물에 젖을 경우 완전히 말려서 보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자 형태가 비틀어져요. 가끔 안감 없는 모자를 찾는 사람도 있는데, 안감이 없으면 머리에서 나는 땀이 그대로 모자에 배기 때문에 오래 쓸 수 없어요.”

쇼핑 아이템

모자 종류는 매우 다채롭다. 앞서 말한 것처럼 모자 선택은 직접 써보고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우선 다양한 모자를 눈으로 먼저 감상하는 길을 떠나보자.

1 스카프를 탈착할 수 있어 두 가지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다. 44만 원, 헬렌 카민스키의 댈리트.
2 밀짚 소재로 에칭 부분을 접어 올린 중절모. 10만 원대, 카오리.
3 평범해 보이지만 미묘한 좌우 비대칭에 챙 끝에 와이어를 넣어 모양을 잡을 수 있도록 한 캡 스타일. 10만 원대, 카오리. 당신의 스타일 지수를 높이는 모자 한 점
4 12. 5cm 챙의 폭이 햇빛을 충분히 가린다. 사이즈 조절 끈이 있어 자신의 머리 둘레에 맞게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29만 원, 헬렌 카민스키의 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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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라피아 소재로 골드 메탈릭 실이 반짝임을 살려준다. 39만 원, 헬렌 카민스키의 애디.
6 베이지 톤의 체크가 여러 겹으로 겹쳐 있어 캐주얼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DAKINE by 햇츠온, 4만 6천 원. 7 크라운 부분에 주름을 넣고 햇빛을 가릴 수 있게 챙이 넉넉한 골프용 모자. 10만 원대, 카오리.
8 가벼운 천으로 만든 여름 모자. 블루 스트라이프가 시원한 느낌을 준다. 5만 8천 원
9 원단을 띠 형태로 잘라 둘러 박은 브레이드 캐스켓.10만 원대, 카오리.
10 크라운을 사선으로 절개해 일본 전통 기법으로 제작한 망사를 덧씌운 페도라. 20만 원대, 카오리


어디서 구입할 수 있나요?

카오리 일본 문화복장학원 패션공예과에서 모자를 전공한 디자이너 이형렬 씨가 운영하는 수제 모자 숍. 중성적이고 좌우 비대칭인 디자인이 스타일을 살려준다. 챙 끝에 와이어를 넣어 원하는
형태로 연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여지를 남기는 디자인도 특징. 주문 제작도 가능하다.
신사동에 숍이 있으며 4월 20일에 롯데백화점 본점 5층에 영화배우 이미숙 씨와 컬래버레이션한
숍 ‘kAoRi with Lee misook’을 오픈한다. 기존의 라인에 골프 모자도 추가해 선보일 예정이다.
햇츠온 NEW-ERA, ROXY, GRACE HATS 등 미국, 일본 등 20개 이상의 유명 브랜드로 구성한 모자 전문 멀티숍. 명동점, 코엑스점, 홍대점이 있다. 기본적인 모자와 패션 모자는 물론 페도라, 헌팅캡 등 다양한 종류의 모자를 한 매장에서 원스톱 쇼핑할 수 있어 편리하다.
헬렌 카민스키 라피아 소재를 사용해 100% 수작업으로 만든 모자를 선보인다. 전국 주요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며 헬렌 카민스키 한국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김현정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