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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의 소중함 일깨우는 다섯 가지 이야기 광주 김치 명인 여섯 명의 김장수다
밥상 한 귀퉁이에 묵묵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치 한 보시기. 늘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잊기도 하지만 마음 속 한구석에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친정 엄마와 같은 존재다. 도대체 김치가 무엇이기에 김장이라는 대형 작업을 연중 행사로 치르는 것일까? 광주에서 김치 잘 담그기로 소문난 명인 여섯 명의 김치에 대한 수다 속에 그 해답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던 고경명의 대종갓집. 92세의 16대 종부(뒤쪽) 기묘숙 할머니가 바라보는 가운데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된다. (왼쪽부터) 소쿠리를 들고 있는 남색치마의 현숙희 씨, 마늘을 다듬는 김호옥 씨, 미나리를 다듬는 임화자 씨, 진한 감색 저고리의 고대희 씨, 열무를 다듬는 오명숙 씨, 배추를 들고 있는 박후임 씨.

김치는 이벤트다
광주 압천동 포충사 근처의 고원희 가옥이 이른 아침부터 시끌벅적하다. 이곳 고씨 종갓집의 딸이자 광주 김치 명인으로 잘 알려진 고대희 씨가 김장을 위해 부른 다섯 명의 손맛 좋은 지인들이 도착하면서 뿜어내는 기운 때문이다.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며 골라 온 재료들을 마당 한쪽으로 몰아두고 광에 있는 멍석을 꺼내어 넓게 펼쳤다. 비질을 해서 먼지를 턴 다음 광주리를 꺼내어 멍석에 펼치고 배추와 무처럼 크기가 큰 재료부터 자리를 앉힌다. 누군가가 총각무를 다듬기 시작하자 옆에서 마늘을 깐다. 손동작이 익숙해지자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된다. “아이고, 생강이 우째 이리 멀리 있다냐. 언니, 저기 생강 좀 주소.” “어따, 오늘 마늘이 진짜 좋다. 건과로 만들면 더 맛나겠다. 뭐든지 제철에 따라야 해. 아, 형님, 가만히 있지만 말고 알타리 좀 얼른얼른 찍어 박아부소.” “그라재, 그라재. 고추가 좋아야 김치 때깔이 좋재. 태양초 고추가 이렇게 벌개갔고 아주 지대로네. 김치가 맛있게 되겠다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해마다 반복되는 우리집 연중행사, 김장. 언제나 유쾌한 퍼포먼스이자 이벤트의 현장이다.

김치는 천연 영양제다
“우리 손주는 한 살이 안 되었는디도 지 엄마가 김치를 맥여. 그 어린 것이 우째 김치 맛을 아는지 입술을 달짝거리면서 맛을 보대. 김치를 먹어서 긍가, 날씨가 추워도 감기 한번 안걸려.” 열여덟 살 때부터 김장을 했다는 박후임 씨가 재료를 다듬으면서 은근슬쩍 김치 칭찬을 한다. 김치의 영양에 대한 과학적인 이론들이 밝혀지는 것을 보면 그의 말이 근거 없지는 않다. 김치는 배추와 미나리, 사과, 배 등은 물론 고춧가루, 소금, 젓갈, 마늘, 굴 등 개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 재료로 담근다. 이렇게 많은 재료를 버무려 만든 김치, 온갖 미량 영양소는 다 포함한다. “김치가 적당히 익으면 한 숟가락당 1억마리의 유산균이 생겨 면역력을 높여줍니다. 식이 섬유가 풍부해서 변비나 대장암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있지요.” 광주 보훈병원(062-602-6091)에서 영양사로 일하는 고은영 씨가 김치의 영양에 대해 설명한다. 영양학적으로 보았을 때 김치는 칼슘과 철분, 칼륨 등의 무기질이 풍부해서 불균형한 식사를 일삼는 현대인들에게 필수 식품이다. 매일 아침 비타민제를 챙기는 것도 좋지만 잘 익힌 김치 한 조각이 보약이라는 사실, 잊지 말기를.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김치지만 김장 한번 하려면 배추와 무, 미나리, 당근 등 채소부터 소금과 설탕, 고춧가루, 각종 젓갈류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재료가 필요하다. 이 재료들이 어우러지면서 몸에 좋은 영양소를 만들어낸다.

1 막 담근 김치를 독에 넣으면 그때부터 발효가 시작된다. 고춧가루의 매운맛과 소금의 짠맛이 시간이 흐르면서 김치에 독특한 신맛을 더한다.
2 동치미를 담글 때는 소금의 농도가 중요하다.

김치는 화학반응이다
“자네 김치 맛을 아는가? 김치가 맵다고만 하는 건 진짜 맛을 모르는 거야. 김치를 요로코롬 씹고 있으면 신맛, 짠맛, 단맛, 쓴맛도 들어 있재.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맛은 강해지고, 또 어떤 맛은 약해지지. 김치는 아트재, 아트.” 스스로를 ‘김치왕’이라고 자부할 만큼 김치 맛에 자신 있는 김호옥 씨. 김치는 사람과 자연이 완성하는 하나의 완벽한 예술품이다. 미생물과 시간이 만들어내는 그 오묘한 맛은 솜씨 좋은 요리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의 것이다. 이런 화학반응은 양념장을 버무려 배추잎 사이사이에 바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발효 과정을 거치며 채소에 남아 있던 화학비료 성분이 분해되고 고추와 마늘, 양파에 들어 있는 좋은 성분들이 활성화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젓갈이 변신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하다. 멸치젓과 새우젓 등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되면서 김치에 고유의 맛을 더하고 젓갈의 뼈는 칼슘으로, 지방은 몸에 좋은 유리지방산으로 변한다.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김치는 독특한 신맛을 갖추기 시작한다. 고춧가루의 단순히 맵던 맛이 소금의 짠맛과 만나 시간을 거쳐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절묘한 맛의 화음을 빚어내는 것. 여기에 옹기의 힘의 더해지면 마술처럼 김치 맛이 더욱 살아난다. 옹기는 김치의 산패를 막거나 연장시켜주는 역할을 자동으로 조절한다. 4℃를 유지할 경우 석 달까지도 산패를 면할 수 있는데 이 온도가 바로 응달에 놓인 옹기의 상태다.


3 김치는 손맛이다. 같은 재료, 같은 레시피라도 ‘누가’ 손을 댔느냐에 따라 나중에 김치 맛이 달라진다.
4 땅속에 묻힌 독은 김치가 발효되기에 최적의 장소다.



김치는 타이밍이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시간, 독에서 발효시키는 시간에 따라 김치 맛이 손바닥 뒤집히듯 변하는 것을 보면 인생뿐만 아니라 김장 역시 타이밍이 중요한가 보다. 김치를 처음으로 담그는 이라도 소금물 농도 재는 것과 배추를 절이는 타이밍만 잘 지키면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다. “농도는 2~3%가 가장 좋재. 물에 가만히 가라앉아 있던 달걀이 수면으로 둥실 뜨는 순간이 바로 그때야. 일고여덟 시간 절이면 김치의 아삭함이 사라져버려. 소금을 강하게 쓰면서 다섯 시간 정도가 딱 좋아.” 고대희 씨는 ‘절이는 도중에 한 번 뒤집어주는 것’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먹는 타이밍도 중요한데 담근 지 2주째(5℃의 저온에서 숙성할 경우)가 영양학적으로 미생물 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며 신맛 또한 가장 적당할 때다. 이 시기가 지나면 미생물 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신맛이 강해진다.

여러 가지 김치를 수묵화가 강완선 씨의 작품이 그려진 그릇에 담았다. 그의 작품은 12월 19일부터 12월 24일까지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만날 수 있다.


1 배추김치
재료 배추 3kg, 무 1kg, 쌀가루죽·굴 1컵씩, 액젓·마늘·밤 1/2컵씩, 김치용 고춧가루·고운 고춧가루·생강·대추·설탕·실고추 1/3컵씩, 굵은 대파 2컵, 배 1개, 소금 적당량 만들기 1 배추는 길이로 두 쪽을 내어 3% 농도의 소금물에 5시간 동안 절인 후 소쿠리에 건져 2~3시간 동안 물을 뺀다. 2 무는 배추와 함께 절인 뒤 큼직하게 썬다. 3 마늘과 생강, 밤, 배, 대추는 곱게 채 썬다. 4 대파는 4~5cm 길이로 어슷하게 자른다. 5 넓은 그릇에 쌀가루죽과 액젓, 고춧가루, 마늘, 생강, 설탕, 생굴을 넣고 버무린다. 채 썬 밤과 대추, 대파, 실고추를 마저 섞는다. 6 배추 잎 사이에 ⑤의 양념을 바르고 겉잎으로 배추를 싸서 항아리 안에 담고 꾹 누른다. 7 찬 곳에 하루 이틀 둔 다음 김치 국물의 간을 맞춘다.

2 돌산갓김치
재료 돌산갓 1kg, 멸치젓·고춧가=루 1컵씩, 파 100g, 다진 마늘 4큰술, 다진 생강 2큰술, 설탕·통깨 1큰술씩, 실고추 3g, 소금 적당량 만들기 1 돌산갓은 뿌리를 자르고 깨끗이 씻는다. 소금을 고루 뿌려서 2시간 동안 절인다. 도중에 위아래를 두세 차례 뒤집어준다. 2 절인 갓을 씻어서 건져 물기를 뺀다. 3 멸치젓에 물 1컵을 부어 끓인다. 소쿠리에 한지를 깔고 걸러 맑은 젓국을 준비한다. 4 파는 다듬어 가늘게 채 썰고 실고추는 3cm 길이로 짧게 자른다. 5 큰 그릇에 ③의 멸치젓국과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는다. 잠시 두어 불어나면 채 썬 파와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설탕, 통깨 등을 섞어 양념을 만든다. 6 절인 갓에 김치 양념을 사이사이 골고루 바르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한 달 이상 둔다.

3 파김치
재료 쪽파 3kg, (죽보다 되게 끓인) 쌀가루풀 1컵, 멸치젓 2컵, 다진 마늘 2/3컵, 다진 생강·고운 고춧가루 1/3컵씩, 김치용 고춧가루 1/2컵, 채 썬 양파 1컵 분량, 붉은 고추 2개, 소금 적당량 만들기 1 쪽파는 뿌리를 자르고 다듬어 깨끗이 씻는다. 농도 3%의 소금물에 잠깐 적셔 건진다. 2 붉은 고추는 깨끗이 씻어 꼭지를 따고 3~4cm 길이로 어슷하게 썬다. 3 넓은 그릇에 쌀가루풀과 멸치젓, 다진 마늘, 다진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고루 섞는다. 4 숨 죽은 쪽파를 ③의 양념에 넣고 고루 버무린 후 채 썬 양파와 붉은 고추를 넣어 고루 섞는다. 한 묶음씩 잡아 쪽파 줄기로 돌돌 묶는다. 5 항아리에 담고 한 번 눌러준 뒤 뚜껑을 닫고 하루 정도 상온에 두어 익으면 냉장고에 넣는다.

4 동치미
재료 총각무 20개, 총각무 속잎줄기 약간, 붉은 햇고추·풋고추 4개씩, 쪽파 30쪽, 마늘 1컵, 생강 1/2컵, 쌀가루죽 1컵, 쌀뜨물·소금·배 적당량씩 만들기 1 총각무는 크기가 고른 것으로 절여 물기를 뺀다. 크기가 큰 것은 반으로 가른다. 2 쌀뜨물에 소금을 녹여 풋고추와 붉은 햇고추를 삭힌다. 3 쪽파는 뿌리째 다듬어 총각무 절임 위에 올리고 함께 숨 죽인다. 4 마늘과 생강은 납작하게 쪼개고, 배는 껍질째 납작하게 썬다. 5 총각무 속잎줄기로 총각무 몸을 감고 어떤 것에는 고추를 끼워 함께 잡아맨다. 6 항아리 안에 총각무와 고추, 쪽파를 차곡차곡 담는다. 7 썰어놓은 마늘과 생강, 배를 군데군데 끼운 후 뚜껑을 덮고 하룻밤 둔다. 8 쌀가루죽에 농도 3%의 소금물을 섞은 김칫국을 ⑦에 붓는다. 

김치는 정이다
김장을 마치고 나면 모두가 둘러앉아 겉절이로 이른 저녁 식사를 한다. 상을 들고 서 있는 오명숙 씨. (상 왼쪽부터) 현숙희 씨, 고대희 씨, 김치를 찢고 있는 김호옥 씨, 박후임 씨,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는 임화자 씨.

“이거 남은 배추 잎으로 겉절이 할게, 저녁 먹고 천천히들 가소.” “자, 다덜 그릇 하나씩 챙기시게. 한 포기씩 줌세.” 여기저기 떨어진 잎사귀며 총각무 껍질 깐 거며 쓰레기를 주섬주섬 담고 양념 담았던 큰 고무 대야는 씻어서 엎어놓았다. 멍석은 다시 비질을 하여 깨끗하게 정리했다. 둘둘 말아 내년 가을을 기약하며 광에 집어넣으니 한바탕 소란이 막을 내린듯 조용하다. 몇 시간째 구부리고 있던 등이 쑤시긴 하지만 담가놓은 김치를 보니 마음이 든든하기만 하다. 밥상을 대충 차리고 숟가락 하나씩 들고 둘러앉아 겉절이를 반찬 삼아 밥 한 술 뜨니 꿀맛이다. 김치는 나누어 먹어야 제 맛. 남의 집 김치를 맛보며 그 집 안주인의 손맛을 나름 평가하기도 하고 우리 집 김치와 비교하기도 한다. 때론 입맛에 맞지 않는 김치를 만날 때도 있지만, 내가 먹는 음식을 그들도 먹고 있다 생각하니 어쩐지 같은 상에 앉은듯 훈훈한 마음이 느껴진다. 손끝에서 정 난다는 말, 김장철에 더욱 공감되는 우리네 속담이다.


<광주 김치 명인 6인, 김치 노하우 뒷담화>

서울에서는 보통 멸치젓을 많이 쓰재? 우리는 쉬지 않게 하려고 조기젓을 넣어. 정말 맛있게 담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조 중에 모조라고 있어. 그걸 푹 고아 밭쳐서 그 물로 담으면 국물이 그렇게 시원하고 담박할 수 없어. 모조가 없으면 지장(기장의 방언)을 쓰면 돼. - 전통 찻집을 운영하며 명가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후임 씨

풀 쑬 때 쌀이나 찹쌀보다는 조랑 보리밥을 이용해. 좁쌀을 고아서 육수를 내면 고스름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나거든. 배추김치 담글 때 생조기나 홍어를 넣으면 맛이 좋아. 여름 김치랑 총각김치 담글 때는 갈치젓이랑 황석어젓을 넣으면 맛이 깊어지지. 비법 백 개를 가르쳐줘도 그 맛을 잘 못 내더라고. 김치는 손맛으로 만드는 거지 뭐. - 임화자전통식품을 운영하며 김치축제 명인상을 수상한 임화자 씨

토하젓 알지? 민물 새우로 만드는 젓갈인데 이걸로 담근 김치로 상까지 받았어. 지금은 식당을 하니까 1년에 3천포기씩 담는데 여전히 토하젓으로만 담가. 우리 집은 묵은 김치가 유명해. 5년 된 것도 있는데 손님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그냥 주기도 해. - 새송정떡갈비집을 운영하며 광주전국김치축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오명숙 씨

할머니랑 친정 엄마 음식 솜씨가 참 좋으셨어. 우리 어머니는 육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 대파 잎이랑 양파, 생강 등 열댓 가지 채소는 들어가. 당귀나 황기, 구기자 같은 약초도 같이 넣고 끓이지. 그러면 나중에 김치에 시원하고 깊은 맛이 나지. 물도 중요해. 수돗물은 소독을 해서 맛이 없어. 내가 사는 무등산 근처는 물맛이 유독 좋아. - 무등산옥김치를 운영하며 김치축제 대통령상을 수상한 김호옥 씨

남들 과일 사 갖고 갈 때 나는 김치 만들어서 가곤 할 정도로 김치 담그는 걸 겁을 안 냈어. 내 비결은 육수에 디포리(손가락 두 개 굵기에 해당하는 국멸치)랑 표고버섯을 넣는 데 있어. 표고버섯을 넣으면 김치가 익으면 익을수록 개운한 맛이 나거든. - 남도 음식축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현숙희 씨

전라도 쪽은 묵은 김치가 특히 유명해. 내년 여름부터 먹을 김치는 소금 간을 짜게 하고, 양념은 적게 해야 빨리 쉬지 않거든. 나는 육수 낼 때 바지락, 황태를 삶아서 거기에 다시마랑 향신 채소를 넣지. 그러면 김치가 시원하거든. 그리고 사과로 단맛을 내면 아삭아삭한 맛이 오래가. - 서강정보대학 식품영양과 고대희 교수


박은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