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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모더니스트, 칠기
때로는 은은한 듯 화려하고, 때로는 강렬한 듯 고고한 칠기. 갈고 칠하고 기다리고, 고르고 바르고 기다리고, 그리고 칠하고 닦고…. 사람과 자연과 시간이 함께 빚은 칠기는 건강과 스타일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천연 식기이다. 게다가 요즘 들어 칠기가 더욱 다양하고 스타일리시해졌다. 칠기가 주방 안으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들어온 이유다.


‘칠기’라고 하면 조개껍질로 화려하게 장식된 나전칠기를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칠기란 옻나무 수액을 칠한 그릇을 통칭한다. 물푸레나무, 괴목 등 나뭇결이 아름답고 재질이 단단한 나무를 그릇 모양으로 깎아 6개월 정도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건조시킨다. 그중 틀어지고 갈라진 것은 버리고 상태가 좋은 그릇만 골라 생옻을 9~10번 정도 칠하고 갈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많은 이들이 옻칠한 목기로 제기나 발우만 알고 있는데, 최근의 칠기는 디자인이나 컬러가 심플하고 모던해져서 도자기나 유리 제품과 매치해도 잘 어울려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다.

1 먹빛유 1인 죽그릇은 12만 9천 원, 광주요 제품.
2 주요리나 샐러드에 어울리는 원형 큰 접시는 예맥 제품.
3 날렵한 라인과 나뭇결이 자연스러운 접시 세트는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
4, 11 뚜껑 있는 찻잔은 서울무형문화재 제품.
5 검은색에서 붉은색까지 세련된 그러데이션을 이루는 발우 세트는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 80만 원.
6, 9 찻잔은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
7 검정 발우 세트는 예맥 제품.
8, 10, 12 작은 찬기는 모두 서울무형문화재 제품.

옻칠의 두 얼굴, 생칠과 정제칠
옻칠은 크게 생옻과 정제옻으로 구분된다. 생옻은 7~8년 자란 옻나무에서 채취한 ‘생칠’에서 불순물만 제거한 상태다. 정제옻은 생옻을 가공해 기능을 보강한 것으로 투명도와 광택의 정도에 따라 몇 가지 종류가 있고, 정제옻에 자연 안료를 혼합해 잘 개면 다채로운 ‘색칠’이 된다. 생옻은 처음에는 노랗다가 마르면서 약간 거무스름해진다. 생옻을 묽게 쓰면 목기의 색깔이 그대로 나오고, 생옻을 몇 번 덧칠하느냐에 따라 톤이 다른 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 “본래 옻칠의 기본은 생칠이야. 특이한 것은 건조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70~80%의 습도가 필요하다는 거지. 습기가 없으면 절대로 마르지 않아. 옻 색깔이 제대로 피려면 몇 년 걸려. 정제옻에 안료를 넣어 개면 색깔을 낼 수 있는데, 옛날 임금님이 쓰던 것은 모두 주칠(붉은색)이었지.” 서울시무형문화재 1호 생옻칠장 신중현 씨의 설명이다.

다양한 컬러의 정제옻, 즉 ‘색칠’로 화려하게 색깔을 입히거나 그림을 그린 것이 ‘채화칠기’, 흑칠을 한 뒤에 표면을 자개로 장식한 것이 바로 ‘나전칠기’다. 전통 옻과 거의 비슷한 도료로 ‘캐슈cashew’라는 것이 있는데, 옻칠과 성분이 닮아 칠한 모습이 옻칠과 거의 같다. 하지만 전통 옻칠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옻칠은 마를 때 습도가 필요하지만 캐슈는 자연 상태에서 잘 마르고 가격이 저렴하며 물·산·알칼리·약품·열 등에 강해 옻칠 대용으로 많이 이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캐슈가 옻칠로 둔갑해 판매된다는 점. 캐슈는 포르말린 냄새가 강하게 나는 데 비해 전통 옻칠에서는 역한 냄새가 나지 않으므로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한다.

(왼쪽) 간결해서 돋보이는 옻칠의 멋
식탁 위가 아니더라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두면 멋을 더해줄 자개 장식 화병과 채화칠기 함. 붉은 옻칠 위에 자개로 장식한 호리병 모양의 화병에는 송이가 큰 꽃 한두 송이만 꽂는 것이 포인트다. 회화적인 기법으로 나무와 새를 그려 넣은 채화칠기 함에서는 섬세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보석 대신 예쁜 사탕을 몇 개 넣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좋을 듯. 이태원 코리아나 앤틱에서 판매하는 화병은 국내 장인이 만든 가치 높은 작품은 아니지만 장식품으로 사용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동그란 채화칠기 함은 옻나무 갤러리 제품이며 20만 원.

(오른쪽) 눈과 손이 먼저 행복해지는 옻칠 반상기
물푸레나무의 자연스러운 나뭇결이 돋보이는 반상기와 물잔의 감촉은 혀끝보다 눈과 손이 먼저 알아본다. 반상기 세트는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으로 80만 원. 잔잔한 꽃무늬가 그려진 과기는 채화칠장 김환경 작품으로 서울무형문화재 전시판매장에서 14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뚜껑 달린 옥색, 붉은색 찻잔은 옻나무 갤러리 제품으로 개당 6만 원. 다관은 6조 다기 세트의 일부로, 나전장 정명채의 작품이며 1백만 원. 서울무형문화재 전시판매장에서 판매한다. 프랑수아즈 티포트와 장미·국화 조각 간장병은 갤러리 아리아케 제품. 줄무의 주병과 잔은 광주요 제품. 술잔과 앤티크 찻잔을 옻칠 받침과 매치해도 잘 어울린다. 빨간 옻칠 화병은 코리아나 앤틱 제품이며 2만 5천 원.


(왼쪽) 어울림의 미학 칠기&본차이나
클래식한 서양 도자기에 옻칠 접시와 물잔을 믹스 매치해 고즈넉하고 단아하게 가을 분위기의 상차림을 완성했다. 칠기를 도자기나 크리스털과 함께 놓아도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오히려 고급스러움이 배가된다. 디너 플레이트 위에 놓인 나무색의 찬기는 큰 것이 7만 원, 작은 것은 4만 원. 안쪽과 바깥쪽을 주칠과 흑칠로 완성한 물컵은 개당 9만 원. 찬기와 물컵 모두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 센터피스로 사용한 직사각 접시는 세라믹요 제품으로 7만 5천 원.

(오른쪽) 궁중식 티타임 다반
옛날 궁중에서는 옻칠 다반에 이처럼 한쪽에 차를, 다른 한쪽에 다식이나 한과, 떡을 담아 즐겼다고 한다. 이 세팅은 요즘의 모던한 차림과 비교해 조금도 촌스럽거나 뒤지지 않는다. 궁중에서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서울시무형문화재 1호 생옻칠장 신중현 씨가 만들었다. 다구를 올린 직사각 칠기 쟁반은 옻나무 갤러리 제품. 3만 원. 다기 세트는 세라믹요 제품.


(왼쪽) 화려하고 깊은 멋, 채화칠기
당초문, 국화문 같은 전통적인 문양과 패턴이 아니라 구절판 안에 담겨 있을 법한 음식을 색깔 있는 정제옻으로 그려 넣으니 신선하고 재미나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채화칠기 구절판. 와인 마실 때 이렇게 산뜻한 구절판에 전통 안주를 깔끔하게 담아내면 고급스러우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옻나무 갤러리 제품으로 50만 원. 와인잔과 언더록스 잔은 크리스탈레리아 제품. 전통 안주 세트는 ‘안정현의 솜씨와 정성’(02-542-6688)에서 구입할 수 있다.

(오른쪽) 식탁보가 필요 없는 아름다운 칠상
직사각형 칠상은 광주요 제품. 그 위에 놓인 나전 장식의 팔각 접시는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으로 15만 원. 붉은색을 띤 주칠 돌상은 생옻칠장 신중현 작품으로 서울무형문화재 전시판매장에서 70만 원에 판매한다. 그 위에 놓인 나전 밀찻찬은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으로 개당 7만 원. 나전 장식의 소반은 최종관 채화칠기 제품으로 1백50만 원. 붉은 꽃이 그려진 채화칠기 명함함은 예맥 제품으로 5만 5천 원. 타원형의 자개상은 나전사랑 제품. 찻주전자와 백자 음각 목단문 찻잔은 광주요 제품.

칠기에 관해 꼭 알아야 할 세 가지
1 칠기가 왜 좋은가?
목기에 옻칠을 입힌 칠기는 놀라울 정도로 가벼워서 좋다. 게다가 옻은 특유의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이 품위 있고, 부드러운 감촉과 좋은 향,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빛깔이 우러나는 매력을 지녔다. 강도가 높아 깨지지 않으며, 옻은 천연 방부제를 함유하고 있어서 살균력이 강하므로 위생적이고 밥을 담아도 잘 쉬지 않는다. 천연의 무공해 도료인 옻칠은 일단 건조가 되면 먹어도 탈이 없는 칠이어서 건강에 무해하니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웰빙 그릇인 셈. “최근에는 한 아이템당 1백~2백 개씩 만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최종관 채화칠기의 김경자 씨는 이야기한다. 특히 입에 직접 닿는 수저의 경우, 베트남이나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값싼 나무 수저가 아닌 먹어도 되는 옻칠이 된 수저를 선택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 없다.

2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관리할까?
씻을 때는 거친 녹색 수세미가 아닌 행주나 부드러운 부엌용 스펀지로 가볍게 닦는다. 기름기가 있으면 주방 세제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내열성이 강해 악조건에서도 수명이 오래 지속되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물에 장시간 담가두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씻은 후에는 마른 행주로 물기를 닦고 보관할 때는 직사광선을 피한다. 이렇게 관리하면 곰팡이나 좀이 생기지 않고, 대를 물려 쓸 수 있을 정도로 반영구적이다.

3 어디서 살까?
최종관 채화칠기 채화칠기장 최종관 씨의 예술적인 장식품은 물론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반상기, 다기 세트, 발우 세트, 접시 세트, 수저 등 다양한 식기류를 판매한다. 전통 찻집 겸 갤러리 ‘나무도 꿈꾼다’도 함께 있다. 문의 02-338-3636

옻나무갤러리 쌈지길 2층의 옻칠 공예 전문 매장. 전통적 예술성과 현대적 실용성이 조화를 이룬 젊은 작가 박정인의 칠기와 액세서리를 만날 수 있다. 문의 02-353-3953

서울무형문화재 전시판매장 나전칠기장, 생옻칠장, 채화칠장 외에도 옹기장, 자수장 등 무형문화재의 작품들을 판매한다. 인사동 쌈지길 3층. 문의 02-722-1001

가회동 생옻칠장의 집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생옻칠장 신중현 씨의 한옥에 가면 그의 작업 과정은 물론 작품까지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생옻칠한 소반과 상, 다반, 옛 밥통 등이 눈에 띈다. 문의 02-735-5757

옻칠데코아트센터 배재대학교 칠예과 교수와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을 직영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www.ottchildeco.com)에서 만날 수 있다. 문의 042-520-5757

통영옻칠미술관 칠예가이자 전 숙명여대 미술대학 교수를 지낸 김성수 씨가 나전칠기의 본고장 통영에 세운 옻칠 전문 미술관. 이곳 아트 숍에서는 현대 칠예 작가들이 만든 다양한 칠예 생활용품과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문의 055-649-5257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