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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로 소문난 주한 외국인 60명이 뽑은 한국의 맛
음식에 대한 이해가 폭넓고 국제적인 미각을 지닌 주한 외국인에게 스무 살 된 <행복>이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전통 음식은 무엇이냐고. 그 결과를 모아 ‘한국의 맛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우리에겐 평범해 보이는 음식들이 외국인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니, 멋진 활약에 박수를 보낸다. 이 음식들이 ‘디자인’이라는 날개를 달고 세계 최고 음식으로 대접받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전통 요리 연구가 안정현 씨가 우리 음식과 꽃으로 한 폭의 그림을 그렸다.


1 너비아니
육류 음식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바로 ‘불고기’. 아무리 한국 음식에 관심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bulgogi’ 하나쯤은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 전통 음식의 대표 주자다. 쇠고기 등심이나 우둔을 얄팍하게 저며 간장, 설탕, 다진 파, 다진 마늘, 참기름 등으로 너무 짜지 않게 양념해 센 불에서 구워내면 처음 맛보는 사람이라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편안안 음식이다. 스타일링 제안 너비아니를 마치 서양의 스테이크처럼 겹겹이 쌓아 올려 담고 양파와 꽈리고추, 통마늘을 양념 없이 구워 곁들이니 깔끔하고 세련돼 보인다. 동양화처럼 여백의 미가 느껴지도록 장식용 꽈리줄기를 놓는 것이 포인트. 꽈리의 붉은 색감은 접시 대신 사용한 돌판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준다.

2 초계탕  ‘삼계탕’의 인기가 이렇게 높은 줄 몰랐다. 외국인들도 한국 최고의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고 여름철에 즐겨 먹는다. 뜨거운 삼계탕이 부담스럽다면, 차게 식힌 닭 육수를 깻국과 섞어 부드러운 닭살을 찢어 넣은 ‘초계탕’이 어떨까. 초계탕은 임금님이 즐겨 먹던 별미 요리로, 삼계탕 맛에 반한 외국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할 만한 전통 요리다. 스타일링 제안 노란 지단과 오이 고명으로 산뜻하게 색을 낸다. 부드러운 소면(혹은 메밀국수)을 말아 먹어도 별미. 긴 사각 접시에 초계탕과 소면을 담는다. 흰 접시를 캔버스라 여기고 왁스플라워 가지로 여백을 살려 선을 준다. 초계탕에 작은 꽃 한 송이 띄우는 센스도 잊지 말자.

내게 가장 한국적인 것을 꼽으라면 인삼 향이 가미된 음식을 드는데, 그중 삼계탕이 최고다. 한여름철 몸을 보양해야 할 때, 혹은 스태미나를 증진할 요량으로 나는 삼계탕을 챙겨 먹는다. 그 맛은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없이 복합적이다. 먼저 구수한 닭 국물을 마신다. 다음으로 부드럽게 입에 감기는 닭고기를 맛본다. 끝으로 닭 속에 채워 넣은 찹쌀과 인삼, 한약재를 음미할 차례. 특히 음식과 어우러진 한국 대추는 맛이 기가 막히다. - 밀레니엄 서울 힐튼 엔터테인먼트&프로모션 매니저 마크 시어스


3 비빔밥과 된장찌개 비빔밥은 부동의 1위. 해초비빔밥, 육회비빔밥 등 구체적인 메뉴가 등장했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하늘을 사로잡은 비빔밥 기내식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나물과 된장찌개가 어우러진 비빔밥은 누가 뭐래도 가장 한국적인 맛인 듯싶다. 스타일링 제안 한 그릇에 밥과 나물을 함께 담아 내기보다는 밥과 나물을 따로 담아 원하는 재료를 원하는 만큼만 넣고 비빌 수 있도록 배려한다. 모던한 라인의 흰색 볼과 사각 접시는 색색의 나물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밥 위에 얹은 초록 가니시가 장식 포인트.

채식을 주로 하는 편이라 다양하고 신선한 채소와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 처음에는 밥과 여러 가지 재료를 함께 비비는 게 어색했지만 이제는 고추장도 넣고 슥슥 잘 비빈다. 싱싱한 자연의 맛이 그대로 담긴 비빔밥에 구수한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된장에는 몸에 좋은 영양소도 풍부하다고 들었다. 몸에 이로운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간 푸짐한 비빔밥과 된장찌개를 먹고 나면 몸이 한층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 폭스바겐코리아 이사 하이케 바이마르

4 제육보쌈 삼겹살구이, 제육볶음, 보쌈 등이 순위권에 든 돼지고기 요리. 그중 불판 위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이 가장 인기가 높았지만, 몇몇 미식가들은 제육보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쌈용 절인 배추나 보쌈김치에 대한 외국인의 오마주는 놀라울 따름이다. 제육보쌈은 맛과 담음새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음식으로 생각된다. 스타일링 제안 배추절임 대신 올리브유와 참기름에 살짝 볶은 묵은지를 놓고, 보쌈김치 대신 낙지와 무, 미나리, 잣 등을 무쳐 곁들이면 돼지고기 수육의 맛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검정 접시 위에 나뭇잎을 깔고 세 가지의 음식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따로따로 정갈하게 담았다. 송송 썬 쪽파와 나뭇잎의 초록빛으로 음식 전체에 고급스러운 생동감을 주는 것이 포인트.

보쌈은 ‘따뜻함 vs. 차가움’ ‘고기 vs. 채소’의 맛이 조화를 이룬, 비교하자면 홈메이드 햄버거 같은 음식이다(프렌차이즈 정크 푸드에 대한 악평은 잊어주시길). 보쌈 역시 햄버거처럼 만들기도 간단하고 접하기도 쉽지만, 반면 제대로 맛을 내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매콤하면서도 적당히 달달한 양념과 김치의 사각한 질감, 장담컨대 이 맛은 젓가락 대신 손으로 싸 먹어야 제대로다. 나는 같은 음식이라도 최대한 다양한 곳에서 맛보려는 편이라서 특별히 단골집은 없다. -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 총주방장 필립 바크만

5 갈비찜, 갈비구이, 떡갈비 갈비찜은 스테이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운 고기의 맛으로, 갈비구이는 ‘코리아 BBQ’라는 이름으로 육류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또 고기가 이다지도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듯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떡갈비. 정성과 정갈함을 보여주기에는 떡갈비만 한 것이 없다. 스타일링 제안 옹기 냄비에 밤, 당근, 은행, 대추, 전복 등을 고루 담고 한가운데 계피 한 토막과 솔잎을 꽂으면 보기에도 멋스러울 뿐 아니라 외국인에게 익숙한 계피 향이 더해져 음식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도록 돕는다. 참숯을 넣은 앙증맞은 화로에 석쇠를 얹고 갈비를 올리면 별도의 스타일링이 필요 없는 식탁 위의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

스테이크처럼 심플하지 않고 꽉 찬 느낌의 갈비찜은 푸짐해 보이는 첫인상을 주므로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대접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기도 하다. 돌솥에 담겨 나오는 갈비찜은 오랫동안 온도가 유지되어 맛있게 먹기 좋다. 갈비와 함께 곁들이는 밤, 은행, 버섯 등이 아름다운 색과 모양을 낼 뿐만 아니라 고기와 함께 다양한 맛을 내기 때문에 먹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한데 먹기가 불편해서 손님들이 곤란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그랜드 하얏트 서울 총주방장 시드니 하디

그 밖의 추천 요리들
감자탕
쫄깃한 육질이 일품인 돼지고기에 한국식 양념과 향신료를 가미한 뒤 진한 육수에 팔팔 끓인 감자탕! 내가 사랑하는 한국 음식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다. 감자탕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점심 식사로 혹은 저녁 식사로, 때로는 야식으로도 즐긴다. 감자탕을 먹고 난 뒤의 든든함이란! 한겨울에 특히 그렇다. 게다가 감자탕이 테이블 위에서 보글보글 끓는 동안 각종 신선한 재료가 익어가는 모습을 눈으로 즐기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감자탕은 육류, 생선과 영양 만점 채소의 조화라는 한국식 특유의 조리법이 드러나는 메뉴다. 감자탕의 먹음직스러운 진한 국물을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괸다. 서울에 많은 감자탕 집이 있지만 내가 가장 잘 가는 곳은 용산역 부근의 감자탕 식당들로, 이곳에서는 살이 푸짐하게 붙어 있는 돼지 뼈로 만든 감자탕을 맛볼 수 있다. - 밀레니엄 서울 힐튼 엔터테인먼트&프로모션 매니저 마크 시어스

순두부찌개 특히 만두를 넣은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 계란 하나를 넣고 나면 밥을 진짜 많이 먹게 된다. 토속적이고 서민적인 음식이긴 하지만, 항상 뚝배기에 촌스럽게 서빙되는 탓에 그 가치가 한정식에 비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아쉽다. - 미키모토 코리아 지사장 히데유키 카미코쿠료

잡채 나라마다 특색 있는 면 요리가 있고, 내 본국인 싱가포르에도 면요리가 발달해 있다. 그런데 잡채는 면부터 독특하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과 포틀럭 파티를 했는데 그때 어떤 직원이 만들어 온 것을 처음 먹어보고 그 후로는 마니아가 되었다. 아이들에게도 간식으로 아주 좋다. 덕분에 아내가 한국 요리 중에 잡채를 제일 잘 만든다. 나의 강력 추천으로 이번 달 프레이저 스위츠 요리 교실에서는 잡채를 만들 예정이다. - 프레이저 스위츠 총지배인 제리 간

유황오리 요리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놀부 유황오리 집에서 처음 먹어봤다. 유황오리의 배 속에 찹쌀, 흑미 등이 들어 있는데 오리 고기와 함께 먹는 게 무척 특이하고 맛있었다. 그 고소한 맛에 반해 가족들과 한국 여행(휴가 때 직접 차를 몰고)을 할 때에도 시골에서 유황오리 요리를 찾아 먹었을 정도다. - 노보텔 강남 총지배인 제롬 스투베르

낙지볶음 낙지볶음, 육개장, 떡볶이 같은 매운 음식을 무척 즐기는데, 한국 사람들이 내 입맛을 알고 나면 다들 토종 한국인 같다며 놀라워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 음식에 딸려 나오는 갖가지 반찬이 좋다. 여기에 김치는 빠뜨릴 수 없는데, 특히 오이소박이는 진정 최고라고 생각한다. 낙지볶음을 특별히 꼽은 이유는 멕시코나 태국의 매운맛과는 다른 한국 음식만이 지닌 독특한 매운맛을 가장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 엘카 코리아 사장 크리스토퍼 우드

김치찌개 정말로 맛있는 김치찌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태국의 톰얌쿵 수프 못지않게 맛있다. -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 서기관 이와모토 시게이사

부대찌개 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 소시지, 햄, 스팸 그리고 라면이 국물과 이루는 조화는 굉장하다. 동부이촌동에 있는 부대찌개 집에 2년 동안 50번도 넘게 갔을 정도. 한국을 며칠 떠나 있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다. - 미키모토 코리아 지사장 히데유키 카미코쿠료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