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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생각나는 만화책 비디오 그리고 부침개
회색 구름의 움직임이 연기를 피워놓은 듯 빨라지는 품새가 심상치 않다.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 하늘 저편이 컴컴해지면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동무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잘 가라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이내 ‘쏴아’ 하고 쏟아지는 소나기가 원망스럽다. 언제쯤 그치려나,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팔을 걷어붙이시며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비 오는데 부침개나 부쳐 먹을까?” 뚝딱뚝딱 뭔가 써는 것 같더니 곧이어 ‘차르르~’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온 집 안에 진동한다.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어느덧 사라지고 코를 벌름거리며 곧 먹게 될 부침개 맛을 기대한다. 왜 하필 비 올 때 부침개 생각이 간절해지는 걸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면 밀가루 반죽이 기름에 지져지는 소리가 연상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어쨌든 입에 넣으면 ‘바삭’ 소리가 나는 부침개 한 장으로 눅눅한 장마철이 기분 좋아진다.

예고 없이 비가 오듯, 부침개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불현듯 찾아온다. 부침개는 냉장고를 열어서 당근이나 대파, 부추 등 손에 잡히는 채소를 이용하는 즉석 음식인 셈. 가장 만만한 것이 김치다. 잘 익은 김치의 고춧가루를 대충 훑어내고 돼지고기, 양파와 함께 송송 썰어 밀가루 반죽에 섞어서 지지면 끝. 밀가루에 부침가루나 튀김가루를 섞으면 더 바삭바삭해진다. 만드는 방법이 참 간단한 음식인데도 빗소리를 배경 삼아 먹는 한 접시 김치전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밀가루 대신 녹두가루를 많이 넣어 만드는 부침개(녹두전 또는 빈대떡이라고 한다)도 단골 메뉴다. 찬 성질을 지닌 녹두는 열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어서 더위 타는 여름날에 먹으면 좋다. 녹두를 불리고 가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음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백화점과 유기농 전문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시판 녹두가루를 이용해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 녹두가루는 점성이 낮아서 전으로 부칠 때 잘 부서지므로 멥쌀가루를 적당하게 섞는다. 이때 비율은 5:1에서 8:1 사이. 팬에 식용유를 넉넉하게 부어서 튀기듯 구우면 바삭바삭한 녹두전을 맛볼 수 있다. 녹두와 찰떡궁합 식재료는 고사리와 숙주, 버섯, 돼지고기, 묵은 김치. 이 중 한 가지밖에 없더라도 낙담할 필요 없다. 광희시장에 있는 빈대떡 가게 순희네(02-2264-5057)는 녹두가루에 오로지 숙주나물 한 가지만 들어가는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역시 전은 재료보다 만들어서 그 자리에서 먹는 게 제 맛인 것 같다.

비 소식이 잦아진다. 가요나 영화에서 아무리 비를 낭만적으로 묘사해도 비가 오면 꿉꿉해지는 빨래처럼 마음도 찌뿌드드해지기 일쑤다. 그럴 땐 부침개 한 판을 부치자. 지글지글 부침개 익는 냄새를 맡으면 마음마저 평화롭다. 그렇게 우리 어머니들도 부침개를 부치며 긴 장마를 나셨나 보다.

시판 녹두가루 이용한 빈대떡
반죽 재료 녹두가루 11/4컵, 멥쌀가루 1/4컵, 물 11/2컵, 소금·식용유 약간씩
고명 재료 숙주 30g, 도라지 40g, 줄기째 씻은 배추김치 80g, 양파 1/4개, 쪽파 20g, 다진 돼지고기 100g, 달걀 1개, 쑥갓·저민 홍고추 약간씩
양념 재료 소금 1/2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생강즙·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녹두가루와 멥쌀가루, 분량의 물을 고루 섞어 냉장고에 20~30분 동안 넣어 휴지시킨다.
2 숙주와 도라지, 배추김치, 양파, 쪽파는 송송 썰어 분량의 양념을 반 덜어서 밑간한다.
3 남은 양념은 다진 돼지고기에 넣는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②와 고루 섞는다.
4 달걀을 잘 풀어 ①의 녹두 반죽과 ③의 고명에 넣어 고루 섞고 소금으로 간한다.
5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른 후 반죽을 떠 넣고 쑥갓과 저민 홍고추로 장식한 후 노릇하게 부쳐 낸다.




박은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