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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한 그릇 양식 셰프가 만든 일품 한식
국밥과 냉면, 오래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면 든든하고 맛 좋은 우리 대중 음식이다. 최근 이름 높은 셰프 세 명이 제 식대로 국밥과 냉면을 만들어 팔고 있다. 셰프가 만든 한 그릇은 과연 어떻게 다를까?

임정식 셰프
평양냉면 마니아의 도전


지난 6월 4일, 월향 여의도점에서 특별한 팝업 다이닝이 열렸다. ‘정식당(2017 미쉐린 서울 가이드 1스타)’의 임정식 셰프가 평양냉면 팝업 다이닝을 선보인 것. 올해 3월에는 국밥, 4월에는 쌀국수, 마침내 평양냉면까지. 임정식 셰프가 냉면을 먹은 지는 2년이 채 안 된다. 어릴 적 함흥냉면의 질긴 면을 한 번 먹은 뒤 냉면은 입에도 대지 않던 그가 지금은 전국 냉면집을 순회하는 평양냉면 마니아가 됐다. 그의 SNS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평양냉면 사진이 올라올 정도. 한 가지에 꽂히면 끝까지 파고들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임정식 셰프의 열정과 집념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그 이유를 물으니 “맛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접근이에요”라고 답한다. “파인 다이닝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전 세계적 추세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는 높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것도 한몫하지요. 이를 돌파할 무언가를 찾다 보니 대중적이면서도 전문성을 갖춘 음식이 있더라고요. 그중 하나가 평양냉면이에요.” 이날 미리 예약하고 찾아온 손님만 5백 70명. 임정식표 평양냉면의 육수는 쇠고기를 푹 고아 맑게 우려냈다. 그는 전문 제면 시설을 갖추지 못한 탓에 메밀면의 식감이 살짝 아쉬웠다는 말을 덧붙였다. “밀가루를 반죽하면 글루텐이 생겨 쫀쫀한 반면, 메밀면은 공기와 접촉하면 금세 말라 툭툭 끊어져 버립니다. 평소 잘 아는 메밀면집 사장님을 찾아가 몇 차례에 걸쳐 면을 뽑았어요.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임정식 셰프는 ‘평화옥’이라는 이름으로 제대로 된 냉면을 파는 한식당을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냉면이야말로 한국인의 일상이고 가장 접근하기 쉬운 한식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친숙한 음식을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싶습니다.”


박찬일 셰프
매일 먹고 싶어 만든 돼지국밥


기자 출신이자‘글 쓰는 요리사’로 불리는 박찬일 셰프는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양식 요리가 전공이지만, 글로는 한식 이야기를 훨씬 많이 썼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오픈한 한식당 ‘광화문국밥’에서 맑은돼지 국밥과 냉면을 판다. “이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만들어도 팔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하루는 국밥 먹고, 하루는 냉면 먹으면 되겠다 싶어서 두 가지 음식을 주로 만들기로 했어요.(웃음) 요리 과학을 익힌 입장에서 한식 조리 방법을 서양식으로 표준화하고 간결하게 만들면 식당을 운영하기도 수월할 것 같았고요.” 하지만 생각과 실제는 사뭇 달랐다. 계량화한 레시피를 지키며 표준화한 과정을 따라 만들어도 날마다 맛이 변했다. 그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느라 지금도 좌충우돌하는 중. 이곳의 돼지국밥은 고기로 우려낸 맑은국이다. 고기와 부추, 약간의 파 외에 별것 없는 말간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감칠맛이 가득하다. 냉면은 다소 심심할 정도로 깨끗한 맛. 앞서 ‘좌충우돌’이라 표현했지만, 국밥과 냉면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무척 의미 있는 시도다. “맛 좋은 요리를 만드는 음식점 주인들은 돈 좀 벌면 주방 일을 그만두거나 나이가 들어 돌아가십니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요. 이런 생각을 하는 요리사가 저뿐 아닐 겁니다. 앞으로 젊은 요리사들이 새로운 형태의 국밥과 냉면을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옥동식 셰프
버크셔K로 끓인 돼지곰탕


옥동식 셰프가 만든 돼지국밥은 마치 소꼬리로 끓인 곰탕 같다. 물처럼 맑고 투명한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하고 담백하다. 미식가들은 그의 국밥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장르, ‘돼지곰탕’을 구현해냈다고 평한다. 그는 어쩌다 버크셔K로 돼지곰탕을 만들었을까? “‘이 식당은 이것만 잘해!’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이도 저도 아닌 한식 말고 좋은 재료로 한 가지 음식만 만들어도 맛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요. ” 그는 여러 호텔과 레스토랑의 총괄 셰프로 일하면서 주방에서 버크셔K를 2년 넘게 사용했다. 고기 조직이 굉장히 치밀해 쫄깃하면서 부드러운 식감에 반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하던 당시, 주방 스태프 중 한 명이던 온유민 셰프(현재 ‘옥동식’ 수석 셰프)가 자투리 고기로 국을 끓인 게 돼지곰탕의 계기가 됐다. 무와 파만 넣어 끓였는데, 국물 맛이 기가 막혔다는 것.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목구멍을 열어놓은 것처럼 국물이 쑥쑥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고.

버크셔K가 워낙 고가인 만큼 단가를 조절하기 위해 앞다릿살과 뒷다릿살을 하루정도 숙성한 후 압력으로 삶는다. “돼지고기를 삶는 과정에서 공기와 접촉하면 누린내가 심해집니다. 처음 버크셔K로 돼지곰탕을 개발할 때는 압력솥을 사용했어요. 음식점에 맞는 대용량을 찾다가 약탕기를 발견했어요. 대형화된 수비드 머신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는 잘 익은 고기를 얄팍얄팍 썰어 놋그릇에 밥과 함께 담고 국물을 토렴(국수나 밥 위에 뜨거운 국물을 여러 번 부었다 따랐다 하면서 데우는 과정)해서 낸다. 깍두기와 열무김치, 시원한 보리차와 함께 차려주니 근사한 독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다. 하루 딱 1백 그릇만 판매하는 그의 돼지곰탕은 줄 서서라도 맛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촬영 협조 광화문국밥(02-738-5688), 옥동식(010-9140-9911), 월향(02-782-9202) 

글 정규영 기자, 김혜민 기자 사진 이경옥 기자,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