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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식 전통 소주 빚는 청년 브랜 힐의 토끼소주
지난해 2월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청년 브랜 힐Bran Hill은 토끼Tokki라는 이름의 소주를 출시했다. 미국인이 만든, 미국에서 빚는, 미국에서만 판매하는 소주라니! 다소 어리둥절한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토끼해이던 2011년 한국을 찾아 소주 만드는 법을 배웠을 정도로 열정 넘치는 한 청년이 전하는 우리 술 이야기.

브루클린의 양조장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에서 토끼라는 이름의 수제 소주를 생산하는 브랜 힐. 
“점성이 높은 한국의 찹쌀로 만든 힐의 소주에는 당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찹쌀이 천연적으로 단맛을 내기 때문에 따로 맛 내기 위해 정제 설탕이나 첨가물을 넣을 필요가 없다. 그는 전통적인 소주 제조법을 따라 소맥 가루에서 배양해 얻은 누룩을 사용한다. 이렇게 효소와 효모를 배양하는 데는 꼬박 3주일 반의 시간이 걸린다(For his soju, Hill’s using chap ssal, a Korean sticky rice that’s very high in sucrose. Because of the natural sugars, sweeteners like refined sugars or additives don’t need to be added to make the spirit palatable. He’s also employing Nuruk, a Korean yeast cultivated from ground wheat in the traditional soju-making method. Cultivating the enzymes and yeasts this way takes about three and a half weeks)” _ 2017년 1월 25일 자 기사 중

로어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카페 라운드 케이에서는 매주 우리나라의 다양한 소주를 선보이는 소주 바를 운영한다.

미국 청년이 소주를 만들게 된 사연
달빛 아래에서 술 마시는 즐거움에 대해 노래한 당대 최고의 시인 이백처럼 달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적 청취를 아는 이가 있다. 브랜 힐은 “달과 함께 술을 마신다면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다(When you drink with the moon, you’re never alone)”라는 표어 아래 풍류를 즐기며 소주를 빚는다. 토끼소주는 브루클린 레드훅 지역에 위치한 밴 브런트 스틸하우 스에서 생산하는 수제 소주로, 쌀과 누룩을 발효시키고 증류하는 우리의 전통 방식을 따른다. 이곳의 대표 양조자이자 토끼소주를 만든 서른세 살 청년 브랜 힐은 대학 시절 자신의 첫 맥주를 만들고 스물한 살 때부터 양조장의 견습생으로 일했을 만큼 술과 음주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위스키 제조에 일가견 있는 웨일스계 외가와 와인 만들기가 일상이던 그리스계 친가의 피를 물려받은 그는 자신의 핏속에 알코올이 흐른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문화와 술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그를 매료시켜온 일. 그 덕분에 지금까지 70여 개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술을 접했다. 한국을 찾아 술 빚는 법을 배운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케나 소주처럼 쌀을 이용한 술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전까지 쌀을 재료로 사용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중에서도 한국 술에 관심이 간 건 여럿이 함께 어울려 마시고, 잔을 주고받고, 안주를 곁들이는 등의 술 문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브랜 힐이 직접 손으로 빚은 누룩. 그는 멥쌀과 찹쌀의 당도 차이와 술로 빚었을 때 어떻게 다른지를 기막히게 풀어냈다. 
소주병에 몇 번째로 만든 것인지 손으로 일일이 쓴 기록지를 붙인다. 라벨은 친구와 함께 브랜 힐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한국의 달 토끼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한국 전통주의 매력에 빠지다
그는 1년 반가량을 한국에 머물며 수수보리 아카데미(경기대학교와 농업실용화재단이 공동으로 설립한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청주와 탁주, 막걸리, 소주, 약주, 동동주 등 한국의 전통술 제조법을 배웠다. 틈나는 대로 전국의 양조장을 돌아보고, 다양한 전통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토록 멋진 술과 음주 문화가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퍽 안타까웠다. “요즘 판매하는 초록병 소주는 대개 쌀과 함께 고구마, 타피오카 등 전분에서 추출한 주정에 물과 감미료를 섞어 만드는 희석식 소주예요. 전통 소주는 쌀과 누룩, 효모, 물을 재료로 사용하지요.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등 지역별로 만드는 방법도 달라 맛과 향이 당연히 달랐고요. 초록병에 담긴 소주와 살균 막걸리가 나오기 전 한국 전통 소주와 막걸리는 훨씬 고급스럽고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술이었어요.” 뉴욕에서 소주를 출시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다. 그야말로 한식 붐이라 할 만큼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효 식품을 이야기하고 어느 때보다 한식이 주목받고있지만, 이와 어울리는 한국 술을 찾기란 쉽지 않았던 것. 고급 한식 레스토랑에서조차 서민 술 이미지가 강한 희석 소주나 살균 막걸리를 음식에 매치하기 꺼렸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맛보고 배운 하이엔드 소주를 직접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패키지 역시 친구와 함께 직접 디자인했다. 토끼라는 이름은 한국을 찾은 토끼해를 기념하는 것에 더해 달에 토끼가 산다는 우리 설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은 것이다. 달에 토끼가 산다니, 이 얼마나 멋진 스토리란 말인가.

브랜힐은 상온에 두거나 살짝 차갑게 해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토끼소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는 럼, 브랜디, 그라파 등 60여 종에 이르는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다. 
소주 즐기는 뉴요커들

“흙냄새와 달콤하고 그윽한 과일 향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이 난다. … 목 넘김이 부드러워 쉽게 넘어가지만 마구 마셔대지 않도록 애썼다. 토끼소주는 맛있지만 23%의 알코올을 함유한다.(The spirit looked clear, but then again not quite, and it smelled complicated and earthy, with a sweet, mellow fruitiness (Hill doesn’t chill filter). It went down easy, with an almost creamy texture, but I tried not to guzzle—Tokki’s delicious, but it also has a 23 percent ABV)”_<블룸버그> 2016년 5월 6일 자 기사 중

토끼소주가 다른 소주와 차별화되는 부분은 화학 물질이나 첨가제, 인공감미료 등을 전혀 넣지 않고, 쌀을 찧어 물과 이스트를 넣고 발효・증류해 만드는 전통 소주 제조법을 따른다는 점이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하는 유기농 쌀을 받아서 쓰고, 업스테이트 뉴욕에 위치한 배양소에서 직접 누룩을 만들어 사용한다. 누룩 만들기는 수십 차례의 실험과 실패를 거쳐 완성한 것으로, 지금도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공들이는 부분이다. 제대로 만든 소주는 설탕이나 감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달다는데, 사람들은 깊은 향과 은은한 단맛을 토끼소주의 장점으로 꼽는다. 도수 역시 일반 초록병 소주보다 높은 편이지만 부드럽고 목 넘김이 좋다는 것이 공통된 평이다. 현재 토끼소주는 뉴욕의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정식을 비롯해 한잔, 오이지, 소주 하우스 등 스무개가 넘는 한식 레스토랑에서 판매하고 있다. 로어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카페 라운드 케이에서는 한라산 순한물, 북한 평양 소주, 화요, 금복주, 참소주, 처음처럼 등 전국의 다양한 소주를 선보이는 소주 바를 열어 현지인에게 소주의 매력을 전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토끼소주에 관심이 높다고 한다. 초록병을 벗어난 디자인 덕분에 보드카나 사케처럼 친숙하게 다가가고, 맛과 향에서도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브랜 힐은 기회가 닿는 대로 더 많은 한국 술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식 비스트로 소주 하우스, 카페 라운드 케이에서 토끼소주를 즐기는 뉴요커들.
“토끼소주 외에도 오미자나 인삼 등을 넣어 만든 약주와 막걸리, 청주 등 대여섯 가지 한국 술을 만들고 있어요. 이는 주로 친구들과 나누어 마시거나 주변에 선물하는 용도로 쓰지만요. 브루클린에 위치한 레스토랑 ‘인사’를 위한 주문 제작 소주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닭해를 맞아 닭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한정판을 내놓기도 했고요. 기회가 된다면 전통 기법을 이용한 더 많은 한국 술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블룸버그> <푸드 리퍼블릭>같은 매체에서도 토끼소주를 취재하기도 했다. 우리 소주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전하는 데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아닐까. 저렴한 서민 술이 아닌, 근사한 호텔 바에서 소주 한잔을 기울 이게 되는 날이 머지 않은 때에 오기를 기대해본다.

글 오영제 사진 권보준 취재 협조 Roundk(www.roundk.com), SojuHaus(www.sojuhouse.com)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