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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칼과 도마
요리의 기본은 썰기이며, 이는 곧 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칼과 단짝인 것을 꼽자면 도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요리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요리를 시작하는 주인공과 무대,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셰프는 어떤 칼과 도마를 쓸까.


칼은 음식을 조리하는 수단으로 가장 기본적 도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경란의 소설 <혀>에서 주인공인 셰프는 “당신이 요리사로서 꼭 갖춰야 할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잘 드는 조리사용 칼이다. 요리를 하고 싶다는 열정보다 중요한게 칼이다”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셰프에게 칼이란 기본기를 의미하며, 요리의 대가일수록 칼을 제대로 쓸 줄 알고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뜻일 터. 성석제도 푸드 에세이집 <칼과 황홀>에서 “칼과 황홀 사이에 음식과 인간, 삶이 있다. 크게는 시대가 들어갈 수 있다. 음식은 그 무엇보다 우리의 존재에 맞닿아 있으며 구체적이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우리가 매일 먹고 힘을 얻는 음식의 시작점이 칼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일반 가정에서도 칼은 함부로 고르는 법이 없으며, 요리를 배울 때도 가장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가 칼 다루는 법이다.

하물며 요리가 업業인 셰프에게 칼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음식에 따라, 의도에 따라 적절한 크기로 재료를 자르는 것이 맛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요리의 완성도는 칼이 좌우하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셰프에겐 저마다 자신만의 칼이 있는데, 브랜드나 제품은 취향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한마디로 ‘내 손에 맞고 사용하기 편리한 것’이 가장 좋은 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너무 가벼워도 안 되고, 칼이 몸의 일부가 된 듯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칼을 쥔 느낌과 무게감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직접 사용해본 뒤 골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셰프가 쓰는 칼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단하고 녹에 강한 고탄소강 스테인리스 스틸을 주원료로 만든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셰프의 90% 이상이 일본 브랜드의 일본 칼을 선호한다. 위생이 중요한 만큼 재료에 따라 사용하는 칼의 종류도 달라야 한다는 점은 모든 셰프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칼을 여러 개 갖추고 있는 셰프도 자주 쓰는 칼은 평균 서너 가지 정도. 이것만 있어도 웬만한 요리는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주로 고기나 채소를 썰고 다지는 데 사용하는 칼로 가장 많이 쓰는 셰프스 chef’s 나이프, 생선을 다듬을 때 쓰는 얇고 긴 일명 사시미칼, 육류를 다룰 때 쓰는 짧고 다부진 칼인 보닝boning 나이프, 과일이나 채소를 모양낼 때 쓰는 작은 칼로 한국식 과도에 해당하는 페어링paring 나이프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칼도 오래 사용하면 날이 무뎌지고 이가 빠지게 마련이니 관리에 신경 쓰라고 충고한다. 주기적으로 날을 갈아 제대로 보관한다면 칼 수명은 그만큼 길어진다. 칼을 사용한 뒤에는 반드시 물로 닦고, 미른행주로 물기를 닦아 칼집에 45도로 세워두고 칼날이 겹치지 않게 두는 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칼에 예민한 셰프들이지만 도마에는 의외로 관대하다. 도마는 소모품으로 칼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 그 대신 칼처럼 도마도 여러 개 마련해 식재료에 따라 달리 사용하고 자주 소독하는 것이 중요하다. 셰프들이 나무 도마보다는 플라스틱 도마를 선호하는 이유다.


“칼은 무게와 사이즈가 내 손에 맞는 것으로 구입해 관리를 잘해야 오래 쓸 수 있다. 칼날은 사용 후 깨끗이 세척하고 마른 상태로 나무 케이스에 보관한다. 특히 식초나 시트러스 계열의 산미 있는 재료를 손질한 후에는 즉시 닦아내야 부식을 방지할 수 있다. 또 여러 칼을 함께 보관할 때 칼날이 서로 부딪치지 않게 주의한다. 이렇게 관리에 신경 쓰다 보니 칼은 오래 쓰는 편인데, 사시미칼은 지인이 일본 쓰키지 시장에서 구입해 선물한 것. 생선 손질할 때 쓰는 데바는 칼날에 자잘한 홈들이 있어 재료가 달라붙지 않는다. 칼날을 많이 갈아 브랜드가 지워진 셰프스 나이프 두 자루는 미국에서 첫 월급으로 구입해 지금까지 쓰는 칼이라 유난히 애착이 간다. 작은 재료를 다룰 때 많이 사용하는 패닝 나이프는 Shun 제품이며, 오동나무 도마는 선물 받은 것. 레스토랑에서는 소독하기 용이한 플라스틱 판 도마를 쓴다.” _강민구(밍글스 셰프)

“손이 작다 보니 요리사의 연장인 칼도 작다. 늘상 쓰는 것인 만큼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무겁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흔히 말하는 그립감이 좋은 것으로, 착 감기는 느낌이 좋아야 한다. 특히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독일 이미노크스Jiminox 사의 프로밸런스 제품은 칼 손잡이 안쪽에 너트를 이용해 무게중심을 조절할 수 있어 피로감이 덜해 덩치가 작고 손이 작은 나 같은 여성에게 특히 좋다. 내 손목 힘에 맞춘 나만의 칼인 셈. 일본에서 칼을 구입할 때도 손 사이즈를 보고 추천할 정도니 칼을 고를 때는 자신의 손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일본 의 채소칼도 일체형이라 관리하기 쉽고 칼질 했을 때 손이 편안해 많이 쓰는 칼 중 하나다. 도마는 큼직한 작센하우스의 카빙도마를 기본으로 두고, 가볍고 다루기 편한 실리콘 도마를 그 위에 올리는데, 컬러 별로 여러 개 마련해 용도에 따라 쓴다.” _정지원(이꼬이 셰프)

“장이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지만, 도구에 따라 결과에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칼만 가지고도 맛을 낼 수 있고, 식감도 낼 수 있기 때문에 칼의 선택은 셰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좋은 칼도 제대로 사용해야 제값을 하는 법. 흔히 칼이 도마에 탁탁 닿는 경쾌한 소리를 내야 칼질하는 맛이 난다고 하는데, 이는 칼을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칼 전체를 길게 사용해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고기를 많이 다루다 보니 사시미나 육류용 칼이 많으며 두께가 두껍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대부분은 손님이나 지인에게 선물 받은 것. 주로 쓰는 칼은 네개 정도로 용도별로 나누어 쓴다. 자고로 좋은 칼이란 내게 맞는 칼을 찾아 길들인 것이다. 또 칼은 숯돌에 돌을 간다는 느낌으로 칼날을 자주 갈아야 오래 쓸 수 있고, 절삭력도 좋다. 도마는 여느 레스토랑에서 그러하듯 플라스틱 제품으로 넓은 것을 선호한다.” _신동민(미코 셰프)

“칼은 위험하다. 요리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크고 긴 칼은 피한다. 가장 많이 쓰는 미소노Misono의 셰프스 나이프도 길이가 20cm 정도로, 그립감이 좋고 무겁지 않아 손목 피로감이 덜하다. 컷코Cutco의 생선칼은 곡선으로 되어 재료를 다듬을 때 편하며, 채소칼도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칼날이 크고 넓어 특히 채 썰 때 좋다. 손잡이까지 스테인리스 스틸로 일체형인 글로벌Global의 칼은 생선을 포 뜰 때나 슬라이스할 때 유용하다. 과일을 깎을 때나 도려내는 작업을 깔끔하게 하기 위해서는 칼끝이 예리한 것이 좋은데, 헹켈Henckels의 과일칼이 그렇다. 특히 칼날 모양이 마음에 든다. 도마는 나무 소재로 두께가 두툼하고 정사각형이 사용하기 편리하다. 단, 사용 후에는 물로 닦아 햇볕에 자주 말려 소독한다. 용도별로 나눠 사용하며, 김치류 등 국물이 많은 재료용으로는 실리콘 소재를 쓴다.” _노영희(품 서울 셰프)

“칼을 고를 때는 내 몸과 조화되는지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무게감이 있는 것을 선호하지만 두께는 얇아야 한다. 식재료가 덜 상하기 때문. 특히 얻어 쓰는 칼에 애착이 많은데, 생선용 사시미칼은 동해에서 해녀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끝이 잘린 것은 뭉툭하게 연마해서 여기저기 다용도로 쓴다. 대나무 칼은 수분을 흡수해 인절미나 가래떡을 자를 때 쓰는 데 담양에서 구입했다. 글로벌의 셰프스 나이프는 가장 많이 쓰는 칼로 채소를 자르거나 케이크 등을 커팅할 때 쓴다. 육류용 보닝 나이프는 프랑스 르노트르에서 셰프에게 받은 것으로 뼈를 발라낼 때 제격이다. 과도같이 작은 칼은 디저트에 금붙이 등을 장식할 때도 쓰는데, 프랑스의 조리 도구 가게에서 구입했다. 좋은 칼이라고 비쌀 필요도, 꼭 한 가지 용도로 쓸 필요도 없는 것. 밤부Bamboo의 나무 도마는 사이즈가 작아 이동하기 편리해 유용하다.” _신용일(합 셰프)

“고가의 유명 브랜드 칼로 조리한다고 요리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 경우에도 가장 많이 두루 사용하는 중식 칼과 단도는 홍콩의 주방 도구 판매점에서 3만~4만원 선에 구입한 것이지만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물론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평소 칼날을 자주 갈아 날카롭게 만드는데, 절삭력도 좋아지지만 둔하면 외려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 사용 후에는 매일 전용 제품으로 소독하고, 물기를 잘 닦아 보관한다. 주방의 제1수칙은 철저한 위생 관리이기 때문. 그래서 재료에 따라 용도도 분명히 한다. 육류(빨강), 해조류(파랑), 과일・채소류(초록)용 칼을 제각각 두고 플라스틱 손잡이로 색을 주문 제작해 헷갈리지 않게 사용하는데, 이는 호텔 주방의 원칙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도마도 마찬가지로, 동그란 것은 공간 활용도가 높다.” _왕업륙(웨스틴조선호텔 중식당 홍연 수셰프)

“칼을 쓸 때는 무사가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칼은 내게 중요하다. 자신에게 편한 칼이 좋은 칼인데, 잡아보면 손이 편안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외려 칼을 고를 때는 디자인을 꼼꼼히 살피는 편이다. 요리할 때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 예전에는 제품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가쓰미Kasumi 다마스커스 제품을 많이 쓴다. 절삭력도 뛰어나고 녹도 잘 슬지 않지만 무엇보다 칼날에 자연스럽게 생긴 물결 모양이 멋스럽다. 육류용은 마사히로Masahiro 제품을 쓰고, 당근 등을 모양내서 깎을 때 쓰는 페어링 나이프도 유용하다. 모두 이전에 사용한 것이라 최근에 칼 전문 온라인 쇼핑몰 칼이쓰마(www.kalesma.com)에서 구입했다. 도마는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플라스틱 소재를 식재료에 따라 색을 달리해 사용한다. 위생이 중요한 만큼 자주 소독하기에 관리하기 편한 것이어야 부담 없이 쓸 수 있다.“ _김은희(더 그린테이블 셰프)

“예전엔 고가의 외국 명품 브랜드 칼을 사용했지만, 점점 식재료뿐 아니라 도구도 우리 것에 관심이 갔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남원공설시장 안에 위치한 남성식도공업사에서 이강 곽용섭 장인이 만든 남원 전통 무쇠 칼을 보고, 묵직한 무게감과 투박한 생김새에 반해 다섯 자루 세트를 25만 원에 구입했다. 셰프스 나이프인 식도와 채소 등을 다듬는 데 사용하는 칼 네 자루로 구성되는데, 칼등에 홈이 있어 재료를 썰 때 달라붙거나 밀려 올라가지 않는다. 특히 철도 레일을 눌러 만든 구형 모델인 식도는 단 하나 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구입 후 한 번도 갈지 않았을 만큼 날이 날카롭고 단단하다. 사서 바로 기름칠을 하고 사용한 후 곧바로 씻어 물기를 닦아주면 녹슬 염려도 없다. 고기칼은 긴 것은 지방 제거용으로 황학동 중고시장에서 5천 원에, 칼끝이 뭉툭한 뼈칼은 우시장에서 1만 5천 원에 구입한 것.” _안성환(오키친5 셰프)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김동오, 이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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