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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멸치젓 VS 유럽의 안초비 활용도 높은 팔방미인 VS 감칠맛으로 무장한 천하무적
그물을 꽉 부여잡은 어부의 손이 요동을 치면 찬란한 은빛 물방울 같은 멸치들이 허공에 몸을 던진다 . 월부터 어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가을 멸치잡이 풍경이다 . 뼈째 먹는 생선멸치는 칼슘이 부족한 여성들에게 특히 좋은 식품 . 이를 이용한 대표적인 저장 음식으로 한국의 멸치젓과 이탈리아의 안초비가 있다 . 다양한 관점에서 비교한 두 식재료 .
멸치젓은 형태에 따라 액젓과 육젓, 담는 시기에 따라 봄멸치젓, 가을멸치젓으로 나뉜다. 액젓은 색깔이 투명할수록, 저장기간이 길수록 좋은 것이다. 티끌 하나 없이 말갛고 투명한 액젓을 소금이나 간장 대신 국이나 무침, 김치 등에 넣으면 깊은 맛을 더하며 특히 톳이나 다시마 등의 해조류 무침과 맛이 잘 어울린다. 멸치 살과 뼈가 보이는 육젓은 생선 특유의 냄새가 강하여 그냥 먹기는 힘들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잘게 다진 다음 갖은 양념을 하여 쌈장으로 이용하는 것.

“음식 솜씨 없는 주부라면 부엌에 멸치젓 한 병은 꼭 챙겨두세요. 웬만한 한국 음식은 만들 때 멸치젓을 조금만 사용해도 맛이 한결 깊어진답니다. 곧 다가올 김장 때 멸치젓을 이용해보세요. 많은 주부들이 김치 담그기를 어려워하는데 샐러드 준비하듯 쉽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멸치육젓을 곱게 갈아서 고추기름과 다진 양파를 섞어 양념장을 미리 준비해놓으세요. 그리고 얼갈이에 양념장을 고루 버무리면 완성이에요. 멸치젓의 비린맛이 싫은 분들은 레몬즙을 넣어보세요. 레몬의 새콤한 맛이 냄새를 없애줍니다.” 가정식 요리 연구가 최신애 씨가 알려주는 초간단 김치 레시피다. 이어서 알아두면 요긴한 드레싱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간장과 멸치액젓, 고춧가루, 식초를 같은 분량으로 넣은 다음 다진 마늘과 설탕을 섞으면 멸치젓 드레싱이 되는데 넉넉하게 만들어두어도 상하지 않고 여러 가지 요리에 사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채소를 한데 섞어 드레싱을 끼얹거나 닭고기를 매리네이드 하여 구워내면 새콤달콤한 맛이 나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 입막음하기에 그만이다. 멸치젓은 뒷맛이 개운하여 기름기가 많은 육류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새우젓을 곁들이는 것도 젓갈의 짠맛이 느끼한 맛을 잡아주기 때문. 고기 완자를 만들 때도 육젓에서 발라낸 살을 잘게 다져 고기에 넣으면 여러 개를 집어 먹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멸치젓은 해산물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특히 신선도가 약간 떨어지거나 해동시킨 해산물에 멸치액젓을 조금 넣으면 맛이 한결 깔끔해진다. 멸치젓은 짠맛이 강하므로 도중에 맛을 보면서 조금씩 첨가하도록 한다.

최근에는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이탈리아나 태국 등 다른 나라 요리를 만들 때도 멸치젓을 응용하는 주부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패션디자이너 김동수 씨는 시저샐러드를 만들 때 멸치젓을 이용한다. 멸치젓에 올리브오일과 겨자, 레몬즙(없으면 식초), 다진 마늘, 달걀노른자를 고루 섞으면 안초비를 넣은 것 못지않은 근사한 드레싱이 완성된다. 평소 베트남 음식과 태국 음식을 즐겨 만드는 여의도의 김명희 주부는 스프링롤(쌀로 만든 피에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싸서 먹는 음식)에 곁들이는 드레싱에 ‘느억맘’이라는 태국의 생선 소스 대신 멸치액젓을 이용한다.

멸치와 소금의 양이 포인트, 멸치젓 만들기 해마다 집에서 멸치젓을 담그는 조수재 주부는 멸치와 소금의 비율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소금이 많으면 멸치가 발효되지 않고 양이 적으면 벌레가 생기기 십상이다. 멸치젓을 담그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싱싱한 멸치 4kg과 간수를 뺀 소금 1kg 그리고 항아리. 볼에 멸치를 담고 소금 500g을 넣어 잘 섞는다. 항아리에 버무린 멸치와 남은 소금을 켜켜이 쌓는데 맨 위에는 남은 소금을 넉넉하게 덮는다. 경상남도 양산에 사는 조수재 씨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나무 잎으로 멸치젓 위를 덮는다. 대나무 잎이 없으면 밀가루 풀을 쑤어 창호지에 바른 것을 덮으면 된다. 뚜껑을 닫고 공기가 잘 통하는 그늘에 둔다. 한 번 개봉하면 유리병에 옮겨서 냉장실에 보관해야 한다.



올리브오일은 열매를 압착한 횟수에 따라 파인, 엑스트라버진 등으로 품질이 달라지지만 안초비는 등급이 없다. 육질이 도톰하고 형체가 살아 있으며 색깔이 선명한 것이 좋은 제품이다. 특히 가시 주변이 와인에 가까운 진한 분홍색을 띠고 있으면 상품이다. 찢어진 살만 모아놓은 제품도 있는데 이는 주로 믹서에 곱게 갈아 소스로 이용된다. 유럽의 시골 장터에 가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특산 안초비를 구입할 수 있다. 고장마다 만드는 방법과 사용하는 재료가 다르다. 대개 소금에 절인 다음 뼈를 발라내고 돌돌 말아 병에 넣은 뒤 기름을 부어 만드는데 기름 종류에 따라서 가격과 맛에 차이가 난다. 면실유, 포도씨 기름, 해바라기씨 기름 등 다양한 기름을 사용하며 그중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에 담근 것을 최고급으로 친다. 올리브 특유의 진한 향이 안초비의 풍미를 돋우기 때문. 소금에 절일 때 월계수나 후추, 클로브와 같은 향신료, 매콤한 맛이 나는 칠리, 술 등을 첨가하기도 한다. 간장과 된장, 멸치젓은 오래 저장할수록 값어치가 높아지지만 안초비는 묵힐수록 육질이 삭아서 씹는 맛이 떨어진다. 즉, 신선한 것이 좋은 제품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기름에서 산화가 일어나므로 적은 양씩 포장된 제품을 구입하도록 한다. 남은 안초비는 냉장실에 보관해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 올리브오일에 담긴 안초비를 냉장실에 넣으면 기름이 하얗게 되는데 이는 올리브오일이 영상 8℃에서 굳기 때문. 상온에 두면 금세 녹는다.

이탈리아는 남부 유럽에서도 안초비를 가장 좋아하는 국가다.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의 아래 쪽에 위치한 시칠리아, 나폴리 등은 안초비 특산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안초비를 감자나 삶은 달걀에 곁들여 주식으로 먹거나 상온에 두어 말랑말랑해진 버터에 다진 안초비를 섞어 빵에 곁들인다. 이탈리아 요리 연구가 박주희 씨는 안초비를 이탈리아 요리 외에 한국 요리에도 종종 넣는다. 유학 시절, 김치가 무척 그리워 멸치젓 대신 안초비를 갈아서 김장을 하던 그에게 안초비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풀어주는 고마운 식재료였다. “안초비와 마늘, 올리브오일, 파스타만 있으면 갑자기 손님이 많이 찾아와도 당황스럽지 않습니다.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두르고 마늘을 달달 볶다가 안초비를 넣고 마저 볶으세요. 파스타는 되도록 가는 것으로 골라 따로 삶습니다. 파스타는 체에 밭쳐 물기를 탁탁 털어내야 나중에 소스에 무쳤을 때 맛이 진합니다. 볶고 있던 안초비에 면을 넣고 파스타 삶은 물로 농도를 맞춘 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하면 됩니다. 파슬리 가루나 매콤한 고추를 조금 넣어주면 금상첨화죠.” 박주희 씨는 초간편 파스타 레시피를 귀띔해주었다. 여기에 와인 한잔을 곁들이면 손맛 좋고 센스까지 갖춘 안주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굳이 조리하지 않아도 안초비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 하나. 뜨거운 밥에 곁들여 김이나 찐 양배추에 싸 먹으면 특유의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몸에 좋은 전어로 만드는 안초비 이탤리언 레스토랑 ‘에오’의 어윤권 셰프는 전어로 안초비를 만든다. “항구에 나가지 않고는 산멸치를 구하기 어려워 저는 전어를 대신 사용하지요. 멸치를 이용한 것보다 질감이 좀더 아삭하고 비린맛이 적습니다.” 전어 1kg에 소금 3kg을 뿌려 골고루 버무린 다음 한나절 둔다. 간이 적당하게 배면 머리와 내장을 깨끗하게 떼어낸다. 올리브오일에 레몬즙과 딜 등의 향신료를 섞어 정리된 전어를 넣고 16℃ 이하의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면 된다. 어윤권 씨는 가락시장의 수산물 코너에서 전어를 구입한다.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11월까지가 전어 철이다. 이때 잡히는 전어는 봄에 잡히는 것보다 불포화지방산이 3배 정도 풍부하다고 하니 올가을 전어 안초비를 만들어보자.



박은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