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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약 필요 없는 아침밥 한 그릇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짤막한 메모 하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우선 시장기만 속여두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 밥 한 그릇은 직접 입으로 맛보지는 못했건만 내 가슴이 맛본 가장 맛있었던 밥으로 기억된다. 이 가난한 남자의 아내는 보나마나 눈물범벅이 돼서 겨우겨우 밥을 넘겼을 테지만 분명 꿀보다 더 달콤한 최고의 만찬이었을 거다. 어렸을 적 난 밥맛을 몰랐다. 무無맛! 밥이 ‘맛있네’, ‘맛 없네’랄 것도 없이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반찬을 먹기 위해 사이사이 끼워 먹는 게 밥이었을 뿐. 진정한 ‘밥맛’을 알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어느 날 외출하신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게 되었다. 디스코 비트처럼 신나게 흔들리던 압력솥 추가 늘어진 테이프처럼 서서히 멈춘 후 손잡이를 돌려 뚜껑을 열자 뽀얗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고소한 밥 냄새가 풍겼다. 아니 냄새라기보단 차라리 밥의 ‘향기’라 하는 게 옳다. 밥솥 가까이 코를 들이대고 주걱으로 밥을 뒤섞으면서 ‘이 밥, 참 맛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역시나 금방 솥에서 퍼낸 뜨거운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한참 자랄 시기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손으로 지은 밥이라 그랬는지, 그렇게 갓 지어낸 밥은 정말 달게 느껴졌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게 매끼니 새로 지은 밥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의미하니, 어찌 보면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식구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인 것도 같다.

농삿일 같은 육체노동을 주로 했던 선조들은 특히 아침을 가장 많이 먹었다. 그에 반해 현대인들은 정신노동이 더 많고 바쁜 하루일과에 시달리면서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침밥이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체온은 1℃가량 떨어지면서 뇌의 활동이 느려진다. 오전에 뇌 활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면 수면 중 떨어진 체온을 올려야 하는데, 이때 아침밥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입맛이 없더라도 아침밥을 먹어두면 점심과 저녁을 탐닉하지 않게 돼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 특히 밥, 국, 김치의 소박한 우리 식단으로 아침을 꾸준히 먹으면 저절로 영양균형이 이루어져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들이 죄다 쓸 데 없어진다.

매일 아침 부엌에서 들려오는 채소 써는 소리, 손에 쥔 밥공기의 따뜻함,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식탁의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되새겨보자. 사랑하는 가족에게 매일 아침마다 보약보다 몸에 좋은 밥 한 그릇의 효능을 전해주면 어떨까.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그리고 짤막한 메모 하나.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우선 시장기만 속여두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 밥 한 그릇은 직접 입으로 맛보지는 못했건만 내 가슴이 맛본 가장 맛있었던 밥으로 기억된다. 이 가난한 남자의 아내는 보나마나 눈물범벅이 돼서 겨우겨우 밥을 넘겼을 테지만 분명 꿀보다 더 달콤한 최고의 만찬이었을 거다. 어렸을 적 난 밥맛을 몰랐다. 무無맛! 밥이 ‘맛있네’, ‘맛 없네’랄 것도 없이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반찬을 먹기 위해 사이사이 끼워 먹는 게 밥이었을 뿐. 진정한 ‘밥맛’을 알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어느 날 외출하신 엄마를 대신해 밥을 짓게 되었다. 디스코 비트처럼 신나게 흔들리던 압력솥 추가 늘어진 테이프처럼 서서히 멈춘 후 손잡이를 돌려 뚜껑을 열자 뽀얗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고소한 밥 냄새가 풍겼다. 아니 냄새라기보단 차라리 밥의 ‘향기’라 하는 게 옳다. 밥솥 가까이 코를 들이대고 주걱으로 밥을 뒤섞으면서 ‘이 밥, 참 맛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역시나 금방 솥에서 퍼낸 뜨거운 밥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한참 자랄 시기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 손으로 지은 밥이라 그랬는지, 그렇게 갓 지어낸 밥은 정말 달게 느껴졌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렇게 매끼니 새로 지은 밥을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식구食口’라는 말이,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의미하니, 어찌 보면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식구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사항인 것도 같다.

농삿일 같은 육체노동을 주로 했던 선조들은 특히 아침을 가장 많이 먹었다. 그에 반해 현대인들은 정신노동이 더 많고 바쁜 하루일과에 시달리면서 아침식사를 거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침밥이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체온은 1℃가량 떨어지면서 뇌의 활동이 느려진다. 오전에 뇌 활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려면 수면 중 떨어진 체온을 올려야 하는데, 이때 아침밥이 에너지를 공급하고 체온을 높이는 작용을 한다. 입맛이 없더라도 아침밥을 먹어두면 점심과 저녁을 탐닉하지 않게 돼 체중조절에 도움이 된다. 특히 밥, 국, 김치의 소박한 우리 식단으로 아침을 꾸준히 먹으면 저절로 영양균형이 이루어져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들이 죄다 쓸 데 없어진다. 매일 아침 부엌에서 들려오는 채소 써는 소리, 손에 쥔 밥공기의 따뜻함, 된장국의 구수한 냄새….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한 식탁의 풍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되새겨보자. 사랑하는 가족에게 매일 아침마다 보약보다 몸에 좋은 밥 한 그릇의 효능을 전해주면 어떨까.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