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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표 요리]최미애 씨에게 배우는 부산 토속 음식 해물찜과 밥새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속에는 고향의 맛이 진하게 담겨 있다. 경상남도 부산에서는 이맘때 해물을 끓인 뒤 들깨 가루를 넣어 해물찜을 만들고, 양념한 밥에 엿기름을 넣어 발효시킨 밥새(밥식해)를 먹었다. 모두 추위에 잃은 입맛을 살려주며 소화가 잘되고, 영양이 풍부한 건강식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12월이면 바다에서 나는 온갖 해물의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특히 조개와 새우류는 더운 계절보다 차디찬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것일수록 살이 졸깃하고 맛도 달다. 그래서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지역에서는 이맘때 집집마다 다양한 해물이 가득한 맛깔스러운 밥상을 차린다. 그중 특히 생각나는 것이 어머니가 만들어주셨던 별미, 해물찜이다. 벌건 고춧가루가 아닌 구수한 들깨 가루로 맛을 내 국물이 뽀얗고 하얀 해물찜은 타 지역에서 흔히 맛볼 수 없는 우리 집만의 별식이었다.

해물찜을 만들려면 우선 다양한 해물이 필요하다. 대합, 새우, 미더덕, 전복 등이 골고루 들어가는데 이 중 꼭 빼놓지 않은 해물이 군수다. 졸깃하게 씹히는 맛과 씹을수록 감칠맛이 배
어나는 군수는 사전에 ‘군소’로 표기되어 있고 경남 지방 사투리로 ‘군수’라 부르는데, 부산과 통영 인근에서만 즐기고 타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내가 간혹 어머니식 해물찜을 만들어 타 지역 손님에게 대접하면 대부분이 군수를 가리키며 “이건 어떤 해물인가요?” 묻곤 한다. 군수는 색이 검고 뼈가 없는 연체동물로 해조류를 먹고 산다. 몸길이는 대체로 손바닥보다 작은데 개중에는 약 30cm까지 큰 것도 있다. 생김새는 껍질을 벗겨놓은 달팽이와 비슷한데 군수는 달팽이와 달리 등에 이고 다니는 집이 없고, 썰어놓으면 모양이나 색이 건해삼과 비슷해 해삼으로 오해받곤 한다. 여하튼 어머니는 해물찜에 군수를 필수로 넣으셨고,
나 역시 해물찜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볼 때면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담는 해물이 바로 이 군수다.

내 어머니식 해물찜을 맛있게 만들려면 우선 군수를 비롯한 갖가지 해물을 깨끗하게 다듬어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어야 한다. 이때 전복은 너무 잘게 썰지 않고 칼집만 내 통째로 넣어야 음식이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해물을 다듬은 후에는 해물 다음으로 중요한 재료인 콩나물, 고사리, 미나리 등의 채소와 각종 버섯을 다듬어 가늘게 채 썬다. 그러고는 큰 냄비를 중간 불에서 달군 뒤 썰어둔 대합을 넣고 참기름을 둘러 살짝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다. 이 과정은 해물찜의 맛을 깊게 하기 위해 밑국물을 만드는 것이다. 간혹 진한 맛을 내
기 위해 쇠고기로 밑국물을 내는 집도 있는데, 내 어머니는 쇠고기는 절대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해물로만 맛을 내셨다. 냄비에 물이 끓어 대합의 맛이 우러날 즈음 손질한 해물, 버섯, 채소를 넣어 한소끔 끓으면 찹쌀가루 푼 것과 들깨 가루를 넣고 간을 해 해물찜을 완성한다. 풍성한 해물이 들깨 가루와 어우러져 깔끔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해물찜은 주말 가족 별식으로 즐기곤 했는데, 이맘때 담근 잘 익은 김장 김치와 곁들여 먹
으면 그 맛이 참 잘 어울렸다.

해물찜 외에 시집와서 배운 시댁의 음식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밥새다. 밥새는 경남 지방 사투리로 본래 이름은 ‘밥식해’라고 한다. 시댁의 밥새는 경북 안동에서 전통 음료로 즐겨 먹는 안동식혜(엿기름 물로 밥알을 당화시켜 단맛이 나고 밥알이 동동 뜨게 만든 음료)나 강원도 사람들이 꾸덕꾸덕 말린 명태에 식은밥과 엿기름 가루,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린 뒤 삭혀 먹는 젓갈인 명태식해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일단 시댁의 밥새는 달지 않고, 생선이 들어가지 않는다. 필요한 재료는 오롯이 고두밥과 무, 엿기름, 고춧가루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설탕뿐이다. 밥새를 만들려면 우선 물에 충분히 불린 쌀로 고슬고슬한 밥을 짓는다. 무는 아주 가늘게 채 썰고, 고춧가루는 팔팔 끓여 한 김 나간 물에 개어둔다. 그러곤 고두밥, 무채, 고춧가루, 엿기름 가루, 설탕을 한데 버무린 다음 항아리에 담아 아랫목에서 한 3일 정도 발효시키면 밥새가 완성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엿기름 가루. 엿기름을 물에 개어 넣는 식혜와 달리 밥새는 엿기름을 고운체에 걸러 아래로 떨어진 고운 가루만 모아서 사용한다.

완성한 밥새의 모양은 고춧물에 비빈 질척한 밥과 비슷하다. 맛은 발효에서 오는 신맛이 살짝 돌며, 맵고 달다. 솔직히 시집와서 처음에는 이 낯선 음식에 정이 붙지 않았다. 정월이면 시어머니는 제일 먼저 밥새부터 만들어 큰 항아리 가득 담아두셨고 출출할 때마다 간식으로 한 보시기씩 떠서 맛있게 먹는 남편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결혼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될 정도로 시간이 흐르자 내 몸엔 시댁의 피가 흐르나 보다. 요즘은 나 역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 밥새부터 떠오른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입맛도 부모에게 물려받는지 남편을 꼭 닮은 아들은 밥새를 참 맛있게 먹는데, 나를 더 닮은 딸아이는 입에도 대질 않는다. 하지만 딸도 나이가 들면 나처럼 이 새콤달콤 매콤한 맛에 시원함까지 동시에 지닌 밥새의 매력에 푹 빠지리라. 발효 음식으로 소화가 잘되며, 먹으면 먹을수록 입맛이 당기는 밥새야말로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건강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오른쪽) 대구 한의대학교 한방 식품 조리 영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최미애 씨 모녀.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이현주 씨는 부산 해운대에서 ‘홍삼 버거’로 유명한 수제 버거 전문점 마누솔(051-744-7344)을 운영하고 있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해물찜과 밥새 만들기

해물찜

재료 군수·대합·전복·무·콩나물·고사리·양파·찹쌀가루·들깨 가루 100g씩, 새우·미더덕·표고버섯·미나리·팽이버섯 50g씩, 참기름·다진 마늘 1큰술씩, 소금 1작은술, 국간장 2큰술, 고춧가루(취향에 따라 약 1큰술 정도 넣는다) 약간
만들기
1 군수는 다듬어서 납작하게 채 썬다.
2 대합은 채 썰고, 전복은 칼집을 내고, 새우와 미더덕은 다듬는다.
3 콩나물은 머리와 꼬리를 떼고, 고사리는 데친다. 미나리는 다듬어서 5~6cm 길이로 썬다. 무와 양파·표고버섯은 채 썰고, 팽이버섯도 다른 채소와 비슷한 크기로 자른다.
4 달군 냄비에 채 썬 대합과 참기름을 넣고 살짝 볶은 다음 모든 재료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붓고 한소끔 끓인다.
5 물이 끓어오르면 무, 콩나물, 고사리를 넣어 한소끔 끓인 뒤에 해산물과 버섯류를 넣어 다시 한 번 끓인다.
6 찹쌀가루와 들깨 가루는 각각 물에 개어둔다. ⑤의 해물이 익으면 다진 마늘과 개어둔 찹쌀가루와 들깨 가루를 넣고 잘 섞어 한소끔 더 끓인다. 소금과 국간장으로 간한 뒤 불을 끈다(취향에 따라 고춧가루를 넣는다).

밥새

재료 멥쌀 800g, 무 400g, 엿기름 가루 1큰술, 소금 1/2작은술, 고운 고춧가루 1 1/2컵, 설탕 3큰술
만들기
1 멥쌀은 씻어 물에 1시간 이상 불린 뒤 찜통에 쪄서 고두밥을 짓는다.
2 무는 가늘게 채 썬다.
3 엿기름 가루는 체에 쳐서 고운 가루만 모아 준비한다.
4 고춧가루는 끓는 물을 한 김 날려보낸 후 물에 넣고 갠다.
5 무채에 ④의 고춧가루 갠 것을 넣어 버무려 고춧물을 들인다. ①의 고두밥 역시 ④의 갠 고춧가루를 넣어 물을 들이고 마지막에 엿기름 가루, 소금, 설탕을 넣어 한데 버무린다.
6 아랫목에서 3일간(실온에서 5일간) 발효시킨다.

촬영 협조 궁중음식연구원(02-3673-1122) 헤어&메이크업 3스토리 by 강성우(02-549-7767)

진행과 구술, 정리 이화선 기자 사진 김성용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