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체질 탓에 밥과 김치만 먹어야 해서 유독 김치 맛에 까탈스럽던 아이. 김순자 명인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기억한다. “알레르기가 심한 체질이었어요. 고기나 생선을 먹으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곤 했는데 김치만은 예외였으니 김치만 찾을밖에요. 그해 김장 김치 맛이 좋으면 겨우내 통통하게 살이올랐고, 김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면 대꼬챙이처럼 마를 정도였으니까요.” 달고 시원한 섞박지 솜씨가 유난히 좋았던 할머니와 겨울이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4~5차례에 걸쳐 김장을 담근 어머니. 두 분 덕분에 일 년 내내 맛있는 김치만으로도 아쉬운 줄 몰랐다고 한다. 봄에는 새콤하게 익은 나박김치 국물 떠먹는 걸 좋아했고, 여름이면 오이소박이며 열무김치에 맛을 들였다. 가을에는 시원한 굴깍두기, 겨울이면 곰삭은 파김치를 먹으며 자랐다. 누구보다도 김치를 좋아했고, 많이 먹었기에 자연스레 김치 담그는 길로 접어들었다. 30여 년 전 설립한 김치 전문 기업 ㈜한성식품 대표이사이자 사단법인 세계김치협회 회장이기도 한 김순자 씨의 김치 솜씨는 2007년 5월에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전통 명인 29호 김치 명인’으로 지정되면서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다.
밥과 함께 늘 우리네 밥상에 오르는 김치는 언뜻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먹어왔으니 모두들 김치 맛을 평가하는 데는 나름의 기준도 뚜렷하다. 김치만큼 지방색을 많이 담고 있는 음식도 없다. 그러니 한 가지 김치를 두고도 사람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밖에. 김순자 명인은 김치 사업을 해온 지난 30년을 일컬어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맛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짭짤한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먹으면 ‘좀 싱겁다 싶으면서도 맛있네’라고 말할 수 있는 맛, 싱거운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대로 ‘좀 짠 듯하지만 그래도 괜찮네’라고 말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맛. 하루도 빠짐없이 김치를 담그고 맛을 보며 김치의 맛과 특징을 기록함으로써 최적의 레시피를 재산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출간하는 <명인의 맛, 명인의 김치>에는 재료를 깐깐하게 고르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손맛으로 완성한 김치의 맛 비결을 고스란히 담았다.
(왼쪽) 백년김치
(오른쪽) 총각김치
맛있는 김치, 아름다운 김치, 건강한 김치
단군 개국 이래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배추 가격으로 인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가을, 배추김치 담그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출하지만 포장 김치를 사 먹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었다.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까닭에 제조업체들 역시 김치 생산을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김순자 명인은 꼭 배추김치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제철에 나는 채소와 나물, 산야초가 모두 훌륭한 김치 재료라는 것이다. 봄에 나는 쑥, 씀바귀, 쑥갓, 달래는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주고 여름에는 열무와 오이, 양배추만 있으면 매일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김치 재료가 풍성한 가을이나 겨울은 말할것도 없고 매일 먹는 김치 맛이 물린다 싶을 때 조금만 아이디어를 내면 전혀 색다른 김치 맛을 볼 수 있다고.
“김장철에 담가 먹는 동치미는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기가 어렵잖아요. 이럴 때는 동치미 무를 돌려 깎은 다음 신선한 파프리카나 오이 같은 재료를 얹은 다음 돌돌 말아내세요. 국물에 치자와 국화차를 넣으면 맛과 향이 전혀 다른 김치가 탄생하거든요. 국화김치라고 불리는 김치인데, 맛본 분들이 다 정말 동치미로 만든 게 맞냐며 놀라워하더라고요.”
모양은 예뻐도 먹기가 불편한 보쌈김치 대신 잘 절인 배추 잎에 쌈김치 속재료를 넣어 돌돌 만 ‘미니롤 보쌈김치’나 양배추에 적채와 깻잎을 겹쳐 얹어 만 ‘양배추 깻잎말이김치’ 등도 다 그런 아이디어로 탄생한 김치들이다. 1800년대 말에 편찬된 음식 관련 고서인 <시의전서 是宜全書>에 등장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김치를 재해석해 만든 ‘백년김치’는 낙지와 소라ㆍ생새우 등의 해물과 잣, 밤, 청각 등의 고급 재료를 넣은 말 그대로 명품 김치다. 슴슴하면서도 감칠맛이 돌아 김장철에 꼭 한번 만들어 봄 직한 김치다. 동충하초를 달인 농축액을 넣어 만든 동충하초 포기김치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건강 김치. 외국인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순한 김치나 손님상에 내놓으면 좋을 화사한 김치에 관한 아이디어도 <명인의 맛, 명인의 김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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