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에게 <행복이 가득한 집> 인터뷰하는데 함께 가시자고 했더니 나서기 싫어하는 그 양반 번거롭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면서도 “시래깃국 끓일 때 콩가루 살살 무쳐라. 호박은 살캉하게 볶아라” 단단하게 당부하며 온갖 재료를 살뜰하게 챙겨주셨지. 올해로 84세인 어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온 후 지금까지 시댁 본가가 있는 안동에서 시래기와 생콩가루를 구입해다 드신다. 나 역시 어머니가 주문할 때 함께 주문하거나 어머니한테 얻어다 먹곤 하는데, 때로 급하게 구해야 할 때 서울의 큰 시장에서 사다 먹으면 그 맛이 안동에서 온 것만 못해 실망하곤 한다. 지금에야 어머니가 즐겨 만들어 주시던 안동 지방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남들에게 소개할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어릴 적 나는 이 음식들이 참 부끄럽고 싫었다.
아버지 고향은 안동이지만 나는 유년기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입맛은 변치 않는지 서울에서 오래 살았으면서도 밥상은 늘 ‘안동식’ 그대로였다. 벌건 안동 식혜를 뒷마당의 항아리에 한가득 담아두고 겨우내 먹었으니까.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희고 깔끔해 보이는 서울 식혜(감주)를 맛보곤 어찌나 놀랐던지. 우리 집 식혜가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져 친구에겐 비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순간이 떠오른다. 서울에 살았지만 집안의 중심이었던 우리 집에는 안동에서 친척들이 자주 방문했다. 삼촌이나 할아버지는 한 손에 자반고등어나 시래기, 생콩가루, 늙은 호박, 묵 등을 들고 오는 게 인사였는데,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좀 더 세련된 선물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뿐인가. 농사도 크게 짓고, 정미소와 술도가를 가지고 있어 정말 대단한 부자였던 작은할아버지의 큰딸, 그러니까 고모가 시집가던 날 안동에 내려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부잣집 잔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잔치 음식의 절반이 ‘배추전’이라고 할 만큼 한쪽에 배추전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기나 생선도 넣지 않고 배추에 밀가루 옷만 입혀 기름에 부친 그 음식이 부잣집 잔치의 메인 요리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하는지 스무 살 이전까지는 별맛 없던 배추전이 이제는 제일 맛있는, 그리고 자주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배추전은 우리 집 역시 명절이나 생일날, 또 별다른 반찬이 없는 날이면 수시로 부쳐 먹는 전이다. 배추 줄기를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려 평편하게 만든 다음 밀가루 옷을 입혀 들기름에 부치면 말 그대로 심심한, 요란하지 않은 단맛을 지니면서 은근히 고소하고 아삭바삭한 배추전이 완성된다. 자꾸 먹어도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전으로 젊은 친구들도 한번 맛을 보면 또 찾을 정도로 매력이 있어 어느 모임에 만들어 내 놓으면 제일 먼저 동이 나곤 한다.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시래깃국은 여러 지방에서 두루 먹지만 안동 지방에선 반드시 생콩가루를 넣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래기를 생콩가루에 버무려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국물은 물론이고 시래기를 건져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고소한 콩 맛이 우러난다. 안동은 시래깃국 외에도 된장을 넣어 끓이는 국에 생콩가루를 흔히 넣는다. 그 밖의 음식에도 두루 사용하는데 건진국수라 부르는 칼국수도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어 반죽해서 면을 만들고, ‘증편’ 반죽에도 생콩가루를 넣으며, 부추에 생콩가루를 고루 묻혀 찜통에 찐 다음 양념장에 무쳐 먹는 부추찜도 있다. 늙은호박볶음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겨울철 반찬으로 밥상에 자주 올리던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새우젓으로 간을 해 들기름에 볶는 애호박볶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즘에야 애호박이 사철 나지만 옛날에는 한여름에나 구경할 수 있었다. 대신 늙은호박은 가을에 수확하면 다음 해 봄까지 보관해두고 먹을 수 있어 어르신들이 늙은 호박으로 반찬을 해 먹은 듯하다.
세 가지 음식을 만들어놓고 보니 기름진 고기도 없고, 만드는 방법 또한 너무 간단해서 특별히 소개할 게 있나 싶지만 음식 공부를 할수록 ‘제철 재료의 맛을 살려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거칠지만 안동 음식만큼 깊은 맛이 나고, 질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시래깃국・늙은호박볶음・배추전 만들기
시래깃국
재료 무・삶은 시래기 150g씩, 생콩가루 1/2컵, 맛국물(멸치 또는 다시마 우린 것) 4컵, 다진 마늘・된장 1큰술씩
만들기
1 무는 3cm 길이로 채 썬다.
2 삶은 시래기는 겉껍질을 벗기고 4~5cm 길이로 자른다.
3 냄비에 맛국물을 2컵 정도 붓고 된장을 체에 걸러 넣는다.
4 ③에 ①의 무채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5 ②의 시래기에 생콩가루를 묻혀 ④의 냄비 가운데에 살그머니 넣고(콩가루가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다진 마늘을 넣은 다음 냄비 뚜껑을 닫는다.
6 ⑤가 끓어오르면 남은 육수를 가장자리로 모두 넣어 끓이면서 시래기 가운데를 벌려 구멍을 낸 다음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늙은호박볶음
재료 늙은 호박 300g, 고춧가루 1/2큰술, 다진 마늘・새우젓 1작은술씩, 미나리 또는 실파 약간, 들기름 적당량
만들기
1 늙은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4~5cm 길이로 납작하게 썬다.
2 ①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새우젓을 넣어 버무린 후 간이 배도록 10분간 재운다.
3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②의 양념한 호박을 넣어 살짝 볶는다(살캉하게 씹힐 정도로만 익힌다).
4 완성되면 접시에 담고 다진 실파나 미나리를 살짝 올린다.
배추전
재료 통배춧잎 2~3장, 밀가루 1컵, 물・소금・들기름 약간씩
만들기
1 배춧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줄기 쪽 부분을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린다.
2 밀가루 1컵에 물 1/3컵, 소금을 넣어 약간 되직할 정도로 반죽을 만든다(반죽의 되기를 보며 물을 조절한다. 반죽에 국간장 1큰술과 참기름이나 들기름 1큰술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3 ①의 배춧잎에 반죽을 앞뒤로 묻힌 다음 들기름을 두른 팬에 굽는다.
4 식성에 따라 초간장이나 양념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아버지 고향은 안동이지만 나는 유년기부터 서울에서 살았다. 입맛은 변치 않는지 서울에서 오래 살았으면서도 밥상은 늘 ‘안동식’ 그대로였다. 벌건 안동 식혜를 뒷마당의 항아리에 한가득 담아두고 겨우내 먹었으니까. 중학교 때 친구 집에서 희고 깔끔해 보이는 서울 식혜(감주)를 맛보곤 어찌나 놀랐던지. 우리 집 식혜가 촌스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져 친구에겐 비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순간이 떠오른다. 서울에 살았지만 집안의 중심이었던 우리 집에는 안동에서 친척들이 자주 방문했다. 삼촌이나 할아버지는 한 손에 자반고등어나 시래기, 생콩가루, 늙은 호박, 묵 등을 들고 오는 게 인사였는데, 그때마다 어린 마음에 ‘좀 더 세련된 선물도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뿐인가. 농사도 크게 짓고, 정미소와 술도가를 가지고 있어 정말 대단한 부자였던 작은할아버지의 큰딸, 그러니까 고모가 시집가던 날 안동에 내려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부잣집 잔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잔치 음식의 절반이 ‘배추전’이라고 할 만큼 한쪽에 배추전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기나 생선도 넣지 않고 배추에 밀가루 옷만 입혀 기름에 부친 그 음식이 부잣집 잔치의 메인 요리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변하는지 스무 살 이전까지는 별맛 없던 배추전이 이제는 제일 맛있는, 그리고 자주 만드는 음식이 되었다. 배추전은 우리 집 역시 명절이나 생일날, 또 별다른 반찬이 없는 날이면 수시로 부쳐 먹는 전이다. 배추 줄기를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려 평편하게 만든 다음 밀가루 옷을 입혀 들기름에 부치면 말 그대로 심심한, 요란하지 않은 단맛을 지니면서 은근히 고소하고 아삭바삭한 배추전이 완성된다. 자꾸 먹어도 질리거나 물리지 않는 전으로 젊은 친구들도 한번 맛을 보면 또 찾을 정도로 매력이 있어 어느 모임에 만들어 내 놓으면 제일 먼저 동이 나곤 한다.
된장을 풀어 넣고 끓인 시래깃국은 여러 지방에서 두루 먹지만 안동 지방에선 반드시 생콩가루를 넣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시래기를 생콩가루에 버무려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국물은 물론이고 시래기를 건져 입에 넣고 씹을 때마다 고소한 콩 맛이 우러난다. 안동은 시래깃국 외에도 된장을 넣어 끓이는 국에 생콩가루를 흔히 넣는다. 그 밖의 음식에도 두루 사용하는데 건진국수라 부르는 칼국수도 밀가루에 생콩가루를 넣어 반죽해서 면을 만들고, ‘증편’ 반죽에도 생콩가루를 넣으며, 부추에 생콩가루를 고루 묻혀 찜통에 찐 다음 양념장에 무쳐 먹는 부추찜도 있다. 늙은호박볶음은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겨울철 반찬으로 밥상에 자주 올리던 음식이다. 만드는 법은 새우젓으로 간을 해 들기름에 볶는 애호박볶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요즘에야 애호박이 사철 나지만 옛날에는 한여름에나 구경할 수 있었다. 대신 늙은호박은 가을에 수확하면 다음 해 봄까지 보관해두고 먹을 수 있어 어르신들이 늙은 호박으로 반찬을 해 먹은 듯하다.
세 가지 음식을 만들어놓고 보니 기름진 고기도 없고, 만드는 방법 또한 너무 간단해서 특별히 소개할 게 있나 싶지만 음식 공부를 할수록 ‘제철 재료의 맛을 살려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거칠지만 안동 음식만큼 깊은 맛이 나고, 질박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시래깃국・늙은호박볶음・배추전 만들기
시래깃국
재료 무・삶은 시래기 150g씩, 생콩가루 1/2컵, 맛국물(멸치 또는 다시마 우린 것) 4컵, 다진 마늘・된장 1큰술씩
만들기
1 무는 3cm 길이로 채 썬다.
2 삶은 시래기는 겉껍질을 벗기고 4~5cm 길이로 자른다.
3 냄비에 맛국물을 2컵 정도 붓고 된장을 체에 걸러 넣는다.
4 ③에 ①의 무채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5 ②의 시래기에 생콩가루를 묻혀 ④의 냄비 가운데에 살그머니 넣고(콩가루가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다진 마늘을 넣은 다음 냄비 뚜껑을 닫는다.
6 ⑤가 끓어오르면 남은 육수를 가장자리로 모두 넣어 끓이면서 시래기 가운데를 벌려 구멍을 낸 다음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늙은호박볶음
재료 늙은 호박 300g, 고춧가루 1/2큰술, 다진 마늘・새우젓 1작은술씩, 미나리 또는 실파 약간, 들기름 적당량
만들기
1 늙은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4~5cm 길이로 납작하게 썬다.
2 ①에 고춧가루, 다진 마늘, 새우젓을 넣어 버무린 후 간이 배도록 10분간 재운다.
3 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②의 양념한 호박을 넣어 살짝 볶는다(살캉하게 씹힐 정도로만 익힌다).
4 완성되면 접시에 담고 다진 실파나 미나리를 살짝 올린다.
배추전
재료 통배춧잎 2~3장, 밀가루 1컵, 물・소금・들기름 약간씩
만들기
1 배춧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줄기 쪽 부분을 칼등으로 자근자근 두드린다.
2 밀가루 1컵에 물 1/3컵, 소금을 넣어 약간 되직할 정도로 반죽을 만든다(반죽의 되기를 보며 물을 조절한다. 반죽에 국간장 1큰술과 참기름이나 들기름 1큰술을 넣으면 더욱 맛이 좋다).
3 ①의 배춧잎에 반죽을 앞뒤로 묻힌 다음 들기름을 두른 팬에 굽는다.
4 식성에 따라 초간장이나 양념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