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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리포트]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요즘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맛있는 음식, 건강한 음식, 새로운 음식에 꽂혀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음식에 대한 문젯거리가 터져 나와 정작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접한 몇 권의 책과 다큐 프로그램에서 그 해답을 찾는 중이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저술가인 브리야 샤바랭은 저서 <미식예찬>(1825)에서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적었다. 최근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나의 장바구니 리스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키워드는 바로 ‘두뇌 음식’과 ‘면역력’이다. 그 결과 과일과 채소 코너에 머무는 시간이 예전보다 한참 길어졌다.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두뇌 음식’을 다룬 프로그램 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똑똑해지는 두뇌 음식이라니, 이 얼마나 귀가 솔깃해지는 주제인가. 솔직히 말하면 기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했다기보다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 생각에 촉수를 곤두세우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IQ를 팍팍 올릴 수 있는 기적의 식재료 리스트가 세계 최초로 개발된 신약처럼 ‘짠’ 하고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를 자석처럼 TV 모니터 앞으로 끌어당긴 것은 바로 ‘집중력’이라는 단어였다. 내가 평소 딸에게 해대는 잔소리의 90% 이상이 집중 좀 하라는 말이었던 데다, 입 짧은 딸아이에게 “이거 많이 먹으면 집중력 높아지고 똑똑해진대”라고 유인하면서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잡기에도 딱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며칠 후 나는 다시 보기 유료 서비스로 그 프로그램을 딸아이와 함께 다시 보았고, 그날 저녁 밥상에서 딸아이는 데친 브로콜리와 토마토 샐러드, 버섯볶음을 비롯한 대부분의 반찬을 얼굴 찡그리지 않고 고루 잘 먹었다. 내친김에 두뇌 음식에 대해 요약하자면, 영국에 두뇌 음식 바람을 일으킨 바이오센터 패트릭 홀포드 회장은 “두뇌 음식은 세 가지로 분류되며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첫째는 뇌의 연료인 당분을 공급하는 콩, 견과류, 정백하지 않은 곡식, 과일, 채소 등의 자연 식품이고, 둘째는 뇌세포의 의사소통을 돕는 비타민과 미네랄인데, 특히 브로콜리에 많이 들어 있는 엽산은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셋째는 생선과 견과류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필수지방산. 결국 두뇌 음식이란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곡물과 채소, 과일, 생선, 견과류 등 균형 잡힌 식단’이었다. 진정 음식 하나로 인간의 삶이 180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토록 ‘평범한’ 두뇌 음식을 이용한 프로젝트의 결과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정말 그렇다!”

또 요즘 ‘면역력’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재미 삼아 체크해본 ‘면역력 자가 진단’ 덕분이다. 세계적인 면역학자 아보 도오루가 감수한 <먹는 면역력>(전나무숲 펴냄)에 들어 있는 진단표로 생활 상태, 신체 상태, 정신 상태를 체크해본 결과, 현재 나의 면역 상태가 위험 수준에 가까운 ‘요주의 수준’으로 나온 것. 특히 ‘이번 주 나의 면역력’을 살펴본 결과, 어드바이스가 ‘만약 매주 이런 상태라면 병에 걸릴 가능성 높음’으로 나왔다는 말씀. 그래서 꼼꼼히 책을 읽으며 아보 도오루가 제안한 면역력 높이는 식사법에 밑줄을 그었다. 면역 밥상에 가장 세게 방점을 찍은 것은 현미나 해조류, 채소, 버섯 등이다. 이는 부교감신경을 우위 상태로 만드는 미네랄은 물론 식이섬유도 풍부하게 함유된 식품들이다. 그중 면역력 향상의 우등생은 ‘현미’. 매일 현미밥과 된장국을 기본으로 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현미는 벼의 겉껍질만 제거한 것이라서 표피와 배아를 먹게 되므로 재배 방법이나 생산자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좀 비싸긴 하지만 안전성을 신뢰할 수 있는 유기재배인증을 받은 것 중에서, 그리고 현미식 초보인 점을 고려해 덜 까끌거리고 단맛이 느껴지는 발아현미로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실 농산물 코너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하는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식품인증마크를 살펴보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산물 코너에서 포장지 겉면을 꼼꼼히 살펴 유기농산물(다년생 작물은 3년 이상, 그 외 작물은 2년 이상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것)인지, 무농약농산물(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만 권장량의 1/3 이내로 사용한 것)인지, 저농약농산물(제초제는 사용하지 않되 화학비료는 권장량의 1/2 이내, 농약 살포 횟수는 안전 사용 기준 1/2 이하로 사용한 것)인지 확인해 되도록이면 우리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구입하는 편이다. 비싸더라도 건강에 이롭고 맛 좋은 먹을거리를 섭취하겠다는 의지가 선택의 가장 큰 이유지만 나머지는 유기농산물이 많이 팔려야 국내 유기농가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과 응원, 그리고 나아가 환경에 대한 걱정도 한몫을 한다.

육류와 유제품 코너에서는 요즘 갈등이 좀 많아졌다. 비단 ‘광우병’으로 걱정되는 미국 수입 쇠고기 문제나 ‘조류 독감AI’ 파동 때문에 불거진 고민은 아니다. 얼마 전 비소설 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던 <죽음의 밥상>(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펴냄)을 읽고 나서부터 사고의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피터 싱어는 1975년에 <동물 공장>을 써서 관심을 불러일으킨 실천윤리학자로, 2005년 <타임>지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인물. 농부인 짐 메이슨과 함께 발로 뛰며 저술한 <죽음의 밥상>은 부제인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이 말해주듯 공장형 축산의 실태를 낱낱이 폭로한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닭, 돼지, 소가 대형 농장 시스템에서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사육되고 참혹하게 도살되는지, 싸구려 고기와 달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얼마나 많은 산과 바다가 오물로 더럽혀지며,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가 대기권으로 날아가 온실효과를 부채질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일부분은 읽기 껄끄럽고 불쾌감을 줄 정도다. 그래서 육식을 거부하게 되었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도 그들처럼 채식주의자 반열에 끼지는 못했다. 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의 부드러운 육즙과 다리를 꼬고 교태로운 자세로 담겨 나오는 복날 삼계탕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먹을거리를 선택할 때 로컬 푸드나 공정 무역, 유전자 조작 식물 문제, 심지어 과식과 비만 문제 등 ‘윤리적인 성찰’을 한 번쯤은 거치게 된 게 최근 일어난 변화다. 육류 코너를 돌아 나오며 ‘국내산 한우 1+ ’라고 적힌 스테이크용 등심 두 조각을 제법 의미심장하게 골랐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주 산골에서 네 식구가 함께 농사지으며 건강하게 사는 장영란 씨의 글이 친절하게 조언해준다. <자연 그대로 먹어라>(장영란 글, 김광화 사진, 조화로운삶 펴냄)는 <죽음의 밥상>과 같은 취지의 내용을 훨씬 따뜻하고 가슴에 와 닿게 적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자연이 더러워지면 우리 몸도 더러워지고 / 철없이 먹으면 철이 없어지고 / 제철 먹을거리를 먹으면 싱싱해지고 / 씨앗이 없는 걸 먹으면 사람 씨도 부실해지고 / 살아 있는 씨를 먹으면 몸도 마음도 튼실해지고 / 먼 나라를 돌아 온 걸 먹으면 제자리에 있지를 못하고 / 제 나라 제 땅에서 나온 걸 먹으면 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 복잡하게 가공한 걸 먹으면 복잡해지고 / 단순하게 먹으면 집중하는 힘이 생기고 / 가려내고 먹으면 저 좋은 것만 찾게 되고 / 통째로 먹으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 만들어 파는 걸 먹으면 돈을 쫓게 되고 / 손수 만들어 먹으면 사람을 사랑하고 / 혼자 먹으면 혼자가 되고 / 여럿이 나누어 먹으면 더불어 사니 / 먹는 게 바로 그 사람이다.”
장보기에 대한 내 머릿속 한 뼘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나니 브리야 샤바랭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달라”고 말이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