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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식재료] 기름의 풍미로 평가하는 최고급 돼지고기 이베리코
쇠고기에 호주의 와규와 일본의 고베 비프가 있다면, 돼지고기에는 스페인의 이베리코가 있다.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스페인의 목초지에서 세심하게 길러 생산하는 프리미엄 돼지고기 ‘이베리코’는 전 세계 유명 셰프와 미식가들이 사랑하는 식재료다. 이베리코의 맛은 쫄깃한 육질이 아닌 기름의 농도와 고소함으로 평가된다.
음식 맛을 결정짓는 것은 8할 이상이 ‘재료’다. 고급으로 치는 음식일수록 최상의 재료를 써서 조리하고, 최고의 요리사는 품질 좋은 식재료를 구하는 데 목숨이라도 걸 기세다. 세계의 진미로 꼽히며 미식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고급 식재료는 한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도 톡톡히 일조한다. 미식과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세계 3대 진미 외에도 ‘스페인의 이베리코’를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음식 평론가들이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은 스페인 북부 로사스 근처의 ‘엘불리El Bulli’. 그곳의 주인 겸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씨는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식당 문을 닫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독특한 요리 재료를 수집해 새 조리법을 연구한다. 이처럼 전설적인 셰프가 ‘내 생애 최고의 재료’라고 극찬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스페인을 대표하는 식자재 ‘이베리코’다. 이베리코는 스페인 이베리코 반도의 데헤사라고 불리는 목초지에서 도토리와 올리브, 유채꽃, 허브를 먹고 자란 돼지의 종류. 우리에게는 생경한 이름이지만, 세계적으로는 10여 년 전부터 붐을 일으켜 현재는 하루에 10만 마리 정도가 공급돼 전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과 미식가들의 식탁 위를 점령하고 있는 파워풀한 식재료.

이베리코 돼지가 일반 돼지에 비해 풍미가 뛰어난 까닭은 품종과 사육 환경 때문이다. 지중해 남쪽의 멧돼지 후예로 알려진 이베리아 품종을 오랜 연구 끝에 교배시켜 얻어낸 것으로, 긴 머리와 긴 코, 좁고 긴 귀, 거무스름하고 발그레한 얇은 가죽, 검은색 발톱이 특징이다. 이베리코 돼지는 오로지 천혜의 자연 조건을 갖춘 스페인의 청정 지역인 데헤사에서 주로 주먹만 한 야생 도토리를 먹고 자란다. 이렇게 성장한 돼지고기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먹었을 때 코팅한 듯 입 안에 진하게 퍼지는 지방질 때문. 특히 돼지 뒷다리를 2년 이상 가공하고 숙성시켜 만든 햄 ‘하몽 이베리코’는 가장 섬세하고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이베리코 특유의 풍미는 도토리에 풍부하게 함유된 올레산 때문이다. 또 도토리에는 단일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줌으로써 각종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베리코는 태어나서부터 9개월 정도까지는 생산자의 농장이나 공장에서 섬세하게 양육하다가 품종이 우수한 것은 데헤사 지역으로 보내 방목한다. 그런 다음 도축과 가공, 숙성 과정을 거치게 된다. 도축한 돼지의 뒷다리는 잠시 냉장 보관했다가 10~12일 정도 천연 바다 소금에 절인다. 염장이 끝나면 씻어내고 다시 냉장 보관한다. 사이사이에 온도를 조절해 차갑게(칠링) 만드는 이유는 갓 구워낸 스테이크를 조금 식혔다 썰었을 때 육즙이 고기 안에 제대로 배어들어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런 다음 건조 단계에 들어간다. 하몽 이베리코는 오직 자연 건조로만 2~3년 동안 숙성시킨 것이다. 이 기간 동안 돼지 뒷다리가 매달려 있기만 하는 건 아니다. 이른바 이베리코 장인들이 매달아놓은 다리 하나하나마다 마른 살점에 기름을 바르고 말리고 다시 바르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한다. 또한 천장 높이까지 낸 통풍 창문을 시간 맞춰 열었다 닫았다를 하루에도 수차례 반복해 최대한 신선한 산바람으로 건조시킨다. 시간이 지날수록 햄이 기름과 섞여 천천히 수분을 배출하면 올렌산이 근육 조직 구석구석에 골고루 스며드는 것이다. 이렇게 2년여 동안 금지옥엽으로 숙성시킨 뒷다리는 다시 1년 동안 긴 휴면 시간을 보낸다.

오랜 외국 생활 중에 이베리코의 매력적인 맛에 빠졌다는 스패니시 레스토랑 ‘패쉬’의 조수현 대표는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하몽 이베리코 한 점을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으면서 아주 진하고 고소한 기름이 코팅하듯 퍼지죠. 그러다가 삼키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입 안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기름기의 맛과 향, 질감에서 다른 수제 햄과 차이가 나지요. 냉장고에 보관한 하몽을 꺼내서 10~15분 정도 실온에 놔뒀다가 와인과 함께 먹을 때 가장 맛있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도산공원 앞에 있는 ‘패쉬’에서는 이베리코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고, 세계적인 이베리코 기업인 훌리안 마르틴Julian Martin사의 이베리코 소시지, 하몽 이베리코를 구입할 수 있다.

1 하몽 이베리코 전용 거치대에서 칼로 얇게 햄을 저며내 먹는다. 얼마나 얇게 저미느냐 또한 이베리코를 제대로 다루는 기술이다.
2 도산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스페인 요리 전문점 ‘패쉬’. 이베리코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3 이베리코 돈육에 소금과 향신료를 첨가해 넉 달 동안 건조한 소시지와 이베리코 뒷다리를 2~3년 동안 수작업으로 완성한 하몽 이베리코.
4 저민 하몽 이베리코에 토마토, 스페인 빵, 올리브와 케이퍼를 곁들이면 최고의 와인 안주가 된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