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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 Living] 도예가의 밥상 풍경 국이 좋아 국사발을 빚고 술이 좋아 술잔을 빚는다
그릇에 담길 음식을 상상하며 정성스레 흙을 빚는 도예가는 어떤 그릇에 무엇을 담아서 먹고 살까? 도예가들이 공개한 실제 모습 그대로의 밥상엔 일상 속 모습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먹고 살아 그런 작품이 나왔구나’라고 절로 느낄 만큼.

다섯 명의 도예가가 이윤신의 그릇가게 ‘이도’에 모여 본인들의 실제 밥상 그대로를 재현했다.
왼쪽부터 이윤신·임미강·이수종·고희숙·이헌정 작가.



소박하고 정겨운 이수종 작가의 한식 밥상
“나는 이렇게 먹고 살아. 오늘 음식은 모두 아내가 준비해줬는데, 작업실에서 내가 직접 밥을 지을 때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육류를 싫어하는 편이라 고기 반찬은 잘 안 먹고 매일 세끼 밥과 된장국을 먹어. 그래서 난 밥, 국, 된장, 김치처럼 우리 전통 음식을 위한 그릇을 빚어. 내 그릇은 모두 한식을 위한 그릇이야.” 콩밥에 된장국, 김치, 두부조림, 명란젓이 전부인 이수종 작가의 밥상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젊은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작업 양을 꾸준히 소화할 수 있는 건 이렇게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 덕분일 게다. 무심한 듯 툭툭한 어투로 말을 꺼낼 때마다 진심이 묻어나는 그의 말 맛이, 된장국을 좋아한다는 그의 커다란 국사발과 꼭 닮아 있다. 별다를 것 없는 음식이 정성스러워 보이는 건, 밥과 된장국과 김치를 좋아하는 작가가 빚은, 자유분방한 듯 보이나 절제된 표현으로 더욱 빛나는, 이수종 작가의 그릇에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


밥상투박한 그릇에 담긴 임미강 작가의 아침 식탁
“아침엔 너무 바쁘잖아요. 무언가를 조리하고 손질할 시간이 없어요. 아침 식사 준비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뺏기고 싶지 않아요. 독일에서 4년 넘게 산 경험 때문인지, 전 이렇게 준비한 서양식 아침 식사가 더 편해요. 요구르트는 제가 직접 만들어서 먹고, 요구르트에 곁들인 오디는 제 작업실 뒷산에서 따 온 거예요. 작업실이 계룡산 도예촌에 있는데 주변에 저절로 자라나는 열매가 제법 많아요. 철 따라 그런 열매를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죠.”곡물 빵, 삶은 달걀, 요구르트, 잼과 버터, 카푸치노를 곁들인 임미강 작가의 아침상은 동양 스타일의 도자기에 담긴 서양식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처음 메뉴를 들었을 때는 그릇과 음식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상상이 되질 않았는데, 막상 차려놓고 보니 제법 잘 어울린다. 임미강 작가는 원래 생활 자기가 아닌 ‘도조’라고 하는 도예 조형물만 작업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형 작업에 쓰는 조합토로 밴딩 기법을 이용해 그릇을 만드니 꽤 쓸 만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생활 자기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단다. 이 식탁 분위기처럼 그의 작품엔 ‘다기, 반상기, 접시’가 아닌 ‘브렉퍼스트 세트, 런치 세트 포 누들’같은 영어 이름이 붙어 있었다.


반주에 담백한 안주를 곁들인 이윤신 작가의 저녁 식탁
“술을 많이 마시진 않는데, 조금씩 자주 즐기는 편이에요. 특히 반주로 소주를 좋아하죠. 전 소주를 마실 때 반드시 주병에 옮겨 담아요. 왠지 소주의 격이 달라지는 느낌이 좋아서죠. 이처럼 도자기의 매력은 평범한 음식도 귀하게 보이고, 대접받는 느낌이 드는 데 있어요. 아무튼 제가 술을 좋아해서인지 제 작품을 보면 다기보다 주병과 잔이 훨씬 많아요.(웃음) 오늘 보여드리는 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성이에요. 반주를 곁들이는 저녁 식사엔 살이 찔 수 있기 때문에 밥은 먹지 않고, 따끈하게 데운 순두부와 해초 샐러드, 싱싱한 생선구이를 곁들여요. 특히 생선은 거의 매끼 먹는데, 제가 생선을 무척 좋아하거든요.”
칼로리를 낮추고 영양은 챙긴 저녁 반주상은 세련된 스타일의 이윤신 작가와 꼭 닮았다. 그의 상엔 흑유를 바른 그릇과 청자, 백자 등 서로 다른 기법으로 만든 그릇이 섞여 있는데 어색하기는커녕 멋스럽고 조화롭다. 평소 흙의 물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많이 선보이는 그의 그릇은 음식을 담아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윤신 작가는 그릇을 빚기 전 음식이 담길 모습을 상상하고, 음식이 담겨야 100이 되는 그릇을 좋은 그릇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냉메밀국수로 차린 고희숙 작가의 여름 점심한끼
“여름엔 간단하게 준비한 냉메밀국수와 생마를 갈아 부친 전을 자주 먹어요. 상에 놓은 그릇은 제가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인데, 전부 제 작품은 아니에요. 백자만 제 것이고 마전을 담은 분청 접시는 일본의 고이에 료지 선생님 작품이에요. 또 가운데 실파를 담은 접시는 친구 장작가마에서 나온 것이고요. 메밀 장국을 담은 청색 그릇은 남편 작품이에요. 남편도 도예를 하는데 제 스타일과 정반대죠. 저희 아이는 아빠 그릇이 더 좋대요.(웃음) 젓가락 받침대는 아이가 만든 것인데 간장 종지로 자주 이용하죠.” 고희숙 작가의 그릇과 식탁에서는 7년간 일본에 살며 도예 작업을 했던 지나온 시간을 엿볼 수 있다. 스승과 친구, 남편, 아이가 만든 작품으로 차린 이 상에서는 ‘그릇’을 매개로 한 사람 사이의 추억이 듬뿍 묻어난다. 고희숙 작가의 모던 스타일 백자가 손맛 나는 그릇과 잘 어우러지는 것은 석고 캐스팅으로 작업한 그릇을 물레 위에 놓고 손으로 마무리해 작가의 손놀림이 드러나는 그릇을 빚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담긴 이헌정 작가의 아침 식탁 
“아침에 떡을 자주 먹어요. 그런데 떡만 먹기 심심하니까 오트밀과 커피, 치즈 등을 곁들이죠. 제 식탁이 좀 산만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 정형화된 상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제 이력도 생활 자기만 한 게 아니라 설치미술, 건축, 도조 등 다양하죠. 이처럼 여행하듯 떠돌았던 다양한 경험이 제 도예 작업에 나타난다고 보시면 돼요. 전 세트 개념을 선호하지 않아요.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한 구성을 좋아하죠. 여기엔 기능도 무시될 수 있어요. 오늘도 다기에 오트밀을 담고, 합에 떡을 담았죠. 커피 잔은 제가 작업한 것이 아니라 영국에 방문했을 때 도예를 전공하는 학생이 전시한 졸업 작품을 구입한 것이에요. 불편하고 조심스럽게 만들었는데, 감수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가장 개성 넘치는 식탁을 보여준 이헌정 작가. 그는 평소에도 인절미와 모차렐라 치즈처럼 성격이 다른 음식을 한상에 차려낸 식사를 즐긴다. 도예 작업을 할 때도 기능을 계산하지 않고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다. 정해진 룰이 없는, ‘다양한 색깔과 형태의 그릇이 한 식탁에 모여 있어야 오히려 편하게 느껴진다’는 상차림엔 그의 작업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도예가의 식탁’은 이도(02-722-0756)에서 7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전시합니다. 전시회 에서는 본지에 소개한 다섯 명의 작가 외에도 이현배·안정윤·이경한·박경주·이인진 작가 등 총 열 명의 ‘도예가의 식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