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푸른 빛이 모던한 느낌을 주는 ‘비노 481’의 외관.
우리나라, 특히 서울의 생활 물가가 오를 대로 올라 뉴욕보다도 20%나 높다는 사실이 이미 객관적으로 증명됐지만, 일상에서 가장 가깝게 ‘높은 물가’를 느끼는 것은 바로 커피 값과 와인 값이 아닐까 싶다. 와인 바에 가거나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평소에 와인을 즐기는 이들은 맛있고 좋은 와인을 숍에서 직접 사서 마신다.
“공급과 수요의 밀고 당기기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게 시장 경제의 원리인데, 우리나라 소비자는 와인 값에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앉은 채로 생산자와 공급자의 일방적인 통보만 받아요. 그러다 보니 가격이 턱없이 비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와인 숍은 대개 수입상의 직영 매장이에요. 한눈에 보면 와인 종류가 무척 많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이 들여오는 셀렉션으로만 채워져 있어서 그리 다양하지 않아요.” 2002년 와인 바 ‘까사 델 비노’를 오픈한 은광표 씨는 우리나라 소비자가 좀 더 와인 가격에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까사 델 비노’는 좋은 와인을 캐주얼하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바로 여전히 인기가 높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와인 바가 아닌 와인 숍과 저장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상가에 문을 연 와인 숍은 번지수를 따서 ‘비노 481’이라 이름 붙였다. 이미 와인 바에서 검증된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와인 수입을 하지 않는 은광표 씨는 40여 군데 수입상을 상대로 ‘자유롭게’ 좋은 와인들만 직접 골라 이곳에 모아놓았다. 4백 종류 이상의 방대한 와인을 갖추었는데, 가격은 백화점 행사 가격 정도. 특정 와인은 미리 대량 구입해 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자와 이익을 나누려고 한다.(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의 신흥부자들이 와인을 기하급수적으로 사들이고 있기 때문에 와인 가격은 앞으로 더 오를 예정이라고 한다.)
2 집도 사무실도 아닌 곳에 와인을 보관하고 싶을 때는 ‘카브 481’에 맡겨라. 한 달에 6만 원을 내면 안전하고 맛있게 와인을 보관해준다.
3 카브 안에는 큰 테이블이 놓여 있어 와인 파티도 열 수 있다.
4 ‘비노 481’에는 와인 바에서 검증된 질 좋은 와인 4백여 종이 구비돼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자리 잡은 만큼 동네 사람들의 ‘삶’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단다. 전단을 예쁘게 만들어 피자, 탕수육, 삼겹살 등 집에서 자주 먹는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 가격대별 베스트 셀렉션, 기념일에 어울리는 와인 등을 제안할 예정. 전화로 주문하면 집으로 배달도 해주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간단한 와인 강의도 직접 할 생각이다. “와인을 알아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습니다. 모르면 진정한 가치를 느끼기 힘들어요. 그런 면에서 제가 와인 전도사 역할을 해야지요.”
바로 옆 건물 지하에 만든 ‘카브 481’은 우리나라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콘셉트의 공간이다. 집도 사무실도 아닌 곳에 개인이 소유한 와인을 안전하게 보관해놓을 수 있는 저장고다. 은광표 씨 자신이 옛날부터 생각하고 있던 꿈의 공간을, 작년 말부터 구체적으로 계획해 지난 2월에 오픈한 것. 컬러풀한 철제로 마감한 창고형 캐비닛 1유니트에는 와인 1백50병이 들어간다. 이런 유니트를 개인에게 분양해 각자 자기만의 와인 저장고로 사용하는 것. 건물 지하에 만든 현대식 저장고에서 무진동, 17℃, 습도 70%를 유지해 최적의 상태로 와인을 보관해준다. 아파트 단지 내 조그만 상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주차 문제도 예민하지 않고 잠깐 내려가서 자기 유니트의 자물쇠를 열고 필요한 와인을 꺼내면 된다. 입회비는 50만 원이고 한 달에 6만 원씩 내면 보안 경비는 물론 24시간 모니터링에 보험까지 가입해 안전하게 관리해준다.
5 와인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은광표 대표.
6 오픈 기념으로 매일 저녁 7시부터 와인 시음회가 무료로 열린다.
“와인 셀러는 보통 1백50병 들어가는 게 4백만~9백만 원 정도 합니다. 그러나 가정용 셀러는 진동이 없을 수가 없고, 전기료도 한 달에 2만 원 이상 나가지요. 온도는 잘 지켜지지만 습도 관리가 약한 편이에요. 또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요. 이 카브는 ‘서비스’ 같은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었어요. 와인도 좋은 컨디션으로 보관할 수 있고, 여기서 개인적인 와인 모임을 하셔도 좋아요. 한 달에 6만 원은 계산기 두드려 나온 가격은 아니고, 이 동네 한 달 세차 비용이 6만 원이거든요. 그냥 한 달 세차비 정도만 내고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하고 유용한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7 1백50병을 보관할 수 있는 1유니트.
은광표 씨가 추천하는 6월에 어울리는 와인
클라우디 베이 뉴질랜드 남섬 북단에 있는 말보로 지역의 와인. 100% 소비뇽 블랑으로 만들어 상큼하고 크리스피하다. 초여름 저녁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물기가 채 마르기 전 발코니에서 당근, 상추, 오이 같은 채소와 먹으면 맛있다. 에피타이저에 어울린다.
샤토 다가삭 오메독의 크루 부르주아 등급을 받은 와인으로 가격 대비 맛이 아주 좋다. 오메독 와인 중 드물게 메를로가 더 많아 무척 부드럽다. 많은 사람한테 추천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무게감 있는 메인 코스와 함께 마시면 좋은 와인이다.
- [눈에 띄는 공간] 와인에 관한 이로운 생각 VINO 481·CAVE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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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소주 한잔’ 만큼이나 ‘와인 한잔’ 하자는 말이 익숙하다. 평소에 와인을 즐기는 애호가들이 늘어나면서 와인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재미있고 유익하게 변하고 있다. 청담동의 유명 와인 바 ‘까사 델 비노’ 대표로 와인 전도사를 자청하는 은광표 씨가 압구정동에 오픈한 ‘비노 481’과 ‘카브 481’이 그렇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