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에게 듣는 레스토랑 이야기 이탈리아와 정통 프랑스 음식 사이
주변을 둘러보면 ‘원조’ ‘정통’ 등을 앞세운 레스토랑을 많이 볼 수 있다. 정통은 authentic, 즉 ‘진정한’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프렌치 레스토랑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구별할 수 있다면 서빙되는 음식도 남다를 것이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요리 경험을 쌓은 박찬일 셰프와 봄과 여름엔 프랑스에 살며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을 다니는 미식가 피터 현 씨가 말하는 ‘진짜 요리’ 이야기.


Italia
“이탈리아 섬유를 수입하는 친구가 해준 이야기예요. 이탈리아의 거래처 사람들을 한국에 초청해서 강남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접대했는데, 그들이 너무 맛있게 먹더래요. 친구는 ‘아, 내가 식당을 잘 골랐구나’ 하고 흡족해하고 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묻더래요. ‘그런데, 이 요리는 어느 나라 스타일이에요?’라고.” 우리나라에서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어냐는 질문에 박찬일 씨는 이렇게 말을 풀어 나갔다. 청담동에 있는 그 식당은 이미 수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정통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소개되었다. 박찬일 씨는 이탈리아인들의 식탁이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돼지를 이용한 여러 가지 가공품도 비슷하고 해물 요리도 큰 차이가 없다. 올리브 오일을 많이 쓰는 것도, 다양한 치즈를 먹는 것도,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코스별로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탈리아 음식을 이탈리아 음식답게 만드는 대표적인 것이 파스타라고 한다. 파스타의 생김새와 맛을 보면 그 레스토랑이 정통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그는 ‘감히’ 말한다. 파스타 이론서의 바이블로 잘 알려진 <라 파스타>를 쓴 이탈리아의 마리아 템페스티니 여사 역시 ‘이탈리아 요리의 위대한 배우는 파스타’라고 말한 바 있다. “파스타는 수십 종류가 있어요. 그 중에 우리가 흔히 먹는 국수처럼 길쭉하게 생긴 파스타가 스파게티지요. 그런데 파스타는 곧 스파게티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요. 어쨌든 스파게티든 그 외의 파스타든 가장 이탈리아다운 파스타는 알덴테로 익혀야 합니다. 알덴테al dente는 밀가루 심지가 딱딱하게 씹힐 정도로 면을 익히는 정도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알덴테 파스타를 내는 곳이 일 피오레와 빠사빠롤라, 딱 두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역시 한국 사람들 입맛에 무리였나 봐요. 지금은 문을 닫고 없지요.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파스타만이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정통을 주장한다면, 최소한 대표적인 음식인 파스타는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통을 자처한다면 발사믹 식초를 아무 음식에나 함부로 곁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많은 레스토랑에서 올리브 오일에 발사믹 식초 뿌린 것을 빵과 함께 내는데 이탈리아에는 그런 곳이 없어요.” 발사믹 식초는 향과 맛이 무척 강하다. 그걸 채소나 버섯, 빵처럼 맛이 순한 음식과 함께 먹는다면 재료의 맛이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 “이는 미국 사람들이 먼저 망가뜨린 거고, 잘못된 채로 일본으로 건너간 겁니다. 그곳에서 이탈리아 음식을 배운 한국인들이 그 잘못된 습관을 한국으로 들여온 거죠. (이탈리안 레스토랑 도입 초기에)이탈리아 요리 단기 연수가 일본 요리학원과 많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화된 게 이탈리아식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어요.” 박찬일 씨의 거침없는 ‘레스토랑 정체성’에 대한 설명은 계속된다. “레스토랑측만 잘못된 것은 아니에요. 손님 중에서도 아직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개념이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무작정 타바스코 소스(미국에서 개발된 멕시칸 스타일의 소스다)를 찾는 분이 있는가 하면, 리소토를 숟가락으로 먹거나, 냅킨을 목에 거는 행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배우며 박찬일 씨가 내린 정통 이탈리아 요리란 무엇일까. 이탈리아는 식재료가 다양하고 지역색이 강해서 파스타나 피자를 제외하고 딱히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내세울 만한 대표주자가 없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파르메산 치즈와 프로슈토, 발사믹 식초 역시 이탈리아 중북부 지역 특산물로 현재 다양한 서양 요리에 쓰인다는 것쯤을 알아두어도 좋다. “함경도와 제주도 요리가 많이 다르듯, 장화처럼 긴 이탈리아 역시 남부와 북부 요리가 다릅니다. 북부에서는 치즈와 육가공품 등을 주로 이용하지요. 신선한 제철 재료를 써서 빠르게 조리하는 것이 이탈리아적인 요리예요.” 박찬일 씨가 추천하는 제대로 된 이탈리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두 군데가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베네세레(02-3444-7122)와 청담동에 있는 안토니오(02-3443-4333)가 그곳. 서울 속 이탈리아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한번 찾아가보시길 권한다.

서른다섯 살이 넘어서 파스타를 처음으로 먹어본 박찬일 씨는 현재 청담동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뚜또베네(02-546-1489)의메인 셰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는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잡지사 기자였습니다. 뒤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늦게 맛본 이탈리아 맛에 푹 빠져 1999년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에서 요리를 배운 뒤 시칠리아와 페루지아, 로마 등지에서 3년 동안 요리사 생활을 했습니다. 특히 마피아 많기로 소문난 시칠리아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거주 요리사’ 생활을 한 대담한 면도 있습니다.

France
“서울에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요? 아니,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먹을 곳도 찾기 힘든데, 정통 프랑스 음식을 제대로 하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요?” 서울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말해줄 이가 필요했다. 여러 후보가 물망에 올랐고 그 중 미식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프랑스에 살고 있는 피터 현 씨를 떠올렸다. 무엇보다 그를 뽑은 이유는 특유의 섬세한 미각을 바탕으로, 누구보다도 웬만한 전 세계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맛에 대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 그러나 칼럼의 취지를 그에게 이야기했을 때 피터 현 씨는 위와 같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약간 화난 듯한. “우리나라에서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이가 몇이나 있겠어요. 매체에 소개된 것을 보고 찾아가면 불 조절도 제대로 못하는 셰프를 데려다가 주방에 앉혀놨으니. 좋은 요리학교만 나오면 다가 아닌데 말예요. 아직 멀었어요.”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수많은 선진국(적어도 음식에 있어서만큼은)의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을 돌아본 그의 따끔한 말이다. 반면 외국에는, 심지어 가까운 일본조차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 너무 많아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라고. “일단, 우리나라에서 프랑스 음식을 한다는 셰프들이 게으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리 개발을 전혀 하질 않아요. 요리는 예술입니다. 창의성이 없다면 그건 죽은 요리예요. 프랑스 음식이 왜 세계적인 요리가 될 수 있는지 아세요? 조리법의 기본은 철저히 지키되 끊임없이 요리 개발을 하기 때문입니다. 정통 프랑스 음식이라 해서 전해져 내려오는 옛날 레시피만을 고수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 중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요리를 선보이는 곳은 거의 없어요. 모두 그 레스토랑 셰프만의 특성과 독창성을 담는 음식만을 선보이지요. 정통이란 어센틱authentic, 즉 ‘진정한’이라는 의미를 담는데 셰프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 곧 진정한 프랑스 요리라는 뜻이죠.” 피터 현 씨는 레스토랑을 고르는 기준으로 주방장의 창의력을 꼽았으며, 프랑스 요리를 프랑스 요리답게 하는 것이 결국 셰프의 역량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이자면 요리 재료와 서비스, 그리고 레스토랑 분위기가 있다.

프랑스 음식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오트 퀴진Haute Cuisine과 지방 향토 음식, 그리고 가정식. 그중 오트 퀴진이 우리가 흔히 ‘프랑스 요리’라고 하는, 예술의 정수라 일컫는 요리다. 오트 퀴진은 아페레티프라고 불리는 식전주부터 후식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다. 접시 하나하나 ‘하나의 완벽한 맛의 세계’를 표현한다. 코스에 나오는 식재료는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거기에 음식 맛을 돋우는 와인이 있어야 한다. 두어 가지의 전채요리가 나오면 슬슬 주식으로 넘어간다. 생선이나 여러 가지 가금류, 육류 등을 다양한 조리법으로 요리한 음식들은 곁들여지는 소스나 채소와 함께 최상의 맛과 향기를 먹는 이에게 선사한다. 식탁의 후미를 장식하는 것은 디저트. 이렇게 여러 단계로 즐기는 것은 다른 유럽 음식들과도 다름없지만 각 음식마다 여러 번의 실패와 경험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점이 프랑스 음식, 특히 오트 퀴진의 특징이다. 피터 현 씨는 서울에서는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더 시즌스에서 오트 퀴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곳을 적극 추천하는 이유는 박효남 셰프가 요리를 하기 때문. 이곳을 처음으로 찾은 1980년대 초반, 그는 주문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퇴짜놓기로 악명이 높은 손님이었고, 박효남 씨는 부엌 한쪽에서 감자를 깎던 견습생이었다. 피터 현 씨가 ‘이 요리에는 왜 샤프란이 들어 있지 않냐’ ‘고기를 너무 태웠다. 레어rare로 다시 구워 달라’ 등 이런저런 주문을 할 때마다 박효남 씨는 깐깐한 손님이 전해주는 그런 정보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매일 저녁 요리 연습을 했다. 피터 현 씨가 높이 사는 것은 박효남 씨의 이런 노력하는 모습이다. 사실, 정평이 난 레스토랑의 부엌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는 크게 수준이 다르지 않다. 결국 음식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셰프의 노력과 창의성이다. “스페인의 ‘엘 부이’에서는 셰프가 6개월 동안 장사하고, 나머지 6개월은 실험실에서 분자요리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하죠. 우리나라의 몇몇 사람들은 장사 잘 되는데 그걸 왜 접고 공부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청담동 팔레 드 고몽(02-546-8877) 역시 좋은 프랑스 와인 리스트가 음식의 격을 한층 승화시켜주고, 음식 역시 섬세한 레스토랑이라고.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라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던 그는 최근에는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다. 프랑스 파리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도 이따금씩 만나는 한국인 셰프들 때문이다. 그들은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그 나라 음식에 대해 더 생생한 감각을 살리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프랑스 현지에서 제대로 요리를 배운 이들이 서울에 대거 입국하여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을 차리는 날이 기대된다.

작가이며 언론인으로 잘 알려진 피터 현(본명 현웅) 씨는 미식가로도 워낙 유명합니다. “나처럼 입맛 까다로운 사람한테 정통 프랑스 음식에 대해 물으면 좋은 말듣기 힘들지요”라고 소개한 그.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이렇게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이가 일러주는 따끔한 말 한마디일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16년째 봄과 여름에는 프랑스 샤토에서 시간을 보내며, 손님이 올 때는 집 근처 미슐랭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을 예약해 함께 미식을 즐기러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