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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신정구의 레스토랑 창업기 나의 세번째 시트콤
아직 간판도 없습니다. 한데 진작부터 알음알음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이제는 제법 단골이 생겼다네요. 광화문 씨스퀘어 1층에 있는 이탤리언 레스토랑 얘깁니다.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와 <두근두근 체인지>의 작가 신정구 씨가 한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듯 이 레스토랑의 극본에서부터 캐스팅, 음악, 조명, 세트 제작, 홍보, 마케팅까지 모든 것을 ‘총감독’했다고 합니다. 일상 자체가 한 편의 시트콤인 신정구 씨가 감독을 했으니,당연히 스토리는 탄탄하고 재미나고 유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합니다. 이름은 바로 ‘어딕션 플러스’. 직접 가서 보니 대박 예감입니다. 조만간 이곳에 ‘중독’된 ‘어.플 폐인’이 조직될지로 모르겠네요. 예고편은 여기까지, 작가 신정구 씨의 세 번째 시트콤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어딕션 플러스의 등장인물. 왼쪽 페이지는 신정구 작가와 김진의 대표. 정예은 어린이(인턴 쿡). 오른쪽 페이지 맨 앞 김진수(매니저), 가운데 줄 왼쪽부터 박원현(주방장), 최범진(요리사), 김희연(스태프), 이종서(스태프), 뒷줄 왼쪽부터 고영주(요리사), 이인희(요리사), 최재윤(요리사) 씨.

번번이 퇴짜였다. 몇 달을 밤새워 머리를 쥐어짜고 또 짜고 온갖 미사여구에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 드라마 기획서를 만들어봐도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재미없다!’였다. 뭘까? 뭐가 문제일까? 뭔가 하지 않으면 당장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급증에 걸린 나는 무슨 수를 써봐도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버려지기 직전의 치약 튜브처럼 납작해진 머리를 다시 쥐어짜는 척 시늉이라도 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 당시 나는 ‘강박 6종 세트’를 무이자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상태였다.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 따뜻해야 한다는 강박,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예측 불허·흥미진진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꿈처럼 환상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그러면서도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재미없다!” 문득 약간 미친 것처럼 혼잣말을 했다. 일은 그저 힘들고 괴로울 뿐이지 정말로 재미가 없었다. 모니터와 키보드 앞에 앉아 작업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어떤 어시스트는 금방이라도 독 묻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덤벼들 것 같은 한 마리의 코브라 같다고 했다.
예전에 내가 대본을 쓸 때 어떤 모습이었나를 떠올려봤다. 미리 밝혀두지만 난 좀 심하게 ‘자뻑’ 스타일이다. 내가 방금 막 써놓은 대사를 보고 스스로 웃겨서 낄낄거리거나 완전 감동 먹어서 질질 울기도 하며 혼자서 온갖 ‘생쑈’를 다 한다. 그런 일은 너무 재미난 놀이 같아서 며칠 밤을 새워 까칠하게 부르튼 입술에서조차 즐거운 흥얼거림이 나오게 했다. 당연히 내가 재미있어 하지 않으면 아무도 즐거워하지 않았다. 괴로워 죽을 것처럼 억지로 만든 코미디는 여드름으로 피부가 완전 작살난 백화점 1층 화장품 코너의 직원을 볼 때처럼 겨우 비웃음을 만들 뿐이었다. 나는 정말로 더 즐거워야 했다. 너무 뻔한 원칙인 ‘나부터 웃고 울자!’를 잊고 있었던 거다.

1 ‘음식은 마음의 솜씨’라고 여기는 신정구 씨. 직접 손님에게 서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모두에게 ‘즐거운’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2 엄마 따라 손님으로 왔다가 이곳 분위기에 ‘중독’돼 일주일에 몇 번씩 이곳을 찾는 열한 살 소녀 예은이. 장래 희망이 요리사인 예은이는 주방 삼촌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기도 한다.
3 가장 맛 좋은 양념은 정성.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음식 맛이다.

때마침 나는 ‘네가 하고 싶은 짓은 뭐든!’이 가장 큰 조건인 일을 제안받는 뜻밖의 행운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생뚱맞게도 시트콤이나 드라마, 영화가 아닌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일이었다. 15년 넘게 자취 생활을 하면서도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드는지 모를 정도로 숫자 감각이 제로인 날더러 식당을 열라고? 내게 일을 제안한 제작자는 ‘그런 주제넘은 걱정일랑 집어치우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레스토랑 스토리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다. 이미 시작부터 조건은 완벽했다. 일단 제작자가 가난했다. 드라마에 비해 턱없이 낮은 제작비 때문에 매번 상상의 나래를 접어야 했던 대신 묘하게 오기가 발동돼 엉뚱한 상상이라도 하게 하던 시트콤을 만들 때와 상황이 똑같았다. ‘그래, 역시 나는 언제나 루저loser들의고군분투스토리가적성에맞는구나’ 싶었다. 즉시 나는 레스토랑이 주 무대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봤다.

시트콤에는 절대 악역이 없다. 내가 시트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주연배우들의 캐릭터 설정과 캐스팅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가장 출연 분량이 많은, 이른바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주방장과 매니저는 캐스팅 영순위였다. 힘겨운 독일 유학 생활로 검소와 절약이 몸에 밴, 호텔 경영학을 공부한 융통성 제로의 원칙주의자 캐릭터인 매니저! 아내와 두 딸을 위해 인생의 꿈과 모험을 이제는 가슴속 깊이 묻어버린 겁 많고 착해빠진 아버지 캐릭터인 주방장! 이렇게 서로 너무 다른 둘의 만남만으로도 뭔가 근사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주연을 더욱 빛나게 해줄 탄탄한 조연들은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서로 대사 없이 눈빛 연기가 가능한 팀원들로 결정됐다. 힘들고 고달픈 루저들을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힘이 ‘팀워크’라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왼쪽) ‘어딕션 플러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바로 넓디넓은 오픈 키친이다. 주방 바닥을 홀보다 한 단 높여 마치 무대처럼 만들어 대사 없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주방팀의 열연을 감상할 수 있다. 청담동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라 볼파이아’의 주방장과 팀원들로 구성된 주방팀이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는 공간.
(오른쪽) 한쪽 벽에 마련한 오아시스 같은 공간. 인테리어 비용 중에서 가장 높은 단가로 구입한 템퍼Temper 매트리스와 쿠션에 검정 커버를 씌우고 아크릴로 제작한 낮은 테이블을 놓았다. 송치 러그 역시 신정구 씨가 집에서 들고 나왔다. 눕거나 기대거나 앉거나… 먼저 자리 잡는 사람 맘이다. 클래식한 그랜드피아노와 최신의 빔프로젝트로 그때그때 변화무쌍하게 변신할 수 있는 야심찬 공간이다.

그다음으로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될 레스토랑은 어떤 그림일까를 그려봤다. 1백 평 넘는 공간에 가리는 것 없이 뻥 뚫린 세트장은 무슨 짓을 해도 멋질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선 얕은 인맥 들쑤셔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모셔다 울트라 모던 럭셔리한 때깔을 한껏 뽐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엔 루저들의 감동 휴먼 스토리라는 맥락상 너무 생뚱맞다. 다행히도 앞서 말한 꿈과 희망에 비해 당장 통장 잔고는 몹시 초라했던 젊은 제작자는 광화문 한복판 1백 평이 넘는 레스토랑 세트 제작 경비 예산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디 인적 드문 모퉁이 ‘김밥지옥’ 인테리어 비용 정도의 금액을 제시했다. 그 돈으로 잘나가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선생님 찾아갔다가는 인격모욕죄로 고소당할 판이다. 지금 필요한 건 뭐? 스피드가 아니라 몸으로 때우기였다.

인테리어는 고사하고 일당 주고 인부 쓰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우리는 등장인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직접 세트를 좀 지어주면 안 되겠냐는 뻔뻔스러운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주방장과 매니저는 물론 모든 스태프들이 페인트칠부터 해야 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별다방 커피를 들고 작가스럽게 세트장에 나타나 ‘아냐! 그냥 블랙이 아니라고! 빛이 스쳤을 때 얼핏 그린 빛이 감도는 블랙보다 더 무거운 블랙이어야 한다구!’라며 재수 엄청 없는 짓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점점 이야기는 루저들의 감동 휴먼 스토리의 모양새를 갖춰가고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제작한 무대에 오른 주인공들은 확실히 무대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이건 사실 처음 생각한 대본에선 짐작 못했던 부분이라 더 짜릿하고 흥미진진했다. 땀과 저렴함이 조화를 이룬, 이른바 가내수공업 형태로 완성된 레스토랑 세트에서 배우들은, 매일 매일 각자의 사연을 지닌 남녀노소를 불문한 게스트가 등장하는 실시간 리얼 시트콤에서 대본 없는 연기를 펼쳐야 한다. 아직 간판도 달려 있지 않은 깊숙한 뒷골목에 감춰져 있는 이곳으로 오는 손님들에게 나는 오히려 불쑥 묻고 싶을 정도다. “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왼쪽) 집에서 들고 나온 신정구 씨의 애장품 오디오. 음악 감독 역시 신정구 씨. 
(오른쪽) 온몸을 폭 파묻을 수 있는 매트리스 소파는 손님뿐 아니라 신정구 씨도 가장 좋아하는 자리. 낮에는 차 한 잔, 밤에는 와인 한 잔이 필수.

내가 기획한 이 이탤리언 레스토랑 시트콤이 현재 스코어 대박 행진을 펼치고 있는지, 아니면 저조한 시청률로 조만간 폐지될 위기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해보고 싶었던 짓을 마음껏, 그것도 노는 듯 즐겁게 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이 스토리 속 레스토랑은 등장인물들에게 결국은 웃음과 감동의 눈물을 주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 의미로 막내 요리사 역할을 맡은 열한 살 예은이의 등장은 내게 축복 같은 선물이었다. 요리사가 꿈인 예은이는 무대처럼 펼쳐진 주방을 보고는, 자신의 꿈을 이미 이룬 거대한 요리사들을 보고는 마치 마법의 피리소리에 홀린 듯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이의 마음을 안 요리사들은 진심을 다해 요리하는 모습을 보도록 허락했고, 아이는 감사의 선물로 요리사들에게 샹송을 불러주었다.
여전히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왔는지 알 길 없지만, 어쨌든 손님들은 마냥 웃는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려진 글이 아닌 환한 미소를 직접 보며 확신한 사실. 역시 나는 나부터 즐거운 일을 해야 되는 거였다! 그럼 언젠가 이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분명히 누군가를 울게 할 감동적인 사건도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 여기까지가 바로 그동안 내게 ‘작가가 어쩐 일로 이탤리언 레스토랑을?’이란 질문을 던지셨던 신사 숙녀 여러분에 대한 친절한 대답이다. 나의 세 번째 시트콤의 제목은 바로 ‘어딕션 플러스’이다.

1 얇고 바삭하게 구운 도 위에 토마토와 루콜라를 얹은 담백한 맛의 피자.
2 신선한 루콜라와 새우, 자몽과 그라나파다노 치즈를 곁들인 샐러드.
3 베이컨과 아스파라거스, 토마토와 크레송을 얹고 살짝 익힌 양상추를 곁들인 올리브오일 스파게티.

어딕션 플러스
위치 광화문 조선일보사 씨스퀘어 빌딩 1층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2시 30분, 오후 5시 30분~10시 30분(주문은 9시 30분까지) 일요일 휴무
문의 02-737-0005

* 이 글을 쓴 신정구 씨는 <안녕, 프란체스카> <두근두근 체인지>로 시트콤의 새 장을 열었던 인기 방송작가다. 스스로를 안드로메다에서 지구로 내려온 정체불명의 영혼이라 여긴다. 삶의 모토는 ‘즐겁게 살자’. 덕분에 그 옆에 있으면 배꼽 잡고 웃다 우는 게 일이다. 그의 즐거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싶다면 ‘Addition+’에 가보길. 남다른 패션 감각을 지닌 호리호리한 남자가 테이블을 누비며 손님들과 교감하는 게 보인다면, 그가 신정구 씨일 가능성은 99%다.

구선숙, 신정구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