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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정성으로 더 맛난 추억의 도시락
부엌 선반에는 말끔하게 설거지한 가지각색 도시락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노란 사각 도시락과 만화 주인공이 그려진 양은 도시락, 아, 저기 식구들과 야외 나들이 갈 때 늘 동행했던 3단 찬합과 보온병도 보이네요. 매일 새벽, 부지런한 어머니는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싸셨겠지요.


(오른쪽) 추억의 반찬 5종 세트 ‘옛날 도시락’
예쁘게 수놓은 면보자기의 매듭을 풀면 노란 ‘벤또’가 나옵니다. 얌전하게 담은 밥과 반찬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보리밥에 달걀프라이, 꽈리고추 멸치볶음, 신김치볶음, 콩장, 소시지부침은 나름대로 음식 색깔까지 신경 쓴 국가대표급 도시락 반찬입니다.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요즘 먹어도 산해진미 부럽지 않은 이유는 ‘추억’이라는 값진 양념을 찍어 먹기 때문이겠지요.


(왼쪽)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아버지 도시락’
노란 사각형 커다란 양은 도시락에는 아버지의 점심식사가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의 일용할 양식이자, 우리 식구 생계 유지를 위해 자양분이 될 아버지의 거룩한 도시락입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거라며 끼니때마다 밥그릇에 산처럼 밥을 담아 드셨던 아버지의 도시락엔 영락없이 밥이 한가득이네요. 꽉꽉 눌러 담은 검은콩밥에는 장조림, 마늘종새우볶음, 꼴뚜기볶음, 어묵볶음 같은 짭조름한 반찬이 단골입니다. 다진 고기 넣고 갖은 양념해서 볶은 약고추장도 빼놓을 수 없지요. 아침마다 신문지에 싼 도시락을 들고 일터로 출근하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오른쪽) 푸짐하고 넉넉한 ‘야식 도시락’
아버지는 오늘도 많이 바쁘신가봅니다. 저녁상을 물리고 난 뒤 어머니는 아버지 야식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분주하십니다. 동료들과 나눠 드실 수 있도록 양도 넉넉하게, 종류도 다양하게, 그리고 음식의 모양새에도 마음을 쓰시네요. 귀하게 아껴두었던 과메기에는 다시마와 미나리를 곁들이고, 기름 넉넉히 둘러 호박전, 풋고추전, 동그랑땡도 부치시고요. 된장 양념을 밥 안에 넣어 케일이나 머위로 말아 쌈밥도 마련합니다. 여기에는 꼭 단무지 무침이나 장아찌를 곁들여야 해요.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 구운 가래떡과 달콤한 조청은 인기 만점 후식이랍니다.


최고의 가족 만찬 ‘소풍 도시락’
궁과 사찰 그리고 놀이공원은 단골 소풍 장소입니다. 야외로 나들이하는 것도 즐겁지만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푸짐한 도시락이지요. 찬합 층층이 모양 낸 밥과 주전부리가 가득합니다. 소풍 도시락의 전설적인 메뉴 김밥과 통닭, 삶은 달걀은 빠뜨릴 수 없고, 다진 쇠고기·다진 새우·달걀노른자·김·검은깨를 묻힌 색색의 모둠 주먹밥도 군침 도는 메뉴입니다. 새우튀김과 함지쌈은 스페셜 보너스이고, 과일과 사이다, 전 국민의 주전부리인 뻥튀기와 새우깡과 소시지, 캐러멜도 빠짐없이 챙겨야지요. 돗자리 위에 우리 가족 최고의 만찬이 차려졌습니다.


(왼쪽) 성장기 자녀를 위한 ‘영양 만점 도시락’
만화영화 <캔디>에 나오는 이라이자의 돌돌 말린 금발머리는 여자아이들의 로망이었지요. 이라이자 머리를 한 예쁜 공주님이 그려진 ‘풍년 도시락’은 밀폐되는 플라스틱 도시락이 나오기 전까지 저의 등굣길 친구였습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면 누구네 엄마 솜씨가 제일 좋은지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완전식품인 달걀을 단단하게 말아 완성한 달걀말이는 우리 엄마가 최고였지요.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는 인기 만점 신식 반찬이고, 뽀빠이의 가르침대로 힘이 세지려면 시금치도 많이 먹어야 했어요. 고소한 진미채볶음과 메추리알조림도 거의 개근상감입니다. 콩 싫어하는 딸을 위해 초록색 완두콩을 넣어 예쁘게 밥을 지으신 건 엄마의 센스랍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성장기 어린이를 위한 영양 만점 도시락이었네요.

(오른쪽) 도시락이 돋보이는 보자기
도시락은 역시 보자기에 싸야 제 맛입니다.
손잡이 달린 도시락 전용 가방이 나오기 전까지는 보자기나 작은 주머니에 도시락을 갖고 다녔는데, 그 보자기 하나에도 나름의 스타일이 묻어있답니다. 김치 싸는 데는 ‘거버’ 이유식 병만한 게 없었습니다. 병에 김치를 담은 뒤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비닐을 덮고 뚜껑을 닫아야 그나마 안심이랍니다.
먹을거리도 넘쳐나고 좋은 도시락 용기도 있지만, 보자기에 싼 소박한 도시락이 그리운 봄날입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