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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병 씨의 제주 하도리 집 식물처럼 자라난 열네 평짜리 집
건축 전공자도 아닌 조남병 씨는 제주의 한 끝자락 하도리, 철새 도래지 옆에 아주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제주도의 옛집 형태를 살려 제주도 현무암으로 투박하게 지은 열네 평짜리 집은 부부에게 고대광실입니다. 무릎 맞댈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보듬어주는 좋은 사람, 철새들이 한 풍경 안에 있으니 이런 고대광실이 어디 있겠습니까.


열네 평 집의 전면부는 커다란 유리 통창으로 되어 있어 집 앞 철새 도래지의 사시사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광택이 있는 타일로 바닥을 마감해 이 작은 공간이 더 깊고 더 넓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백수의 자세로 철새 도래지를 바라보는 조납병 씨.

“기쁜 나머지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 시냇가에 몇 칸 집을 얽게 되었으니 /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묵묵히 앉아 고요히 살피면서 / 남은 생애를 보내고자 기약합니다.”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잡영>(선생이 낙동강 곁에 세 칸짜리 집을 손수 짓고 쓴 시서집)이 떠오르는 집입니다. 제주도 구좌읍 하도리의 철새 도래지, 종달리 오름이 바라다보이는 바닷가에 열네 평짜리 집이 있습니다. 제주도 현무암으로 벽을 만들고 돌담을 쌓은 이 집은 태곳적부터 ‘묵묵히’ ‘고요히’라는 말과 함께 산 것 같습니다. 한번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풍경에 넋을 뺏겨 밤 깊도록 일어서지지가 않습니다. 집 앞 물가에서 노니는 흰날개 해오라기와 백로 탓이고, 노란 백년초 꽃봉오리 탓이고, 짭조름한 바다 냄새 탓입니다.


1 현무암으로 소박하고 투박하게 지은 하도리 집. 묘하게도 이 집 애견 ‘달리’와 정말 닮았다. 옛 집터를 그대로 둔 채 지어 한쪽 대지가 위로 솟아 올라 있다.
2 수만 마리의 철새가 모여 장관을 이루는 철새 도래지가 마당 앞에 펼쳐져 있다. 새를 보고 짖어댈까 봐 달리를 이 집에 한 번도 들이지 못했었는데, 오늘만은 촬영을 위해 특별히 마당 안에 들였다.
3, 4 허물어지고 남은 옛집의 벽 위에 새 벽을 덧대어 지은 흔적이 고스란히 보인다. D자형 문을 밀면 열네 평짜리 집의 기적이 시작된다.

집을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대뜸 지붕부터 그리기 시작하고, 손수 집을 지어본 사람은 집터와 기둥부터 그린다고 합니다. 홍콩에서 비즈니스맨으로 인생의 제1 전성기를 누리고, 서른여덟 살부터 은퇴를 준비해 제주도에서 ‘12년 차 백수’로 살고 있는 조남병 씨. 그는 집터와 기둥을 그린 상상도(설계도가 아니라 상상도)로 이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미 서귀포시 위미 마을에 스물 네 평짜리 집을 한번 지어봤더니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답니다. 도대체 얼마나 부자면 집을 자꾸 짓느냐고요? 그 세 집(이타미 준이 설계한 그의 서귀포 살림집까지)을 합쳐봐도 80평도 채 안 되는 데다 직접 설계도 하고(건축가도 디자이너도 아니고, 설계를 배운 적도 없는데도) 인부도 구하고 물건들도 사다 나르며 지은 집이니, 미리 넘겨짚지 않으셔도 됩니다. 집터와 기둥부터 먼저 그릴 줄 아는 조남병 씨는 배스듬하니 기운 땅, 옛 집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그 땅 위에 집도 어슷하게 앉혔는데, 땅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면 집은 왼쪽으로 기운 형국입니다. 땅을 평평하게 깎고 다지지 않은 게, 집을 대지보다 높이 올리지 않은 게, 네모반듯한 상자처럼 집을 만들지 않은 게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하네요. 그는 덧바르고 치장하지 않은 집, 주변 풍경을 해하지 않는 집, 그래서 제주의 땅에서 식물처럼 자란 듯 보이는 집을 갖고 싶었답니다. 다 허물어지고 벽 한 귀퉁이만 남은 옛집의 흔적도 갖고 싶었습니다. 그 벽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새 벽을 덧대었는데, 이 벽 살리느라 고생도 많이 했답니다. 옛 벽과 새 벽의 틈을 띄우고 그 사이에 시멘트를 발라야 물이 새어 들지 않기 때문에 벽이 70cm로 두꺼워졌다고 합니다. 열네 평짜리 손바닥만 한 집에서 벽이 그만큼 파먹고 들어가니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금세 손들고 말았을 일입니다.

1 가벽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거실, 오른쪽은 단을 높인 침상이다. 침상 위에는 법당에 거는 불화와 김홍림의 그림, 잠자리가 그려진 도자기가 자리하고 있다.
2 함석문에 레일을 달아 드르륵 열리는 수납장, 재래식 부뚜막처럼 만든 싱크대, 그리고 20대 때 장만한 중국 앤티크 스툴.

이 집은 참 소박합니다. 열네 평이라는 크기도 그렇거니와, 안팎을 두른 재료도 그렇고, 두부 한 모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새도 그렇습니다. 도자기로 치면 백자 같다고 허튼 비유를 댔더니 단박에 답이 옵니다. “사람들은 백자를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봐요. 그리고 소박한 것은 당연히 자연적이라고 여기죠. 하지만 제대로 보면 백자는 화려함의 극치예요. 백자는 사실의 세계, 구상을 포기하고 추상으로 나아간 겁니다. 자연을 모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 거죠.”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아시안 아트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권위 있는 예술 잡지)을 20년째 구독하고, 20년도 더 넘게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장을 드나들었으며, 박수근의 4호짜리 판화와 최홍림의 그림을 벽에 걸 줄 아는 그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도리 집은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제주의 물, 땅, 하늘, 바람과 사랑을 나눕니다. 연안 습지(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습지)가 집 앞마당에 펼쳐져 있고, 철마다 수만 마리의 새들이 모여들고, 저 건너 지미봉 오름이 바라보이는 하도리 집은 참으로 묘한 재주를 가졌습니다. 객이든 주인이든 이 집 마당에 와서 마음을 쉬게 하는 재주 말입니다. 낮은 담 안으로 조각 창이 나 있고 그 창이 액자가 되어 철새 도래지 풍경이 그대로 담기니, 지나던 객도 무례함을 잊고 대문을 밀게 됩니다. 맘씨 좋은 집주인은 구경들 하시라고 창문에 커튼도 안 달고, 대문도 아기 키만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조차도 자물쇠도 없이 D자형으로 안이 뚫린 대문이니 그야말로 동네 개들을 위한 ‘개구멍’이지요. “제주도 문은 ‘내가 지금 집에 있으니 들어오지 말라’가 아니라, ‘지금 집에 없으니 나중에 뵐게요’라는 뜻이래요. 굉장히 관대하죠. 프라이버시 걱정하는 사람은 제주도 집에서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3 주방 수납장 안쪽에는 서귀포 집 지을 때 쓰고 남은 타일을 맘 가는 대로 붙였다.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에서 데려온 그릇도 들여놓았다.
4 부뚜막에서 침상을 바라봤다. 기울어진 천장 때문에 다락방처럼 안온한 느낌을 준다. 까만 벽은 욕실을 위한 최소한의 벽이고 그조차도 답답해 위는 유리로 마감했다.

평평탄탄한 비즈니스맨의 길을 걷던 그가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한 땅이 제주도라는 건 왠지 운명인 듯하답니다. 연고도 없는 제주도에 내려와서 하는 일 없이 다니다가 제주도 곳곳의 아름다운 땅을 만나게 됐습니다. 소박한 바닷가 마을에 집 세 채를 짓고 나니 지갑은 헐거워졌고 철든 아들의 걱정은 늘어만 갑니다. 하지만 그에게 제주도살이는 축복입니다. 아직도 제주도까지 내려와서, 아니 인생의 길에서 그가 찾는 게 무언지 답은 못 얻었지만, 숙제 같은 인생이 바로 축제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동네가 제주도입니다.

수풀 속에서 새가 가을 기운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아양을 떨며 울어댑니다. 집주인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춥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주인은 집에 들고 날 때 새의 눈치를 봅니다. 새더러 사람 눈치 안 보고 실컷 놀라고, 사람은 고양이 걸음으로 살그미 걷고 입술 오므려 소곤댑니다. 마당에 신서란(천연섬유 재료로 쓰이는 다년초)이 심겨 있는데, 이 신서란이 자라 울타리가 되면 새가 사람 눈치 안 보고 즐거이 놀 수 있을 것 같아 심었답니다. 애견 ‘달리’도 새 놀랄까 봐 이 집에 한 번도 들어와보질 못했답니다.


1 열네 평짜리 집의 기적을 만들어낸 조남병 씨. 자신을 별다른 수식 없이 ‘12년째 백수’라고 소개한다.
2 솜씨 좋은 철공 기술자가 만들어준 수납장 레일과 함석문. 세 칸짜리 문 뒤에는 각각 냉장고, 책장, 옷장이 숨어 있다.
3 회오리바람처럼 철사를 구부려 만든 환기구 장식물.
4 거실의 작은 창틀에는 고재를 덮고 깨진 타일을 붙였는데, 이 자리에 앉으면 철새 도래지가 가장 멋지게 다가온다.
5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건져온 문고리.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방을 나누는 벽도 없이 거실과 침실과 주방이 일직선으로 뻥 뚫려 있습니다. 열네 평짜리 집이 50평만 해 보이는, 열네 평 안에서 30명도 너끈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 되는 비결입니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공간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습니다. 홍송으로 된 조선 시대식 마루로 단을 높인 침상, 재래식 부뚜막처럼 생긴 싱크대가 거실의 양쪽 끝에 제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타일 바닥이 사물을 말갛게 반사하는 거실은 그 때문에 더 깊고 넓어 보입니다. 침상에 올라앉으면 서로 바라보게 되고 대화하게 됩니다. 아래 타일 바닥으로 내려가면 이상하게도 대화 대신 밖을, 서로 밖을 바라보게 됩니다. 어려운 말로 하자면 ‘공간의 위계’이며, ‘공간의 켜’ 정도가 되겠지만 뭐 이런 건 다 쓸데없는 난설입니다. 그런데 꼼꼼히 살피니, 집 안의 천장도 바깥처럼 배스듬히 기울어 있네요. 그런데 그 기울어진 천장 때문인지 다락방에 들어앉은 듯 마음이 편안합니다.

좀 더 눈의 조리개를 조이니, 장순업 화백의 먹 추상화 같은 벽이 눈에 담깁니다. 처음엔 까만 색 벽을 만들고 싶어서 온통 까맣게 칠했는데, 육지만큼 숙련공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 마감이 영 어설펐습니다. 다시 칠하려고 인부가 까만 칠 위에 퍼티(수정 보수재)를 발라놓았는데 희끗희끗한 그 벽이 오히려 눈에 좋아 보였답니다. 아마추어가 만들어낸 전화위복이지요.

“왜 열네 평이냐구요? 아내와 나, 두 사람이 살 집이니까요. 작은 공간이어야 같이 사는 사람도 더 가깝게 다가오지요. 항상 1m 거리에 붙어 있어서 핸드폰도 한 대로 같이 쓰는 우리 부부에겐 요만한 공간이 딱이죠. 소박한 마음으로 지어진 작은 집은 편안하고 넉넉합니다. 멋있다는 건 눈으로 느끼는 거지만 편안하다는 건 몸으로 느끼는 거니까요. 작으면서도 공간의 비례가 맞으면 사람에게 더 아늑한 느낌을 주죠. 이 열네 평 안에도 얼마나 많은 감정의 공간이 숨어 있는데요.” 한 글자도 치장하지 않고 받아 적은 그의 말은 시 같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숨겨진 비경이라 할 만한 하도리 해수욕장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상심과 중용을 잃지 않는 존경스러운 아내, 그리고 달리.

“집을 짓는다는 것, 평생에 한 번 제 집을 지어본다는 것. 얼마나 황홀한 경험입니까. 집을 짓다 보면 제 잘난 것과 못난 것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후회도, 반성도 하고 새로워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자신이 살 집에 대한 모든 것(취향까지도)을 전문가에게만 맡겨둔 집은 단지 잠을 자고 휴식하는 장소를 넘지 못합니다. 때로는 재화 가치로만 평가되기도 하지요. 이런 집은 영혼을 살찌우는 장소가 될 수 없습니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신념이 담겨 있는 집에서 살 때 집과 주변을 대상으로 시를 짓는 전통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시를 짓는 마음처럼 세상살이를 후하고 비옥하게 만드는 전통이지요.

퇴계 선생은 나이 들어 위독해지자 초췌한 모습을 당신이 아끼던 매화에게 보일 수 없다며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종할 때 남긴 마지막 말이 이러하였다더군요.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 조남병 씨는 마당에 심은 하귤이 빨리 자랐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한번 하귤이 달리면 6개월까지 가는데, 양귀비 옷 입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것 같답니다. 그의 노곤한 서정에 맘을 빼앗긴 오후가 지나고, 해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채 주춤주춤 선을 넘고 있습니다. 하도리의 열네 평짜리 집에 조금씩 평화가 차오릅니다.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