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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명의 크리에이터, 그들의 애착 공간
앞서 소셜 빅데이터와 키워드를 통해 2023년의 집을 들여다봤다면, 실제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집 풍경은 어떠할까? 자신의 공간을 누구보다 애정하는 12인이 만든 집의 장면들.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 공간을 모았다. 그들의 애착 공간은 집에 대한 우리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정멜멜 
빛이 머무는 순간
사진가 정멜멜

‘하얀’ 눈에서도 다채로운 빛깔을 찾아내는 그답게 집 곳곳을 포근한 색으로 채웠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정한 로즈메리 그린 컬러의 바닥은 확실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거실에서 가장 아끼는 것은 큰 벚나무 프레임 액자예요. 이사를 하며 동네에서 찍은 사진을 집에 걸어두고 싶어 집과 가까운 백련산에 가서 찍었어요. 액자도 일부러 근처 작은 표구사에서 맞췄는데 마음에 들어요.”


ⓒ무키
사랑을 마주하는 거실
일러스트레이터 무키

세 식구가 머무는 무해하고 감각적인 ‘무키홈’은 수많은 집스타그램 속에서도 시선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따스한 햇살이 사르르 들어오는 거실은 팔로워들도 그리고 집주인도 가장 아끼는 공간. 각자의 일을 하면서도 온 식구가 모이는 곳이다. “거실은 제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해요. 그 안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남편과 코찌를 볼 때예요.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제 할 일을 하는 남편과 코찌 그리고 저는 그 맞은편에서 차를 내리며 감상해요. 내가 애정하는 모든 게 담긴 장면을요.”



마블 리빙 스페이스
토탈마블 아트 디렉터 김연지

대리석 회사 디렉터 부부의 집답게 곳곳에 자리한 대리석에 먼저 시선이 닿는다. 부부가 사랑하는 소재를 자신들만의 방식대로 꾸민 공간, 그곳에 추억이 담긴 물건이 하나둘 쌓이며 거실은 가족만을 위한 배경이 된다. “벽난로의 로망을 담아 직접 대리석 가구를 디자인하고 몰딩을 입혔어요. 여느 거실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고, 우리에게 딱 맞는 모습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가족을 위한 거실 갤러리

섬유 작가 전재은
키키 스미스와 박수근 화백을 보며 어디든 작업실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만의 내밀한 기억 저장고 같은 집에서 전재은 작가는 천과 바늘, 실로 그림을 그린다. 거실은 그와 가족을 위한 갤러리로, 10월 개인전에서 선보일 작품들이 미리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해 오후 3시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요. 거실 소파에 앉아 존 콜트레인, 사카모토 류이치 등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다 잠깐 눈을 붙이는 그 짧은 순간을 좋아해요.”



취향이 모이는 거실
체크인플리즈스튜디오 대표 김혜영
김혜영 대표는 사람에도, 물건에도 쉽게 마음이 동한다. 그렇게 다람쥐처럼 하나씩 모은 것 중에서도 자주 손길이 닿으며 감정이 쌓인 물건만이 이곳에 자리하는 영광을 누린다. “저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에도 좋아하는 장치를 많이 둬요. 샤를로트 페리앙의 사이드보드, 디터 람스의 오디오 모두 그렇게 이곳에 자리하게 됐죠. 직접 관찰하고 사용하면서 디자인을 경험하는 시간은 제 일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



진짜 나를 찾아준 ‘융지트’
마케터 정혜윤
지친 시기에 운명처럼 만난 스튜디오형 원룸은 정혜윤 씨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융지트(별명 융과 아지트의 합성어)가 되었다. 어릴 적 연주하던 파란 피아노, 학생 때부터 모아온 CD… 알록달록한 색과 그가 순수하게 좋아하던 물건이 뒤엉킨 모습을 보며 정혜윤 씨는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 “이곳에 살기 전엔 제 안의 커다란 창작 욕구를 억누르며 지냈어요. 전 뭔가를 펼치고 색깔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해요. 예술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지만, 융지트를 차근차근 채워가며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멋지게 인정했죠.”



ⓒ제시카 한

영감을 길어 올리는 소우주

UX 디자이너 제시카 한
제시카 한 씨에게 영감은 삶의 원동력이고, 집은 그 영감을 얻는 장소다. 그중에서도 다실은 홀로 침잠하며 오롯이 평안함에 이르는 곳. “쉼이 필요할 때면 항상 이곳을 찾아요. 차를 마시면서 음악을 듣거나 싱잉볼을 들으며 명상을 하기도 합니다. 에너지가 많은 저를 안정시키고, 삶의 균형추를 맞춰주는 중요한 공간이에요.”



시간을 만드는 벽
프란츠 대표 김동연
아파트먼트 프란츠(@apratment.franz)라 일컫는 이곳은 김동연 대표의 집이자 음악 출판사 프란츠의 사무실, 그리고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 문화 공간이다. 여러 사람이 오가는 열린 거실, 그는 자주 이 벽 앞에 멈추어 서곤 한다. “에릭 사티의 악보 액자와 어울리는 것을 찾다가 프랑스 여행에서 빈티지 예거 르쿨트르 시계를 샀어요. 일주일마다 태엽을 감아야 하는데, 바쁜 시기에는 더 자주 감는 것 같아요. 잠깐 멈추기 위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포레스트 오디세이
Oth, 디렉터 예진문
스스로 “취향으로 밥벌이한다”고 소개할 만큼 탐나는 취향의 소유자. 디자이너 겸 유튜브 크리에이터 예진문 씨는 이 거실을 발견하곤 6개월간 이어진 집 구하기의 여정을 끝냈다. “창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은행나무 두 그루 덕분에 집의 다른 단점은 모두 기쁜 마음으로 포용했어요. 함께 사는 고양이가 코너 창에 있는 의자에 앉아 바깥 구경을 할 때 저는 옆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 그 보드라운 털을 어루만집니다.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게 활자에 빠져 있기도 하고요. 저를 통과한 영감이 물성으로 재탄생하는 곳으로, 이 집을 처음 발견한 날부터 지금까지 거실은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입니다.”



ⓒ이윤지

여행이 되는 집

파슬스·노서프라이즈 대표 이윤지
반려견 도나스와 함께 머물 수 있는 숙소가 없어 직접 발품을 팔아 가꾼 이윤지·이건석 부부의 남양주 세컨드 하우스. 웨스 앤더슨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파스텔빛 이층집, 안으로 들어서면 부부의 취향과 애정을 쏟았을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파슬스는 스테이지만 저희가 실제로 머무르는 곳이기도 해요. 그래서 저희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채웠죠. 콘스탄틴 그리치치의 클레리치 벤치를 응용해 만든 남편의 첫 목공 작품이라든가 모양이 재밌는 빈티지한 색감의 노르딕노츠 카펫, 여행 가서 찍은 사진과 기념품, 좋아하는 책들…. 다양한 경험과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고, 기록하고, 그 기록을 구경하는 재미를 느껴요.”



예비 디터 람스 하우스
키친숲 대표 윤규리
따스한 빛이 파고드는 베란다 옆 원형 테이블. 윤규리 대표는 매일 아침 이곳에 앉아 30분간 일기를 쓴다. 커피 한잔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으면 남편이 옆으로 와 음악을 듣고, 고양이 네 마리가 쪼르르 모여든다. 말을 하지 않아도 가족과 교감할 수 있는 이 시간, 이 공간이 그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4년 전부터 모은 빈티지 가구로 집을 꾸미고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이던 것이 그에게 왔다는 사실이 이 집을 더욱 아끼도록 만든다. “디자인 거장 디터 람스도 이사를 거의 하지 않고 50여 년간 한집을 가꾸며 살았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렇게 내 공간을 살피고 아끼며 나이 들고 싶어요.”



하루가 시작되는 부엌

라이크라이크홈 대표 손명희
매일의 시작은 고심해 들인 라마르조코 커피 머신을 예열하는 일. 원두 크기부터 내리는 시간, 온도까지 잠깐이지만 온전히 집중해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식탁에 앉는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로 일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부엌에 애정이 많아요.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금처럼 커피를 마시기도, 밥을 먹기도, 일을 하기도 하죠. 최근에 고경애 작가의 작품을 다이닝룸으로 옮기고 나서는 그 시간이 더 길어졌어요. 작품을 보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추가됐거든요. 공간에 애정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시간을 보내는 거라 생각해요. 머무르는 시간이 많으면 당연히 더 손이 가고 애정을 쏟게 되니까요.”

글 <행복> 편집부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