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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브랜드 세락스 대표 부부 Axel Van Den Bossche and Marie Michielssen 보이지 않는 감각으로 가득한 집
벨기에 안트베르펜 근교에 위치한 베르헤이크스성Castle de Bergeycks은 16세기에 지은 벨기에 궁전 중 하나로, 벨기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를 거쳐 베르헤이크스 백작이 머물던 곳이다. 바로크 정원, 대성당 등을 품은 총 400㎡ 공간은 실용과 편리에 초점을 맞춘 21세기 아파트 공간으로 말끔하게 변신했지만 아쉽게도 세월의 흔적과 고유한 분위기마저 사라져버렸다. 벨기에 인테리어 디자인 브랜드 세락스Serax 오너 부부는물리적 개입 없이 집 전체에 새로운 표정을 입히기로 결심했다.

30년 차 부부인 벨기에 인테리어 디자인 브랜드 세락스 오너 악셀 판덴보서와 디자이너 마리 미힐선. 두 사람은 세락스 소속 디자이너로 세라믹 제품 디자인을 함께 논의하는 비즈니스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악셀 판덴보서가 앉은 의자와 선반 위에 있는 화병, 조명은 모두 마리 미힐선이 디자인한 것으로 세락스에서 판매한다.

주방과 연결된 실내 온실. 추운 겨울에도 자연 속에 둘러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안토니노 시오르티노Antonino Sciortino가 디자인한 메탈 조각 가구 시리즈의 테이블과 의자, 테이블 위 패션 디자이너 앤 드뮐미스터가 작업한 그린 컬러 도자기는 세락스에서 판매.
붉은 벽돌과 하얀 벽돌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생긴 독특한 문양, 벽돌 건축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금속 장식, 웅장한 규모와 완벽한 좌우대칭 구조의 대형 창문, 기하학 도형 모양으로 말끔하게 정리된 야외 정원. 급매물로 나온 베르헤이크스성 외부는 16세기 벨기에 바로크건축 스타일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친한 부동산 업자에게 일주일 안에 결정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을 찾은 세락스 오너 악셀 판덴보서Axel Van Den Bossche와 마리 미힐선Marie Michielssen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흥분이 몰려왔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다는 누구보다 잘 아는 부부는 네 명의 자녀와 함께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아뿔싸! 하는 순간이었죠. 고성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허전하고 밋밋한 벽만 보였어요. 전 주인은 현대적 스타일과 미니멀리즘이 돋보이는 공간을 원했고, 집 뒤편 대성당은 물론 바닥과 천장에 남은 시간의 흔적까지 온통 블랙과 화이트 페인트로 덮어버렸죠. 집 꾸밀 줄 안다는 사람에게 이 공간은 쉽게 말해 실패작이었어요.”


현관에 들어서면 블랙 컬러 배경에 예술 작품과 가구가 각각 한 점씩 스타카토처럼 놓여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파울 헤이스Paul Gees 작품이고, 나무 소재 등받이와 네 다리가 인상적인 의자는 빈티지 시장에서 구입한 것이다.
마리 미힐선은 용도를 잃어버린 프로토타입 가구를 바라보듯 여섯 개 방으로 정분할된 공간을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자재에 나타나는 세월의 흔적, 사라진 광택과 무수한 흠집, 누군가의 일상이 더해져 뭉툭해진 모서리. 오래된 이야기를 끌어낼 만한 단서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규모였다. 바로크양식 건축 특유의 천고 높은 공간을 뒤덮은 화이트 페인트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대형 아트 작품을 벽에 건다고 해도 티 나지 않고, 가구로 채운다고 해도 뭔가 허전하고 부족할 것 같았다. 배치와 구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역사적 공간이라 개조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물리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면 감각을 뒤흔들어 집을 재편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실패를 기회로 만드는 일. 저희 부부가 늘 하는 일이죠.”


지루해질 수 있는 화이트와 블랙 공간에 레드, 오렌지, 그린 등 선명한 컬러를 활용해 역동적 분위기를 더했다. 레드 컬러 테이블과 의자는 세락스를 위해 앤 드뮐미스터가 디자인한 엘레 체어Élé Chair와 말레 사이드 테이블Malé Side Table. 컬러풀한 예술 작품은 로저 라베일Roger Raveel, 고유의 질감을 살린 도자는 마리 미힐선 작품.
인테리어하지 않는 인테리어
앤 드뮐미스터Ann Demeulemeester, 빈센트 반 두이센Vincent Van Duysen, 파올라 나보네Paola Navone, 피트 본Piet Boon 등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아티스트와 협업한 디자인 인테리어 제품을 생산하는 벨기에 브랜드 세락스. 특히 세락스 그릇은 미쉐린 스타 셰프 알베르 아드리아Albert Adrià, 노부 마쓰히사Nobu Matsuhisa, 장 조르주Jean Georges 등이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정도로 감각적이고 매력적인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지중해, 중동 요리를 혼합한 창의적 요리를 선보이는 영국 셰프 요탐 오토렝기Yotam Ottolenghi도 세락스의 오랜 팬으로 함께 그릇 시리즈를 출시한 적이 있다.


집 뒤편에 위치한 마리 미힐선의 개인 스튜디오. 선반에는 종이와 흙으로 만든 프로토타입 소품과 편집숍에서 구입한 소품과 서적 등이 놓여 있다. 부부가 자주 방문하는 편집숍은 레스토랑, 편집숍, 호텔이 한 공간에 있는 흐란마르크트 13Graanmarkt 13, 다양한 시대와 스타일의 물건을 탐험할 수 있는 세인트 빈센트스St. Vincents, 드리스 반 노튼의 의상을 구입할 수 있는 모데팔레이스Modepaleis, 빈티지 소품이 멋진 크리스티안선 앤 크리스티안선Christiaensen & Christiaensen이다.
“저희는 협업전문가예요. 이 집을 인테리어하는 일도 일종의 협업이라고 생각했고요. 16세기 건축가가 만든 뼈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스토리, 전 주인이 희망하던 현대적 개조와 미니멀 스타일. 저희는 그들의 흔적을 바탕 삼아 가구와 소품만으로 저희 취향을 반영하기로 했죠. ‘인테리어를 하지 않는 인테리어’가 핵심이었어요.” 부부는 구조를 변경하거나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등 물리적 변화 없이 최소한의 개입으로 집 전체 분위기를 바꾸고자 했다. 블랙 컬러 페인트로 마감한 현관과 복도에는 조명을 없앴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지나 밝은 거실로 향하는 길은 마치 길고 긴 시간 통로를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방만큼 넓은 욕실. 창틀에 놓인 화분과 거울에 비치는 의자, 세라믹 도자 제품은 모두 마리 미힐선의 작품으로 화이트 컬러로 통일했다.


방 세 개를 하나로 연결한 대형 거실. 정면에 보이는 가구는 마리 미힐선이 디자인한 세락스의 우노 1 시트 소파, 디스트로이어스 빌더Destroyers Builders가 만든 발레리 오브젝트의 그레이 컬러 오각형 스툴, 인테리어 디자이너 베아 모마르Bea Momaers가 디자인한 세락스의 러그,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빈티지 스툴. 멀리 보이는 티 티쉬 커피 테이블은 로브레흐트 안트 담 아키텍츠가 만든 것으로 발레리 오브젝트에서 판매, 메탈 체어는 미국 디자이너 해리 버토이아의 버토이아 컬렉션.
덕분에 거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슴이 탁 트인다. 문을 떼어 공간 세 개를 연결한 거실은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막힘없이 뚫려 있다. “복도에서 거실을 바라볼 때가 가장 좋아요. 그림도 시선을 가리지 않도록 교묘하게 피해 있죠. 바람도 이 길을 따라 불어와요.” 시선을 피해 있는 그림은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곳, 천장을 피해 낮게 걸려 있다. 가구에 앉아 그림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걸려 있는 것. 고개를 들면 그림 사이로 성큼 들어온 빛 조각과 마주친다. 매시간 꿈틀대면서 거실 전체를 휘젓고 다니는 일렁이는 빛은 순수한 기억을 건드리고 공감각적 경험을 전한다.


퍼즐처럼 블랙 블루 컬러판을 접합해 독특한 테이블은 로브레흐트 안트 담 아키텍츠가 디자인한 것으로 발레리 오브젝트에서 판매, 테이블 아래에 있는 세락스의 파븐 시리즈Pawn series 스툴, 테이블 위 조각적인 조명은 마리 미힐선이 디자인한 제품이다.
전시적 시점으로 가구 바라보기
거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 재미있는 요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구가 ‘무분별’하게 놓여 있다는 점이다. 러그 덕분에 적당히 구분될 뿐 어느 것 하나 세트로 묶이거나 거실, 서재, 다이닝 등 목적을 떠올리게 하는 가구가 없다. 모습, 방향, 소재, 형태, 컬러 등이 제각각인 가구는 공간 소실점을 상쇄해 ‘적당히 이상해서 호기심 넘치는’ 분위기를 만든다. 그럼에도 균형감이 느껴지는 것은 대부분 마리 미힐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세락스에서 판매하는 우노 원 시트Ono 1 Seat, 우노 스리 시트Ono 3 Seat 등 소파 시리즈뿐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 앤 드뮐미스터, 건축가 로브레흐트 안트 담 아키텍츠Robbrecht And Daem Architects, 가구 디자이너 해리 버토이아Harry Bertoia의 가구 작품 옆에도 조심스럽게 그녀의 조명, 도자기, 오브제 등이 어우러져 있다.

“세락스에서 구입할 수 있는 제품도 있지만 상품화되기 전 프로토타입이 더 많아요. 거실은 저에게 작업 연장선인 셈이에요. 프로토타입 가구를 거실로 가지고 와 사용하기 편리한지 직접 체험하고 검증하죠. 가구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전시적 시점에서 가구를 바라보고 제 자신의 습관과 기준을 깰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은 저에게 무척 중요합니다.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거실에서 저만의 데이터를 쌓고 멋과 실용, 감각과 실전의 틈을 좁히는 거죠.”


스테인리스 소재로 완벽하게 꾸민 주방.안토니노 시오르티노가 디자인한 미니멀한 바 스툴을 절묘하게 매치했다.
무의식을 건드리는 공간
일과 삶이 하나로 묶여 있는 이들에게 작업실은 침실만큼 중요한 공간이다. 이 집을 구입할 때도 작업실부터 떠올렸다. 어두운 현관 복도를 지나 거실과 반대 방향, 과거 대성당이 자리하던 명당이 부부가 낙점한 곳이다. 다른 아티스트처럼 각종 도구와 재료가 흐트러져 있을 법한데, 마리 미힐선이 서 있는 자리에는 종이만 가득하다. 소재와 물성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그녀는 도구에 의존하지 않고 오랜 시간 종이를 주무르고, 쓰다듬고, 비비고, 반죽한 후 이것저것을 뒤섞어 상상 속 물건을 직접 만들어본다. 종이는 어떤 가공이나 처리도 다 받아주는 포용력 넘치는 재료다. 작업실은 정원 안에 쏙 안겨 있는 형세다. 이는 자연과 생명을 늘 곁에 두고자 하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영감을 받는 장소로 꼽는 곳은 작업실이 아닌 욕실이다. 2층 침실과 이어져 있는 욕실은 침실만큼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욕조에 누워 있으면 푸른 정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방에 달려 있는 거울을 통해 창밖 너머 하늘, 구름, 나무가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다. 야외 노천탕 같은 욕조에 누워 있다가 “유레카” 하고 외치면서 작업실로 달려가는 것이 그녀의 일상. 반면 남편 악셀이 점찍은 곳은 지하다. 전 주인이 수영장으로 개조한 지하 공간에는 붉은 벽돌로 마감한 천장, 신전 기둥 등 외부 건축물에서 눈에 띄던 바로크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악셀 판덴보서는 아침 운동 삼아 수영할 때를 제외하고는 조명을 끄고 수영장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둔다.


붉은 벽돌로 마감한 천장, 신전 기둥 등 바로크건축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는 지하 수영장.
어둠과 적막이 가득한 장소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때론 빗소리 같고, 때론 파도 소리 혹은 노랫소리 같다. 어느새 두려운 마음이 사라지고 온몸이 이완되면서 무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한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어둠 저편, 무의식을 건드리죠.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소재, 방식, 마감을 택했는지 설명이 필요 없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감성과 온기가 피부로 느껴지는 곳. 눈에 보이는 인테리어보다 보이지 않는 감각과 여운으로 채워진 집에 살고 싶어요.”


세락스Serax
1986년 어머니의 화기 사업을 이어받아 형제 세르주Serge와 악셀 판덴보서가 설립했다. 자연 친화적 재료, 수공예 미감을 바탕으로 한 화기, 테이블웨어 등 세라믹 제품을 시작으로 조명, 테이블, 의자 등 가구 및 인테리어 영역으로 확장했다. 악셀 판덴보서가 단독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와 협력, 디자인과 감각을 갖춘 인테리어 브랜드로 성장했다. 앤 드뮐미스터, 빈센트 반 두이센, 파올라 나보네, 피트 본 등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건축가, 아티스트는 물론 미쉐린 스타 셰프와 협업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www.serax.com, 마이알레(02-3449-5374)

글 계안나 | 사진 Christoffer Regild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