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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남편 안주현 · 디자이너 아내 이진아 집 짓는 일, 예술은 아냐
“인생을 알려면 집을 지으라”고 했다. 이 부부는 ‘땅이 주는 운명’을 느끼고 파주 월롱의 산비탈에 집과 작업장을 나무와 톱과 망치로 직접 지었다. 집 뒤로 고라니가 다녀간다는 산비탈에 집을 지으며, 그로 인해 삶이 변하며 이들이 ‘순 생짜로 얻은’ 생각들.

이 거실은 소파에 앉으면 서로 바라보고 대화하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거실 바닥에 앉으면 대화 대신 밖을 바라보게 되는 묘한 공간이다. 완만한 산세와 앞마당에 심은 억새, 그라스가 자꾸 시선을 잡아끈다. 촬영 내내 여덟 살 된 애묘 죠스가 카메라 앞을 어슬렁거렸다. 낯선 이가 있으면 벽장 속에서 나오지 않는 열세 살 고양이 죠엘은 촬영 내내 볼 수 없었다.
나뭇가지마다 둥지를 짓는 새, 방 한 칸 지고 다니는 달팽이, 마천루 같은 개미탑을 짓는 개미, 그리고 혈거시대부터 집 짓는 일에 매혹당한 인간. 무릇 세상의 생명들은 집 짓는 일에 열심이다. 현대에 와서야, 큰 건물 짓는 건축가들이야 “건축은 과학과 예술, 그 한가운데 우뚝 선 분야”라 언설하지만, 제 식구 살 살림집을 짓는 이에게 건축은 새·달팽이·개미·혈거시대 사람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간을 위해 벽이 있지 벽을 위해 공간이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예술을 위해 건축이 있는 건 아니라는 말도 더하고 싶다.

장식이 많거나 색깔이 현란하면 사는 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집은 삶의 배경이어야지 삶을 가려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색도, 선도, 질감도 최소한으로 절제한 이 집은 이 부부의 삶의 배경이다. 슬라이딩 도어로 거실과 주방을 나누고, 주방에는 직접 제작한 먹빛 주방 가구,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소나무 무늬가 슬쩍 지나가는 싱크 대리석, 직접 만든 워크 테이블을 두었다.
복도 벽을 살짝 뚫어 고양이 화장실을 만들었다. 현관 수납장을 열면 바로 배변 모래통을 꺼낼 수 있다.


<행복> 기자로 여러 해 지내며 집 지은 이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한 바, 집 짓기는 인생에서 꼭 한번 해볼 경험이라는 1것이다. 집을 짓다 보면 제 잘난 것과 못난 것을 더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이를 자명하게 엿볼 이야기가 있으니, 집을 한 번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대뜸 지붕부터 그리기 시작하고, 손수 집을 지어본 사람은 집터와 기둥부터 그린다는 것이다. 기본도 모르던 제 꼴을 절감하곤 인생의 허방다리 짚는 일부터 걷어치운다는 말이다.

목수 안주현 씨와 디자이너 이진아 씨. 이 부부는 스물두 평짜리 작업장, 스무 평짜리 살림집, 이렇게 집 두 채를 지었다. 살 집에 대한 모든 것(취향까지)을 전문가에게 맡긴, 거주지 또는 재화 가치로만 평가되는 집이 아니라, 소박하지만 분명한 신념을 담은 집이다. 그들은 전에 집 한 채 지어보지 않고도 집터와 기둥부터 그려가며 집을 지었다.


안주현 씨가 만든 수납장. 나무가 스스로 지닌 오라를 최대한 살려주고 싶어 하는 그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 크기에 비해 큰 면적을 할애한 욕실. 욕조를 깊이 파서 창밖 풍경을 내다보며 목욕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땅이 준 운명
파주시 월롱면 능산리. 운무가 드리운 여름날에도 장관이고, 눈 온 겨울에도 장관이라는데 우리는 하필 나목이 나약한 햇살에 흔들리는 12월에 왔다. 그런데 장관이다! 어, 왜 이럴까? 둘레둘레 살피니 터가 기막히다. 큰 산이 없는 파주 근처에 오면 하늘이 멀고 넓다. 볼록렌즈처럼 둥그런 산자락에 둘러싸인 파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지구가 둥글다고 지레짐작해왔을 것만 같다. 그 동네 산자락, 등고선이 뚜렷이 드러나는 비탈을 따라 집이 앉아 있다.

“연희동, 연남동, 고양시로 작업장을 옮겨 다녔는데, 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24시간 목공 작업할 수 있는 곳을 원했어요. 열심히 땅을 찾아다니다 운 좋게 이곳을 발견했어요.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인 땅을 보고 이틀 만에 결정했죠. 삼면의 경계는 국유림, 양옆은 종중 땅이라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있겠다 싶었어요. 주거지까지 옮기는 건 좀 고민했지만, SSG 배송이 되는지까지 체크한 후 결행했고요. 외딴집처럼 보이지만 대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토착민 동네가 있어요. 서울까지 30~40분밖에 안 걸려요. 하지만 담 역할을 하는 대문을 닫으면 딱 산 속 오두막이죠.”(이진아) 집과, 집이 자리 잡은 지리적·사회적 위치만 놓고 보자면 딱 ‘숲속 자본주의자’의 집이다.


가라지 하우스를 닮은 작업장. 안주현 씨의 개인 작업 공간이면서 가구 클래스 수업을 진행하는 공간이다. 목공 도구를 말끔히 수납한 것, 커피 머신과 로스팅 도구까지 유리문 달린 수납장에 넣은 것, 먼지도 잘 보이지 않는 바닥에서 주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대문을 기점으로 경사진 땅에 목공 작업장-덱-억새 정원-살림집이 차례로 놓인 형태는 언뜻 사찰의 가람 배치 같다. 건축을 전공한 안주현 씨가 집의 상상도(설계도가 아닌 상상도)를 그리고, 친구의 건축 스튜디오에서 뼈대와 기본 마감을 도왔다. 처마도 따로 없는 딱 세모의 박공지붕에, 알루미늄 컬러 징크 패널에, 스프루스 판재를 태워 먹빛으로 만든 대문에, 층층 계단에 집주인의 상상이 담겼다. “땅이 주는 운명 같은 게 있나 봐요. 늘 살림집과 작업장이 따로 있는 집을 꿈꿨는데, 보통 예산 때문에 이 둘을 1층과 2층으로 올리거든요. 우리는 평수를 줄이더라도 작업장과 집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고, 층층 계단으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었어요. 그걸 산비탈의, 가로로 긴, 경사진 이 땅이 이뤄준 거죠.”(안주현)

이 부부는 어딜 가든 손을 부여잡고 다닌다. 보통 집 지을 때만큼은 “백지장을 맞들면 찢어진다”는 게 진리인데, 이 부부는 역할 분담을 꽤 충실히 해낸 듯하다. 이는 10년 가까이 함께 살며 진짜 호흡을 맞추게 된 서로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한 것일 터.


외출도 자주 하지 않고 작업장에 앉아 나무 만지는 일이 딱 맞는 일이라는 안주현 씨. 건축을 전공한 그는 건물이 땅에 영향을 받듯 공간에 녹아드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뚜껑에 인센스 스틱을 꽂을 수 있게 만든 향합.
안주현 씨가 만든 흔들의자와 레어로우의 스툴.
‘안키텍쳐’하는 남편
안주현 씨는 가구 브랜드 안키텍쳐의 대표다. 아키텍처architecture의 r에 작대기 하나와 자신의 성을 붙인 회사명처럼 그 내력은 건축 전공에 닿아 있다. “아무래도 바탕이 건축이니까요. 가구를 만들 때도 좀 더 폭넓게 구조 등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지 따라 건물 모양이 바뀌듯 가구도 놓이는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제가 우드슬랩(natural edge wood slab, 통원목의 변재를 살려 제재한 나무판)을 좋아하는데요, 인위적으로 따라 하거나 변형할 수 없는 나무 자체의 오라가 있어요. 탄화목도 좋아하는데요, 제가 살짝 태우고 칠한 것밖에 없는데도 독특한 모양이 완성돼요. 나무가 다 한 거죠. 이렇게 재료 자체의 오라를 부각하는 작업을 좋아하고, 그 방법을 고심해요.”

건축이든 예술이든 완성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시간, 비와 햇살과 먼지가 다듬는 시간이다. 가라지 하우스를 닮은 이 작업장에서 그는 시간을 들여 안키텍쳐(an+chitecture)하고, 언키텍쳐(un+chitecture)한 작업에 몰두한다. 그저 톱질 한 번, 대패질 한 번의 가구가 아니라 끝없이 나무를 매만지는 견인주의자의 모습이 엿보인다. “아까 땅이 주는 운명이라고 했잖아요? 작업장과 집 사이 산비탈에 자연스레 생긴 덱에서 나무를 깎고, 경매장에서 사 온 나무를 쪼개고, 탄화 처리를 하고…. 작업의 폭이 훨씬 넓어졌어요. 생목을 잘라 가구 만드는 작업도 맘껏 하게 됐고요. 덱 덕분에 목공 수업도 다채로워졌죠.”


1일 일곱 시간 동안 진행하는 클래스에서 초보자도 이 스툴 정도는 만들 수 있다.
원하는 삶이 두 사물에 다 들어 있다고. 바로 왕무심과 쉼.
유리문으로 개폐하는 커피 장. 작업장 한쪽에 두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변형하면 오히려 아름다움이 망가지는 나무의 본모습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드슬랩에 먹빛만 입혀 침대 헤드로 만들었다. 대신 무선 충전기, 조명 등을 삽입해 젊은 세대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우드워크센터’라 이름 지은 이 작업장에서는 한 명, 또는 두 명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일곱, 여덟 시간짜리 목공 수업을 진행한다. “조용한 숲속에서 만들기 놀이를 즐기다 가는 공간”이란 바람처럼 숲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온종일 느끼며 초보자라도 하루 만에 나무를 집성해보고, 수공 기구도 써가며, 제대로 된 스툴 하나 만드는 시간이다. 한번 엉덩이 붙이고 앉으면 소슬한 바람 소리에 넋을 뺏겨 좀처럼 일어서지 못하는 작업장에서 나무 만지는 시간이라니. 그것도 고라니가 야산으로 뛰어다니고, 작업장과 집 사이 억새가 물결치는 숲속 작은 집에서라니….


‘숲택’하는 아내
나지막한 계단을 걸어 살림집으로 올랐다. 한데 계단이 슬쩍 꺾여 있다. 땅 모양에 맞춰 집을 앉히다 보니 각도가 자연스레 꺾였단다. 작업장을 나와 첫 계단을 디딜 때 집을 향하던 시선이, 계단이 꺾이는 지점부터 숲을 향한다. 이것도 이들이 말하는 땅이 준 운명이리라. 그 풍경을 만끽하며 집에 들어서니 직선적인 선과 면들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박공지붕으로 뻥 뚫린 거실, 꼭 필요한 면적만 제 것으로 차지한 침실과 손님방, 슬라이딩 도어로 거실과 분리한 주방, 주방 싱크 대리석의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소나무 한 그루, 열세 살·여덟 살 된 애묘 죠엘과 죠스의 ‘비밀의 뒷간’, 이 모든 풍경을 수묵화로 만드는 먹빛 가구와 바닥…. 인테리어 마감, 가구, 소품까지 모두 직접 완성했다는 부부의 살림 공간이다.


“나이 들어서 이런 자연 속에 집을 지었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젊을 때는 그래도 수습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한 번 더 집을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스무 평짜리 집이 왜 50평만 해 보이는가 했더니 이유는 ‘목적이 없는 공간’에 있었다. 거실, 서재, 식당처럼 고정된 명칭과 목적이 그다지 없는 방이 이 집의 중심이다. 잔치도, 제사도, 먹을거리 건사도, 훈육도 다 해낸 옛집의 마당처럼 많은 기능을 하는, 그러나 목적 없는 방이다. 노자와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과 ‘허虛’를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선 부부의 거실에서 떠올린다니, 과한 비유 같지만 아니다. 사실 그런 것은 우리 생활에 배어 있던 것이다.

이 목적 없는 공간 한가운데 테이블에서 아내 이진아 씨는 ‘숲택’한다. 숲에서 재택근무하니 숲택이란 건데, 무릎을 칠 만한 조어다. 친구 네 명과 디자인 회사 포인터스를 운영하는 그에게 이 자리가 숲택 근무지다(일주일에 출근하는 2~3일을 뺀 나머지). 작업장에서 일하다 남편이 돌아와 집에 머물 때도 일하는 시간만큼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삶이 ‘홀로’와 ‘더불어’의 균형 잡기라면 이 집, 그리고 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은 참 현명하다. 스무 살 때 소개팅으로 만나 20년을 붙어 지낸 이 둘을 지탱하고 구축해온 것이 저 질서와 균형 잡기 아닐까? 초秒와 분分을 무수히 쪼개놓은 듯 느린 시간이 그 사이를 흐른다.


산비탈에 지은 작업장, 덱, 정원 그리고 살림집. 땅 모양에 맞춰 짓다 보니 동선의 각도가 자연스레 꺾였다. 처마도 없이 딱 떨어지는 박공집으로, 징크 패널로 마감했다.
이 집에서 ‘왕무심王無心’하기를
좀 더 눈의 조리개를 조이니, 연호경 도예가의 ‘왕무심’이라 쓴 도자기와 성모상이 눈에 담긴다. “‘왕무심’이란 단어에 꽂혀 집에 들였어요. 종교가 따로 없지만 보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듯한 저 성모상은 엄마가 갖다 놓으신 거고요. 저 두 물건이 우리가 원하던 삶을 말해줘요. 시끄러운 도심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삶, 그러다가도 좋은 사람 초대해서 쉬어 갈 수 있게 문 열어주는 삶, 좋아하는 것과 일과 일상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이죠. 그걸 이뤄준 곳이 바로 이 집이에요.”(이진아) 사람에겐 성장의 욕구도 있지만 멈추고 싶은 욕구도 있다.

누구나 때론 쉬면서 숨을 고르고 싶은 욕구가 굴뚝같다. 멈추면 그만인데, 계속한다고 거듭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우리는 치열하게 밀고 나가느라 늘 아등바등한다.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선 부부는 그걸 벌써 터득했다. 살아가는 동안 매 순간 ‘알아차림’의 명상법만 터득한다면 삶에서 불필요하게 걷어차기 마련인 돌부리를 얼마나 현명하게 넘을 수 있을까? 그걸 매 순간 알아차리게 하는 숲이 그들 옆에 있다. 그 숲에 이들은 집터와 기둥부터 먼저 그려 집을 지었다.


스툴 만들기 클래스

일시 2023년 2월 13일~28일, 오전 10시~오후 5시(7시간)
장소 우드워크센터(상세 주소 개별 공지)
인원 하루 최대 2인
참가비 25만 원
신청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 http://www.designhouse.co.kr/event/event_detail/665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