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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도 배려하는 마음 [한옥을 찾아서] 가회동 31번지 무무헌無無軒
서울 종로구 가회동 31번지 일대는 한옥의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고즈넉한 골목길 중간, 소나무 가지가 길가를 향해 빼꼼 고개를 내민 집이 한 채 있다. 남향의 반듯한 집, 봄이면 꽃향기가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름은 ‘무무헌’이다.


1 큰방과 대청마루가 보이는 무무헌의 실내. 한국적인 미감이 살아 있는 반닫이가 앞쪽에 놓여 있다. 오랫동안 취미로 붓글씨를 써온 집주인 윤영주 씨가 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일체는 오로지 마음이 만든 것)가 걸려 있다. 그가 앉은 뒤편으로 골동품 몇 점 과 그가 좋아하는 화가 원계홍의 그림, 우연히 구입하게 된 조선시대 화가 신위의 대나무 그림도 보인다. 
2 F자 형상의 마당과 안채.

담벼락에 창문을 낸 집
당호가 걸려 있지는 않다. 주변으로 줄지어 서 있는 열아홉 채의 이웃들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벽에 작은 문을 낸 담벼락 옆으로 가면 생각이 달라진다. 밖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 소나무 아래로 나 있는 작은 나무문(전문 용어로는 ‘주마창朱馬窓’이라고 한다)을 옆으로 밀어 틈새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금낭화가 한창이다. 작약 꽃망울은 부풀어 오르고, 주변으로 매화나무, 꿀풀, 둥글레, 비비추, 매발톱, 작약 등이 동그라니 무리를 이루고 있다. 무무헌은 광화문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나무와 벽돌’과 가회동의 ‘가회헌’을 경영하는 윤영주 사장이 주인다.“제가 젊은 시절부터 반닫이 같은 우리 문화재를 좋아해서 황학동이나 장안평 같은 곳을 다니며 조금씩 수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진심으로 우리 문화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그 정도로 좋아하니 이 한옥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노라’ 라며 돌보게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2004년 구입한 대지 53평, 건물 31평의 집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황두진 씨. 사고석과 전돌, 회 마감으로 외부를 단장하고 한지도배로 내부를 마감했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전 주인이 만들어놓은 형태를 변형하지 않는다는 큰 틀 아래 원형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 주인이 입식 부엌을 만드느라 위치를 뒤바꾸었던 안방과 부엌은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이로써 부지런한 어머니들의 공간이었던 부엌이 아침 해가 잘 드는 동쪽으로 열려 있는 이 집의 덕목을 온전하게 되살릴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어린 시절 비슷한 형태의 집에서 자란 집주인의 희망에 따라 다락도 복원했다.

1 큰방에서 내다본 정원.
2 안채와 사랑채를 잇는 부엌 마루에 앉으면 담장의 주마창이 보인다.

“한옥은 방의 구분이 따로 없어요. 큰방, 작은방 정도로 구분하죠. 그곳은 이불을 깔면 베드룸, 상을 차리면 다이닝룸, 가족들이 윷놀이를 하면 리빙룸이 되었죠.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데, 인구 과밀의 숙제를 안고 있는 현대 사회의 전 세계인이 배워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옥은 규모는 작아도 내적인 공간이 넓거든요.”

윤영주 씨가 우리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하게 된 데는 계기가 있다. 그가 서실에 다니며 서예를 배우기 시작하고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던 대학 시절 무렵이었다. 그 즈음 우리 문화를 연구하는 미국인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부부와 함께 진관사에 가기 위해 두 사람이 머물던 숙소를 찾은 그는 우리 백자 잔에 커피를 마시는 부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감사하는 두 사람을 보며 충격과 부끄러움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나라도 지금부터 공부해서 힘 닿는 대로 우리 문화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다. 그 결심이 발아해 소반, 반닫이 등의 목기를 수집하던 그를 ‘초대형 목기’인 한옥의 주인이 되게 한 것은 아닐는지. “전통 목기는 참 정다워요. 어쩌면 목기를 통해 옛날에 이것을 사랑했던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목기를 만들었던 사람이나 목기를 아꼈던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마치 음악회의 관객들이 연주를 듣고 함께 박수 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우리 전통 목기들이 요즘에 창작된 웬만한 조각 작품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3 소나무로 만든 한약장이 있는 별채. 창으로 아랫집 용마루가 보인다.
4 별채 입구.

한옥은 굉장히 향기로운 집

무무헌은 살림용 공간이 아니다. ‘자칫하면 우리 문화재가 남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 찾게 된 이 한옥은 사랑방 같은 곳이다. 준공한 이후 한옥 건축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 우리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는 내·외국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 전통문화의 보존을 위해 애쓰는 아름지기 같은 단체에서 행사를 개최할 때에는 이 공간을 기꺼이 제공한다.

건축가 황두진 씨는 자신의 저서 <한옥이 돌아왔다>(공간사)에서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집 속에 집이 들어 있는 점을 꼽았다. “집의 평면은 대략 영어의 F자, 즉 권총 같은 형상이다. 그 권총의 손잡이 부분에 작은 집 한 채가 들어가 있었고 대문도 따로 있었다. 세를 놓기 좋은 구조로 매입 당시에도 세입자가 거주하고 있었다.”(<한옥이 돌아왔다>, 17쪽). 시공은 ‘남성적인’ 목수 김길성 대목이 맡았는데, 설계 기간 5개월, 공사 기간 7개월, 집 고치는 데 꼬박 1년이 소요되었다. “일본에게 우리 전통 도자기를 빼앗기고 왜사기를 받았다고 하지요? 제가 자랄 때에는 나무로 만든 전통 장, 반닫이, 소반을 버리고 호마이카로 만든 가구를 들여놓는 게 유행이었어요. 집 안 목기를 다 내다 팔았죠. 그런데 지금 호마이카 장롱이 어디 있습니까. 보존 가치가 없으니 남아 있지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문화재도) 주인 스스로 그 가치를 모르면 남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1 대청마루에 걸린 추사의 글씨 ‘유천희해遊天戱海’. ‘하늘에서 놀고 바다를 희롱한다’는 뜻이다. 
2 그는 목기를 일상적으로 쓴다. 집 안의 가구가 모두 옛것인 적도 있다. 사진 속 반닫이에는 서예용품이 들어 있다. 
3 청년 시절 모친이 만들어준 한복을 지금도 입는다. 면 소재라 세월 따라 크기가 줄어 지금은 짤막하다. 
4 상량문은 윤영주 씨가 썼다.

집주인의 본관은 해남.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다. 선조의 정신을 강조하던 부친의 말씀이 알게 모르게 각인되었던가 보다. 어릴 적에는 고리타분하게 들렸던 그 말씀이 약관을 지나면서 생활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랬나 싶을 정도지만, ‘우리 것’을 찾아다니던 그의 열정은 대단했다.“우리 목기를 대하고 있으면 겸허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그리고 수수한 듯하면서도 내적인 멋과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목기를 보노라면 장식을 배제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미니멀리즘의 극치가 느껴집니다.”

불교 철학과 맞닿아 있는 당호 무무헌無無軒은 집주인이 직접 지었다. 없다는 마음마저도 사라지는 경지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 주인의 바람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 무무헌을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대관절 있고 없음이란 무엇인가.

1 문화유산의 가치를 일깨워준 백자 잔.
2 그가 맨 처음으로 구입한 도자기는 지금 붓통으로 쓰고 있다. “(우리 문화가) 그냥 좋아요.” 정말 좋아하는 것엔 이유가 없다.
3 서예를 시작하던 그를 격려하는 부친의 마음이 담겨 있는 연상硯床.
4 무무헌에 온 외국인들은 컴퓨터와 오디오가 놓여 있는 벽장이 열릴 때 깜짝 놀란다. 예전에 살던 사람이 공간을 넓히기 위해 개조하여 덧붙인 벽장은 지금 사물함과 소품을 전시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5 이 집에서 가장 현대적인 공간인 부엌.
6 다락에는 여나믄 개의 소반이 놓여 있다. 집주인은 기회가 되면 무무헌에서 소반 전시회를 열고 싶다고 한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