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집은 어디까지 진화할까? 집의 진심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에게 음성으로 명령하며 집 안을 누빈다.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집 안의 모든 사물을 연결해 원격으로 제어하는 스마트홈은 더 나아가 인공지능(AI)이 상황과 사용자의 취향을 학습하고, 알맞게 작동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스마트홈이 아닌 옴니시언트omniscient(전지전능한) 홈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최신 스마트홈 기술이 어디까지 왔는지 분야별로 살펴보고, 집 안팎으로 누릴 수 있는 스마트 라이프를 담았다.


“하지만 기계가 사람처럼 구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건 해도 정말 너무했다. 가장 하찮은 도구들조차 제가 맡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겠다고 기를 쓰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셔츠는 제 스스로 단추를 채웠고, 넥타이는 마치 뱀처럼 제 스스로 사람의 목 주위에 감겼다. 텔레비전과 하이파이 오디오 세트는 서로 자기가 먼저 집주인을 즐겁게 해주겠다고 다투었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니, 뤽은 때때로 소박하고 말없는 옛날 물건들이 그리웠다. 온·오프 스위치가 달려 있어서 사람 손이 가야만 움직이는 가전제품들, 금속으로 된 작은 종을 두드려서 소리를 내는 태엽 자명종, 삐걱거리는 문,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고 그래서 위험하지도 않은 실내화, 요컨대 생명의 흉내를 내지 않는 물건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골동품 가게나 가야 찾아볼 수 있었다.“ _베르나르 베르베르, 단편집 <나무>(2003), ‘ 내겐 너무 좋은 세상 ’ 중에서

소설 <개미>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려낸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하는 물건들로 가득 찬 집’의 모습인데, 작가는 이 상황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가 보다. 지금도 우리 삶에 바짝 다가온 스마트홈의 미래는 이런 모습일까? 집에서 처리해야 할 다양한 노동이 사람의 힘이 아닌 전기에너지의 도움을 받으며, 집의 모습은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1백50년 전의 일이다. 세탁기와 냉장고, 청소기와 전기 오븐 같은 기계의 등장과 함께. 그로부터 1백 년쯤 흘러 컴퓨터가 개발되어 물건들에 전자장치가 장착되니, 시간 맞춰 스스로 밥도 하고 음성으로 알려주기도 하며 제법 사람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혁신은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기계들은 서로 연결되고 정보를 주고받아 협응하며 스마트홈의 시작을 알렸다.

스마트홈의 첫 번째 단계
집 안의 전자 제품에 부착된 센서와 전자정보의 수·발신기는 사람 눈과 귀를 대신해 스스로 외부 환경을 감지하고 반응하며, 우리는 원격으로 이 물건들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보일러 미리 켜기나, 로봇 청소기에게 청소시키기, 전등 끄기나 가스 밸브 잠그는 걸 잊고 나왔다 하더라도 문제없다. 홈 오토메이션 패널이 스마트폰과 결합되며,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 물건을 언제 어디서나 내 손안에 둘 수 있게 되었다. 집 안과 집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는 외부의 침입을 감지해, 필요한 경우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해두는 것은 초보적 단계일 뿐이다.

스마트홈의 두 번째 단계
물건들은 센서를 통해 모은 정보를 서로 교환하며 연동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대는 주인의 움직임과 생체 정보를 감지해 ‘일어났다고 판단’하면 창에 내려진 커튼에 신호를 보낸다. 신호를 받은 커튼은 햇볕이 서서히 들어오도록 천천히 걷히고, 같은 신호를 받은 스피커는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 같은 것으로 주인이 기분 좋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주인의 행동 패턴을 기억하고 학습하는 집은 욕실의 불을 켜고 스마트 거울과 스마트 변기는 제 할 일을 할 것이다. 이를테면 양치하는 동안 날씨나 뉴스, 그날의 스케줄을 알려주고, 볼일을 보는 동안 생체 정보를 탐색해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이상한 점이 감지되면 즉각 원격으로 인공지능 주치의를 스마트 거울로 불러내어 의료적 도움을 받게 할 수도 있다. 집 안 곳곳에 설치된 센서는 주인의 움직임과 실내 환경의 변화를 감지해 홈 서버에 보고하고, 중앙 제어장치는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빛, 소리, 온도, 습도 등의 요소가 쾌적하게 유지되도록 각 요소를 담당하는 물건에 명령을 내린다. 이 모든 프로세스에 우리는 예전처럼 스위치를 ‘물리적으로’ 켜고 끌 필요가 없다.

스마트홈의 세 번째 단계
우리의 명령을 기계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점점 더 자연스러워진다. 스위치 온·오프보다 음성과 모션이 중요한 입력장치가 된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잘 훈련된 비서처럼 우리의 음성 명령을 알아듣고, 적절히 대응해 명령을 수행한다. 요즘 혼자 사는 독신 남성을 ‘진희 남자 친구’라고 부른다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한다면 당신은 이미 스마트홈을 가까이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애플이나 구글, 아마존, 삼성, 카카오, KT 같은 알 만한 인터넷 기업들 사이에 누가 스마트홈의 ‘귀와 입’이 될 컨트롤러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것인지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음성 명령 대신 간단한 손동작 등 미리 약속된 모션으로 단축키같이 자주 쓰는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스마트홈의 네 번째 단계
전자 기기뿐 아니라 RFID 기술을 이용해 물건도 이 네트워크에 결합되고,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유통망에 이 정보가 접속된다. RFID 태그가 붙은 냉장고 속 식재료를 예로 들어보자.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가능한 요리 정보를 알려주고, 어떤 요리는 추가로 식재료가 필요하며 레시피를 선택할 경우 자동으로 구매 요청을 할 수도 있다. 세상은 정보와 정보가 연결된 네트워크 위에 다시 세워지는 셈이다.

집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과 기억이 쌓여 추억이 되고 마음이 된다. 스마트홈, 편리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그리고 사람과 마음을 연결하는 집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것이 집이다. 스마트홈은 수단을 넘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을 ‘집의 진심’이라고 믿을지도 모르겠다. 


(주)하우스스타일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주원 건축가는 주거환경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 대학원에서 실내건축학을 전공했고, 연세대 대학원 건축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그 삶과 함께하는 따뜻한 주거 공간 만들기에 관심을 쏟고 있으며, 삼성·한샘 등 유수의 기업과 함께 미래 주거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글 김주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