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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컬렉션 김유현 대표의 갤러리 하우스 집과 예술이 호흡할 때
공간은 그곳을 거쳐간 이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예술 작품은 마주한 이들의 감상을 아로새긴다. 누군가가 머무는 집처럼 꾸민 보고컬렉션에서는 예술이 삶과 가까워지고, 마침내 서로 포개지는 뜻밖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집처럼 아늑한 갤러리의 메인 공간. 김유현 대표는 많은 사람이 생활 안에서 예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고컬렉션을 오픈했다. 공간 설계와 디자인은 아키모스피어 박경식 소장이 맡았다.
논현동 주택가 골목길, 여러 집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민 건물 한 채. 문화와 예술을 삶의 그릇에 담은 보고컬렉션이 이곳에 자리한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캔버스처럼 새하얀 일반 갤러리와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누군가의 사려 깊은 초대로 아늑한 집에 온 듯한 기분. 거실과 주방, 다이닝룸, 침실, 화장실 등으로 구획된 주거 공간에 한국의 대표적 단색 화가 박서보와 윤형근을 비롯해 한국적 색면 추상의 선구자 전혁림 작가, 중국 출신의 작가 천리주, 대만 태생의 영국 화가 리처드 린RichardLin의 작품 등 세계적 아티스트의 작품이 따뜻하게 맞이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를 비롯한 전 세계 옥션을 다니다 보면 집집마다 조그마한 방처럼 마련한 소형 갤러리를 많이 볼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의 갤러리나 미술관이 아닌, 편안한 일상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했어요.” 김유현 대표는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심지어 소파에 기대거나 누워서도 편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이 공간의 설계와 디자인을 맡은 아키모스피어 박경식 소장에게도 의뢰한 것은 오로지 단 한 가지였다. “차 한잔 마시며 편안하게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는 것. 이 한마디가 단초가 되어 삶과 예술이 마주하고 대화하는 ‘보물 창고’ 보고컬렉션이 탄생했다.

천장과 벽, 바닥의 그리드가 조성한 입체적 프레임이 리처드 린의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김창열 작가의 작품과 그 앞에 놓인 이탈리아 브랜드 폴트로나 프라우 의자의 색감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바위와 이끼, 식물로 세심하게 꾸민 동양적 분위기의 정원.

케이옥션에서 구한 한국 고가구가 고아한 정취를 자아낸다.
갤러리와 집 사이
사실 이 건물은 지은 지 약 30여 년 된, 과거에 누군가가 거주하던 빌라였다. 실제로 사람이 살던 집을 주거 형태를 띠는 갤러리로 만드는 데는 커다란 물리적 한계가 존재했다. “일반 단독주택이 아니라 집합 주거 형태의 건물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려하면서 구조를 변경한다는 일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고 모험이었죠.” 박경식 소장은 무엇보다 ‘그림이 주인인 집’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깔끔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형 사이즈의 그림을 벽에 걸기에는 공간이 꽤 답답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박 소장은 여러 개 방으로 빼곡하던 구조를 터서 메인 공간을 보다 넓게 확보하고, 천장은 스폿 조명을 달 수 있을만큼 천고를 높였다. “보시면 천장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거예요. 높낮이의 차를 두어 리듬감을 부여하면 사람의 공간적 인지를 흔들게 됩니다. 천장이 입체적이기 때문에 ‘천고가 낮다’ 혹은 ‘천고가 높다’라는 인식 자체를 못 하게 되지요.”

공간 곳곳에 자리한 기둥과 보는 보여주기 위한 장식이 아닌 실제 하중을 버티기 위해 설치한 구조체다. 수평·수직으로 가르는 공간의 그리드는 시야에 절묘한 프레임을 만든다. 마치 액자 틀을 입체화한 것처럼 보이는 것. 이렇듯 박경식 소장은 여러 그림이 한 공간 안에 어우러지면서도 각 그림마다 독립적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공간의 ‘프레이밍’에 집중했다. 바닥의 패턴 역시 공간의 구조적 그리드를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저 벽에 걸린 리처드 린의 작품을 보세요. 기둥과 천장, 바닥의 패턴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이 한 작품에만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지요.” 거실 한쪽에 걸린 김창열 작가의 작품 ‘물방울’에서 시선이 자연스레 정원으로 향한다. 이 공간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테라스 정원이다. 자연이라는 창조주의 작품이 걸려 있는 차경. 이렇게 자연을 내부로 들임으로써 외부를 차단해 사생활을 보호하는 역할과 동시에 프라이빗한 정원을 조성한 것이다. 계절마다 바뀌고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은 인생의 주기를 함축한 듯하다. 공간 속에 자연이 깃들어서일까, 이곳의 작품들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살과 그림자를 입으며 살아 있는 생명처럼 호흡한다.

보고컬렉션을 방문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과를 즐길 수 있는 다이닝룸. 밝은 색감과 간결한 디자인의 원목 가구가 작품에 힘을 더해준다.

아늑한 침실 벽면에는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의 초기 작품이 걸려 있다.

보고컬렉션의 예술 세계로 들어가는 현관. 왼쪽은 거실과 다이닝룸, 오른쪽은 침실과 욕실이 자리한다.
예술은 나와 함께 존재한다
의자에 앉아 고요하게 작품을 바라보다 주방으로 걸어 나가 커피를 내리며 다른 작품과 마주한다. 보고컬렉션에서는 동선에 따라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정면으로 혹은 사선으로 크게 혹은 작게 다양한 레이어에서 작품과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 “생활 반경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위를 통해 그림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경험을 해보시기를 바라요. 삶이 바로 그렇지 않나요? 우리 인생이 고정되지 않고 항상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스무 살 무렵부터 그저 그림이 좋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 점 한 점 작품을 모아온 김유현 대표는 생활 속에서 느끼는 예술의 아름다움과 힘을 누구보다 확신한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박서보, 이우환 작가 등 현재 세계적 미술 거장으로 떠오른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은 20여 년 전부터 눈여겨보고 구매해온 것들이다. 심지어 당시에는 경매에서 유찰된 작품도 그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선택했다. “보통 옥션에서 한 번 유찰된 그림은 아무도 사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스스로 ‘보증된 믿음’을 갖고 그림을 사기도 했지요. 당시엔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바라고 선망하는 작품이 되었어요.” 김유현 대표는 책상 앞에 작은 그림 한 점이라도 있는 사람이 좋은 그림을 만났을 때 감명을 받을 수 있고, 그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고 말한다. “그림은 보면 볼수록 안목이 자연스레 길러진다고 생각해요. 그림의 값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똑같은 그림도 오늘 내일 볼 때마다 감정이 달라지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봐야 그 그림을 한 번 인정하게 돼요. 그러려면 반드시 자기 생활 안에 있어야 하지요.” 그에게 예술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야만 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항상 마주 보고 대화하는 존재다. 삶의 배경이 된 예술이 바로 보고컬렉션에 숨 쉬고 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26길13 302호 문의 010-4548-3036(예약제 운영)


김유현 대표에게 배운 작품 배치 팁

세로 작품을 옆으로 뉘어보자
다이닝룸 벽면에 걸린 윤형근 작가의 단색화 작품은 원래 세로가 더 길지만, 그대로 걸면 바닥과 천고 사이에 여유가 없어 답답해 보이기 때문에 옆으로 눕혀 걸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작품을 잘못 걸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 작품을 배치하는 새로운 방식을 스스로 발견해보자.

무심히 올려놓는 것도 방법이다
작품이 꼭 벽면에 걸려 있을 필요는 없다. 테이블이나 바닥 한쪽에 두어보자. 아일랜드 위에 툭 올려 벽에 기대놓은 천리주 작가의 작품이 멋스럽게 느껴지는 이유.


디자인을 맡은 박경식 소장은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건축디자인 석사과정을 마치고 2012년 건축디자인 사무소 아키모스피어Archi@Mosphere를 설립했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작으로는 AMD aval, 하나금융그룹 영빈관, 파피루스 아이웨어, 스테이션 니오 등이 있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