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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된 주택의 환골탈태 옥인동 시크릿 가든
종로구 옥인동,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에 자리한 단독주택. 삐뚤빼뚤한 벽과 천장을 걷어내며 드러난 작은 마당, 계단, 입체적 나무 골조에 또 하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간다.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최지영 씨 가족의 삶의 무대. 엄마와 아이가 주로 시간을 보내는 주방과 다이닝 공간을 2층에 구성, 천장의 입체적 구조와 아치형 벽 구조 외 다른 인테리어 요소를 최소화하고, 가구 역시 꼭 필요한 것만 들였다.

‘집콕’이 일상어로 자리 잡고, 일이나 관계도 ‘비대면’이 익숙한 시대. 커다란 창 너머로 온종일 햇살이 들어오는 다이닝 공간은 안정적이면서 새롭고, 편리하면서도 느긋한 이 시대 집의 역할을 충족한다.
서촌은 주택과 빌라, 오래된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동네다. 광화문 바로 옆이라 교통 인프라와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조용한 주택가가 펼쳐져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도 인기가 많다. 최지영·오상원 부부는 서촌에서 나고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 “친정, 시댁 모두 같은 동네예요. 그러다 보니 신혼집도 자연스럽게 서촌으로 정해졌죠. 빌라에서 살다가 태온이가 태어나면서 단독주택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현실적으로 집값 상승률을 따져본다면 아파트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부부는 아랫집 눈치 보느라 최소한의 자유를 속박당하기보다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고, 퇴근 후에는 부부가 함께 운동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일상을 택했다. 오래 살아 익숙한 서촌 지역의 단독주택을 2년 정도 찬찬히 물색하다 이 집을 만났다. 지은 지 45년 된 주택은 거의 새로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대적 수리가 필요했지만, 남쪽으로 건물이 낮게 자리해 채광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집의 첫인상은 굉장히 어둡고 칙칙했어요. 위층과 아래층에 따로 두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베란다·마당 등 외부 공간을 증축해서 여유 공간 없이 꽉 채워 쓰고 있었죠. 집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덜어내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천장의 연결보와 중도리는 샌딩한 후 천연 오일을 바르고, 나머지 부분은 화이트로 도장했다. 옛날 집이라 시공상 천장을 막는 것보다 더 많은 공정이 들어갔지만, 이 집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준 일등 공신이다.

욕실, 주방, 현관, 베란다 등 포인트 타일 시공은 타일연구소에서 진행했다.

ㄷ자로 넉넉한 수납공간을 갖춘 주방. 싱크대, 키 큰 장, 다이닝룸의 식탁 모두 맞춤 제작했다.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미디어룸. 작은 공간이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침실과 욕실을 제외하고 문을 생략할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오픈하되, 아치로 공간을 구분해 시각적으로 훨씬 풍성한 느낌이 든다.

마당 있는 집에 산다는 것
리모델링을 맡은 오-스케이프 아키텍튼 박선영 소장은 1970년대 지은 구옥의 원형을 되살리는 작업부터 설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주택 가장 안쪽의 작은 마당이다. 이전에는 거실의 연장선으로 사용하던 마당을 다시 외부 공간으로 구현하고, 거실 면적을 오히려 줄인 것이 특징. 대신 작은 거실은 외부 정원의 뷰를 지니게 됐다. 박선영 소장은 작은 집일수록 물리적으로 연면적을 늘리는 것보다 시선이 벽에 차단되지 않고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옥의 한 칸짜리 방도 미닫이문을 열면 공 간이 몇 배 더 넓게 확장되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시선이 머무는 곳이 막혀 있는지 개방되어 있는지에 따라 체감하는 집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 마당, 테라스처럼 방에서 나와 하늘을 보고 공기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 확보되면 집에서의 경험이 한층 다채롭고 풍요로워지는 것은 물론이다. 실제 최지영 씨가 반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은 곳 역시 1층 거실과 연결되는 작은 정원이다. “올해는 꼼짝없이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빌라에 살았다면 많이 답답했을 것 같아요. 비가 자주 와서 야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했지만, 마당에 비가 두두두두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일상이 환기되더라고요.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러워 아직 집들이를 많이 못했는데, 대부분 아파트에 살아서 그런지 이 작은 마당을 궁금해해요.”

도시 안 단독주택의 비밀스러운 작은 정원. 45년 된 벽돌 담장에 맞춰 바닥도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현관, 게스트 화장실, 계단실, 1층 거실로 연결되는 전실. 집이 작아서 마감재는 단순화하되, 부분적으로 컬러 포인트를 준 것이 특징이다.

브라보, ‘집콕’ 라이프
이 집의 주요 생활공간은 1층이 아닌 2층이다. 1층 현관으로 들어서면 화장실과 계단실을 지나 아이 방과 안방, 미디어룸과 작은 거실이 펼쳐진다. 커다란 창으로 온종일 햇빛이 들어오는 2층의 메인 공간에는 주방과 다이닝룸이 자리한다. 최지영 씨와 아들 태온이가 오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이 다이닝룸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뷰와 채광이 좋아지는 대지의 조건이 답이 됐죠. 엄마와 아이가 가장 활동적인 낮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2층에 두고, 침실과 미디어룸 등 잠을 자거나 휴식과 관련한 공간을 1층에 배치했어요.”

침실을 비롯한 1층의 창이 최소한의 환기와 동남쪽의 정원을 향해 열린다면, 2층의 창은 이웃집의 풍경을 담는 액자다. 36평(121.58m²) 남짓한 대지에 지은 작은 주택이지만, 공간이 답답하지 않은 이유는 창밖으로 보이는 다채로운 풍경과 높은 천장 덕분. 특히 마룻대와 연결보, 중도리, 서까래 등 지붕 아래 구조물이 그대로 드러나는 2층 천장은 공간에 개방감을 더해주는 것은 물론 입체적 포인트가 된다. 천장의 연결보와 중도리는 깨끗이 닦아 천연 오일을 바르고, 나머지 부분은 메지와 발포제를 채운 후 화이트로 도장해 모던 인테리어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주방, 다이닝룸, 미디어룸 등 각 부실의 문을 생략하고 아치구조의 오픈 벽체를 구성한 것도 특징이다.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미디어룸은 아치를 통해 작은 거실과 외부 정원까지 시각적으로 연결되고, 다이닝룸과 주방, 거실 사이의 아치 문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아치와 아치가 겹치면서 공간이 한결 다채롭게 느껴진다. 팬데믹 시대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 두기’와 ‘소통’이 공존하는 느낌이랄까? 거실이나 미디어룸, 마당에서 따로 또 함께 일상을 채우는 만족감이 크다.

창문 너머 이웃집 풍경과 벽체에 구성한 액자 프레임이 다양한 레이어를 만들어내는 계단. 아이가 온종일 오르내리며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벽체를 보강하고, 상부에 라이팅을 설치했다.

주거를 정하는 데 경제적 가치보다는 당장의 삶의 만족도에 기준을 둔 가족이 선택한 작고 오래된 주택. 주변 환경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이 집만의 특징을 만들어내는 생활 설계로 도시 주택 라이프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저희 집 거실에는 소파가 없어요. 아이가 아직 어려 소파보다 바닥에서 놀 때가 더 많고, 소파를 등 기대는 용도로만 사용하던 터라 이사하면서 아예 없애버렸죠. 대신 미디어룸에 등을 기대는 빈백을 두고, 침실 한쪽에는 단 높이가 50cm 정도 차이 나는 마루를 구성해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어요.” 디자인 가구와 다채로운 마감재로 예쁘게 꾸미는 인테리어를 넘어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향유하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취향을 담은 공간의 가치를 경험하는 것 또한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효과적 방법일 터. 그런 의미에서 최지영 씨가족의 레노베이션은 현재진행형이다. 빨리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숙제)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는 일종의 느린 취미 활동 같은 것.

“애들은 고무 대야에 물만 채워줘도 하루 종일 잘 놀잖아요. 내년 여름에는 태온이를 위해 마당에 미니 수영장을 만들어주려고요. 마당 한쪽에는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운동기구도 설치하고, 빨간 담벼락과 어울리는 담쟁이덩굴도 키워보고 싶어요. 내년에는 이 작은 마당을 또 어떻게 즐길지, 마당의 풍경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되는데, 그게 바로 주택살이의 매력이겠죠?”


디자인을 맡은 박선영 씨는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국의 포스터앤파트너스, 삼성물산 건축설계팀을 거쳐 2014년 디자인 사무소 오-스케이프 아키텍튼O-SCAPE Architecten을 설립했다. 개인 레지던스는 물론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 중랑구청소년커뮤니티센터, 서울시 소셜벤처허브센터 등 다수의 공공 건축을 진행했으며, 최근 강원도 홍천의 ‘세항아리_된장공장공장장은’ 프로젝트를 완공했다.

글 이지현 | 사진 이우경 기자 설계 오-스케이프 아키텍튼(www.o-scape.co.kr) | 시공 퍼니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