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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디자인 나의 인생 의자
귀한 물건은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디자인 가구를 접하고 경험해온 가구 전문가 일곱 명에게 대물림하고 싶은 인생 의자를 물었습니다. 인생의 첫 번째 디자인 의자를 고민하는 초보 컬렉터에게 전하는 조언도 함께 들어봅니다.

Standard chair
비트라, 아르텍 한국 매니저 이정훈

“기본 구조가 디자인을 결정한 의자”

비트라의 스탠다드 체어는 루밍(02-599-0803).
장 프루베가 1934년 디자인한 스탠다드 체어는 ‘표준’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기본에 충실한 의자다. 이정훈 실장이 철제 프레임 다리와 나무 시트&등받이로 구성한 스탠다드 체어를 선택한 이유는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 “생산한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까지살아남았다는 생명력 자체가 이 의자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생각해요.” 장 프루베가 지닌 건축에 대한 관점, 금속을 다루는 기술 등 그가 축적해온 삶의 모든 결과물이 이 의자 하나에 집약되었다. 좌석에 가까워질수록 넓적해지는 형태의 뒷다리는 무게를 지탱하는 힘이 앞다리보다 뒷다리가 크다는 의자의 구조 원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첫 번째 의자를 고를 때는 자신의 취향을 점검해보라고 한다. “자신의 미적 감각의 기원을 확인하고 싶다면 집에 있는 가장 오래된 머그를 찾아보세요. 사소하지만 한때 아끼던 사물에서 취향의 기원을 알 수 있을 거예요.”


LC1
크리에이티브랩 오민주 실장

“시대를 관통하는 의자”

카시나의 LC1 체어는 크리에이티브랩(02-516-1743).
크리에이티브랩에 근무한 지 15년 차에 접어든 오민주 실장은 자타 공인 20세기를 대표하는 의자 LC1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특정 취향이나 스타일을 떠나 모두가 인정하는 시대의 아이콘이잖아요. 물려받을 사람의 공간에서 짐이 되지 않도록 부담스럽지 않아야 하고요.” LC1은 1928년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샤를로트 페리앙이 함께 디자인해 1965년부터 생산한 가볍고 콤팩트한 암체어다. 이 의자에 앉으면 절로 긴장이 풀리고 대화가 부드럽게 이어진다. 각도가 조절되는 등받이와 그에 맞는 좌석의 기울기, 간결하면서도 텐션 있는 새들 가죽 등 모든 요소가 최상의 자세에 대한 심층적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적용됐다. 그는 디자인 가구를 소유하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 소유에는 구매하는 과정까지 모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정식 절차를 거쳐 가구를 구입하는 행위에도 의미를 두었으면 좋겠어요.”


Ball chair
루밍 박근하 대표

“공간 안의 공간이 되는 의자”

아르니오 오리지널의 볼 체어는 루밍(02-599-0803).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가 검은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고 자신이 디자인한 볼 체어에 앉은 사진을 보고 그와 똑같이 의상을 입고 온 루밍 박근하 대표. “아르니오를 실제로 만났을 때 90대 노장인데도동심을 잃지 않은 유쾌한 디자이너였어요.”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기분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 구 형태의 볼 체어는 실제로 앉으면 더욱 아늑하다. 그는 이 동그란 구 안에 몸을 완전히 숨기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긴다. 30대 로망의 의자이던 볼 체어 이전에는 자노타의 메차드로 의자가, 20대에는 임스의 DCM 의자가 있었다. 그는 갖고 싶은 의자가 생기면 종이로 오려 갖고 다니기도 하고,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두거나 미니어처부터 모으기도 했다. “저처럼 이미지를 곁에 오랫동안 두고 보면서 질리지 않는다면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중요한 건 남이 사니까 따라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이 그 디자인 철학을 알아보는 거지요.”


Uncle Jim & K wood chair
한국가구 정훈정 이사

“가구 그 이상의 가치”

카르텔의 엉클짐 체어와 K 우드 체어는 한국가구(02-2600-7000).
18년 전, 이탈리아 출장에서 투명한 루이 고스트 체어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는 정훈정 이사. 그의 카르텔 가구를 향한 애정은 루이 고스트와 부지 램프를 거쳐 2015년, 비로소 엉클짐 체어에서 정점을 찍었다. 정교한 조각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 의자에 앉으면 이름처럼 마치 키다리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고. 그로부터 4년 후인 2019년, 엉클짐의 우드 버전인 K 우드 체어가 나왔을 때에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세계 유일의 3D 몰드 기술을 목재에 적용한 필립 스탁의 또 다른 역작이었기 때문. 두 의자 모두 S라인의 곡선으로 등과 허리 전체를 받쳐주는 착석감이 뛰어나다. 또한 인증받은 산림에서 생산하는 목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브랜드의 친환경 가치를 지지할 수 있어 뜻깊은 소비이기도 하다. “인생 첫 의자를 고른다면 의자에 전문성을 지닌 브랜드인지, 또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나의 가치와 맞는지를 가장 먼저 생각해보세요.”


CH24
칼 한센앤선 한국 매니저 김린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손으로 만든 의자”

칼 한센앤선의 CH24 체어는 더멘션(02-3446-4668).
가구 사업을 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의자를 많이 접해온 김린 실장은 덴마크 가구 디자인의 상징인 CH24를 선택했다. 1949년, 한스 웨그너가 중국 황제들의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CH24 체어는 Y자 모양의 등받이 덕분에 ‘위시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1950년 처음 생산할 때부터 현재까지 조립, 위빙, 샌딩, 본딩 작업 등 대부분의 공정을 숙련된 장인이 직접 손으로 합니다. 120m 길이의 종이 코드를 사용해 시트를 짜는 데만 약 한 시간이 걸리지요. 수작업 공정을 직접 보면 정말 좋은 의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디자인 가구는 곧 예술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무엇보다 오리지널 디자인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는 천연 나무로 만든 의자를 추천해요. 오래 쓰면서 생기는 긁힘도 자연스러운 기록이 되고, 또 스스로 관리하고 보수하기도 좋아요. 사포질하고 목공 오일로 칠하고 말리며 가꾸는 일, 멋지지 않나요?”

PK22
프리츠 한센 코리아 이수현 지사장

“사용할수록 아름답다”

프리츠 한센의 PK22는 프리츠 한센 코리아(02-6959-9943).

단단한 골조 위에 간결한 디자인을 입힌 PK22는 포울 키에르홀름의 집요한 연구의 결실이자 고전적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이수현 지사장은 프리츠 한센을 대표하는 아이코닉 의자 중에서도 PK22를 꼽은 이유를 ‘간결함’이라 말한다. “소중한 사람에게 물려준다면 어떤 공간과 상황에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PK22는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게 잘 녹아들지요.” 처음에 이 의자를 봤을 때는 딱딱하거나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앉아보고 오래 사용해보니 이보다 편한 의자가 없다고 한다. “좌석 아래로 다리에 걸리는 프레임이 없어요. 또 등받이와 좌석에 걸쳐 씌운 가죽은 상체를 지탱하고, 자연스럽게 처지면서도 텐션을 잃지 않아요.” 디자인 가구에 입문한다면 의자뿐 아니라 의자를 생산하는 브랜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길 권했다. 1백50여 년 동안 쌓아온 프리츠 한센의 역사가 지난 세월과 미래를 보증하듯이.


Reading chair
ERD갤러리 이민주 대표

“디자인 가구의 오리지낼리티는 곧 디자인”

원컬렉션의 핀율 리딩 체어는 하우스오브핀율 서울(02-749-0429).
ERD갤러리 대표이자 하우스오브핀율 서울을 운영하는 이민주 대표가 꼽은 리딩 체어에는 각별한 사연이 있다. 1953년 우드 시트로 제작한 리딩 체어는 공정상 이유로 패브릭 또는 가죽 시트로 양산했는데, 2년 전 다름 아닌 그가 원컬렉션 본사에 오리지널 우드 시트를 한정판으로 제작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오리지널 버전의 리딩 체어가 세상에 다시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이후 원컬렉션에서 양산을 결정했는데, 제가 오리지널의 재생산에 조금이나마 참여한 것 같아 기뻤어요.” 앞으로 앉든 뒤돌아 앉든 자세가 편안하도록 설계한 이 의자가 ‘독서 의자’라는 이름이 빛을 발하는 건 의외로 뒤돌아 앉을 때다. 등받이의 꺾인 패널이 받침대 역할을 하기 때문. “디자인 가구의 가치는 결국 디자인에 있다”고 말하는 그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디자인을 최우선 가치로 두기를 바란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