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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공예가 주소원 두 가지 세계
금속을 이용해 주얼리부터 테이블웨어, 추상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경계 없이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주소원 작가. 그의 작품 세계는 곧 집과 작업실로 수렴된다. 창조와 응용이 동시에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능성의 실험실, 분당 하우스를 찾았다.

외관이 희고 단정한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한 커다란 백일홍 한 그루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목공과 용접 작업을 위해 선큰 공간에 새롭게 마련한 작업실. 주소원 작가는 이곳에서 수백 수천 번 갈고 두들기고 다듬는 지난한 작업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저명한 조각가와 공예가가 모이는 뉴욕의 국제조각공예페어 SOFA(International Sculpture Objects & Functional Art Fair)에 10년 이상 참여해오고, 출품하는 작품마다 모조리 완판을 기록하는 스타 작가. 금속 공예가 주소원은 작년 한 해만 해도 밀라노, 암스테르담, 뉴욕, 일본 등 국내외 전시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업 활동을 펼쳤다. 그런 그가 가빴던 호흡을 가다듬고 모처럼 일상에 쉼표를 찍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찾아갔다. “코로나19로 계획된 전시가 연이어 취소되면서 개인적으로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주얼리 작업에 착수하기도, 10년 전에 했던 옛날 작업을 꺼내 다시 보완·수정해보기도 한다. 작업에 한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두 시간 넘도록 몰입할 때도 있다. “어느 하나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려요.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으니 참 신기한 일이죠.”

강익중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이 걸려 있는 다이닝룸은 온화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집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중정은 높은 천고를 활용해 채광을 확보하고 사방의 자연을 집 안에 들인다. 유리 중정을 통해 어디서든 아이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누기에도 최적의 장소다.
7년 전, 조신형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의뢰할 때부터 작업실을 염두에 두었다. 1층은 가족을 위한 거실과 다이닝룸, 2층은 부부와 아이의 침실, 그리고 지하는 그의 작업실이다. 작업실 앞에는 선큰 공간을 두어 작은 마당을 꾸몄는데, 지난해 이곳에 목공과 용접을 위한 작은 작업실을 따로 지었다. 집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작업실에는 수십개의 망치와 금속판, 용접 도구가 나름의 규칙대로 흐트러져 있다. 작품 세계를 한데 응축한 듯한 작업실은 울창한 숲이 감싸고 있으니 마치 자연 속에 폭 안겨 있는 형세.

영감의 중요한 원천이 되는 자연과 생명을 늘 곁에 두고자 하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마당 앞에 쭈그려 앉아 오늘은 꽃이 얼마나 피었는지, 꽃잎과 꽃술, 꽃받침 등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한없이 시간을 보낸다. 파랑새를 위한 새장도 만들 만큼 파란색을 좋아하는 주 작가는 오로지 감상을 위한 수영장도 필요했다. 오죽하면 집 안에서도 정원이 한눈에 내다보이도록 전면을 통창으로 마감하고, 집 한가운데 중정까지 들였을까. 다이닝룸보다 중정 안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 마시길 즐긴다. “온통 초록에 둘러싸여 캠핑 온 듯한 기분이 들죠.” 겨울에는 밀림처럼 더 무성해진다. 집 곳곳에 둔 화분을 월동시키기 위해 안에 들여 온실처럼 활용하기 때문.

주소원 작가의 ‘코쿤Cocoon’ 조각 작품으로 꾸민 거실 코너.

한번 망치질을 시작하면 밤을 새우기도 일쑤. 무릎에 받침판을 올려놓고 망치질을 하다 무거운 줄도 모르고 무릎에 멍이 들기도 한다.

작업실에 자리한 원목 캐비닛에는 그가 은으로 만든 조각과 테이블웨어, 차 거름망 등을 진열해놓았다.
“자연은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다워요. 저는 자연물을 묘사하려고 애쓰지 않아요. 그간 오래도록 관찰해온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고 할까.” 우주 질서에 따라 피어나고 저무는 생명을 관조하다 보니 그의 작품은 씨앗, 꽃봉오리, 열매 등 다양한 자연물로 자연스레 형상화된다. 물론 조형적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대하게 생각하는 건 실용성이다. 특히 주얼리는 스케치 단계부터 인체와의 비례감을 고려하고, 몸에 착용했을 때 불편함이 없는지 꼼꼼하게 따진다. 일단 그는 스스로가 쓰고 싶은 것을 만들고, 착용해보지 않은 것을 판매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턱선이나 어깨 곡선과 잘 어울리는지, 움직일 때 주얼리가 어떻게 흔들리는지, 착용하고 뺄 때 수월한지 등을 꼭 직접 실험해보지요.”

‘쓰임’의 가치에 대한 그의 철학은 비단 주얼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접시와 포크, 냅킨 링, 차 거름망 등 작은 생활용품을 비롯해 책상·의자 등 가구,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그 장르는 다양하다. 실제로 그는 서울대학교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과 코넬 대학 조소과를 거치며 장신구, 회화, 설치 등 경계 없는 작업을 배우고 도전해왔다. “배움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금속공예, 전통공예, 목공예 등 다양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응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레고 블록처럼 쌓아 올린 조형물은 유학 시절에 만든 것으로, 거실 사이드 테이블로 쓰고 있다.

청아한 푸른빛 물이 일렁이는 수영장. 하얀색 선베드가 놓인 이국적 정원 풍경은 휴양지 리조트를 연상시킨다.

현관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푸른색 국화를 담은 윤정원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오브제를 올린 긴 목제 테이블은 직접 만든 것이다.

자신이 만든 장신구를 즐겨 착용하는 주소원 작가는 스스로 쓰고 싶은 것을 만든다.
“한 학기 크리틱이 끝나면 쓰레기로 버려지는 작업물은 만들지 않았어요. 과제 하나도 좋은 재료로 만들기에 지금까지 사용할 수 있지요.” 실처럼 얇은 금선을 엮어 만든 세밀한 장신구부터 나무 한 그루 높이를 넘는 추상 조형물 등 손으로 만들고 싶은 모든 것을 제작해온 왕성한 창작욕과 고른 취향이 부려놓은 집은 그 자체로 주소원 작가의 작품이자 삶이다. “제가 한 모든 작업이 집 구석구석에 쓰이고 있어요.” 삶 속에 작업을 적극 끌어들이고, 집은 작품의 쓰임을 실험해보는 공간이다. 철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루카치 소설의 이론>에서 “예술은 삶과의 관계에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태도를 취한다”고 했는데, 주소원 작가의 예술은 삶에 대해 조금 다른 태도일 것 같다. ‘그렇기에 비로소’ 관계를 맺는다고나 할까.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