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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변주를 선물하는 용인 주택 담백명리 淡泊名利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사회 속의 나와 자연 그대로의 내가 분리되는 순간에 비로소 오롯이 휴식하고 재충전한다. 용인 고기동 계곡에 자리한 3층 주택 ‘담백명리’는 분리와 변주로 삶에 휴식과 위로를 전하는 집이다.

광교산과 바라산으로 둘러싸인 주택 2층의 메인 가든. 조경 전문업체 팀펄리가든에서 기본 디자인을 하고, 부부가 새로운 모종을 더해 가꾸고 있다. 흙 위에는 제주도를 떠올리게 하는 화산송이를 덮었다.

메인 가든 앞에 앉아 명상하듯 흐르는 시간을 즐기는 김주미·안재진 부부.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 경험을 주도하는 아내와 유명 기업의 영업본부를 맡고 있는 남편. 트렌드에 기민하고 관리에 유능하며 책임감이 강해야 하는 사회적 자아가 필수인 김주미·안재진 부부는 아파트에 거주할 때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금요일에 퇴근한 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내려가 조기 은퇴 후에 집 지을 부지를 보러 다니는 시간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살았다.

“제주도의 자연을 만나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꼈어요. 하지만 현재의 직업에서 찾는 의미와 책임감 역시 크니 당장 자연적 나로만 살 수는 없죠. 그렇게 미래를 위한 집만 생각하다가 어느 날 ‘몇십 년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겨울 주말에 용인에 식사하러 갔다가 근처 산 전망이 마음에 드는 언덕에 무작정 가보았는데, 환하고 따뜻해서 ‘여기다!’ 싶었죠.”

완만하게 이어지는 용인시 고기동 계곡의 산언덕에 삼층집이 완성되자 남편은 담백명리淡泊名利라는 작은 문패를 걸었다. 물욕이 없는 공간. 그 이름처럼 창밖으로 작은 정원 너머 멀리 광교산과 바라산이 이어지는 산세가 가만히 앉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명상을 부른다. 이 집을 짓고는 제주도에 한 번을 안 갔다. ‘제주도라는 자연을 좋아한 게 아니라 사회생활과 자연적인 나를 분리할 공간이 필요했구나!’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메인 가든과 비어 가든을 향해 현관을 낸 2층이 집의 중심이다. 1층과 2층은 실외 계단으로, 2층과 3층은 실내 계단으로 이어지며 그 사이로 네 개의 정원이 자리한다.

복도를 이용해 꾸민 서재.
담백하게 취향을 이어가는 집
덜컥 대지부터 계약한 후 여러 건축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와 취향이 통하지 않으면 내내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웰다잉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미국 등 서구 복지사회에서 노인이 요양원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몸이 아프거나 자식이 안 와서가 아니라,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취향에 안 맞는 방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사람의 행복에 그만큼 중요한 거죠.”

포트폴리오를 살펴본 건축가 중에서는 백에이어소시에이츠100A associates에 특별히 관심이 갔다. 그들을 만나러 정릉에 있는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제이슨 블레이크의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서 늘 음악을 틀어놓는 건축주 부부에게 친숙한 취향이었다.

“예산이 얼마이고, 집을 어떻게 짓고 싶은가 대신 ‘주말에 뭐 하나, 어떻게 지내는 걸 좋아하나’를 먼저 묻더군요. 차를 마시면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이 좋았어요. 우리는 언덕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마당에서 잠옷을 입고 시리얼을 먹을 수 있는 집, 둘만 사는 공간이니 변주가 있으면 좋겠다고 답했어요.” 건축가는 고기동 부지를 돌아보며 산세와 풍경에 기품이 있고, 자연이 유유하니 집도 담백하게 짓자며 낮은 담 너머 산 능선이 펼쳐지는 정원이 있는 스킵 플로어 형태의 삼층집을 제안했다.

현관 앞 콘솔은 남편이 공방에서 직접 만들었다. 그 위로 제주 풍경을 그린 이왈종 화백의 작품을 걸었다.

직접 찍은 사진과 음반 등을 감상하는 엔터테인먼트룸.
고기동 곤충들의 회식 장소
1층의 차고는 오디오와 빔 프로젝터가 있는 엔터테인먼트 룸으로 꾸몄다. 이 공간은 특히 친구들과 가족이 올 때마다 먹고 영화 보고 노래 부르는 조촐한 파티 장소가 된다. 거실과 주방, 욕실의 단출한 구조인 2층은 메인 가든과 비어 가든이 둘러싸고 있다. 미니멀한 삶을 선호하는 부부의 취향대로 거실과 주방을 이어 하얀 붙박이장을 설치했는데, 모든 생활 집기를 수납한 덕분에 비워진 공간에 대나무가 아른거리는 풍경이 집의 첫인상이 된다. 대나무를 심은 뒤쪽 창과 광교산이 펼쳐지는 메인 가든이 있는 앞쪽 창이 마주 보며 경관과 미감, 환기를 만족시킨다. 거실에는 단아한 콘솔, 대나무 창을 가리지 않는 좌식 소파와 테이블을 놓았다. 모두 남편이 취미 삼아 만든 것으로, 아내가 동대문에서 맞춘 새하얀 쿠션과 함께 완성했다.

대나무 숲에는 개구리가 와서 살고 새가 집을 지었다.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다가 창 너머 새집의 새와 눈이 마주쳐 서로 당황하는 일상이 부부는 마냥 신기하고 감사하다. “저희 집 메인 가든은 고기동 곤충들의 회식 장소예요. 벌이 나인투식스로 일하는 거 아세요? 오전 9시부터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한 후 오후 6시가 되면 퇴근해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치를 벌을 관찰하며 또 한번 배웠죠.”

산딸나무, 라일락, 각종 그라스와 아름다운 식물이 가득한 메인 가든은 팀펄리가든timperley garden에 디자인을 맡겼다. 전문가 솜씨를 어깨너머로 배운 부부는 틈날 때마다 화훼 시장에 가서 잉글리시 라벤더·은숙·동꽃 등 새 식물을 사 왔고, 네 개 정원에 서로 다른 식물을 정성껏 가꾸고 있다. “사람이 보는 조경도 중요하지만 정원에 어떤 무리가 모이는가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조경 전문가에게 배웠어요. 산딸나무는 예쁜 새가 좋아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작년 가을 빨간 산딸이 열릴 무렵 생전 처음 보는 작고 예쁜 새들이 찾아와서 먹고, 예쁜 나비들이 날아들었어요.”

침실과 이어지는 선셋 가든. 해 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저녁이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거실과 주방, 욕실의 창 너머로 뒷마당의 대나무 풍광이 펼쳐지는 2층 전경.

집에서 조망이 가장 아름다운 3층 욕실. 두 개의 창으로 산 능선의 전경이 이어진다.

언덕이라는 지형적 단점을 스킵 플로어 형태를 적용한 설계로 보완했다.
자연과 취향이 이루는 변주
2층의 또 다른 정원에는 독일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서 사용하던 빈티지 테이블과 벤치를 사서 놓았다. 그래서 이름도 비어 가든이다. 부부도 친구들도 이곳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치 옥토버페스트에 온 것 같은 흥겨움을 일상으로 데려오는 공간이다.

3층 실내는 침실과 드레스룸, 욕실, 복도를 활용한 서재로 최소화하고, 야외 테라스인 선셋 가든과 작은 티 가든을 만들었다. 침실과 이어지며 서쪽을 향해 자리한 선셋 가든은 해 질 녘 풍경이 더없이 평온하고 아름답다. 암체어에 앉아 그 시간의 풍경만 바라보아도 좋고, 해 질 녘 바비큐 파티나 회 한 접시 곁들여 술 한잔하는 것도 좋다.

3층의 욕실은 편백나무 욕조에 편안히 기대었을 때 선셋가든 너머 산 풍경이 두 눈에 모두 담기도록 가로로 긴 창을 냈다. “이 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욕실에 양보했다”고 고백할 만큼, 부부가 따뜻한 반신욕을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가장 오롯한 휴식 공간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집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어요. 네개의 정원을 가꾸다 보니 늘 손에 흙을 묻혀요. 전에는 최신 트렌드의 영감을 도시에서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흙과 자연에서 얻는 영감이 더 크다는 걸 알죠. 업무 효율성도 더 높아졌어요.” 이처럼 집 안에서 다채로운 삶과 휴식의 변주가 가능하니 분기마다 함께 여행을 다니던 김주미 씨의 25년 지기 친구 세 명은 요즘엔 아예 담백명리로 여행을 온다. 이곳에 오면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심지어 배변도 원활해진다는 친구들은 실내와 실외, 여러 정원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비어 가든이나 선셋 가든에 모여 식사를 하며 일상 여행을 즐긴다. 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밝아지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손님을 위해 담백한 회색 톤 침구도 따로 마련했다.

행복을 미래의 제주도로 미루지 않고 현재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한 순간, 건축주 부부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의 인생도 새로운 변주를 맞이했다. 나다움을 잃지않되 새로운 선율을 더해 각자의 삶이 한층 풍성해지는 변주. 비워진 유형의 공간에 무형의 변주가 채워지는 삶, 담백명리는 부부에게 그러한 담백함과 안정감을 선물로 주는 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고기동 주택을 설계한 백에이어소시에이츠(100A associates)의 안광일, 박솔하 건축가는 공간을 분할하고 배치하면서 환경의 단점을 보완하고, 그것이 이 공간만의 특색이 될 수 있도록 고민했다. 무엇보다 건축주 부부가 간직해온 물건처럼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꿈꾸던 집을 생각하며 설계했다. 건축주와 그 진심이 통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 작업이다.

글 김민정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