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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디자이너 김재화·KBS 라디오PD 윤성현 부부의 집 아름다운 시절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김재화 소장이 자연을 지척에 둔 평창동에 가족을 위한 집을 만들었다.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큰 창과 높은 박공지붕 밑에서 욕심없이 사는 삶을 연습 중인 가족을 만났다.

살림집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박공지붕 구조를 그대로 살린 천장과 북한산을 향해 난 커다란 창이 보인다. 구조를 간결하게 다듬은 집이라 거실이 넓어 두 아이가 뛰어놀기 좋다.

주방과 마주한 다이닝룸에서 찍은 가족사진.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김재화 소장의 디자인은 간결하다. 공간의 배경지와도 같은 벽과 바닥재는 언제나 깨끗한 흰색이고, 공간 구획은 분명하다. 적재적소에 창을 내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집 안에 들이고, 따뜻한 컬러와 돌·흙·나무 등을 공간에 섞어 부드러움과 따뜻함을 더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런 그의 디자인은 직접 꾸민 살림집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행복이 가득한 집>에도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신혼살림을 꾸린 첫 번째 집, 두 아이가 태어난 두 번째 집, 두 아이가 유아기를 보낸 세번째 집까지. 지난해 12월, 김재화 소장의 네 번째 집이 완성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는 <행복이 가득한 집>을 가장 먼저 초대했다. 평창동은 본래 산이던 지형이 그대로 남아 언덕을 오를수록 경사가 급하고, 꼭대기로 올라설수록 요새처럼 높은 담장을 두른 주택이 많다. 이 집은 그런 큰길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에 있다. 건물 외관 역시 조금 달랐다.

주방 가구는 김재화 소장이 직접 치수를 맞춰 합판 소재로 제작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만든 넓은 조리대는 거실과 다이닝룸으로 향해 있어 언제나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 

주방과 다이닝룸 곁에 있는 창 너머로 중정갤러리와 팔각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본래 분할되어 있던 창문틀을 통창호로 바꿔 설계한 것. 정오가 되면 이 창을 통해 집 안에 햇살이 쏟아진다. 

거실과 주방이 중심인 집. 왼쪽 큰 슬라이딩 도어로 거실과 서재 공간을 분리했다.
포근한 느낌을 주는 빨간 벽돌집 곁에 증축한 흰 벽 건물이 마치 백설기처럼 붙어 있고, 대문 앞에 서면 낮은 담장과 조팝꽃이 핀 작은 마당이 있다. 이 부지와 건물은 공간 디자이너 김재화와 KBS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정재형 문희준의 즐거운 생활> 등을 디렉팅한 윤성 현PD 부부가 오랫동안 발품을 팔아 찾아낸 곳이라고 한다. “1980년에 지은 복층 구옥이에요. 1년간의 기나긴 공사 끝에 탄생한 집이지요. 오래된 집이어서 손볼 곳이 아주 많았어요. 청소하기 위해 제가 직접 정화조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안전 진단도 다시 받고요. 고친 집이지만 제가 다시 지은 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김재화 소장이 설명했다. 그야말로 구조만 빼고 다 고친 집이다. 그는 이 집을 설계할 때 “공간에 무언가 더하고 싶은 욕심을 버렸다”고 말했다.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내야 삶에 대한 명확한 지표가 드러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창가 벽면을 따라 코너까지 감싸는 소파에는 작은 함을 단 형태로 제작해 수납 기능도 한다.

1층 사무실 현관은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따뜻한 무드를 내기 위해 흰 벽면을 곡선으로 마감했다.

사무실 내부 한쪽에는 매립장을 넣어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그에게는 몇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가족의 현재를 명확히 반영할 것. 두 아이가 자라고, 부부가 늙어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을 때에도, 이 시절을 떠올릴 때 반드시 집이 함께 떠오르길 바랐다. 김재화 소장이 유년을 보낸 집을 이렇게 기억하듯 말이다. “제 유년의 기억은 대개 시멘트를 바른 작은 마당이 있는 단층 양옥집이 배경이에요. 할아버지가 제 목에 수건을 둘러 어린 제 얼굴을 박박 씻기고, 여름엔 마당에 핀 샐비어를 따 먹었어요. 누군가의 생일엔 즐겁게 잔치를 했고요.” 둘째는 지속 가능한 가치를 담을 것. 김재화 소장은 소설가 마쓰이에 마사시의 저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속 한 구절을 언급했다. “주인공인 노건축가가 ‘고도 경제성장에 휩쓸리지 않고, 안이한 자기 과시욕에 구애되지 않고, 실질적이면서도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을 지닌, 사용하기 편리한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하지요. 그 말에 무척 공감했고, 이 집을 구획하는 지침으로 삼았어요.” 이 두 가지 원칙은 여러 면에서 이 집에 반영됐다.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가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동네에 거처를 마련한 것, 흰 벽과 나무가 주를 이루는 집에 디자인 가구도 없이 사는 것. 대도시가 지닌 편리함이나,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것이 바로 이 가족의 이상향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올해 열 살이 된 첫째 아이를 위한 공부방. 한쪽 벽면에 큰 창을 냈다.


1층 사무실에는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간결한 스타일이 드러나는 기물이 있다.
자연을 병풍처럼 두르고 사는 행운
대문을 열면 정원이 펼쳐진다. 이곳에 서면 평창동과 이 집을 둘러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이라지만 서울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에 가깝다. 부부가 오래 기다려 이 집을 얻은 이유가 단박에 이해됐다. “왼쪽으로 북한산, 앞으로 북악산이 보여요. 오른쪽에는 인왕산과 서대문구의 안산이고요. 저 멀리 삐죽 보이는 산봉우리가 관악산이에요.” 윤성현PD가 설명했다. 이날 사진 촬영을 담당한 베테랑 사진가 박찬우 역시 “평창동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이런 풍광은 처음”이라며 감탄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들 사이로 두 아이가 저희끼리 놀고 있다. 라벤더와 로즈메리, 바질잎을 만지던 아 이들이 산수화와 조팝꽃 사이를 뛰어놀다 익숙하게 호스를 끌어와 허브에 물을 준다. 아름다운 자연이 지척에 있으니 모든 공간은 집에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테라스와 연결된 1층은 ‘멜랑콜리 판타스틱 스페이스 리타’의 사무실로 사용한다. 작업실과 넓은 미팅룸으로 간결하게 구성했고, 창은 모두 널찍하다. 사무실과 연결된 계단은 살림집으로 통한다. 층계를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동안 이 집의 매력이 하나씩 더 보인다. 동쪽과 남쪽을 향해 길게 낸 창, 높은 박공지붕까지. 마침내 2층에 올라서자 북악산과 평창동 구도심, 팔각정까지 보이는 이 집의 전망과 나무로 짠 가구가 어우러져 편안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렇게 자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니 그 어떤 미술 작품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에 갑자기 눈이 쏟아져 내릴 때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봄이 시작될 때 놀랍더군요. 매일매일 다른 녹색을 봤어요. 계절이 시시각각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의 힘을 느껴요.”

거실 소파와 마주 보고 있는 놀이방 겸 서재는 슬라이딩 도어로 공간을 연결 또는 분리할 수 있다.

평창동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 정원.
4인 1조의 삶
2층 살림집은 주방 옆에 높고 작은 수납장만 두고 LDK 구조를 최대한 확장한 공간이 주를 이룬다. 모두가 함께 편히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제작한 거실 소파는 모양이 단순하다. 소파 후면부와 책장, 다이닝 테이블 벤치는 남쪽의 창이 난 벽면을 따라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다. 계절의 변화와 4인 1조의 삶을 그대로 담고, 부부가 휴식하며 어린 두 아이가 뛰놀 수 있는 공간으로 완성하기 위한 장치다. “이전 집에는 오랫동안 수집한 수천 장의 CD와 LP를 꽂아둘 수납장을 한쪽 벽면 가득 짜 넣었어요. 이제는 거의 처분했지만, 아깝지 않아요. 저도 많이 변했으니까요. 이젠 AI 스피커와 유튜브로 노래를 들어요.” 윤성현씨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이 변하니 공간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얼마 전 이 가족은 거실에 모여 만화 영화 <이웃집 야마다군>를 봤다. 부부가 결혼 전 함께 보며 가족의 의미를 깨달은 작품이다. “험한 인생을 사는 데 자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는 대사가 와 닿았어요. 하루는 바깥일 때문에 처참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어요. 그런 저희를 보고 아이들이 난 데 없이 하모니카를 불며 까르르 웃더라고요. 이처럼 아이들이 삶의 고단함을 ‘팡!’ 하고 날려줄 때가 있어요.” 가족의 행복한 한때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릴 것을 알기에, 부부는 그 시절을 제대로 포착해낼 집을 짓고 싶었다고 말을 맺었다. 매일 아침 잠을 쫓으며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응시하고, 조각달이 뜬 밤에는 모두 휴대전화를 켜고 그 모습을 더 잘 담으려 애쓰는 가족의 시절, 그리고 일상이 집에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글 박민정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