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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거제 지평집
낮은 언덕 아래 땅속에 파묻힌 건물 한 채는 땅이 만든 선을 해치지 않는다. 수평선을 마주한 땅과 대화하며,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게스트 하우스 지평집은 고요한 휴식을 선사한다.


객실 입구마다 서로 다른 허브를 배치해 계절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공간으로 구획했다.

언덕을 이고 있는 카페 안에 들어서면 바다가 내다보인다. 건축가 조병수는 시각적 편안함을 고려해 카페 바닥면을 기존 지대보다 낮게 구획했다.

정원에서 바라본 객실. 객실은 정원보다 낮은 곳에 있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개별 공간으로 존재한다.
거제도를 둘러싼 남해 바다는 물살이 거칠기로 유명하다. 망망대해가 뺨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구불구불한 길은 맘먹지 않고는 들기 쉽지 않아 사람 발길도 잘 닿지 않았다. “땅에 서자마자 이곳이 좋겠다고 생각했죠.” 언젠가 조용한 곳에 집 한 채 짓고 그곳에 들고 나는 이들에게 휴식을 주리라 마음먹은 지평집의 건축주 박정 대표. 그는 우연히 거제도에 들렀다 옆에 위치한 작은 섬 가조도를 만났다. 소복이 담은 쌀밥을 누군가 한 숟가락 떠낸 듯 옴폭 파인 땅이 있었다. 언덕을 돌아 그곳으로 내려가면 시선은 자연히 앞바다에 머문다. “가조도에 본섬이랑 통하는 다리가 놓인 지 10년 됐대요. 이 땅은 원래 골짜기였는데, 다리놓는 공사를 할 때 돌을 여기에 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박정 대표가 가조도 어른들이 들려준 땅 이야기를 전했다. 지평집 박정 대표는 고민하지 않고 건축가 조병수(조병수 건축연구소)를 떠올렸다. 그가 작업한 ‘미음자집’과 ‘땅집’을 선망했고, 부산에서는 고려제강과 건축가 조병수의 협업작인 ‘키스와이어’가 내려다보이는 집에 살기 때문이다. “건축을 보며 매일 감탄했어요, 선생님께 작업을 의뢰하기 전 건축 공부도 많이 하고, <행복이 가득한 집>도 많이 봤지요.” 박정 대표는 몇 주를 벼르다 건축가 조병수에게 땅 사진과 함께 건물을 짓고자 한다는 메일을 보냈다.


땅을 보는 건축
“땅 사진을 보곤 ‘우리 함께 뭐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건축가 조병수는 땅을 직접 보러 간 날의 느낌을 기억한다. “땅이 그렇게 아름다우니 그 모습을 살려야지요. 거기에 집이 있는 듯 없는 듯, 땅의 벌어진 작은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와 간신히 무언가 있음을 알리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어요.” 고요한 휴식을 즐길공간을 만들고자 한 박정 대표는 땅에서 시작하는 조병수 건축가의 설계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건축가와 건축주 모두 자연이 만든 땅의 생김새를 인간의 욕심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땅을 조금 낮춰 기본 지반을 유지하며, 땅의 흐름대로 지붕선을 만드는 작업을 했지요.” 지평집은 카페 공간을 중심으로 객실 여섯 개가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형태로 이루어졌다. 얕은 언덕을 내려와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가로로 긴 단층 건물은 카페이자 리셉션 공간으로, 땅을 머리에 이고 있다. “설계 도면만 보면 지하로 들어선 땅이지만, 실제로는 열린 곳이죠. 땅에 묻혀 있는 부분은 별로 없습니다. 앞쪽은 바람이 잘 통해 시원하고, 뒤쪽은 옹벽을 쳐 작업했기 때문에 결로도 없지요.” 객실 안으로 들어서면 바다가 액자에 든 사진 작품처럼 보인다. “시각적으로 편안하지요? 땅 높이보다 낮게 설계했습니다. 건물을 높여 바다를 멀리 바라보는 대신 땅속에 안긴 듯한 포근함을 의도했어요.”

바다와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정원은 조경가 김용택(KnL 환경디자인스튜디오)이 매만졌다. 그가 ‘땅을 비우는 작업’이라 부른 이 정원은 흙 마당과 갈대, 키 낮은 조경수와 남해에서 나는 들꽃으로 가득하다. 식물의 생명력은 바다를 향해 기운 땅 모양을 따라 객실로 흐른다. 각각의 방 앞에 허브 가든을 설치하도록 구획한 건축가는 자연과 건물에 인간이 스미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시사철 변해가는 자연이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계절에 따라 마음이 외로울 때도, 따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자연스러운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감동적인 삶이라 생각해요.”

각각의 객실은 건축가 조병수의 의견에 따라 한글 자모를 이름으로 붙였다. ㄱ과 ㄴ방은 복층으로 설계했다.

4인 가족을 위한 ㅅ과 ㅇ방에는 작은 테라스를 설치했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외부 전실이 나타난다. 전실은 곧 욕실의 창이자 작품처럼 보인다.

저녁 시간 불을 밝힌 지평집은 땅속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듯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건축주 박정 대표는 지평집을 찾는 손님을 위해 매일 맛있는 커피와 에이드를 만든다.
시간을 설계한 방
지평집의 객실은 공간보다는 시간을 설계한 방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객실에는 TV가 없다. 텅 빈 방, 머리맡에 베개 하나만 놓고 지내야 하는 빈 시간. “손님이 스스로 채워나갈 시간이 기대됩니다.” 건축가가 말했다. 바다 건너 육지가 희미하게 보이는 방. 침대에 앉았을 때 수평선과 눈높이가 맞는다. 바닷바람에 물결처럼 흔들리는 갈대가 바다를 향해 난 창 밖에 가득하다. 건축가의 의도를 가장 먼저 이해한 것은 이 곳에서 여름을 난 건축주와 가족들이다. “요 앞 작은 자갈뻘에 나가면 게와 고둥, 조개와 쏙이 있어요. 숙소 뒤쪽에 있는 옥녀봉에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고요. 올여름엔 여섯 살 아들에게 잠자리를 잡아주었네요.” 지난 1월 1일 오픈한 이후 손님들의 방문이 계속 이어진다.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던 손님들이 아무것도 없는 그 시간을 심심치 않게 지냈노라, 밤에 밖에 나와 달무리를 봤노라, 파도 소리를 들었노라 이야기할 때 박정 대표의 마음은 뿌듯해진다.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집
건축가가 묻는다. “여기, 멋있는 것 같나요? 건물이 멋있어서 좋은 건축이 아니에요. 주변 대지가 건물을 어떻게 감싸 안고 있는지 보세요. 땅과 같이 흐르니 ‘멋있다’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건축가 조병수는 지평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물보다는 땅과 인간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건축물이 들어설 자리를 높여 삶을 무대 위로 올려놓았고, 르코르뷔지에는 한때 땅을 삶의 가능성을 좁히는 공간으로 여기기도 했다. 지속 가능한 건축의 궁극적 출발점이 땅에 있음을 이해하는, 지극히 한국적 정서의 건축인 지평집은 바다를 멀리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대로 바라보기를 권한다. 지평집에서는 누구나 자연에 스며들 준비를 하게 된다. 주소 경남 거제시 사등면 가조로 917 문의 010-5352-2030, www.jipyungzip.com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조병수는 한옥의 단칸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땅집'과 'ㅁ자집'의 연장선에서 가조도의 게스트 하우스를 지었다. 자연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 그의 건축 철학을 담은 지평집은 올해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에서 주최하는 건축 심포지엄인 ESRARC 2019에서 마스터 디자인으로 소개되며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글 박민정 기자 | 사진 이기태 기자, 세르조 피로네Sergio Pirrone, 박영태, Sung Lee(Studio643) | 설계 조병수건축연구소(Bcho Architects)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