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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리한 집 미키 하우스
혼자 사는 집이야말로 개인의 취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다른 구성원과 타협 없이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고,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즐겁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블랙 톤을 바탕으로 편안하면서 클래식한 분위기로 꾸민 거실. 가죽 소파가 공간의 무게를 잡아주는 한편, 노르웨이 디자이너 시구르 레셀Sigurd Ressell이 1970년대 만든 팔콘 체어Falcon Chair와 세계적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의 래빗 체어Rabbit Chair가 거실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태원에서 영어 이름 ‘미키Mikey’로 더 통하는 MYK 박정근 대표는 이태원의 뜨거운 밤을 더 격렬하게 만드는 남자다. 클러버들의 성지와도 같은 클럽 비원과 글램 라운지 바, 프로스트 펍앤그릴, 이탤리언 레스토랑 섹션 A, 피자무쪼까지 이태원에서 그가 운영하는 클럽과 레스토랑은 모두 다섯 곳. 이태원 부흥의 중심에 서 있는 그답게 사는 집도 이태원 한복판이다. 환한 불빛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태원 번화가와 한적한 부촌 주택가의 오묘한 경계에 위치한 고급 빌라. 그는 오랫동안 살던 같은 빌라의 바로 아래층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이유는 야외 테라스였다. 빌라에서 보기 힘든 펜트하우스로 개별 단독 테라스가 있고, 남향이어서 채광이 좋은 집이었다.

“이 층에만 큰 테라스 정원이 딸려 있어서 눈여겨보았거든요. 언젠가 집주인에게 레노베이션해서 들어가도 되는지 물어봤더니, 아예 구입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가 덜컥 집부터 사버렸죠.” 60평에 달하는 넓은 테라스에 매료되어 집을 사긴 했지만, 상공간이 아닌 자신이 생활하는 주거 공간을 인테리어하기는 처음인 데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공간을 꾸미고 싶었던 박 대표는 치호앤파트너스 김치호 대표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해밀톤 호텔 뒷골목에 위치한 디스트릭트부터 섹션 A까지 MYK의 공간 디자인을 맡아온 파트너였기에 누구보다 박 대표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렇게 구상부터 공사까지 꼬박 2년이 걸린 일명 ‘미키 하우스’의 문이 열렸다.

다이닝룸 옆에 마련한 티룸은 문을 닫으면 독립된 공간으로 브런치나 티를 즐길 수 있고, 폴딩 도어를 열면 테라스까지 연결되어 야외 정원의 일부가 된다.

모두에게 열린 나만의 공간
박정근 대표가 요구한 사항은 꽤나 까다로웠다. “독특하면서 과하지 않게, 무난하면서 남다르게, 클래식한 중후함도 갖춰야 해요.” 마치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의 한 문장을 읊는 것 처럼 들렸다. 말하자면 ‘자연스럽되 거칠지 않고 아름답되 요란스럽지 않으며, 실용적이되 천박하지 않고 조화롭되 인공적이지 않은’ 집을 원한 것이다. 김치호대표는 그와 수없이 논쟁 아닌 대화, 토론 아닌 수다를 나누었다. 마침내 레노베이션의 핵심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분리한 집’으로 정리했다. 혼자 사는 집에 왜 프라이빗한 공간이 따로 필요했을까? “해외에서 다양한 외국 친구를 두루 사귀다 보니 집에 대한 개념이많이 바뀌었거든요. 혼자 살더라도 친구들이 격의 없이 놀러 오기도 하고, 함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복작거리는 집을 생각했어요.” (실제로 박 대표는 현재 하우스메이트가 한 명 있으며, 촬영하는 날에도 동료와 친구 여럿이 놀러 와 있었는데, 모두 자기 집인 듯 편안해 보였다.) 국적, 신분,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듯이, 그의 집도 손님들이 따뜻하게 머무르다 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기를 바랐다.

김치호 대표는 우선 미로처럼 가로막혀 있던 벽과 문을 철거해 주방과 다이닝룸, 거실을 하나로 연결한 LDK 구조를 완성했다. 그리고 다이닝룸 옆에 브런치나 차를 즐길 수 있는 티룸을 보조 공간으로 마련했다. 폴딩 도어를 설치한 티룸은 문을 닫으면 독립적 공간이지만, 문을 열면 테라스까지 연결하는 정원의 일부가 된다. “적게는 스무 명에서 많게는 쉰 명까지 친구를 초대해 파티를 열더라도 거실에서 다이닝룸, 티룸을 지나 테라스까지 동선이 부딪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죠.” 공용 공간을 잇는 LDK는 사람들이 한데 어울리기에 좋지만, 벽 없이 가구를 배치해 공간을 분리해야 하므로 인테리어를 하기에는 까다로운 점이 있다. 김 대표는 불탑의 메탈릭한 주방 가구로 파티션을 만들고, 블랙 소파 뒤에 세련된 블랙 6인용 식탁을 배치해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동시에 연결감을 부여했다. 이렇게 블랙톤을 바탕으로 나무, 금속, 대리석을 주된 마감재로 사용해 편안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실 정면의 신비로운 초록빛 대리석 벽은 그가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찾아낸 것이다. “대리석 무늬가 마치 붓으로 그린 동양화를 보는 것 같았죠.” 작품인지 돌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대리석 벽 맞은편에는 의미심장한 액자가 걸려 있다. 전 세계 작품을 수집하는 유명 컬렉터이자 가장 친한 미국 친구가 선물한 중국 작가의 작품이다. 거실에 놓은 가죽 의자는 파리 빈티지 마켓에서 공수한 것이고, 서재의 테이블 램프는 일본 편집매장에서 직접 사 들고 온 제품이다. 이렇듯 그가 오랜 시간 수집해온 소장품이 더해져 보다 의미 있는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한편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을 수 있는 테라스는 내부와는 대조적으로 화이트 스톤으로 마감해 밝고 따뜻한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부신 해변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마이애미 리조트에 온 것 같지 않나요?”

소파와 식탁, 주방 아일랜드가 공용 공간을 효율적으로 분리한다. 철선으로 아스라이 사라지는 듯한 형상을 만드는 박보미 작가의 플로어 조명등과 아트 컬렉터인 친구에게 선물 받은 작품이 공간 전반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다.

따뜻한 색감의 원목과 가죽, 패브릭으로 아늑하게 꾸민 침실에는 미스 반 데어로에의 바르셀로나 체어와 포르나세티 테이블 램프로 포인트를 주었다.

사적 영역 안에서 트레이닝룸과 복도, 침실, 드레스룸, 욕실이 하나의 동선으로 원활하게 이어진다. 편백나무로 만든 사우나룸과 욕조가 놓인 욕실은 밝은 대리석과 짙은 원목을 배치해 고급스러운 호텔 욕실을 연상시킨다.

동물 초상화가 그려진 아이브리드의 트레이, 기하학 형태의 캔들 홀더와 이국적 오브제 등 박정근 대표의 개성 있는 취향을 잘 드러내는 소품이 집 안 곳곳에 전시되어 마치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화이트 스톤과 차양으로 휴양지 리조트 분위기를 연출한 테라스에 앉은 박정근 대표와 김치호 대표. 테라스에도 파티션을 두어 거실, 침실, 드레스룸 각 공간마다 개별 발코니를 가진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거실 중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트레이닝룸이 가장 먼저 맞이한다.

원목 책장과 테이블로 지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서재에서 그는 사색을 즐기거나 영감을 주는 아트 북을 본다.
집 안의 또 다른 집
거실 벽면에 설치한 중문은 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완전히 독립된 혼자만의 공간이 펼쳐진다. 마치 집 안의 또 다른 집처럼 침실과 드레스룸을 중심으로 복도를 통해 욕실, 트레이닝룸까지 연결되는 순환구조이다. 공용 공간은 대리석과 금속으로 포인트를 주었다면, 사적 공간은 아늑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위해 바닥부터 천장까지 주로 나무를 사용했다. 각 방의 연결 고리가 되는 복도는 천장에 흑경을 설치해 자칫 좁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통로에 확장감을 더했다. 박정근 대표는 거실로 나가지 않고도 개인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이를테면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그는 트레이닝룸에 들어간다. 러닝 머신 위에서 보통 속도로 걷기를 하다 인터벌로 뛰고 나면 어느새 땀이 흠뻑 젖는다. 가벼운 운동을 한 후에는 욕실 안에 있는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샤워를 한다. 그리고 드레스룸에서 무슨 옷을 입을지 고르고, 침실 발코니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이 모든 것이 프라이빗 영역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집 옆에 별채를 따로 만든 셈이다. 따사로운 햇빛이 감도는 낮 시간도 좋지만, 미키 하우스의 밤은 좀 더 특별하다. “낮엔 여유로운 휴양지에 온 것 같다면, 해가 지면서 이국의 활기가 느껴져요. 창문 너머로 무슬림 사원의 조명이 비치는 걸 보면 정말 외국에 와 있는 것 같죠. 파티를 하기에도 좋은 시간이고요.” 완벽히 독립된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쌓을 수 있는 집. 그가 꿈꾸는 미키 하우스의 모습이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